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287)
286화 – 진행을 위한 회의, 두 번째 영화 진입
– 한가인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13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첫 번째 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다과 테이블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송이가 어떻게 진행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엘레나는 조금 재미난 반응을 보였다.
“새, 생각보다 숨겨진 요소가 많았구나. 에블린 공녀가 그런 캐릭터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심지어 배후엔 황후가 있었다니….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네.”
미묘하게 자존심이 상한 듯한 반응이다. 저주의 방에서 탈락했을 때와는 다르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배경 때문이겠지. 말하자면, 업계 사람이 방심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무너진 일을 일반인이 해결한 꼴이다.
조금은 기를 세워줘야 할 것 같았다.
“엘레나, 이건 엘레나의 문제는 아니에요. 원래 첫 시도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시작하니까 그런 거죠. 앞 사람이 실패하면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보여주면 뒷사람이 깨는 구조라고 봅니다.”
“가인 씨, 고마워요. 그렇지만…. 솔직히 제가 첫 시도에서 그리 많은 걸 알아낸 것 같진 않아요. 그냥 전 별것 없이 탈락했고 송이가 대부분 알아내고 해결까지 한 거죠.”
미묘하게 파고들어 가는 분위기다. 그때, 누나가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자! 어차피 해결했으니 자책할 것 없어. 내 생각엔 그냥 ‘몰입’을 좀 더 잘하면 될 문제 같아.”
엘레나가 살짝 웃으며 끄덕였다.
“같은 생각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황태자를 처음 봤을 때 너무 깨서 영화에 대한 몰입이 깨졌거든요. 설마 그런 꼬마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어요. 몰입이 깨지니까 허술한 행동이 나온 것 같네요. 다른 분들은 조심하길 바라요.”
아리가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오늘의 일은 이걸로 끝난 것 같지만, 내일은 또 어딘가 들어가야 해. 호텔 시네마에 다시 들어갈래?”
잠시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우리가 본래 진행 중이던 방은 203호였다. 문제는 203호가 지금까지 경험한 방을 통틀어봐도 가장 ‘물리적으로’ 힘든 방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방을 바꾼 것이 204호다.
호텔 시네마는 물리적으로 힘든 방은 아니다. 한 번에 한 명만 진입해서 아무리 길어도 4시간 전에 다 끝나기 때문이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원시시대에 떨어진 채 뒹굴어야 하는 203호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속마음이 드러난다는 점이 은근히 신경 쓰인다.
… 엘레나는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겠구나. 아무래도 속마음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서로 부끄러운 주제라서 송이도 그 이야기를 피했고, 우리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은솔 누나가 입을 열었다.
“204호도 나름의 어려움은 있긴 했지만, 원시시대에서 한 달 살아남기에 비하면 훨씬 낫지 않아?”
진철 형이 옆에서 아직도 반쯤 남은 팝콘 봉지를 흔들었다.
“나무껍질보다야 팝콘이 100만 배는 맛있긴 하지. 나도 그냥 204호를 끝까지 미는 쪽이 좋아 보인다.”
순식간에 의견이 하나로 모였다.
원시시대에서 썩은 물과 음식쓰레기 먹으면서 한 달 구르기와 3~4시간 정도 쪽팔린 경험 하기. 이건 내가 봐도 후자를 고를 수밖에 없다.
아리가 다른 근거도 한가지 추가했다.
“1층의 미션의 방, 106호를 깼을 때 보상 기억하지? 다른 저주의 방을 해결하기 위한 힌트를 줬었어. 어쩌면, 204호의 보상에도 그런 게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호텔 시네마부터 해결하자.”
내일도 호텔 시네마에 들어가기로 했다. 두 번째 영화는 ‘방벽의 수호자’다.
의사 선생님이 의견을 냈다.
“내일 들어갈 영화는 ‘장르’가 결정되었음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전쟁영화’라고 안내인이 말했으니까요. 오늘과 같은…. ‘궤변’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아리가 픽 웃었다.
“그건 아쉽네. 그런데, ‘방벽의 수호자’라는 제목만 봐서는 시간적 배경을 모르겠어.”
같은 생각이었기에 입을 열었다.
“그러게. 냉병기를 휘두르는 전근대 전쟁 같기도 하고, 마법과 초능력이 있는 판타지틱한 전쟁일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마지노선’같은 현대식 방벽을 중심으로 현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지.”
“누구부터 들어갈까?”
모두가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호텔 시네마는 미묘하게 저주의 방과 비슷하다. 첫 번째 시도에선 깰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당장 내일 첫 번째로 들어갈 사람은 자신이 검을 들지 마법을 쓸지 총을 쏠지도 모른 채 들어가서 알 수 없는 적과 맞서야 한다.
할아버지가 냉정한 의견을 냈다.
“첫 시도는 깬다기보다 정보를 모으는 셈 쳐야겠구나. 냉정하게 보자. ‘버리는 패’에 해당할만한 사람이 첫 시도에 들어가는 게 맞다.”
“할배, 버리는 패라니 말을 참….”
“진철아, 너나 가인이가 첫 시도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전쟁이 어떤 양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전근대적 전투면 진철이가 항우장사처럼 힘쓸 수 있을 테고, 현대전이면 가인이의 빙의가 아주 위력적이겠지.”
“음, 사실 전 ‘공포영화’에서 축복을 들고 갈까 생각 중이었어요. 잊으신 듯해서 말씀드리자면, 상태창의 보호 없이는 마도서를 제대로 쓰기 어렵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축복이 맛이 간 상태로도 빙의 잘 하지 않았느냐?”
“경험상 ‘빙의’까지는 그럭저럭 쓸만하더군요. 성장을 해서 그런가? 하지만 화신의 힘은 무리입니다. 아마 쓰면 미쳐서 죽을 것 같네요.”
“빙의만으로 충분하지 않냐? 예컨대, 전투기 조종사의 몸을 빼앗아봐라.”
“전 비행기 조종하는 법 모르는데요?”
“조종은 무슨 조종. 그냥 추락만 시켜도 개이득이지.”
— 탁!
아리가 주의를 환기했다.
“둘 다 2순위 이후에 관한 대화는 그쯤 해. 당장 내일 들어갈 첫 번째 사람 골라야 하니까. 묵성이 말이 일리는 있어. 냉정하게 가인이나 진철이는 뒷순위로 빼야겠지. 참고로 난 무조건 공포영화 쪽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빠질게. 누가 전쟁영화 1번으로 들어갈래?”
남은 멤버를 떠올려봤다.
엘레나와 송이는 이미 기회를 썼다. 승엽이는 차라리 공포영화라면 모를까 전쟁영화는 뭔가 아니다. 픽 자체가 미스라고나 할까? 이런 점은 은솔 누나도 마찬가지다.
로맨스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전개를 위한 주인공이 여성이었던 것처럼, 전쟁영화에선 아무래도 성인 남성이 진입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전개’를 선호하는 심사위원이 있는 만큼 그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첫 번째 진입자는 ‘버리는 패’라고 해도, 정상적인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미스픽이면 정보조차 제대로 모을 수 없다.
여기에 나와 진철 형, 아리까지 빠지면 전쟁영화에 1순위로 들어갈 만한 사람은 특수부대 출신인 의사 선생님과 다양한 경험이 많은 할아버지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두 사람에게 쏠리자 의사 선생님이 먼저 손을 들었다.
“제가 1번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군요.”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내가 낫지 않겠냐? 너도 1순위로 들어가기엔 아까운 느낌인데….”
“어르신, 1순위로 들어가는 사람은 해결은 못하더라도 정보는 많이 알아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자유롭게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죠.”
“무슨 의미냐?”
“의사라는 직업이 그런 면에서 장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허어….”
듣고 보니 설득력이 있다.
전쟁터에서 의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환영받는 존재니까. 치료를 명분으로 삼아 전쟁터의 아무 곳이나 쏘다닐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선 상처를 입은 적국의 포로나 자국의 고위층도 만날 수도 있으리라.
은솔 누나가 책상을 탁하고 쳤다.
“좋아. 내일 진행은 두 번째 영화에 상현 씨부터 들어가기로 하자. 그다음 순서는 상현 씨가 알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하면 되겠지. 혹시 다른 할 말 있는 사람?”
즉시 입을 열었다.
“조언 말인데, 레고에 관해 물어볼 생각입니다.”
아리가 반응했다.
“무슨 기준으로 평가하냐고 물어보게? 그거 좋네. 바로 물어봐.”
‘호텔 시네마의 세 번째 심사위원, 신비의 장인은 무슨 기준으로 평가하지?’
[이 질문은 조언 횟수를 3회 전부 소모합니다. 질문하시겠습니까?]어째 이럴 것 같았다. 심사위원의 평가 기준, 이건 영화 내적인 전개에 관한 질문보다 한 차원 높은 질문이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반드시 답을 얻어야 한다. 다 쓰겠다는 의사를 보내자 답변이 나왔다.
[조언 : 3 -> 0] [레고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라.]“… 아.”
“왜 그래?”
“방금 조언 횟수 3개 다 썼어.”
“그럴 것 같긴 했어. 그래서 답변은?”
“레고는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보래.”
아리는 피곤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댔다.
“… 가인이 네 후원자가 또 선문답에 맛 들였나 보네. 무슨 소크라테스야?”
“레고는 어떤 존재일까?”
승엽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장난감이죠?”
“장난감이란 어떤 존재일까?”
“가지고 노는 물건?”
“가지고 논다는 건 어떤 의미 -”
“에잇! 가인이 너도 올빼미 같은 소리 그만해! 피곤하니까 오늘은 헤어져서 좀 쉬자.”
이것을 끝으로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의사 선생님은 ‘방벽의 수호자’에 첫 번째로 진입했다.
*
– 김상현
…
…
머리가 아프다. 누군가가 나를 흔드는 –
“장군! 장군!”
“… 끄으응! 여긴 어디지?”
“깨어나셨군요! 여봐라! 김 장군께서 깨어나셨다! 즉시 상부에 장군의 쾌차를 알려라!”
“예이!”
딱딱한 나무 침대에 걸터앉아 주변을 살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침대, 거처의 모양새로 미뤄볼 때 배경은 전근대 동양풍 세계관인 듯했다. 조금 아쉬웠다. 아무래도 내가 경험한 전쟁이 현대전인 만큼, 현대 배경의 전쟁영화이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을 연기하며 정보를 모아볼까?
아니다. 정황상 내 계급은 장군인데, 기억상실 따위를 연기하면 ‘사기의 저하’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외부 출입을 막을 가능성이 크다. 정보를 모으기 위해선 건재함을 연기하는 편이 나으리라.
이 부분 다들 실수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여봐라!”
“장군님, 하명하시지요.”
“내가 잠들었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해라. 전황의 상태는 어떻지?”
곧이어 동양의 전통 갑옷을 입은 무인들이 다수 들어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듣다 보니 대략적인 배경은 이해할 수 있었다.
첫째, 배경은 전근대 동양 문화권이다.
둘째, ‘방벽’이란 내가 속한 ‘진천 제국’이 세운 국경 방어를 위한 성벽이다.
셋째, 적은 두르카이라는 족속인데, 정황상 유목 민족이고 ‘무르타니에’라는 이름의 장군이 아주 위험하다고 한다.
넷째, 요컨대, 전근대 중화 제국과 유목 민족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보이며 –
*
한참 동안 이어지는 논리정연한 ‘설명’을 듣던 관객들은 단체로 입을 반쯤 벌렸다.
“아, 아니! 상현 씨! 이거 너무 심하게 설명조잖아!”
은솔의 말에 가인 또한 동의했다.
“… 의사 선생님은 영화 속 등장인물이라기보다는 완전히 우리에게 설명하는 역할로 들어간 느낌이네요.”
송이가 어딘가 불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결을 위해선 영화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반면, 묵성은 상현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 녀석은 어차피 자기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차피 본인이 깰 일은 없으니 몰입하기보다는 그냥 최대한 정보를 잘 모아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인 것이지.”
이 모든 관객의 감상을, 아리가 한 줄로 정리했다.
“영화 속에 설명충이 들어갔네.”
“아, 아니! 그보다 이거 대체 뭐에요? 왜 속마음이 들려요?”
충격에 빠진 엘레나의 질문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
수하들의 보고 내용 중 의외의 내용이 있었다.
“내가 독살당할 뻔했다고?”
“그렇습니다. 사흘 전, 장군의 식사에 누군가 수작을 부렸습니다.”
“범인은? 잡았나?”
“그것이….”
벌써 상황이 피곤하다. 누군가 내 식사에 독을 타서 죽이려 했다는데, 그 범인을 잡아내지도 못했단다. 앞으로 밥 한 끼 먹을 때마다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부분, 다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차진철 군이라면 독에 대한 저항력도 있겠지만, 가인 군이라면 빙의고 자시고 밥 먹다가 죽어서 끝날 수도 있습니다.
*
“… 상현 씨 몰입은 둘째치고 내 몰입이 깨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