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40
040화
* * *
곤호가 혀로 쯔쯔쯔 소리를 냈다.
“네가 이러니까 내가 너를 노비로 둘 수밖에 없는 거야. 네가 조금만 나한테 믿음을 줬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됐다. 나중에 더 이야기하자.”
곤호가 손짓해서 시중꾼을 불렀다.
“상 치워라. 나도 입맛이 없다. 봐야 할 장부나 가져와라.”
단을 누르고 있던 호위가 물었다.
“이 자식은 어떻게 할까요. 묶어서 가둘까요?”
“그 수밖에 없겠지….”
곤호가 반쯤 찬 술잔을 집어 들며 단을 흘낏 보았다.
“이 녀석은 손재주가 좋아. 웬만한 매듭이나 족쇄 같은 건 다 풀 줄 안다. 수를 못 쓰게 철봉을 구부려서 손발을 결박하거라.”
단은 분노와 굴욕감으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저항은 못 했다.
어차피 두 사람의 하늘인 손에서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곤호가 덧붙였다.
“그렇군. 가려진 막사 안에 두면 꼼지락꼼지락 무얼 할지 모르니 창살 우리에 넣고 사람 눈이 닿는 데 내놓아라.”
여기에는 단도 결국 기함을 했다. 그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야, 이 개새끼야! 미쳤어!”
곤호는 신경 쓰지 않고 잔을 기울였다.
시중꾼들이 서둘러 다가와 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호위가 단을 붙잡아 상에서 끌어내렸다. 단이 고함쳤다.
“양곤호, 미친 새끼야! 죽여버릴 거야!”
곤호가 피식 웃었다.
“내가 진짜로 너를 아끼기는 하는 게야. 오랜만에 들으니까 그 소리까지 반갑구나.”
그가 단을 내려다보았다.
“말했지? 한 번 더 도망치면 개 우리에 넣겠다고. 못 할 줄 알았느냐? 내가 네 주인이란 걸 잊지 마라. 이럴수록 너만 더 힘들어져. 머리 좀 식히고 생각해 보아라.”
단은 소리소리 지르며 욕설을 하고 몸을 뒤틀었다.
곤호가 단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호위들에게 일렀다.
“저러다 목 쉬어서 고생하면 안쓰럽지. 재갈을 물려라.”
“하지 마! 아악! 하지 말라고!”
단이 발악을 하는 소리는 시현과 호란이 갇힌 천막 안까지 들려왔다.
안색이 변한 시현이 입구로 달려갔으나 창살문이 잠겨 있어 나갈 수가 없었다.
시현이 창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양곤호! 네가 어찌 이리 사람을 핍박하느냐! 단! 단!”
죽은 듯 쓰러져 있던 호란이 눈을 번쩍 떴다.
호란은 갖은 애를 써서 문가로 기어가서는 잠긴 곳을 붙잡았다.
온몸이 아프고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갔으나 철제 자물쇠 정도는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 힘을 주자 쇠로 된 자물쇠가 떨어져 나갔다. 시현이 문을 열며 호란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 있어라. 더 다쳐선 안 된다.”
호란은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마음이 급하다고 생각 없이 문을 열어버리는 게 아니었다.
그가 시현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안 돼요, 시문 님. 혼자 가시면 안….”
곤호는 시현이 아무리 도리를 말해도 통할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못 성질을 건드리면 시현만 위험해질 게 뻔했다.
시현도 그걸 아는지 울 듯한 얼굴로 말했다.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
어느새 단이 고함치던 소리가 끊겨 있었다.
호란이 잡은 손을 두 손으로 풀어낸 시현이 상단주 막사 쪽으로 달려갔다.
호란은 시현을 소리쳐 부르려고 했지만 또다시 어지럼이 찾아와 땅을 짚고 말았다.
호란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눈을 꽉 감고 버텼다.
한참을 땅을 짚고 있다가 겨우 일어섰다.
자꾸 컴컴해지려는 눈을 비비고 단과 시현을 찾아서 비척비척 걷기 시작했다.
얼마간 힘겹게 걸은 호란은 제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을 깨달았다.
상단주 막사 쪽으로 오기는 했는데 입구 쪽이 아니라 뒤쪽이었다.
그런데 막사 뒤에 이상하게 사람이 모여 있었다.
몇 발짝 더 걸어가 사람들 사이를 건너다본 호란은 본 것을 믿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커다란 창살우리가 놓여 있고 그 안에 단이 옴짝달싹 못 하고 묶여 있었다.
반항하는 소리가 그친 것은 입이 틀어막혔기 때문이었다.
호란과 시선이 마주친 단이 흠칫하더니 눈을 피했다.
호란은 너무 화가 나서 머리가 핑 돌았다. 목구멍에서 불이 솟았다.
“비켜! 다 비켜! 니들 전부 죽여버릴 거야!”
고함을 지르는 하늘인의 출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하지만 호란은 생각만큼 잘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등줄기에서부터 온몸으로 고통이 퍼져나갔다.
자기가 너무 느려 애가 탔다.
겨우 단을 가둬둔 철창에 다다른 호란은 지붕부터 비틀어 뜯어버렸다.
두 손으로 창살을 잡아 확 우그려 벌리고는 서둘러 단을 밖으로 끌어냈다.
재갈에서 풀려난 단이 컥컥 숨을 토했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 사이로 뿌득뿌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호란이 손을 봉한 철봉을 풀어내자마자 단은 제 머리를 감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짧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단이 중얼거렸다.
“호란, 우린 친구지….”
“응, 친구야!”
호란은 힘있게 답했다.
두 손은 단의 발목이 상하지 않게 조심하며 꼬인 철봉을 펴느라 바빴지만, 얼른 이딴 걸 던져 버리고 단을 끌어안아 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단이 갈라진 소리로 속삭였다.
“저거를… 양곤호를 죽여 줘…. 죽일 수 있어?”
“응! 있어! 근데 시문 님이 잠깐만 기다리래!”
“아 씨발.”
단은 침이 목에 막힌 듯 몇 번 쿨룩쿨룩 기침했다.
철봉을 내던진 호란은 아직도 떨고 있는 단을 조심조심 일으켰다.
“그 사람 뭐야. 누군데 너한테 이래?”
“양곤호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기대하지 않았던 말에 호란은 당황했다. 뒤에 따라오는 말도 없었다.
“그리고?”
호란이 묻자 단은 텅 빈 눈을 하고 웃었다.
“그러곤 없어. 그것 말곤 아무 사이도 아냐. 관계는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 있는 거야. 그 사람한테 난 물건이고.”
호란은 단의 말뜻을 잘 몰랐다. 하지만 단이 얼마나 깊이 마음 상해 있는지는 알았다.
화가 활활 치받아서 속이 다 아팠다.
꼭 죽여준다고 말하려는데 곤호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여길 봐라.”
뒤를 돈 호란은 소스라쳤다.
“시문 님!”
곤호와 호위들이 서 있고 호위 한 놈의 손에 시현이 축 늘어진 채 붙들려 있었다.
무엇을 당했는지 이미 의식이 없었다.
곤호가 말했다.
“단을 놔두고 얌전히 네가 있던 천막으로 돌아가라. 아니면 시문께서 상하실지 모른다. 네가 호위라면 그게 얼마나 큰일인지 알겠지.”
“너어어어!”
호란이 악을 쓰며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마음은 이미 놈들을 향해 뛰쳐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길 길이 보이지가 않았다.
분노로 어찌어찌 움직이고는 있지만 제 몸은 성치 않다.
하늘인 셋 상대는 어떻게 들이쳐도 무리다.
곤호는 마력석을 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현은 인질이 되었고, 호란이 싸우려고 곁을 비우면 단도 인질이 될 게 뻔했다.
결과를 책임질 수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몫꾼의 불문율이었다.
상대를 이길 수 있고 이긴 뒤 따라오는 결과를 책임질 수 있으면 싸워도 된다.
그럴 수 없으면 숙여야 한다. 그것이 자신과 무리를 위하는 길이다.
호란도 그것이 맞다 여겼다.
하지만 상대를 이길 수도 없고 절대로 숙일 수도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호란은 하늘인 무리에서 그런 것을 배운 적이 없었다.
추선에게는 몇 번이든 숙일 수 있었다. 양곤호에겐 죽어도 숙일 수 없었다.
죽는다고 끝도 아니었다.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으면, 단은 어떻게 되지? 시문 님은 어떻게 돼?
너무 분했다. 태어난 이후로 최고로 분했다.
호란이 꼼짝을 못 하고 있는데 옆에서 단이 후우우우 하고 긴 숨을 쉬었다.
그가 호란을 슬쩍 밀었다.
“가봐. 너도 시문 나으리도 할 만큼 했어. 나는 괜찮아.”
“어디가 괜찮아?”
호란이 울상을 하고 소리쳤다. 단이 어깨를 으쓱했다.
“됐어. 양곤호 저 새낀 미친놈이지만 내가 지 말만 들으면 심하게 굴진 않아. 이러다 진짜 셋 다 죽는다. 너나 저 나으리나 할 일 있잖아. 가족도 있고.”
단이 호란에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나는 나중에 상황 봐서 또 도망가면 되니까, 응?”
그가 어른 같은 얼굴로 슬쩍 웃었다. 호란은 이를 콱 물었다.
곤호가 제가 뭐라도 된 양 위엄을 부리며 말했다.
“단아, 이쪽으로 와라. 호위 너도 와서 시문 어른 모셔가거라.”
단은 호란을 두고 곤호를 향해 걸어갔다. 곤호가 씨익 웃었다.
호란은 숨을 크게 쉬어 몸 상태를 확인했다.
역시 저놈한테만은 숙일 수 없었다.
자기 때문에 시문 님이 다치시면 나중에 사과드릴 것이다.
자기가 죽어서 사과를 못 드려도 시문 님은 다 이해해주실 것이다.
혹시 자기가 못 지켜 드려서 시문 님까지 돌아가시면….
그러면 저승에서 사과드릴 수 있다.
호란은 주먹을 몸에 붙이고 돌진했다.
* * *
“…으리, 시문 나으리.”
찰싹찰싹 얼굴을 두드리는 감각에 천천히 시현의 의식이 돌아왔다.
목구멍에 날 선 통증이 느껴졌다.
자신은 의자에 기대 앉혀져 있고 누가 자기 얼굴을 두드리며 말을 걸고 있었다.
“나으리, 눈 떠 보세요. 시문 나으리.”
단의 목소리였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단을 찾아 상단주 막사로 달려가다가 중간에 호위를 만나 가로막혔고, 목을 졸린 데서 기억이 끊겨 있었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시현을 단이 꽉 눌러 앉혔다.
“정신이 드세요?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여기가 어디…. 호란!”
시현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의자 바로 곁에 호란이 쓰러져 있었다.
온몸이 얻어맞은 상처투성이였다.
어깨가 약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숨은 있었지만 의식은 끊긴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상단주의 막사 안에 있었다.
휘장 틈으로 드는 빛을 보면 저물녘 같은데 막사 안에 불을 켜지 않아서 침침했다.
단의 등 뒤, 조금 떨어진 곳에 곤호와 세 명의 호위가 유령처럼 서서 시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이 시현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가 간곡하게 말했다.
“나리님, 제 얘기 들으세요. 이제는 절대 더 다투시면 안 됩니다. 황야 한가운데서 상단주하고 이렇게 틈 만드시는 거 아니에요.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미리 이야기를 해드렸어야 했는데…. 상단에는 법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상단주밖에 없어요. 상단주가 우릴 다 죽여서 묻고 떠나도 세상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몰라요. 상단 사람 아무도 밖에서 입 뻥긋 안 해요.”
시현의 손이 떨렸다. 그의 시선이 호란에게 가 닿았다.
그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 어쩌라는 것이냐.”
단이 늘 짓는 능청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가 빠르게 말했다.
“서로 좋게 가는 거죠. 제가 상단 안에서 뭔 일이 나도 밖에 안 흘러나간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높으신 분께서 불법 노비 문서 한 장 눈 감으셔도, 깨끗한 이름에 누가 될 일은 절대 없다는 거지요.”
“단!”
시현의 음성에 노기가 묻어났다.
다시 일어나려는 그를 단이 또 붙들어 앉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