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65
0364 IF 외전 – 군인 신수환(6)
“돌입 시간을 앞당긴다.”
권총 한 정을 홀스터에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선언하듯 외쳤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에, 주변에 있던 부하들이 나를 미심쩍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에 빠져서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는 건가?’하고 의심하듯 바라보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설마 여자 때문에 임무를 실패하겠냐.”
“아닙니까?”
소대장 놈이 당돌하게 되물었다. 당연히 아니지!
“영감님이랑 통신하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이 없던 건 아닌데, 잠깐 생각해 보니까 지금 움직이는 게 낫겠더라고.”
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시간을 앞당기는 게 아니었다.
“병남아. 정찰로 파악된 놈들의 수는 몇 명 정도였지?”
“영상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약 백여 명 정도 되었습니다. 교대, 휴식 등을 고려하면 백사십에서 백오십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들었지? 우리 인원으로 그놈들을 다 제압하거나 사살하긴 힘들어. 심지어, 우리는 인질들도 보호하고 구출해야 하는 상황이니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움직여야 한다는 거다.”
지금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말하며,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던 코끼리들을 가리켰다.
“요즘 코끼리들이 밀렵 때문에 야간에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코끼리들은 주행성이야. 해가 떠 있어야 제대로 활약할 수 있다는 거지. 지금 우리 전력의 대부분은 코끼리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코끼리들이 활약하기 위해서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판단이다.”
내 말이 끝나니, 미심쩍다는 듯이 바라보던 시선들이 누그러졌다. 솔직히, 지금 우리의 전력 대부분은 코끼리라는 말이 절대 과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방탄 기능이 달린 갑옷을 입은, 어떻게 보자면 기갑코끼리라고 해도 될만한 상태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코끼리들에게 씌워둔 방탄 갑옷은 평범한 소총은 꿰뚫을 수 없는 수준의 방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탄두가 날아가며 생기는 물리력 자체는 상쇄할 수 없다지만, 아프리카코끼리의 압도적인 피지컬이라면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남아 있는 문제라고는 대물 저격총 수준의 대구경 탄환은 막을 수 없다는 것과, 폭발물에는 무용지물이라는 것뿐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두 문제는 해결 방법이 있었다. 바로, 우리가 그 두 문제를 상대하면 되는 것이었다. 대물 저격총이나 폭발물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해버리면 그만이었다. 폭발물이라고 해봐야 두 개 밖에 없었으니, 그걸 처리한다면 저격총을 들고 있는 이들만 주의하면 되는 것이었다.
“정찰 영상에 대물 저격총을 가지고 있는 놈들도 나와 있었지?”
“그렇습니다. 대부분 외곽 또는 중심지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교대를 생각하면 영상에 나온 수의 배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공병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했다.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는 코끼리들에게 위협이 될만한 것들을 먼저 선제타격한 후 진입한다.”
“선제타격이라면, 예의 그 방법을 쓰실 겁니까?”
“예의 그 방법은 무슨. 신병 있다고 좀 있어 보이게 포장하냐?”
괜히 진중한 표정을 짓는 소대장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표정과 다르게 눈에는 장난기가 그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신병은 그런 소대장의 말에 호기심이 잔뜩 동했는지, 어서 알려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무기가 가득 담긴 상자 더미를 뒤졌다.
“내가 말한 선제타격은 간단하게 말해서 정밀 폭격이다.”
상자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보관되고 있던 폭발물 몇 개를 꺼내며, 노을이 지며 붉게 물든 하늘을 가리켰다.
“폭격 말씀이십니까? 저희 항공 지원……도 있습니까?”
“항공 지원은 계속 받고 있었지.”
의아함이 가득한 신병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조금 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내 손가락을 따라 신병의 시선이 움직였고, 신병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두 마리의 새들을 볼 수 있었다. 바로, 유부와 아라였다.
“쟤들은 공군 협조 하에, 폭격 훈련도 받았거든. 발에 전용 폭탄을 잡은 채로 비행하다 공중에서 투하하는 거지. 백발백중의 정확도와, 스텔스 따윈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은밀성까지 갖고 있다고.”
특히, 아라 같은 경우에는 기류만 잘 탄다면 수백 킬로미터도 거뜬히 날아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유사시에는 아라에게 특별한 폭격 임무가 내려질 예정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새들을 이용한 폭격이 가능함을 알려 준 나는 곧바로 하늘을 날고 있는 두 녀석을 불러들였다.
“아라야. 너는 이 지점이랑, 이 지점. 그리고 여기에 한 발씩 떨구면 돼. 할 수 있겠지?”
“잠시만요. 확실하게 확인만 좀 할게요.”
공중에서 찍힌 사진을 기준으로 몇몇 장소를 지정해 주었다. 중요한 임무임을 아는 아라는 몇 번이나 되짚어가며 확인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유부의 차례였다. 하지만 아라와 다르게, 유부에게는 공중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다. 쥐새들이 가서 찍어 온 영상을 위주로 보여주었다.
천막 아래, 놈들의 본거지의 풍경이 중점적으로 찍힌 영상이었다. 그중에서도 놈들의 무기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찍힌 것이었다.
“너는 아라가 먼저 폭격을 해서 위에 있는 천막을 걷어내면, 내부로 진입해서 이 공간에 폭탄을 전부 투하하면 돼. 던지고 바로 튈 수 있지?”
“어려울 것 없겠구려. 걱정 마시오.”
“그래, 믿는다.”
마치 경례하듯, 날개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녀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폭탄의 투하를 위한 것인지, 발톱을 ?? 움직이는 유부와 아라를 보다가 부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희도 빨리 준비해. 해가 다 지기 전에 출발할 거니까. 소대장, 너는 신병 좀 챙기고.”
“알겠습니다!”
부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뒤, 코끼리들에게 다가갔다. 언제 출발하려는 건지 하염없이 기다리던 녀석들은 내가 다가오니 몸을 풀기 시작했다. 지능이 제법 좋은 코끼리답게, 자신들이 나설 때가 되었음을 파악한 것이었다.
“너희도 이제 슬슬 움직이자.”
“드디어 새끼의 복수를 할 수 있겠군요.”
우두머리 코끼리가 분노로 활활 타오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그런 녀석의 머리를 통통 두드리듯 쓰다듬어 주며 한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대신, 그곳에 가게 되면 이 건물은 건들면 안 돼.”
“왜죠?”
“그곳에 내가 구출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그 사람들이 죽거나 크게 다치면 내가 좀 많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
“……알겠어요.”
적진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밀어버리려고 했던 건지, 우두머리 코끼리가 꽤나 아쉽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내가 직접 부탁한 것이었기에, 코끼리들이 그 부탁을 무시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조금 있다가 신호를 줄 테니까, 그때 저기를 향해 달려가면 돼. 할 수 있겠지?”
“그대가 말한 곳을 제외한 모든 곳을 짓밟아 부수어, 우리 새끼의 죽음을 달래겠어요.”
“그래. 그렇게 해.”
분노로 불타오르는 듯한 코끼리들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물론, 단순히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을 한껏 사용하면서 두드리는 것이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초능력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강렬하게 초능력을 사용하겠다 생각하면 그 힘이 순간적으로 증폭되기 때문이었다. 꾸준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에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게임으로 치면 버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코끼리들에게 해준 다음, 숙영지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모두가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다들 개인 화기로 무장을 하고, 초능력에 따라 필요한 무장까지 다 챙긴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차량의 전면 유리창도 방탄 소재로 덮여 있었다. 전방 시야는 카메라로 충당할 수 있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오, 준비 다 했네? 그럼 슬슬 출발해 보자고.”
부하들이 차량에 탑승하는 모습을 보며, 대기하고 있던 아라와 유부의 발과 부리에 폭탄을 물려주었다. 물론, 그 상태로는 날아오르기 힘들기 때문에, 내가 집어던지며 도와줘야 했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두 녀석이 하늘 높은 곳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 나도 차량에 탑승하고서는 차량을 출발시켰다.
그리고, 신병이 운전대를 잡은 차량이 움직일 때 손짓을 하니,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코끼리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오프로드라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코끼리들이 우리 차량 바로 뒤를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열 마리의 코끼리들을 꽁무니에 붙인 우리는 빠른 속도로 놈들의 본거지를 향해 움직였다. 아주 멀게만 느껴지던 놈들의 본거지가 어느덧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으학!”
그런데 덜컹거리며 질주하던 차량이 갑자기 크게 한쪽으로 쏠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병 녀석이 운전대를 팍 꺾어버린 것이었다.
콰앙!
“워후! 중대장님! 신병 개쩔지 말입니다!”
신병이 말도 없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운전 계열의 초능력자답게 위험을 회피한 것이었다. 이대로 직선 주행을 하면 저격당할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덕분에 운전석 옆의 A필러가 움푹 파이는 피해만으로 끝이 났다. 전면 유리창도 방탄 소재로 덮여 있다고는 하지만, 전면에 있는 카메라가 박살 나면, 시야 확보를 위해 덮개를 살짝 열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상급 이상의 사격 계열 초능력을 가진 이들에게 저격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저격을 한차례 방어한 신병은 한껏 긴장한 모습으로, 스티어링 휠을 힘껏 쥐고 있었다. 언제든지 기민하게 반응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신병에게는 안타까운 일인지는 몰라도, 신병이 더 이상 활약하는 일은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미리 지정된 폭격이 시작었기 때문이다.
꽝- 소리와 함께, 전면에 위치해 있는 디스플레이에 무언가가 폭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장 중심부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서 초능력을 통해 대공방어를 하던 이가 자리하던 곳이 터져나간 것이었다.
자그마한 탑 같은 것이 있었는데,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조립식 가건물에 나무판자 같은 것들을 덧대어지어놓은 감시탑이었기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중심 저격수 파괴. 감시탑 파괴. 주변 천막 파괴.”
아라에게 여전히 달려 있는 카메라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공병남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런 공병남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지금 터진 것은 아라가 가져간 폭발물 중 겨우 하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녀석의 두 발에 달린 폭발물은 여러 개였다. 고리가 달려, 아라가 발톱을 조금씩 움직여 하나씩 떨어트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경계초소 파괴. 저격수 무력화. 천막 기둥 파괴. 저격수 파괴. 경계초소 파괴.”
차량이 달리면 달릴수록 공병남의 브리핑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렇게 한동안 공병남의 브리핑이 이어지며 자그마한 폭음이 들려오던 도중,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무기고 완전 파괴!”
큰 폭발음은 유부가 던진 폭발물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 내부에 있던 요술봉의 탄두가 함께 폭발하며 더 큰 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좋아! 신병, 좀 더 밟아봐!”
무기고가 파괴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소대장이 신병을 재촉했다. 그러자, 신병이 조금 더 속력을 내기 시작했고, 뒤에서 따라오던 코끼리들이 뿌우우- 우는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우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우는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더더욱 빨리 달리라는 듯한 재촉의 의미가 가득 담긴 소리였다.
아니, 정확히는 먼저 가겠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실제로, 코끼리들은 장애물로 인해 잠깐 속도가 줄어든 틈을 타서 우리가 타고 있는 차량을 추월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내 초능력의 영향이 없더라도 시속 40Km 정도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이 코끼리였다. 그런 녀석들이 내 초능력의 영향까지 받으니 어마어마한 속도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탄 차량보다도 빠르게 달려나간 녀석들은, 범죄 단체의 본거지를 말 그대로 박살 내기 시작했다.
방탄 갑옷으로 소총탄을 가볍게 무시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상아를 앞세워 달려나가는 코끼리의 앞에서는 조립식 건물이 종잇장처럼 무너졌고, 강력한 힘으로 휘둘러지는 코에 얻어맞은 범죄자들은 수십여 미터씩 날아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해서 차량을 멈춘 것은 코끼리들이 총 일곱 채의 조립식 건물을 무너트리고, 스무 명의 범죄자들을 야구공처럼 날렸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