Druid RAW novel - Chapter 239
0238 설날
민족 최대의 명절 자리를 두고 추석과 다투는 설날이 찾아왔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은이는 단아한 한복과 달리 활발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에 까치가 나온다는 이유로, 수많은 까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날씨가 제법 좋은 추석과 다르게 매우 추운 설날의 날씨에, 온갖 털들로 중무장한 채 뛰어다니고 있었다.
“공주님이 여우 목도리하고 있는……. 저거 왜 움직이냐?”
“소은이 머리에 있는 거, 저거 토끼 모자 아니지? 진짜 토끼지?”
그 털이라는 건 당연히 동물들의 털이었다. 물론, 동물들의 털을 뽑은 것이 아니라, 진짜 털 달린 동물들을 데리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목에 감겨 있는 목도리……가 아니라, 여우였다. 이제는 많이 커져서 소은이 목에 감기기엔 무리인 구박이나 미호 대신, 녀석들의 새끼 중 한 마리가 자처하고 있는 것이었다.
“헤헹. 소은이 좋아.”
다른 누구도 아닌, 소은이의 목에 직접 말려 있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하는 녀석은 간간히 꼬리만 한 번씩 살랑이며 목도리의 역할을 100% 소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소은이의 머리 위에서 몸을 축- 늘어트린 채로 있는 일기토였다.
겨울을 맞이해서 안 그래도 많아 보이던 털을 더 부풀린 녀석은 소은이의 머리 위에서 다리를 늘어트려 귀까지 덮어주고 있었다.
녀석들을 떼어낸다면 들러붙어 있을 털들이 조금 문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소은이는 따듯하고 좋다며 오히려 모자를 쓰거나 진짜 목도리를 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있었다.
“잠깐만. 손에 있는 저 하얀 덩어리, 핫팩이 아니라 새 아냐? 방금 날갯짓한 거 같은데.”
물론, 소은이가 데리고 있는 동물들은 그 두 마리가 전부는 아니었다.
손에는 핫팩 대신, 흰둥이라는 이름의 흰머리오목눈이를 쥐고 있었다.
핫팩보다 따듯함을 덜하지만, 복슬복슬한 느낌과 더불어 손에서 놓는다고 해도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니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 외에도 주머니에서는 하늘다람쥐인 하늘이가 튀어나오고, 발목 주위에는 열 마리의 메추리들이 발목을 데워주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공주님이나 신수님은 남극이나 북극 같은 곳에 조난돼도 얼어 죽지는 않을 거 같아.”
“나도. 남극은 펭귄이 지켜줄 거고, 북극은 북극곰이 지켜주지 않을까?”
그 모습을 본 몇몇 사람들이 조난 걱정은 정말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며 나와 소은이를 평가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동물들을 만나지 못하면 먼저 얼어 죽을 텐데.’
나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을 하며,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소은이에게 다가갔다. 어찌나 열심히 뛰는지, 쫓다 보니 몸에 열이 올라 더워질 지경이었다.
“소은아.”
“웅? 압빠!”
열심히 뛰던 소은이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가 부르니, 소은이가 급정지하듯 멈춰 섰다. 덕분에 같이 달리던 메추리들이 속도를 멈추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하지만 소은이는 메추리들이 다시금 벌떡 일어나 도도도- 달려오는 모습을 보더니 내게 달려와 덥석 안겨들었다.
“뀨엑!”
손과 주머니에 있던 흰둥이, 하늘이가 자그마하게 비명을 내질렀다. 덥석 안겨들며 순간 짓눌렸기 때문인데, 아주 작은 동물들 치고는 무척 강인한 녀석들이었기에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던 두 녀석이 다시금 제 위치를 고수하는 것을 보면 멀쩡해 보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안겨든 소은이를 안아 든 나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나와 누나가 준비하는 사이, 잠깐 놀고 와도 된다고 했더니 전화도 받지 않고 동물원 전체를 휘젓고 있었기에 데리러 온 것이었다.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기라고 해서, 안 잃어버리게 엄마 가방에 넣어 뒀어!”
“……그래, 잘했네.”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가 좀 신박하긴 했지만, 일단 소은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준비를 끝낸 우리는 곧바로 차에 탑승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명절인 설날이 되었으니, 웃어른들께 인사 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하무이, 하라부지!”
뒷좌석에 얌전하게 앉은 두 아이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 것이 좋다는 듯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차를 몰고 잠시 이동해, 아이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내게 가까이 있을수록 건강에도 좋다 보니, 애초에 먼 곳에 거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처럼 동물원 안에 있으면 너무 번잡할 것 같다며 어린이 대공원 입구 바로 앞에 있는 주택에 거주하시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주택의 앞에 차를 멈춰 세우니, 미리 보고 있기라도 했던 건지 주택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나타났다.
당연히 주택에서 나온 사람들은 나와 누나의 부모님들이었다.
법적인 관계야 사돈사이긴 하지만, 워낙 죽이 잘 맞고 사이까지 좋다 보니 친구를 넘어 가족처럼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와 아버님 둘이서 새벽에 말도 없이 몰래 낚시를 갔다가, 다음 날 아침부터 사이좋게 무릎을 꿇고 혼날 정도로 친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엄마와 어머님 역시 언니동생 하며 붙어 다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자그마한 마당을 두고 ‘ㄷ’자 모양으로 지어진 집을 반반 양분하여 사용하는 중이었는데, 부모님들이 먼저 그러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양가 부모님들은 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보이며 반겨주었다.
“소은아! 은수야!”
“아이구, 우리 똥강아지들도 왔어?”
물론, 그 우리에는 나와 누나는 포함되지 않는 느낌이 있긴 했지만.
“나도 좀 반겨주면 안 돼?”
“소은아, 은수야. 어여 따신 곳에 가자.”
“애들 춥게 무슨 한복이야. 뜨뜻한 패딩이나 입히지. 그래도 목도리나 모자는 뜨뜻한……동물이구나. 그래, 소은이가 좋으면 됐지.”
“……좀 반겨달라고. 명절인데.”
“뭐 해? 안 들어오고.”
“…….”
반겨달라고 하니, 반겨주는 건지 아닌지 애매한 아빠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차에 실어둔 부모님들 선물을 꺼내 집으로 들어갔다.
“솜주먹 안녀어엉!”
그리고,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니, 소은이가 솜주먹의 앞발을 잡고 덩실덩실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솜주먹은 누나가 나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어머님과 아버님이 키우던 말티즈였다. 내 초능력이 애니멀커뮤니케이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초능력을 누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만났던 말티즈이기도 했다. 산책 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로 소파를 작살내놓은 녀석이기도 했다.
“반갑다! 반갑다! 좋다!”
그런 솜주먹은 제 앞발을 붙잡은 소은이의 손등을 핥아대며 무척 기분 좋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도 녀석에게 다가가, 자그마한 머리통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소은이보다는 자주 찾지 못한 나도 잘 기억하고 있는지, 녀석은 머리를 쓰다듬으려는 내 손을 핥으려고 열심히 고개를 꺾어댔다.
앞발을 소은이에게 잡힌 채로 어떻게든 핥아보려는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늘 가지고 다니는 동물들 간식을 조금 내어주었다. 개들이 특히 좋아하는 육포류를 내어주니 무척 좋아했다.
“맛있다! 좋다!”
간식을 맛있게 받아먹는 솜주먹 녀석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소은이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니, 소은이는 지금까지 몸에서 떼어놓지 않던 동물들을 떼어놓았다. 머리 위의 일기토를 내리고, 목을 휘감던 여우를 풀어 내려놓은 다음 양쪽 주머니를 데우던 하늘이와 흰둥이도 빼내었다.
다만, 소은이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하늘이와 흰둥이 두 녀석은 포로록- 날아올라 주머니를 다시 비집고 들어갔다.
“들어가면 안대.”
소은이는 그런 두 녀석을 다시 움켜쥐고 주머니 밖으로 빼냈다. 그럼에도 또 들어가려는 두 녀석의 모습에, 소은이는 녀석들이 들어갈 주머니가 달린 겉옷을 벗었다.
자유를 되찾았다고 해야 할지, 기쁨을 잃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동물들의 모습에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환아.”
“아, 여기 선물. 이건 아빠 거, 이건 아버님 거.”
밖에 있는 솜주먹과 놀겠다는 듯이 문을 밀고 나가려는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누나가 나를 톡톡 건들며 신호를 주었다.
나는 곧바로 그 신호를 이해하고, 챙겨 온 선물들을 나눠드렸다. 내가 주지 않더라도 알아서 건강식품을 잘 챙기는 두 사람에겐 좋아 죽는 낚시 용품 세트를 드렸고, 엄마와 어머님에겐 상품권을 드렸다.
“음, 어서 와라.”
“사위가 보는 눈이 참 좋단 말이여! 하은이 너, 남편 잘 뒀다.”
선물을 받은 아빠와 아버님의 반응이 바뀌었다. 애들에게만 가던 시선이 나와 누나에게도 나눠진 것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아이들을 보며 기뻐하고 있는 부모님들을 잠시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정확히는 소은이가 열심히 몸을 흔들며 재롱을 부리니 어른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사라지지 않았다.
“소은이가 커서도 저럴까?”
“안 그럴 거 같은데. 왜, 크면 내가 어릴 때 왜 저랬나 싶잖아.”
내 말에 누나가 맞다며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내 어릴 때가 담긴 사진이나 비디오를 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미쳤던 건가 싶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설날이니 애들한테 어디 세배 좀 받아 보자!”
“그려. 설날인디 세배 정도는 받아야 할 거 아녀. 당신도 이리 와서 같이 받어.”
누나와 가볍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소은이의 재롱을 뒤에서 구경하고 있으니, 아빠와 아버님의 의견으로 인해 갑자기 세배를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 나와 누나는 곧바로 어른들에게 세배했다. 올해는 건강하고, 하려는 거 다 잘 되어라. 지금까지 많이 들었던 새해 덕담까지 받고 난 다음, 아이들이 나섰다.
“은수야, 이러케! 이러케 하면 대!”
아직 어린 은수에게 몸을 숙이고 어떻게 해야 한다며 가르친 소은이가 총 네 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향해 절을 했다.
“푸흡!”
물론, 소은이도 아직 절하는 모습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엉덩이가 조금 과하게 들어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수는 그런 소은이에게 교육받은 데다 몸 쓰는 것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 자세가 더더욱 이상했다. 어떻게 보면 개구리가 엎드려 있는 것 같은 자세로 어정쩡하게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절을 하고 나서 고개를 슬며시 들어 올린 소은이가 입을 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오!”
“바드세오!”
은수는 소은이가 하는 말을 어미만 따라 했다.
그 모습이 또 귀여웠기 때문인지, 나와 누나는 물론이고 양가 부모님들 모두 함박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우리 손주들이 세배를 했으니, 세뱃돈을 줘야지.”
그렇게 함박웃음을 지은 부모님들은 망설임 없이 지갑을 꺼내 지폐를 내밀었다.
“감사합미다!”
“미다!”
자기들 앞에 내밀어지는 지폐를 잡은 아이들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소은이는 저금통으로 쓰고 있는 장난감 상자를 채울 수 있는 돈이 생겨 좋아했고, 은수는…….
“우뭄므뭄.”
“은수야 그거 먹으면 안 돼! 먹는 거 아냐. 지지!”
초록색 지폐를 배춧잎 같은 걸로 착각했는지, 지폐를 입에 넣고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소은이랑 다르게 돈을 줄 일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돈을 받은 은수가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내놓지 않으려는 은수에게 진짜 배춧잎 한 장을 주고서야 지폐를 입에서 빼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