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108)
107화 – 파티 타임 (9) – 고해 (2)
* 파티 타임 3일 차 점심
– 한가인
오전 내내 어떤 식으로 알릴지 고민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105호로 들어섰다. 짐작은 했지만, 승엽이는 없었다.
아마 의사가 어떤 식으로든 치료 중이겠지. 참회의 시간이 시작됐다.
“다들 주목해주세요. 오늘은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분위기 잡고 한마디 하자 다들 다소 의아한 기색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처음엔 나부터 이야기했다.
내가 숨겼던 비밀들. 엘리베이터를 통한 탈출 루트. 방호복, 비밀번호.
저주의 방 진행과 무관한 질문을 하면 기여도를 소모하는 조언의 특성.
지혜가 강해지며 아리의 비밀을 알게 된 과정.
다음엔 아리의 비밀을 전하려 했으나, 아리가 ‘겁쟁이처럼 굴진 않겠다’라며 직접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진짜 축복 ‘비밀’의 힘. 유산 ‘오래된 피’, 첫 파티에 대한 기억 등.
나와 아리의 솔직한 이야기가 끝난 후, 장내엔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내 예상과 다른 호응이 시작됐다.
“머리가 복잡했던 사람이 나 뿐이 아니었네.”
은솔 누나의 한숨 섞인 목소리. ‘나 뿐?’. 이건 또 무슨 –
“머리가 복잡한 사람은 많았으되, 용기 있는 사람이 한 명뿐이었던 모양이군.”
묵성 할아버지의 말까지 듣고서야 깨달았다.
뭔가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나나 아리 말고도 더 있던 것이다!
은솔 누나 역시 어딘가 감성적인 말을 시작했다.
“아리 말을 들으니 나도 깨달음이 왔어. 이 장소. 숨기기보다는, 털어놓고 힘을 모아야 하는 장소지. 나도 할 말이 두 가지 있네.”
첫 번째 이야기는 예전에 ‘이상한 상인’에게 샀던 쪽지에 관한 이야기.
놀랍게도 쪽지 하단에 탈출 루트 1을 숨기는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누나는 당연히 관리국 팀인 줄 알았다고 해서 당황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더 심각한 이야기였다.
‘탐욕의 손’을 실제 써본 후 깨달은 특성.
‘탐욕의 손’은 사용자의 소원을 들어준다.
이루어주는 방식은 원하는 물건을 즉시 내미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얻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이때, 들어줄 수 있는 소원에는 한계가 있고, 물건을 얻는 상황은 위험이 있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흔히 들어본 ‘원숭이 손’같은 힘이지만, 아주 큰 차이점이 있다.
‘사용자는 결코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듣자마자 내 입이 떡 벌어졌다.
주변을 돌아보자, 다른 사람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은솔 누나는 다소 씁쓸한 투로 이야기했다.
“이 특징은 쓰기 전엔 몰랐어. 알고 나니까 왜 용이 강력한 힘이라고 자화자찬했는지 알겠더라. 내게는 전혀 리스크가 없고, 오직 보답만 있는 힘이니까. 리스크는 너희가 감당하는 거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 위험성을 이야기할 생각을 하셨네요.”
솔직히, 최후의 순간까지 숨기고 싶은 내용 아닌가!
“너랑 아리가 말하는 걸 듣다 보니, 숨기기 싫어졌어. 이 축복의 내용만 봐도 짐작이 가더라고. 내 후원자는 극도로 이기적인 존재. 그 존재처럼 살고 싶진 않더라.”
진철 형이 대답했다.
“대단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 리스크를 내가 감당하니 타인이 감당하니 구분하는 게 별 의미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우리 중 누가 다쳐도 결국 모두에게 타격인데. 그런 맥락에서 보면, 가인이 강림하고 똑같다고 봅니다. 필요한 순간에 씁시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진철이 말대로 결국 위기의 순간에 잘 써야겠지. 적어도 쿨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쓰는 종류의 힘은 아닌 것 같네.”
묵성 할아버지도 입을 열었다.
“뭐, 나도 한마디 하자면, 사실 난 개인 대화창을 열 수 있다. 이 경우 대화 상대는 무조건 나여야 하지만.”
개인 대화창. 그간 관리국 팀은 저것으로 별도의 소통을 했으려나?
갑자기 다들 숨겼던 사실을 꺼내는 참회의 시간이 된 분위기다.
나, 아리에 이어서 은솔 누나와 묵성 할아버지까지 입을 열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시계방향으로 돌아 진철 형을 향했다.
“어? 어? 나는 진짜 뭐 없는데?”
그럴 것 같다.
“무슨 비밀은 아니지만, 최근에 내가 좀 커진 것 같지 않냐?”
다들 무슨 소리인가 하면서 형을 바라보았다.
원래도 키가 190은 넘어 보이던 거한. 게다가 매일 보는 사이다 보니 약간의 체격 변화 같은 건 느끼기 어려웠다.
묵성 할아버지가 유심히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어? 진짜 같은데? 키는 한 3cm? 그것 말고도 전체적으로 조금 굵어진 느낌도 든다.”
“이것도 용기의 힘인가?”
용기의 힘은 신체 강화. 체격 자체를 더 키우는 것도 충분히 범위에 들어갈 만 한 것 같다.
그나저나, 원래도 190은 넘던 사람이 더 커진다니.
호텔에서 나갈 때쯤엔 2M도 넘는 건가?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성장’이라는 이야기하시니, 저도 축복이 성장한 느낌이 들거든요. ‘거짓말 탐지’를 쓸 수 있는 시간도 더 길어졌고, 예전보다 더 ‘몰래’ 쓸 수 있게 됐네요. 사실 이미 쓰고 있는데, 알아차리신 분?”
!
놀라서 엘레나를 바라보자, 확실히 눈동자가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전처럼 광채를 뿜어내는 게 아니라, 단순히 흐릿한 금색이 된 느낌.
엘레나를 정면으로 관찰했다면 쉽게 눈치챘겠지만….
솔직히 엘레나를 너무 열심히 보는 건 부담스러워서 쉽지 않다.
뭔가 먹다가 목이 멘 느낌으로 은솔 누나가 말했다.
“그…. 없지?”
“네. 지금 거짓말 중인 사람은 없네요.”
무섭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눈이 송이에게 향했다.
“좀 미친 말처럼 들릴까 봐 저도 숨겼는데, 언젠가부터 페로와 대화할 수 있게 됐어요.”
묵성 할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이 외쳤다.
“무슨 네가 닥터 둘리틀이냐?”
“네?”
“닥터 둘리틀이냐고. 동물하고 말을 다 -”
아리가 할아버지를 쿡 찔렀다.
“할아버지.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여기 있겠어요?”
“… 유명하지 않냐?”
“할아버지 젊을 때 유명했죠.”
그 말을 하는 아리도 아주 잘 아는 것 같다.
그런데, 동물과 대화까지 가능해졌다니. 신기하면서도 궁금하다.
“페로하고 대화를 자주 해?”
“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뭐 재밌는 이야기 없어?”
송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종이에 뭔가 적기 시작했다.
/페로의 한 줄 평가/
“이거 대체 뭐야?”
“페로는 거의 종일 우리에 관해 말하거든요. 쟤는 저래서 좋아, 쟤는 저래서 싫어. 이러면서.”
… 알고 싶지 않던 동물의 뒷담화 본능을 알았다.
/페로의 한 줄 평가
1. 유송이 : 너무 좋아. 엄마.
2. 이은솔 : 밥을 구해와. 큰 밥그릇.
3. 엘레나 : 빛이 남. 반짝반짝.
4. 김아리 : 붉은 피. 향기가 나.
5. 박승엽 : 멍청함. 내 밑임.
6. 김묵성 : 시끄러움. 둥지 재료.
7. 차진철 : 괴물. 날 때림.
8. 한가인 : 사악한 악마. 가까이 오지 마!/
…
다들 말문을 잃었다. 송이의 ‘해설’이 이어졌다.
“은솔 언니가 페로 사료를 주문한다는 사실을 페로가 알았더라고요. 엘레나는 볼 때마다 반짝거린다고 하면서 좋아해요. 또, 페로는 우리의 축복이나 유산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동안은 아리와 관련해서 ‘붉은 피’ ‘향기’ 이런 말 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마 아리의 신체와 합쳐진 ‘오래된 피’를 느낀 게 아닐까요?
승엽이는…. 여기 없어서 다행이네. 조금 무시하는 것 같아요. 묵성 할아버지는 ‘소통’ 때문인데, 우리가 대화창으로 대화하는걸 페로는 할아버지가 떠든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
송이야? 왜 설명을 거기서 끊어? 뒤에 내용이 심상치 않은데?
묵성 할아버지가 바로 반응했다.
“아니, 뒤에 ‘둥지 재료’ 이거 무슨 소리냐? 내가 진짜 불길한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인데, 최근에 그 새 새끼가 틈날 때마다 내 머리카락을 뽑거든?”
“페로는 하얀 머리카락이 둥지 재료로 아주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 끓일 테니 새 잡아 와라.”
아리가 재밌다는 듯이 대답했다.
“우와~ 진철 오빠야 첫날부터 때렸으니 괴물이고, 가인이는 엄청난데? 사악한 악마! 대체 페로에게 맨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
“가인 오빠는 자꾸 페로에게 빙의해서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잖아요. 3초도 못 날고 부딪치기만 하고.”
아리가 정신없이 웃다가 대답했다.
“괜찮네. 앞으로 한 달만 더 연습하면 10초 정도는 날 수 있겠지. 그 전에 페로가 스트레스로 깃털이 다 뽑히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마지막은 다 함께 웃으면서 점심의 화합이 끝났다.
난 ‘비행 연습’을 위해 페로를 찾아갔다. 페로도 이해해야지!
내가 페로 몸으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파티에 큰 도움이 되겠는가.
* 파티 타임 3일 차 저녁
“자! 이제 드디어 최종회의 시간이야. 마지막 날은 예전처럼 마음 편히 쉬기로 했으니까, 오늘 회의가 중요해.
물론, 우리 중 관문의 방이나 2층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한 명뿐이지! 아리 교수님이 오늘의 강의를 담당해주실 테니, 다들 박수 쳐 빨리.”
다들 대충 손뼉을 치고 나자, 아리가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제 설명이 틀릴 수 있다는 건 명심하세요. 오래전의 기억이고, 애초에 이 호텔은 내용을 끊임없이 바꾸니까요. 관문의 방은 저주의 방 다수가 연속되는 구조입니다. 중간에 휴식은 잠깐씩 있지만, 숨만 돌리는 정도입니다.
탈락자는 관문의 방 도중엔 부활하지 않고, 한 명이라도 방 전체를 통과해야 부활합니다. 죄수 같은 존재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보상도 유산이 아닌 것 같고.”
“유산이 아니라면, 보상이 뭐야?”
“모르겠습니다. 첫 번째 파티에서 관문의 방을 통과해서 보상을 얻은 사람이 그걸 숨겼어요.”
참 어지간하다. 보상을 얻은 놈이 숨겨서 뭔지 모른단다. 2층을 간 게 신기한 파티였다.
“2층은 어땠어?”
“역시 바뀔 수 있다는 점 알아두세요. 2층은 기본적으로 1층과 유사하게 죄수, 대적자 등이 있는데, 두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첫째, 1층보다 규모가 커지는 느낌? 예컨대, 1층도 세계 전체가 구현된 상태지만 우리가 활동하는 주요 장소는 좁았잖아요? 방과 방송국, 저택 인근, 우주선, 학교 정도였죠. 그것보단 주요 장소의 규모도 커지고, 관련 사람도 많아집니다.
둘째, 봉인과 해방. 2층부턴 진입과 동시에 한 명이 봉인됩니다.”
놀라서 물었다.
“봉인? 그 사람은 방에서 아예 활동할 수 없는 건가?”
“맞아. 방 내에서의 이유는 매번 다양해. 혼자 감옥에 갇혀 있다던가,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빠졌다던가. 봉인 당한 사람이 설령 유산 2개 3개를 가지고 있어도, 호텔 자체에서 억제하는 느낌이라 절대 자력으로 나올 수 없어.
봉인 당한 사람 없이 해결해도 상관없지만, 보통은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을 해방해야 편해져. 그 방에서 가장 유용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봉인 당하거든. 그리고 이게 예전 파티가 2층에서 진행이 멈춘 이유지.”
“무슨 의미야?”
“이전 파티는 먼저 유산을 얻은 사람이 강한 힘으로 다른 사람을 방해해서 자기만 독식하는 형태로 진행됐거든. 결국 딱 두 사람이 몰아서 성장했지. 그런데 2층에 와보니 그 몰아서 성장한 사람 중 한 명이 무조건 봉인 당하니까, 사실상 전력의 절반이 묶여버리는 셈이잖아? 운 좋게 탈출은 했지만, 더 이상 저주의 방을 진행할 수 없게 됐지.”
…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리의 엄마는 관리국의 최정예 요원, 강자. 당하기보단 해치는 사람이라고 했지.
다른 사람을 방해해서 자기만 보물을 독식했다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아리 엄마구나.
예전에 호텔 랜드에서 거울을 통해 보기론 아리랑 닮아서 무척 예쁘면서도 순한 인상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인상만으로 전혀 알 수 없다.
아리를 ‘만들어낸’ 이유도 알 것 같다.
본인 또는 다른 강자 중 하나가 ‘봉인’당해버리니 답이 없어서, ‘또 하나의 강자’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집중해서 듣던 은솔 누나가 그 정도에서 끊었다.
“2층 이야기도 신기하긴 한데, 이쯤 하고 관문의 방에 더 집중하자. 아리 설명은 기억하지? 이제 전략을 세워보자.”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