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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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다만 샬란들의 정수가 담긴 합격진인 만큼 한 번에 협상을 타결하진 못했다. 서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자신들이 가진 최후 비장의 무기까지 흔쾌히 내어줄 정도는 아니다.
일단은 의중을 비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합격진에 대한 것을 한 발 물러서 양보한다는 느낌으로 게이트에 대한 협상은 충분히 수월하게 해냈다. 심리학적 협상의 일환인 셈이다.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신소진의 손에는 매끄러운 타원형 모양의 보랏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수정이 들려 있었다. 샬란 측에서 선물로 들려준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홀릴 수밖에 없는, 마치 작은 은하수를 담아놓은 듯한 모습의 보석. 이 정도면 다르바드에서도 제법 미관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물건이다. 그녀는 돌아가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것을 감상했다.
신소진은 새로운 취미에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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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의 장문인이 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도가문파 답게 취임식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으나, 화산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향해 자리에서 일어서 박수를 쳤다. 한때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들었던 매화검수들이 극상의 예를 표하고 장로들 역시 허허 웃으며 함께 박수쳤다. 다른 팔대문파와 오대세가에서 온 사절단들이 더 이상 정중할 수 없는 태도로 그에게 인사했다.
취임식이 끝나고 장문인실에 혼자 앉아 한참을 침묵하며 감상에 빠졌었다. 현재의 자신에 대한 뿌듯함과 지구에 있을 누이에 대한 걱정으로 마냥 기뻐하지 못했던 복잡미묘한 순간이었다.
“기분이 좋으시겠습니다.”
정현욱의 말이었다.
세현은 지금 취임식 직전, 성의 1층 홀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제 자리를 찾으셨군요.”
“……글쎄.”
류한 왕국은 아직도 화산보다 약할까?
무력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일단 숫자는 더 많아졌다. 전투원의 수만 따져도 만 명이 넘어가고 그 아래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군소규모 클랜들까지 더하면 오만에 육박한다. 무림인과는 다른 종류의 힘을 사용하는 다양한 직업들의 시너지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사회적 영향력은 어떤가? 화산 역시 무림을 지배하는 거대 단체들 중 하나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지배하는 영토에서의 영향력만 보자면 류한도 그에 뒤쳐지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를 생각하면 훨씬 더 막강해지리라는 게 명확하다.
이제 그는 그런 단체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 된다. 오직 누이를 만나기 위해 놓아버렸던 모든 것들을 되찾았다. 어떤 면에선 더 많은 것을 얻었다.
몇 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만에.
대부분의 일이 생각했던 대로, 어쩌면 그보다 더 수월하게 잘 풀려왔다.
사실 처음 청월 한 자루 들고 누이와 집을 떠날 때 그도 적잖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가 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진 초인이었어도 세상 모든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만약 그 혼자였다면 그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으리라.
이제는 괜찮다.
“시간이 됐습니다.”
정현욱의 말에 세현이 상념을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복장을 점검했다.
이전부터 입던 사령관 제복 그대로다. 새롭게 왕의 의상을 정할까 했으나 곧 관두었다. 괜히 지금보다 더 치렁치렁해질 필요까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평소와 다름 없는 걸음으로 홀을 나선다. 내성을 나와 외성 바깥으로 걸어가는 그를 따라, 양옆에 도열해있던 간부들이 차례로 따라붙었다. 마침내 성벽 밖으로 나왔을 땐 그의 뒤를 삼십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질서정연하게 뒤따르고 있었다.
대관식이 치뤄질 건물은 바로 수호교의 신전이었다.
그가 단순한 왕이 아닌 신왕을 자처하기 위한 장소로서는 그야말로 최적이다. 게다가 신전은 대관식과 같은 커다란 의식을 진행하기에 결코 모자람 없는 품격을 가진 장소였다.
특별히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은 탓에 신전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류한 제복을 입은 자들도 많았지만 일반 시민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눈이 성에서 나와 신전의 입구 부근에 서는 세현을 주시했다.
신전을 둘러싼 채 침묵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건 천군 병사들이었다. 그들만으로도 장내의 분위기가 한층 더 엄숙해지고 신성해지는 느낌이다.
의식의 진행자는 천공성 관리자였다. 화려하고 신성하기까지 한 외모를 가진 그녀는 이런 종류의 의식에 그야말로 적임자가 아닐 수 없다.
세현이 마침내 정해진 자리에 섰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관리자가 입을 열었다.
“대관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스크롤을 펼쳐들었다. 이윽고 울리기 시작하는 성명을 들으며, 세현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하늘이 보인다.
기분은 좋다.
화산파의 장문인이 될 때와는 아주 다른 느낌이다.
그는 이제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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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은 한 시간 정도에 걸쳐 이뤄졌다.
한 국가의 탄생과 최초의 국왕이 즉위하는 의식 치고는 매우 짧은 편이었지만, 누구도 그 의식이 졸속으로 치뤄졌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만큼 분위기는 무거웠고 엄숙했으며 동시에 화려했고 필요한 모든 절차가 있었다. 이것을 준비한 주체가 혜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공부를 많이 했다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관식이 끝난 후에는 당연하게도 연회가 벌어졌다.
신전의 주변으로 류한의 사람들이 커다란 테이블과 음식을 부지런히 날랐고, 이곳 뿐만이 아닌 성과 마을 여기저기서도 커다란 축제가 벌어졌다.
에레도스 사태 이후 열린 첫 공식적인 축제, 사람들은 온통 들떠가는 분위기에 자신도 모르게 취해 웃고 떠들며 음식과 술을 들이켰다.
그 사이, 세현은 다양한 사람들을 맞이하며 인사를 받고 있었다.
이제 정식으로 류한 왕국에 속하게 된 서울의 영주 차석원이 가장 먼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인사를 올렸다.
“왕이 되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고맙군. 앞으로도 서울을 잘 부탁하지.”
“염려 마십시오.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약소하지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차석원이 직접 챙겨온 아공간 주머니를 세현에게 두 손으로 건넸다. 세현은 고맙다고 대답하며 주머니를 받았다. 내용물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궁금했지만 굳이 지금 확인할 필요는 없다.
차석원 다음으로 온 것은 이승원 소령이었다. 그는 이제 소령이 아닌 영주다.
“즉위를 경하드립니다.”
“고맙군. 처음 나와 만났을 때가 생각나지 않나?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왕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웃으며 던진 말에 이승원 또한 작게 웃음을 흘린다. 사소한 짧은 잡담 이후 세현이 일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평양으로 갈 준비는 잘 되어가나?”
“기한까지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승원은 영주가 되었다. 그리고 세현은 그에게 평양성을 맡기기로 했다.
이승원은 뛰어난 관리자다. 산재했던 수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무난하게 캠프를 이끌어온 것으로 충분히 역량을 증명한 셈이다.
게다가 그는 세현도 인정할 만한 성군의 자질이 있었다. 세현이라면 진즉에 내쳐버렸을 부류의 사람들까지 성공적으로 포용해낸 것이다. 그 능력이라면 평양에 가서도 잘 해낼 것이다.
“겨울이 되기 전까진 공사를 끝낼 테니 올해는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거다. 나무 오두막집보다야 제대로 된 건물이 낫지.”
“물론이지요. 제가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보다 더 쉬울 거다.”
성주가 갖는 태블릿을 이용한다면 확실히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하게 사람들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다르바드의 파트릭이 직접 찾아왔다.
그가 데려온 백여 명의 샬란 고위 마법사들과 기사들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도 눈에 확 들어왔다.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 정말로 왕이 되었군. 아니, 이제는 그대 역시 왕이니 존대를 원하는가? –
“아니, 하던 대로 하지. 따지자면 자네도 왕과 같은 위치이니.”
– 우리 세계에서야 그렇지. 어쨌든 진심으로 축하하네.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갔으면 좋겠군. –
“우리 역시. 뷰리앙은 안 온 건가?”
– 애석하게도 가문에 일이 생겨서. 변명이 아니라 진짜일세. –
세현은 간단하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로 사정이 있다면 겨우 이 정도 문제를 갖고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새로운 마력저장기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나?”
– 전해 들었다. 그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말을 듣고 싶은데, 누구와 만나면 되나? –
“저기.”
가리킨 곳에는 한 테이블에서 음식을 맛보고 있는 레야가 있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마법사이자 가장 뛰어난 개발자이지.”
– 이종족이로군. –
“아마 용인족으로 분류할 수 있을 거다. 가서 인사라도 나누는 게 어떤가?”
– 그렇게 하지. 일단 우리가 준비한 선물일세. –
파트릭이 손짓하자 뒤에서 샬란 기사들이 커다란 궤짝을 십여 개나 가져왔다. 그것들을 내려놓는 소리가 땅을 울릴 정도였다.
–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장비들일세. 그리고 희귀한 마법 촉매제들과 벨로쥬라도 좀 있고. –
벨로쥬라는 이들이 작정하고 만들어낸 미(美)를 위한 보석을 말함이다.
“고맙게 받겠다.”
– 나중에 다시 인사하지. 그럼 나는 저 용인족과 인사를 좀 나눠야겠어. –
파트릭이 수행원들과 함께 레야 쪽으로 이동했다.
이후로는 일본의 대영주 서영환이 핵심 간부들을 대동한 채 세현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미 안면을 익혔던 해오름 간부들 외에도 열 명 정도의 인원이 더 있었다.
그리고 류한의 다른 간부들 역시 그를 찾아와 축하인사를 건넸다.
세현은 귀찮은 기색 없이 대화하며 그들의 수고를 일일이 치하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류한을 이끌고 지탱할 인재들이다. 소홀이 대할 수 없다.
그렇게 대부분의 간부들과 인사를 끝낼 무렵, 일단의 낯선 무리가 다가왔다.
어제 용인에 도착해 세현과 간단한 인사만 나눈 후 숙소에서 별다른 외출조차 없던 자들, 바로 반고국의 사절단이었다.
그들은 류한처럼 통일된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 복장이 꽤나 화려했다. 어떤 면에선 세현이 입은 사령관 제복보다도 더한 수준, 헌데 외모는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라 그게 너무 과한 느낌이었다. 본인들이 전혀 개의치 않으니 그것으로 트집을 잡을 수는 없겠지만.
다가온 사절단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며 세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중년인의 인사에 뒤에 있던 자들 역시 허리를 숙인다.
“왕위에 오른 것을 경하드립니다.”
“그래, 고맙군.”
“이렇게 직접 와서 보니 정말 발전된 곳임을 한 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대관식에 초대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양국의 관계가 시작이 아주 좋습니다.”
“나 역시. 이름이 레이쥔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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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식 부분을 통째로 수정하느라 시간이 으으음…… 막연히 오후라고 약속드려서 참 다행입니다. (__);; 아닌가……?;;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