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an Actor’s Book RAW novel - Chapter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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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먹는 배우님 – 134화. >134.
아카데미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밤.
우리는 갑갑한 슈트를 벗어던지고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West Grace’라는 와인 바로 들어섰다.
“할리우드 중심에서 재희 목소리를 듣다니. 신기하네.”
와인 바 안에는 재미있게도 얼마 전, 음원으로 공개된 영화 [아다지오> OST [Alone House>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 empty house with no one
혼자 집에 앉아 Sit alone at home
씹는 싸구려 비스킷 Chew cheap biscuits
잔잔한 노래가 울려 퍼지는 고급스러운 와인 바.
종업원에게 자리를 안내받고 테이블에 앉자 박진우 연출이 장난스럽게 투정을 부렸다.
“와인도 좋지만, 소주가 없는 게 아쉽네요.”
“오늘 같은 날에는 와인이 좋지 않을까요.”
“왜요?”
왜 흔히 있는 이야기 있지 않은가.
“소주는 과거를 나눌 때 마시는 술이고, 맥주는 현재를 즐기는 술이고. 와인은 뭐랄까, 미래를 위한 술이랄까요.”
하지만 설강식 선배는 처음 들었다는 듯 반응했다.
“오, 그럴듯한데.”
“그렇죠?”
그때, 곁에 있던 영미 씨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래도 잠시지만 곁에 있었던 오스카상을 위해서라도 소주 한 잔이 빠질 수는 없죠.”
소주였다.
“응? 그게 왜 거기서 나와?”
재익이 형의 물음에 영미 씨가 후후, 하고 웃었다.
“외국 생활 오래 한 스타일리스트의 준비성을 뭘로 보시고. 재희 오빠가 박 감독님 만나는 날은 뭐? 술 마시는 날이다.”
“음, 외국 생활 오래 한 주정뱅이의 준비성이 아닐까.”
“뭐라고요?”
“하하! 어쨌든 잘 했어 영미 씨!”
“근데 이거 여기서 마셔도 되는 거야?”
“잠시만요.”
결국, 재익이 형이 종업원을 부르더니 와인을 주문하고 팁을 건네주었다.
“이거, 딱 한 병만 마실게요.”
“죄송합니다. 외부주류는 반입이 금지라서요.”
“아…”
하지만 끝내 안된다는 말만 반복했고, 아쉽지만 소주병을 도로 집어넣으려는데.
“어라? 재희 아닌가요?”
사장이 나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저를 아시나요?”
“요즘 [데드 매니악> 안보는 사람도 있나.”
그는 턱 끝을 쓰다듬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같은 날 빡빡하게 굴면 할리우드 스타들 다 떠나겠지. 마셔요! 마셔!”
“고맙습니다.”
승낙이다.
소주잔은 딱히 없었기에 우리는 서비스로 받은 위스키 샷 잔에 소주를 따르고는 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도 잠시지만, 향기만 풍기고 떠나간 오스카상을 위해 소주 한 잔은 해야죠.”
“그럼! 당연하지!”
“떠나간 오스카를 위해!”
“위하여!”
“건배!”
시끌시끌하게 건배를 하고 소주를 목으로 넘겼다.
“크!”
“아! 역시 이 맛이야.”
데킬라건, 샴페인이건, 와인이고 뭐고.
역시, 한국인은 소주가 딱! 이라니까.
자, 이건 흘러간 과거를 위해.
그리고 이젠.
대신, 빈티지 와인의 황금세대라 불리는 88, 89, 90년 그중 88년 산 샤또 디켐 1988년 산을 잔에 채우고는 말했다.
“저희의 미래를 위해.”
저마다 욕심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오스카 무대를 바라보는 박진우 연출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동상일몽.
나와 같은 꿈을 꾸었음이 틀림없다.
와인 잔에 가득한 술이 찰랑거렸고.
“이제는 꿈에 나올 것만 같은, 오스카를 위해!”
정말 꿈에 나올 정도다.
레오파드 비트리오는 도대체 11년을 어떻게 기다렸을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와인 두 병을 더 연거푸 비워냈다.
이미 술이 잔뜩 들어갔으나, 이 자리에서 끝내기 아쉬웠던 우리는 우리 집에서 한잔 더 마시기로 했다.
마트는 대부분을 문을 닫은 시간이었지만.
“후후”
영미 씨의 비밀창고가 열리는 순간.
우리는 소주, 양주, 맥주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술을 받아들 수 있었다.
재익이 형이 직접 만든 맥 앤 치즈를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박진우 연출은 술에 잔뜩 취했지만, 기분 만큼은 좋아 보였다.
그가 이제껏 말한 적 없던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으흐흐, 오늘 너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최근에 조금 자만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찍는 영화마다 잘 되었으니까… 꺽.”
“다 감독님의 능력이죠.”
“그런데, 도 배우님이 쓰셨던 그 영화… 그 영화 작업을 하며, 자만심이 깨졌죠. 세상에는 천재가 참 많구나. 난 천재가 아니었구나… 사실 최근에 기운이 많이 빠져있었습니다.”
“….”
이제껏 말한 적 없던 진심.
박진우 감독이 가지고 있던 고충.
나는 천재가 아닌데.
내게 생긴 이 특별한 능력을 통해, 진짜 천재를 짓밟고 있었구나.
두렵고, 또 부끄럽다.
“근데, 오늘 힘이 생겼어요.”
“… 네?”
오스카를 수상한 것도 아니고, 탈락했는데.
힘이 생겼다고?
“네. 이상하죠. 탈락했는데, 오히려 힘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다음에는 꼭 받아야겠다는… 신인의 마음으로…”
머리를 휘청휘청하던 박진우 감독이 등에 기대고 있던 쇼파에 그대로 쓰러졌다.
잠든 것 같았다.
“….”
나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남은 술을 비워냈다.
조용히 듣고 계시던 설강식 선배님이 말씀하셨다.
“아까, 시상식장에서 너가 시상 준비하러 간 사이에, 미국 영화사 사람들이 박 감독한테 접촉 많이 했거든.”
“네?”
“할리우드 감독 데뷔. 생각하는 중인 것 같더라.”
“…. 아.”
할리우드 데뷔. 박진우 연출의 미국 영화 입봉.
그랬구나.
박진우 연출이 술김에 말한 신인의 마음.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설강식 선배님이 쓰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둘이서 서로 의지하면서 잘해 봐. 미국시장이 한국보다 빡빡하겠지만, 오늘 직접 보고 나니까 왜 그렇게 황금색 트로피에 열광하는지 알겠더라.”
“선배님은요? 욕심 안 나세요?”
“욕심? 나는 한국이 좋아. 원래 이 나이 되면 그래. 꿈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지.”
설강식 선배의 웃음에 깃든 씁쓸함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의 얼굴은 더 이상 씁쓸한 중년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도 사실 꿈을 꾸고는 있거든. 그건, 지금이야. 아주 만족스러운 꿈. 너와 다른 점은 나는 이를 어떻게 하면 오래 꿀 수 있을지만 고민할 뿐이지. 껄껄!”
지금의 삶이 곧 꿈.
더 이상 욕심부리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의 말.
이해가 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리송하게 느껴진다.
배우는 세월이 흘러 점점 익을수록, 그 가치가 달라지는 법이 아닌가.
하지만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설강식 선배님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지.”
“….”
“재희야 꿈을 꿔. 욕심은 부리지 말고.”
설강식 선배님이 내게 충고했다.
욕심을 버리고.
꿈을 꿔, 도재희.
그럼, 행복할 거야.
*
아카데미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설강식 선배님은 한국에 돌아가 차기작 준비에 매진했고.
박진우 연출은 우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 생활 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데드 매니악> 시즌2 촬영에 들어갔다.
그 사이, [쓰나미 인 캘리포니아>의 앤소니 옐친 감독은 캐스팅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한 달여가 흐른, 4월.
따스한 LA의 봄.
박진우 연출이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LA에 도착했다.
내가 아주 고대하던 물건을 들고.
“여기, 소스 도착했습니다!”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의 CG를 포함한 후반 작업이 1차 마무리된 소스.이제 필요한 것은, 편집과 배열.
이는 나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었기에 편집팀을 꾸려야 했는데. 이건, 앤소니 옐친 감독이 소개해주었다.
“19세기 무비베어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대형 영화사의 스튜디오와 인력 지원.
이는, 내가 이들의 주연 배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와의 돈독한 관계를 만들려는 것은 덤이고, 실제 목적은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을 좋게 보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2차 판권(리메이크) 및 해외 선 수출(미국 먼저 개봉) 같은 계약을 ‘19세기 무비베어’가 우선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 깔려있다.
물론 내 영화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게도, 또 영화사 입장에도 좋은 셈.
LA의 어느 스튜디오에 꾸려진 편집팀.
내가 편집용 콘티를 알려주면 그 사이에, [데드 매니악> 촬영에 임하면 편집팀이 가이드용 편집본을 완성하고. 내가 이를 확인하고 컨펌하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촬영이 없는 날에는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 앉아 영화와 씨름했다.
4월이 꺾이고 5월에 접어들 무렵에는 어느덧 풀 버전 127분짜리 러닝 타임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 됐다!”
확실히 작업 속도가 빠르다.
씬의 길이를 완벽하게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고.
쓸모없는 컷은 돌아보지 않으며.
지지부진하거나 조금 늘어지는 장면은, 스피디하게 넘기는 편집 역량.
적재적소에 정확하게 집어넣어, 그 장면을 터뜨려버리는 영화 음악 초이스.
“와, 어떻게 이렇게 빠르지?”
“재희 감독님이 확실하게 알려줘서 그래. 절대 고민하지 않으시잖아.”
함께 작업한 편집 크루들이 허를 내 두를 정도였다.
“제가 업계에서만 6년째 작업하는데… 이런 감독님 처음 봤다니까요?”
“….”
이게 다 내 머릿속에 책이 들어있는 ‘능력’ 덕분이다.
편집팀이 내게 물었다.
“다음은 뭘 하실 건가요?”
얼추 영화의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편집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일단, 전문가에게 확인 한번 받아볼까 해요.”
검사.
나는 칭찬에 목마르다.
‘전문가’ 라는 단어에 편집팀들이 물었다.
“전문가 누구요?”
“제가 아는 영화감독님. 그리고 19세기 무비베어 관계자.”
박진우 연출과 19세기 무비베어 투자상임이사.
‘19세기 무비베어’ 라는 굴지의 영화사 이름이 나오자 편집팀의 얼굴이 묘해졌다.
“… 19세기 무비베어요? 그 말씀은 혹시….”
‘설마?’ 하는 기대감을 숨기는 얼굴들.
나는 이들에게 확정 짓듯 말했다.
“물건을 살 사람들에게, 판매할 물건을 보여주려는 것뿐입니다.”
사고 싶으면, 얼마든지 사 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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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공개하는 것은 다양한 방법이 있다.
투자를 받아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 일자를 조율해 국내 개봉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방법.
또 해외 영화제에 먼저 출품하여 수상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국내로 들어오는 영화들도 있고.
지금 같이, 해외에 먼저 팔아서 이윤을 남긴 후 국내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미국에 먼저 공개 후, 국내로 들여보내는 방법.
“드디어, 재희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건가요?”
‘19세기 무비베어’ 측 투자상임이사 및 배급기획 담당자가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이들은 솔직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박진우 연출 역시 마찬가지.
“이 시나리오가 얼마나 탄탄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솔직히 정말 기대됩니다.”
“….”
박진우 연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영화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제3자에게 내 영화를 공개하는 일.
배우로서의 입장과는 또 조금은 다르게 떨리고도 두려운 일이구나.
나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들뜬 표정을 숨기고 데스크탑의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화면 가득 떠오른 [당신의 추억을 삽니다.>의 오프닝 타이틀.
내가 만든 영화가 비공식적으로 첫 ‘관객’을 만났다.
ⓒ 맛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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