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439
외전 27화
* * *
율무는 두 사람을 소개해 준 뒤 B반 연습실로 돌아갔다.
그래. 저쪽은 오늘이 월말 평가니까 그의 행동도 이해가 됐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도 안 통하는 애를 덜컥 맡겨 놓고 튀어 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당시 중2병을 앓고 있던 유연은 낯가림이 심한 편이었다.
“그런데 형한테도 반말하시네요.”
“왜?”
“한국에는 존댓말이라는 문화가 있거든요? 그쪽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는 무조건 써야 하는 거고, 처음 본 사람한테도 쓰는 게 예의예요.”
“왜?”
“그게 문화니까요.”
“왜?”
“…….”
물음표 살인마의 공격에 유연은 결국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 자식…. 설마 한국어는 ‘왜’밖에 할 줄 모르는 건가?’
유연은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했다.
“혹시 ‘왜’밖에 못 해요?”
“왜?”
“흐흐흐흐.”
유연은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던 그는 연습실 문을 바라보며 제발 아무나 나타나 줬으면 하고 간절히 빌었다.
유연의 시선을 따라 문을 돌아본 청은 다시금 예쁘장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애 주제에 하얀 피부며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제법 여자애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러다 유연과 눈이 마주쳤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예쁘,”
“잠깐! 또 왜냐고 할 거면 그냥 대답하지 마세요.”
짜증나니까.
입술을 떼던 청은 유연의 선방에 다시금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왜’가 아닌 다른 한국어를 내뱉었다.
“민성 언제 와?”
저희보다 두 살이나 많은 데다 연습생 중 최고참 형의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다니.
웬만하면 무시하려 했지만 그의 유교 본능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형.”
“응?”
“형이라고요. 그쪽보다 나이 많은 사람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어떡해요?”
“왜?”
“으으…! 왜, 왜! 저놈의 왜!”
유연은 화가 나는지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트리며 괴로워했다. 그러다 산발이 된 머리로 청을 씩씩거리며 노려봤다.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죠. 저 열받으라고.”
“No.”
말귀는 잘 알아듣는 것 같은데 왜 대화는 안 통하지?
미간을 찌푸린 유연은 청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짜 그러다가 큰일 나요. 형들한테 찍히고 싶어서 환장했어요?”
“찍어?”
“눈 밖에 난다고요.”
“눈알이 나가?”
“아니이! 어우 답답해. 나는 왜 영어를 못하지?”
결국 핸드폰을 꺼내 든 유연은 영어 번역기를 켜 손가락을 놀렸다.
토독토독-
[한국에선 어른한테 존댓말 안 하면 혼난다고요!]“나 존댓말 해. Mom한테 배워.”
“배우긴 개뿔. 그쪽 저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반말만 하고 있거든요?”
“No. 안녕하세요.”
“…….”
하. 어떡하지 얘?
잠깐 들은 바로는 숙소 생활을 한다던데.
그럼 하랑이 형이랑 같이 생활해야 한다는 소리고, 그 지랄 맞은 성격에 얘를 곱게 봐줄 리 없을 것 같았다.
‘아니다. 내 알 바냐.’
알아서 하겠지.
춤 말고는 딱히 관심이 없었던 그는 끝내 동갑내기 외국인을 외면하기로 했다.
* * *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으러 떠나는 무리 속, 구석에 앉아 초코바를 꺼내는 청이 보였다.
쉬는 시간을 틈타 저에게 다가왔던 그는 민성이 언제 오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유연도 민성이 왜 오전 연습에 오지 않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 뒤로 청은 줄곧 혼자였다.
연습은 원래 각자 하는 게 맞긴 한데, 묘하게 겉도는 듯한 모습이 신경 쓰였다.
“오늘 나가서 먹자. 마라탕?”
“오~ 마라탕 좋지. 근데 쟤도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새로 온 애?”
“밥 안 먹냐니까 민성이 형 기다릴 거라던데. 안 먹을 건가 봐.”
“그래? 그럼 놔두고 가자.”
친한 연습생 무리에 섞여 있던 유연은 뒤를 돌아보았다.
뇸뇸.
신경 쓰지 않기로 했는데 혼자서 초코바를 오물거리는 모습이 퍽 짠해 보였다.
게다가 아까부터 묘하게 청을 꺼리는 친구들의 모습도 거슬렸다.
“저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왜 쟤만 두고 가요?”
“어? 아니, 그냥….”
첫날부터 하랑과 다툼이 있어서 가능한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괜히 챙겨 주다가 우리까지 피곤해질 필요 있냐. 민성이가 잘 챙겨 주고 있어.”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기적인 발언에 유연은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말았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아무리 경쟁자라지만 저희가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와 적응하기 어려워하던 때는 생각도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냥 저 따로 먹을게요.”
쿨하게 무리에서 벗어난 유연은 곧장 청에게 다가갔다.
그는 하랑이 무섭지 않았다. 그냥 조금 껄끄러운 형일 뿐이었다.
“저기요.”
유연이 다가가자 청이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
비록 이놈은 사람을 열받게 하는 재주가 있었지만, 오전에 대화 좀 나눴다고 마음이 쓰이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거 맛있어요?”
“응!”
청이 활짝 웃으며 가방에서 초코바를 뭉텅이로 꺼내 내밀었다.
“나 많아! 주까?”
슬쩍 보자 가방 안에 군것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초코바를 받아 든 유연은 맞은편에 털썩 앉으며 아닌 척 틱틱거렸다.
“그런데 이런 거 먹다가 걸리면 실장님한테 혼날 텐데.”
“왜?”
“살찌잖아요.”
“나는 아니야.”
척 봐도 말라 보이는 게,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인 것 같긴 했다.
“근데 이게 밥이 되나…?”
체질이거나 말거나 토종 한국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었던 그는 혼잣말을 구시렁거렸다. 그러자 청이 용케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밥이야.”
“이런 건 한국에선 간식으로 보지, 밥으로 안 쳐줘요. 그러니까 이거 다 먹으면 같이 나가요. 밥 먹으러.”
“No. 나 민성 기다려.”
“그 형 오늘 언제 올지 모르는데.”
유일한 친구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말에 청의 눈썹이 팔자 모양으로 휘었다.
“왜?”
“저도 모르죠. 근데 형이랑만 친해요? 온 지 며칠 됐다면서 왜 혼자 이러고 있어요?”
“민성 착해. 천사야.”
연습생들 중 민성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건 아니었으니까.
“그건 저도 아는데, 왜 혼자 다니냐고요. 다른 형들이 챙겨 주려고 했는데 싫다고 했다면서요.”
“응.”
“그러니까 왜.”
“응.”
대화가 이게 맞나?
대화가 빙빙 돌자 유연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답답해했다.
아오!
한편 청은 유연을 두고 연습실을 나서는 무리를 힐끗 바라봤다.
“You 왕따?”
“뭐라고요?”
왕따는 내가 아니라 너겠지.
유연은 화가 끌어 오르려는 걸 간신히 참아 냈다.
“일어나요. 식당 가게.”
“시땅?”
“Lunch. Okay?”
“응!”
전해 들은 것과 달리 청은 배가 고팠는지 가방을 챙겨 들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보다 먼저 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 유연이 피식 웃으며 뒤를 따랐다.
“어딘지는 알고 가요?”
“몰라.”
“그럼 이리 와요.”
“응.”
“그런데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했어요?”
“모가? 나 아무것도 안 해. 윰무랑 민성한테 물어봐.”
“무슨 일 있었나 보네.”
유연은 어릴 적부터 눈치가 빨랐다.
“그거 초면에 반말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한국에선 예의가 아니라니까?”
“응.”
“아니, ‘응’이 아니라 대답을 하거나 고칠 생각을 해야지. 제 말 이해한 거 맞아요?”
“왜?”
“아, 진짜. ‘왜’ 한 번만 더하면 저 그냥 혼자 밥 먹으러 가요.”
“애, 으음….”
“Why도 금지.”
뾰로통.
입술을 삐죽인 청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유연을 바라봤다.
“솔직히 존댓말 못하죠?”
“응.”
“이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언제는 할 줄 안다면서요. 개구라였어.”
“개구리?”
“하아……. 나 지금 뭐 하냐. 됐고, 시간표 받은 거 있죠? 그거 줘 봐요.”
유연이 손을 내밀자 청이 가방에 넣어 둔 꼬깃꼬깃한 종이를 꺼내 주었다.
“한국어 수업이 있긴 있네. 그래도 실생활에서 써야 느니까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러니까 ‘가르쳐 주세요’ 해 봐요.”
“가르쳐 주세여.”
“옳지. 잘하네.”
“응.”
“이럴 땐 ‘응’이 아니라 ‘네’라고 해야 하는 거예요.”
“응.”
“아니, ‘네’라고요.”
“응!”
“‘네’라고, 하아…….”
한숨을 크게 쉰 유연은 가슴 깊이 참을 인을 새겼다.
“그냥 ‘응’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무조건 ‘네’만 해요. 오케이?”
“응.”
“아니, ‘네’라고 ‘네!’”
“Yes! I understand!”
대화가 반복되자 청도 답답한 듯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But you and I 친구!”
“친구여도 우리 처음 봤잖아요! 그럼 존댓말을 해야지. 저도 지금 하고 있잖아요.”
“왜? 윰무가 우리 친구야!”
“뭐라는 거야. 율무는 형이지.”
“No! We are Friend!”
분명 율무는 저희의 나이가 같다고 했는데, 청으로서는 유연의 존댓말 강요가 이해되지 않았다.
존댓말은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 하는 거라면서!
그러나 유연이 청에게 존댓말을 듣고야 말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아.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그런데 들어 봐요? 한국에는 친구 사이에도 서열이라는 게 있어요. 그쪽 몇 월 생이에요?”
그래서 무논리를 펼쳤다.
“몰라.”
“Birthday 언제냐고요. 태어난 날.”
“December.”
“거봐! 그쪽 12월이죠? 저는 4월에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제가 그쪽보다 더 형이에요. 오케이?”
“I’m not okay.”
“뭘 자꾸 모른대. 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한국 법이 그래. This is Korea.”
유연이 법을 들먹이자 청이 움찔거렸다.
“한국 어려워.”
“그러니까 가르쳐 주잖아요. 지금부터 저한테 말할 땐 존댓말을 하도록 하세요. 저는 지금까지 계속했지만, 제가 그쪽보다 형이니까 이젠 말 놓을게요.”
“응.”
“응?”
“네에.”
이 사건을 계기로 유연은 훗날 청에게 ‘사기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