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68
0367 심부름 값
“엄마아아아! 압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모처럼 휴식을 취할까- 생각을 하며 거실 소파에 누워 있으니, 어느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소은이가 나와 누나를 찾는 외침이 들렸다.
“……오겠지 뭐.”
일어나서 소은이한테 갈까- 고민도 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소파에 더더욱 깊게 몸을 파묻었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소은이가 찾아올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잠시 소파에 누워 있으니 소은이가 거실로 호다닥 뛰어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양이들이 우다다- 뛰는 것처럼 달려온 소은이는 소파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하더니, 급정지하는 말처럼 멈춰 섰다. 부드러운 양말 때문에 바닥에 1미터 정도를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멈춰 선 소은이는 메고 있던 가방을 휙 내던졌다. 연분홍빛 토끼 모양의 가방이 던져지며, 가방에 달린 토끼귀 장식이 펄럭펄럭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간 가방은 거실의 입구 근처에 있는 가방걸이에 안착했다.
몇 년째 소은이가 보여주는 신기한 행동이었는데, 요즘은 은수가 유치원 가방으로 그걸 따라 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압빠!”
아무튼, 가방까지 정리한 소은이는 내게로 다시금 도도도- 달려와, 소파로 폴짝 뛰어올랐다. 내 위로 점프하는 줄 알고 순간 놀랐지만, 내 옆의 여유 공간에 제대로 안착했다.
“히히히. 학교 다녀와씀미다!”
“그래, 잘 다녀왔어?”
“웅! 오늘 학교에서…….”
소은이는 내 곁에 앉아,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고 누구와 놀았으며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나는 소은이가 학교에서 보낸 몇 시간을 십 분 만에 압축해서 들을 수 있었다.
“아, 마따!”
“왜?”
“다음 주가 지여니 생일이야! 선물 주기로 했는데!”
가장 절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지연이의 생일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건지, 소은이가 우우움- 하고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나 마나 어떤 선물을 줘야 좋아할까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고민하던 소은이가 또다시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압빠!”
“응. 용돈 줘?”
선물을 사주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 나를 부른 게 용돈이 목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은이는 내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거 말구우, 나도 그거 할래!”
“그거?”
그거라고만 하니, 도대체 뭘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뭐더라아……? 아, 알…….”
다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지금 소은이가 자기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입속에서 단어가 맴도는 건지, 소은이는 입술만 달싹이며 무어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알? 알로 시작하는 말이야?”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이가 열심히 고민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알……바트?”
“알바트? 어……. 알바트로스 말하는 거야?”
알바트로 시작하는 거라고 하니,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알바트로스였다. 골프 용어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했지만, 동물의 이름으로도 유명했기 때문이다.
“알바트로스가 뭐야?”
“저~기 북태평양 쪽에 사는 새야. 가끔 날다가 길을 잃었을 때 우리나라에 오기도 하는 새야. 날 수 있는 새들 중에서는 가장 클걸? 이참에 키울까?”
“와! 키우……! 가 아니라, 그거 아니야.”
내 말에 순간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던 소은이가 힘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이 주변으로 흩날렸다.
“그럼 소은이가 말하려는 게 뭘까?”
“알, 알……. 알로 시작하는 거였는데!”
“음……. 알파카?”
“알파카 키우자!”
알파카라는 말에, 소은이가 냅다 외쳤다. 알파카라는 동물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기에,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 같았다.
“그래, 알파카 키우자. 근데 소은이가 지연이한테 알파카를 선물로 주려는 건 아니지?”
솔직히 선물로 주자면 못할 것도 없긴 하지만, 딱히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자그마한 동물도 아니고, 커다란 동물은 가정집에서 쉬이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키우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소은이는 알파카를 선물로 주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니이, 그거 말고!”
“그럼 우리 소은이가 원하는 게 뭘까?”
“지연이한테 줄 선물은 내가 직접 번 돈으로 할 거라구우!”
“직접?”
“웅! 엄마랑 압빠한테 용돈 받아서 주는 거 말구, 내가 돈을 모아서 줄 거야!”
소은이는 아주 굳은 의지를 보이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금세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 반에 강진지라는 애가 있는데, 걔가 그랬어. 엄마랑 압빠가 사 주는 걸 주면 엄마랑 압빠가 주는 선물이라구. 나는 내가 지여니한테 선물을 줄 거란 말이야. 엄마랑 압빠가 주는 용돈 말구, 내가 모은 돈으로 주는 거야!”
“음……. 소은이가 지금까지 모아둔 돈은?”
“그거두 엄마랑 압빠가 준 거라서 안 돼! 그러니까, 내가 지금부터 모을 거야! 그래서 그거 할 거야. 알……. 알 뭐뭐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치는 소은이의 모습에, 소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가 하고 싶은 거야? 알바.”
“웅! 그거야! 그거!”
소은이는 내 말에 드디어 답을 찾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가 말하려던 것은 아르바이트였다. 아무래도 우리 동물원에서는 아르바이트라는 표현보다는 그냥 직원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기 때문에, 소은이에겐 생소한 단어였던 것 같았다. 그러니 두어 번 들어본 단어에서 첫 글자라고 할 수 있는 알- 이라는 말만 계속 맴도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그리고, 소은이가 말하려는 것을 파악한 나는 조금 곤란함을 느꼈다. 예전에 소은이에게 돈에 대한 개념을 가르친다고 굿즈를 팔게 시킨 적은 있었지만, 소은이에게 직접 일을 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초등학생인 소은이가 일을 한다는 것은 아동학대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돈에 대한 개념을 가르치는 교육이라는 것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근데, 소은이는 알바 못 해. 아직 어려서. 소은이한테 알바를 하게 하면, 아빠가 경찰 아저씨들한테 잡혀가.”
“그러면 안 되는데!”
소은이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설마 자기가 알바 하고 싶다고 한 게 그런 일까지 벌어지는 것일 거라고 생각조차 못 한 것 같았다.
두 눈이 동글동글하게 떠진, 귀여운 소은이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어떡하지? 나 지연이한테 선물 줘야 하는데.”
“그러면 이렇게 하자. 소은이가 아빠 부탁을 들어 주면, 아빠가 용돈을 줄 게. 이건 소은이가 아빠를 도와주고 받는 돈이니까, 소은이가 노력해서 번 돈이잖아?”
“좋아!”
드디어 해답을 찾았다는 듯한 소은이는 나를 빠-안히 바라봤다. 물론, 그 시선의 의미는 하나였다. 어서 뭔가 시키고 용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흐뭇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음……. 그러면 소은이가 아빠 대신, 안내견 후보견들 밥 주고 올래?”
“아라써!”
소은이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다닥 달려나갔다. 평소에 동물들의 밥을 챙겨줄 때보다도 더 활기찬 모습이었다.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에 많은 돈이 있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지금까지 소은이로 인해서 벌게 된 돈들은 대부분이 소은이의 통장에 얌전히 잠자고 있었다. 뮤튜브 출연료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런 돈이 제법 많았다. 소은이가 그 돈의 존재를 확인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했다. 물론, 지금 당장 알려줄 생각은 없었기에, 알게 되는 것은 한참이 지난 후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소은이가 안내견 후보견들의 밥을 챙겨주러 간 사이, 나도 일을 시작했다.
바로, 알파카를 키우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한 것이었다. 소은이가 알바라는 단어를 기억해 내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았다.
“보자……. 데려오는 건 어려울 거 없네?”
알파카에 대해 확인하니, 키우는데 어려울 것 하나 없었다. 필요한 것은 오직 두 가지였다. 알파카를 키울 수 있는 공간과, 알파카를 데려오는데 필요한 돈이었다.
마침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그 둘 모두 내게 넘쳐나는 것이었다.
“바로 데려와야겠네. 알파카라면 순한 동물이니까 특별히 교육하고 있을 필요도 없겠지.”
무척 온순한 동물이니, 호랑이 같은 맹수처럼 교육 기간을 길게 잡을 필요도 없었다. 잠깐 동물원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만 하고 투입할 수 있는 것이었다.
비슷하게 생긴 동물인 라마였다면 관람객에게 침을 뱉지 못하게 교육을 한다고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알파카는 괜찮았다. 기분 나쁘면 침을 뱉긴 하지만, 그거야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이 잘못이었다. 애초에 동물원 입장권 뒷면에 있는 주의사항에 적혀 있었다. 동물들을 기분 나쁘게 할 경우, 동물들에게 거부당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알파카를 들이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린 다음, 총 세 쌍의 알파카들이 동물원에 합류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알파카에 대한 부분을 마무리하고 나니, 우당탕탕 소리가 나며 소은이가 돌아왔다.
“어이구야. 밥 주고 오랬더니 뭘 하고 온 거야?”
“히히! 강아지들이 나 보고 모른척하길래, 같이 놀아써!”
개구진 웃음을 짓고 있는 소은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안내견들이 소은이를 보고도 초월적인 인내심을 가질 수 있게 해놨더니, 오히려 그 모습에 소은이가 불타오른 것 같았다. 먹이나 간식을 들고 유혹했든, 대놓고 붙잡았든 같이 놀고 온 모습이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수십여 마리 강아지들의 흔적이 온몸에 남아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러 강아지들의 털이 그득했다. 마치 소은이가 강아지라도 된 것처럼, 움직일 때마다 털이 뿜뿜- 뿜어져 나왔다.
“강아지들 밥은 제대로 준 거지?”
“웅! 다른 애들 거 뺏어 먹지 않게 확인도 했어!”
“우리 소은이 잘했네. 자, 여기 용돈!”
중간에 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했을 소은이에게, 약속한 용돈을 내어 주었다. 순간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동전을 꺼낼 뻔했지만, 그래도 요즘 물가를 생각해서 오천 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와! 압빠 사랑해!”
지폐를 소중하게 받아든 소은이가 내 목을 덥석 끌어안으며, 볼에 뽀뽀를 해댔다. 덕분에 소은이에게 그득하게 붙어 있던 개털이 내게도 가득 들러붙었다.
하지만 소은이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오천 원이라는 돈으로 그럴듯한 선물을 사기에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뭐, 그만큼 최저임금도 오르긴 했지만.
아무튼, 조금 더 돈이 필요했던 소은이는 아주 열심히 돈을 벌기 시작했다. 뭔가 도와주고 용돈을 받을 것이 없나 기웃거리기도 하며, 나뿐만이 아니라 누나에게도 찾아갈 정도였다.
덕분에 편해진 것은 나와 누나였다.
“소은아, 아빠 대신 포동이들한테 가서 굿즈 교환권 주고 올래?”
“소은아, 엄마가 이모 카페에 휴대폰 놔두고 왔는데, 대신 가져와주면 안 될까?”
“소은아, 캥거루들이 지금 싸우고 있다는데 가서 그러지 말라고 좀 해줄래?”
“소은아…….”
“소은아…….”
용돈을 위해 열심히 뛰는 소은이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기에, 나와 누나는 지갑에 들어 있던 지폐들을 탈탈 털었다. 애초에 현금을 쓸 일이 별로 없었기에, 지갑에 지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우리 지갑에 들어 있는 지폐들을 모두 가져간 소은이는 만족한 듯한 얼굴로, 폐업 선언을 했다.
“이제 끝!”
지연이에게 선물로 주려는 것을 구매할 돈이 충분히 모였다고 판단한 건지, 소은이는 더 이상 돈을 노리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심부름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의욕적으로 호다닥 달려가는 것에서, 팔랑팔랑 뛰어가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소은아, 지연이한테 생일 선물로 뭐 사줄 거야?”
“비밀이야!”
“아빠한테도?”
“우……. 웅! 압빠한테도 비밀!”
친구만의 비밀이라며, 소은이는 지연이에게 무슨 선물을 하려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소은이가 어떤 선물을 준비한 것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소은이가 그 물건을 구매하자마자 내게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사장님. 지금 아가씨께서 굿즈 모음 하나를 현금다발로 구매하셨는데…….”
“아, 그건 괜찮아요. 용돈 준 거로 산 거니까.”
소은이가 지연이의 생일 선물로 준비한 것은, 우리 동물원에서 꽤나 잘 팔리는 굿즈 모음이었다. 동물원 지도가 그려진 면 가방 안에 수십여 개의 소형 굿즈들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주로 동물들의 인형이었는데, 컬렉터들에게 무척 인기가 좋은 물건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내게 비밀로 했지만 금세 들켜버린 선물을 구매한 소은이는 엔초를 타고 지연이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달려나갔다.
“수환아, 우리 현금 좀 미리 챙겨둘까?”
“왜?”
“소은이가 저러는 거 보면, 나중에 우리나 은수 생일 때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때도 용돈 받겠다고 열심히 뛸 거 같은데.”
그리고, 나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소은이의 뒷모습을 보며, 누나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소은이 몫의 출연료가 담긴 통장의 존재는 최대한 나중에 알려 주기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