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04
2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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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의 표정이 씁쓸해졌다. 이런 냉소주의는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무엇을 말하는지는 아네. 세율을 조정해도, 조정하지 않아도, 법조문의 토씨 하나를 고쳐도 죽고 사는 사람이 뒤바뀌지. 하지만 모든 결정에 희생이 따른다 한들 모든 결정이 다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네. 오히려 반드시 희생이 따르기에 더욱 길을 고민하고 더 나은 결정을 해야 하지 않나.”
“아, 물론 나 역시 더 나은 결정을 하고자 하지. 그저 공연히 심각해져서 끙끙 앓으면서 심로를 늘리고 싶지 않을 뿐이야.”
“그렇게 심로 없이 내린 결정이 대운관의 최근 행보인가? 그렇다면 매사에 심각해지는 것이 꼭 공연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대에게 좀 더 심로를 겪어보길 권하겠네.”
시현의 말에는 알기 쉬운 가시가 있었다. 교연은 여전히 가벼운 태도로 웃어넘겼다.
“꼭 참고하겠네. 내가 최근 내린 결정 중에는 고민하기 좋아하는 친구를 불러다 조언을 받는 것도 들어 있거든.”
탁자 반대편의 금강은 교연과 시현의 기 싸움에 금세 흥미를 잃었다. 그는 다과로 나온 약과와 정과를 한 개씩 맛보는 데 완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반면 운모는 오고 가는 대화를 흥미진진하다는 듯 지켜보는 중이었다. 말이 끊기는 틈을 골라 운모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교연 너는 우리 협약에 관해서 어떤 조언을 받을 생각이지? 이전의 이력을 봐선 시문에게서 전향적인 태도는 기대하기 어려운데.”
교연은 기다렸다는 듯 응수했다.
“바로 그 이력을 기대하는 거야. 뭐가 되었든 시문은 지금 세상 사람들 중에 너희를 가장 많이 겪어본 사람이지. 아무래도 나보다는 너희를 더 잘 알지 않겠어?”
운모가 빙긋 웃었다.
“저런,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묻지 그랬어. 뭐가 궁금한데?”
“몇 가지가 있지만….”
교연이 옅은 색 속눈썹 아래서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예를 들면, 인간을 멸망시켜버리겠다는 태고의 존재들이, 왜 다른 관성과는 싸우면서 나와는 휴전하고자 할까? 아직 제대로 맞붙어 보지도 않고서.”
“그건 이야기했잖아. 우린 법술사들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게 다소 껄끄러워. 마력석은 우리 계획에 생각보다 더 큰 변수가 되고 있어.”
“너희는 같은 이유로 벽명관과 그 주위의 마력석 산지에는 대공세를 펼쳤잖아. 벽명관이 함락되었을 때 너희 둘 모두 거기 있었지? 특히 운모 쪽은 목격 증언이 아주 명확하던데.”
“우리 전력 운용에 대한 건 노출할 마음이 없어. 그건 미안. 하지만 너희에게도 거석은 꽤 보냈잖아. 너희 전력이 만만치 않아서 협상을 생각했다는 것만으론 이유가 부족해?”
운모가 매끄럽게 말했다. 그는 마치 나쁜 습관을 못 버린 인간처럼 자신의 연갈색 긴 머리칼을 당겼다 놓았다 하고 있었다.
교연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운모를 흉내 내어 제 머리칼에 손가락을 걸었다.
얼핏 꾸미지 않은 듯하면서 호감을 부르도록 잘 정돈된 외모, 가볍고 거리감 없는 말투, 끊임없이 상대의 반응을 떠보는 화법까지. 이렇게 보면 두 사람은 꽤 닮아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총령부의 몇몇이 그것과 비슷한 말을 하던걸. ‘돌 인간들이 완씨 시문이 두려워 하유관에서 휴전을 제안했듯이, 교문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교문께서 더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여 마력석을 모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돌 인간들은 교문을 완씨 시문과 같은 위협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흠흠.”
교연은 과장스러운 투로 대운관 관인들의 흉내를 냈다. 그가 시현 쪽을 보고 말했다.
“어떤가, 꽤 그럴듯하게 들리지? 들으니까 은근히 기분까지 좋아지지 않아. 그래서 그자들의 목을 전부 잘라버렸어.”
시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교연은 한 번 웃고 다시 운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걸려 있었으나 눈은 차가운 빛을 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가져다 바치는 이들을 싫어해. 믿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허나 기분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협정을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지.”
“그래서, 거절하는 대신 시문을 끌어들여 판을 엎기로 했다?”
“조언을 듣는 거야. 시문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지한 이라서, 덮어놓고 반대하지는 않을 거거든.”
시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교연이 일을 몰아가는 것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현 역시 협정 제안에 깔린 돌 인간의 꿍꿍이가 신경 쓰였다. 탐색을 위해서라도 대화가 필요했다.
시현이 질문했다.
“조건은 마력석 채굴을 멈추는 게 전부인가? 기한은?”
“기한은 딱히 없어. 너희가 약속을 지키는 한 유지될 거야.”
대답한 것은 교연이 아니라 운모였다. 시현은 미간을 좁혔다.
“무기한이라고?”
“일단 조건은 그런데, 실제로 무기한이 될 가망은 전혀 없다고 봐야지. 내 경험상 인간들은 항상 우리 기대보다 약속을 빨리 깨거든.”
“대운관이 협약을 맺는다 해도, 일의 중대함을 모르는 백성이 몰래 마력석 채굴을 시도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바로 협약이 깨어진다는 건가?”
“중요한 점을 지적했네.”
운모가 한 손가락을 들었다.
“그래서 협정 구역에 제한을 두는 거야. 대운관의 권력과 무력으로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 한계 범위가 있겠지? 군인은 물론 민간인에게도 채굴을 금지하고 적대 행위를 금지할 수 있는 지역. 그렇게 통제가 가능한 지역만을 불가침 구역으로 두자는 거야. 그 바깥은, 불가침을 하려 해도 통제가 안 되니까.”
교연이 덧붙였다.
“대운관 측이 의도하지 않은 위반이 일어날 경우, 우리가 바로 시정하는 조치를 취한다면 협정이 유지된다는 조항도 갖춰져 있기는 하네.”
“즉 저들은 인간을 믿지 않는 것처럼 말하면서 실제로는 인간의 관리를 요구하는군.”
시현이 운모와 눈을 맞추었다. 운모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 웃었을 뿐이었다.
시현이 다시 말했다.
“예의 협정에 구멍은 또 있다. 협정의 주체인 대운관 관군이 협정 구역 바깥에서 너희와 싸우는 것은 위반인가 아닌가?”
“위반이 아니다. 딱히 구멍이라고 할 것도 없지.”
“그렇다면 협정의 주체가 아닌 사람, 예를 들면 내가 협정 구역 안에서 너희와 싸우는 것은 어떤가?”
이번에 운모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것은… 위반이지. 대운관에서 관리해 주어야 할 부분이다.”
“대운관군을 시켜 나를 막게 하겠다고?”
“안 될 이유라도? 약속을 지키는 데는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
운모는 불쾌한 듯 말하고서 교연을 보았다.
“안 그래? 만약 협정이 이루어진다면, 대운관이 만든 평화 구역을 시문이 함부로 무시하게 둘 수는 없겠지. 네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성격도 아니고.”
교연은 운모의 부추김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가 약간 냉랭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즉 너희는 나와 휴전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구나. 대운관 주위에 불가침 구역을 만드는 게 목적이지.”
“아, 그렇게 말하면 서로 서운하잖아?”
운모는 농담조로 웃어 넘겼지만 부정하지는 않았다.
시현이 말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다시 의문이 생긴다. 나와 휴전하고자 했을 때 녹렴이 제안한 방식은 단순했다. 하유관 주위에 거석이 출몰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었지. 없는 것과 싸울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너희는 적대 행위를 인간 쪽에서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협정을 맺은 이후에도 너희가, 최소한 너희가 부리는 거석들이 예의 평화 구역 안을 돌아다니고 인간들과 마주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건 어쩔 수 없지. 너희가 마력석 채굴을 제대로 그만두었는지 우리도 감시를 해야 할 것 아냐.”
“그 말은 꼭… 마력석 광산이나 그 주위에 거석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운모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시현이 운모를 빤하게 보면서 말했다.
“우연인가? 너와 내가 처음 만난 산에도, 그런 필요가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혹시 대운관 백오십 리 안에도 무언가가 있는가?”
“아하하하!”
교연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눈에 어렸던 차가운 기색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이것 보아. 시문을 불러 상의하는 것이 정답이었지?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 돌아가는 그림이 완전히 바뀌었지 않아!”
운모가 낭패라는 듯 입술을 살짝 물었다. 내내 이야기에 관심 없어 보이던 금강이 운모를 보고 툭 말했다.
“뭐야? 맨날 나랑 감람한테 입 가볍다고 뭐라고 하더니. 자기도 시문한테 술술 말려들어 가네.”
“야….”
운모가 고개를 푹 떨구며 이마를 짚었다. 그가 금강을 돌아보고 하소연했다.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네가 나서서 때리면 어떡하냐?”
금강은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반쯤 빈 정과 접시를 밀어내며 말했다.
“난 처음부터 이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약속을 하면서 진짜 의중을 숨기는 것도, 인간들을 이간질하는 것도.”
“인간들도 다들 그렇게 해. 뭐가 어떻다는 거야?”
운모는 작게 투덜거리더니 얼굴을 굳히고 교연을 보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사실 시문이 참견했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우리가 서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이익은 그대로다.”
“무슨 소리야. 너희가 얻는 이익이 내 생각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는데. 그러면 당연히 내가 얻을 이익도 다시 계산해야지?”
교연은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봐. 난 방금 시문에게 신세를 졌지 않아. 시문이 너희와 싸운다고 할 때 말리기가 어렵게 됐는데, 너희가 이걸 이해할까?”
운모는 허탈한 듯 혼자 고개를 저었다. 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면, 협정은 깨어진 것으로 알고 있겠다.”
운모는 미소를 거두었을 뿐 얼굴에 큰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몸을 흐르는 기운도 얕고 잔잔했다.
하지만 벌어진 옷깃 사이로 보이는 기결 문양은 이전과 달리 적색에 가까운 진한 색을 띠고 있었다. 그것은 꼭 그가 숨긴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운모가 교연에게 말했다.
“유감이야. 나는 너와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 나는 이미 친구라고 생각해.”
교연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뒤따라 나온 말은 그 호의 어려 보이는 웃음과는 영 동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교우 관계에 관심이 있다면 기억해 둬. 인간은 친구를 배신할 수 있어.”
운모가 피식 웃었다.
“설마 그것을 모를까. 그것까지 포함해서 관계를 즐기는 거지.”
금강이 운모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터운 모피 겉옷을 걸쳤다. 운모가 얇고 허술하게 입은 것을 보면 돌 인간은 추위를 타지 않는 듯한데, 이것 역시 금강이 인간 문물을 항유하는 방식인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방을 나갔다. 시현은 불편한 얼굴이었지만 그들을 제지하거나 더 적의를 표하지는 않았다.
호란의 옆을 지나칠 때 금강이 소곤대는 소리로 책망했다.
“너희들 그놈의 위아래 지켜야 하는 건 아는데, 그래도 인사 정돈 받아줘라. 다친 데 괜찮느냐고도 좀 물어보고. 너무 정 없잖아, 예의도 아니고.”
호란은 대답하지 않고 앞만 보았다.
예법상 호란은 시현의 호위를 설 때 시현이 말 걸지 않는 한 말을 하면 안 되었다. 평소엔 좀 불합리한 예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차라리 다행으로 느껴졌다.
두 돌 인간이 방을 떠나자, 교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시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가 시현의 어깨를 살짝 짚으며 말했다.
“정말 크게 신세를 졌어. 녹주. 내가 어떻게 갚아야 할까?”
“좀 더 솔직하게 속을 보여주는 게 나로서는 더 편하겠네.”
시현이 딱딱하게 말했다.
“돌 인간과의 협약에 응하지 않고, 저들의 소위 이간질에 넘어가 주지 않은 대가로,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오, 의외로 계산하는 법을 잘 아네.”
교연이 까르르 웃었다.
“완전히 어른이 됐구나. 눈치도 좋아지고. 고지식한 건 그대로인 것 같지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