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64
0263 미스터 엔초(3)
“안녕!”
엔초에게 다가간 소은이는, 자기보다 더 커다란 엔초를 향해 손을 훅 뻗었다. 손바닥을 한껏 펼치며 인사하듯 손을 뻗은 것이었다.
어서 자신에게 인사해 주길 기대하고 있는 소은이의 입꼬리가 연신 꿈틀거렸다. 인사만 해주면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트리며 안겨들 것이 뻔했다.
“아름다운 아가씨로군요. 당신이라면 얼마든지 저의 등을 내어드리겠사옵니다.”
잠시 소은이를 바라보던 엔초는 그대로 몸을 숙이며, 소은이가 들어 올린 손바닥에 제 얼굴을 갖다 대었다.
“꺄하하하항!”
제 손바닥에 머리를 비비는 엔초의 모습에, 소은이가 웃음을 터트리며 그대로 엔초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푸르릉- 소리를 내는 엔초를 끌어안고 마구 쓰다듬어댄 소은이는 몸을 숙이고 있는 엔초의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응약!”
다만 안장이고 뭐고 없는 엔초의 등은 조금 미끄러웠다. 덕분에, 소은이는 올라가던 자세 그대로 뒤집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악! 소은아!”
엔초의 등에서 미끄러져서 넘어지는 소은이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서 다가갔더니, 신기한 자세로 손바닥과 발로 땅에 착지해 있는 소은이를 볼 수 있었다.
마치 누나가 요가할 때 가끔 보는, 백브리지 자세 같은 모습이었다. 남자들에겐 백브리지라는 말보다는 드라군 자세라는 말이 더 쉽게 와닿는 그 자세였다.
미끄러지며 손이 먼저 바닥에 닿은 다음, 몸이 뒤집혀 발이 땅에 닿게 된 것이었다.
“에헤헤헤.”
“어휴.”
백브리지 자세를 한 상태로 해맑게 웃고 있는 소은이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다음, 소은이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바닥에서 일으켜 주니, 손을 털어낸 소은이가 다시금 엔초의 등 위로 올라타려는 모습을 보였다.
“편히 오르시지요. 아가씨.”
다시금 제게 올라타려는 소은이의 모습에, 엔초가 무릎을 완전히 굽히며 편하게 탈 수 있도록 몸을 낮추었다.
그래도 워낙 덩치가 큰 녀석이다 보니, 엎드렸음에도 녀석의 등은 소은이의 허리보다 높았다.
“끙!”
물론, 그 정도는 소은이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녀석의 갈기를 움켜쥐며, 느릿느릿 조심해서 움직이니 수월하게 오를 수 있었다.
소은이가 갈기를 살며시 붙잡고 엉덩이를 꿈틀거리면서 자리를 잡으니 그제야 엔초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녀석이 우뚝 솟아오르며 소은이가 순간 휘청였다. 하지만 갈기를 강하게 붙잡고 자세를 유지하니, 어느새 소은이의 눈높이가 나보다 더 높아졌다.
“히히히!”
마치 기린이나 뿌우뿌우 위에 앉을 때처럼 눈높이가 무척 높아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은이가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출발!”
“꽉 잡으십시오!”
소은이가 출발이라 외치니, 엔초 녀석이 곧장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닥, 따닥, 발굽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엔초는 무척이나 늠름하게 보였다. 비록, 소은이가 중심을 잡기 위해서 열심히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엔초가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람라리의 회장이 통역을 대동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참 아름다운 말이지 않습니까.”
“많은 동물들을 보긴 했는데, 그중에서도 아름답긴 하네요.”
소은이를 태우고 가볍게 뛰어다니는 엔초의 모습은 한 폭의 명화처럼 느껴졌다.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엔초와, 그 위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소은이는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있을 정도로.
“무하마드가 참 많이 고민하고 제게 연락을 했었습니다. 저 공주님이 뽀니와 헤어지면 많이 아쉬워할 테니, 무척 특별한 말을 선물해주고 싶다고요. 제가 아할 테케를 키우고 있었거든요.”
“아……. 그래서 람라리 측에서 동물원으로 기증하는 쪽이 된 건가요?”
어째서 람라리가 엮였던 건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죠. 하지만, 무하마드가 동물원으로 보내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예? 그럼 왜……?”
“제가 꼭 이렇게 했으면 했거든요.”
람라리 회장은 람라리의 이름으로 기증하게 된 자세한 이유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저는 드루이드의 구독자인 만큼 드루이드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죠.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건, 드루이드의 초능력 효과를 받은 말은 경마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뽀니가 다른 경주마들을 이길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반드시 람라리의 이름으로 기증하는 형태가 된 겁니다. 다른 동물이 아니라, 말이니까요.”
람라리의 회장은 엔초를 태우고 왔던 차량을 가리켰다. 그 자체에는 앞다리를 들고 있는 자세의 말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말이라면, 역시 람라리의 말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범한 말들은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최강의 말은 엔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드루이드께서도 저희 차량을 한 대 보유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람라리 회장은 자신의 욕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원래 엔초를 소유하고 있던 것은 람라리 회장이었고, 무하마드가 그 엔초를 내게 기증하는 조건에 그 항목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걸로 생색내는 초저가의 마케팅을 하는 거라고 볼 수 있었지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동물원인 만큼, 동물에게 하나의 스토리가 있는 것은 관람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은이가 엔초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직 최강의 말은 힘들지 않을까요? 뽀니가 있는데.”
경주마들을 가볍게 이기는 뽀니가 있었다. 아무리 엔초가 내 초능력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고 해도, 뽀니가 함께했던 그 기간의 차이는 쉽게 좁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엔초의 베이스가 몇 배는 더 좋다고 해도, 아직까지 차이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을 지적하니, 람라리 회장도 뽀니는 생각하지 못했던 건지 표정이 어색해졌다.
“뽀니는……. 그, 그래요. 슈퍼 바이크인 거죠. 저희 람라리는 역시 하이퍼카 아니겠습니까?”
어색한 표정으로 변명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람라리 회장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한 번 기대해 보세요. 엔초라는 이름을 가진 말이 어떻게 될 건지.”
내 말에 람라리 회장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소은이가 무척 좋아하는 말을 받게 된 기념으로, 람라리 회장을 데리고 동물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따지자면 무하마드가 보내준 엔초였지만, 스토리를 만들어준 것은 람라리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람라리의 회장을 데리고 동물원을 한 바퀴 돌았다. 작은 동물들과 직접 교감을 나눠보는 것은 물론, 뿌우뿌우에게 인간칼리버 체험을 한다거나 아라를 타고 가볍게 하늘을 날아 보는 체험도 시켜 주었다.
“최고였습니다!”
동물원을 돌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을 체험한 람라리 회장은 무척 만족스런 표정으로 떠나갔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가족 모두의 사인을 받아서 말이다. 커다란 종이에 우리 가족의 사인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바로 액자에 끼우고 있을 정도였다.
람라리 회장이 구경에 무척 만족하며 떠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엔초 녀석이었다.
동물원 투어가 진행되는 중에도 엔초의 등에서 내려오지 않은 소은이는 무척 기쁘다는 표정으로 엔초의 갈기를 붙잡고 있었다.
“압빠! 내일 엔초 타고 학교가도 돼? 웅?”
소은이는 나를 바라보며, 꼭 허락해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그리고, 허락할 수 없다는 내 말이 나오자, 소은이가 선물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였다.
“힝. 힝힝.”
“그래도 안 돼. 소은이 혼자서 엔초 탈 수가 없잖아?”
“혼자서 탔는데!”
“엔초가 숙여줘서 탈 수 있었던 거잖아? 엔초가 서 있을 때에도 탈 수 있으면 허락해 줄게. 처음에 올라타려고 했다가, 미끄러져서 다칠 뻔했잖아?”
소은이는 아쉽다는 듯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소은이가 혼자서 엔초를 탈 수 있게 되면 바로 타고 다닐 수 있게, 아빠가 엔초한테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줄게.”
“아라써! 압빠 사랑해!”
내 말에, 소은이가 엔초의 위에서 폴짝 뛰어오르며 내게 안겨들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소은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 ◑ ● ◐ ○ ◑ ● ◐ ○
“핫챠! 핫챠!”
엔초를 혼자서 탈 수 있게 되면 타게 해 준다고 하니, 소은이는 매일같이 폴짝폴짝 뛰며 점프 연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옆에서 같이 폴짝폴짝 뛰어대는 토끼즈의 모습을 보면 연습이라기보다는 같이 노는 모습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엔초에게 향했다.
“엔초야, 안장은 좀 어때?”
“조금 어색하긴 한데, 불편하진 않습니다. 아가씨를 태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좋은 느낌입니다.”
“다행이네. 일단, 오늘도 사람을 태우고 움직이는 걸 좀 연습해 보자.”
엔초는 올라타라는 듯, 몸을 살며시 돌려주었다.
안장에 달린 손잡이와, 발걸이를 밟고 힘차게 땅을 박차 오르니 엔초의 등 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자, 앞으로 가자.”
엔초가 불편하지 않게 특별히 제작해 둔 고삐를 잡고, 발로 녀석의 옆구리를 가볍게 톡 두드렸다.
출발 신호를 인식한 녀석은 천천히 전방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녀석이 사람을 태우고 가볍게 걷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자, 나는 녀석이 움직이는 속도를 조금씩 빠르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가볍게 조깅하듯 뛰는 속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는 전력으로 질주하는 것에도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녀석이 여러 환경에서 뛰는 것을 적응시켰다. 아스팔트, 콘크리트, 흙바닥, 진흙, 산길 등등. 소은이의 탈것으로 활약하게 될 녀석이다 보니, 온갖 환경에 적응시킨 것이었다.
내 초능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녀석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모든 환경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녀석의 신체 능력이 좋아지는 것 역시 느낄 수 있었다. 온몸에 느껴지는 바람의 수준을 감안하면 빠르게 달리는 것이 분명함에도, 녀석의 움직임은 아주 가볍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엔초 녀석의 실제 수준을 확인하기 위하여, 다시금 경마장을 찾게 되었다.
내 초능력의 영향을 받은 말은 경마에 참여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었기에, 정식 경마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가볍게 훈련을 하는 경주마들을 모아, 일종의 친선경기를 진행하는 형태로 수준을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엔초야, 잘할 수 있지? 네 실력을 한 번 보여주자고.”
“걱정 마십시오. 이 엔초,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그 어떤 말에게 뒤질 생각은 없사옵니다.”
처음으로 경주마들과 기수들이 자리하는 곳에 서서 출발을 기다리게 되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그런 긴장감에 고삐를 꽈악 움켜쥐고 있으니, 삑- 소리와 함께 앞을 가리던 가림막이 열렸다. 철컹하고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양 옆에서 다른 말들이 먼저 치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남들보다 조금 늦었다는 사실에, 다급히 엔초의 옆구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엔초가 전력을 다해 땅을 박차며 나아갔다.
몸이 크게 흔들리며 당장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고삐를 잡고, 허벅지에 힘을 주며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
빠르게 움직이는 엔초의 위에서 몸을 낮게 숙이니, 녀석의 움직임이 더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몸이 떠오르며 주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수많은 구경꾼들의 환호성이 들려오며, 먼저 치고 나갔던 말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 조금 늦은 출발을 엔초 녀석이 빠른 속도로 따라잡은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앞서나간 말들을 제친 엔초는 콧김을 훅훅 뿜어댔다.
[엔초! 그 이름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질주합니다! 1위 자리를 놓치지 않는 말벅지를 가볍게 추월합니다!]주변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엔초의 1위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엔초는 그것에서 만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경주마들을 제쳤음에도 또다시 말들을 제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경마를 해설하는 이의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힘입어 엔초의 옆구리를 한 번 더 두드리니, 더 강한 콧김을 내뿜은 엔초가 더 강한 힘을 내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어마어마한 힘을 내며 달린 엔초는 한 번 제치고, 두 번 제친 경주마들을 또다시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끝내 두 바퀴 하고도 반 바퀴의 격차를 벌리게 된 엔초는 당당하게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1위의 자리를 차지한 엔초는 마치 람라리의 마크에 그려진 말처럼, 앞다리를 번쩍 치켜들며 그 기쁨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