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007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006)
118. 개천 (7)
노랫소리를 들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독고미로는 나보다 먼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번에 무녀의 흔적을 발견했던 곳이야.’
독고미로는 정체불명의 노랫소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날 이후로 독고미로는 가끔 청음 하여 만든 악보를 보고 작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독고미로가 고글을 고쳐 쓰며 말했다.
“가자.”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독고미로가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저렇게 빠르게 이동하면 나뭇잎을 밟고 땅을 박찰 때마다 큰 소리가 날 법한데, 바람 소리만 조금 들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처음 호족의 영역에 왔을 때보다 훨씬 움직임이 가벼웠다.
유적형 이계 시뮬레이션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한 것 같았다.
‘정식 플레이어가 된 이후에 이계 공략에 전념했다면 1학년 때 이명을 받고, 2학년 때에는 프로 플레이어 팀의 스카우터와 협상하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독고미로가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 플레이어의 길을 걷도록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플레이어로서의 재능이 독고미로의 꿈을 이루는 데에 써먹을 만한 무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았다.
이계 시뮬레이터가 제대로 일을 하여 이 활약상을 전달하고 있다면 독고미로가 유명세 때문에 뽑혔다는 헛소리가 쑥 들어갔을 거다.
휘이이…….
바람에 섞여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저번에 들었던 것보다 노랫소리가 크고 똑똑하게 들려 소리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인지, 연주하는 소리인지 헷갈렸는데, 둘 다였구나.’
누군가가 어떤 악기를 반주로 나직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능파가 실린 것도 아닌데,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저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안전하게 느껴지고 안심감이 차올랐다.
외적이 부른 삿된 어둠이 하늘을 덮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도 이상한 일이었다.
독고미로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지 고글 너머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소리가 더 커지자 갑자기 미간을 좁혔다.
“…….”
독고미로는 나에게 말을 걸려다가 멈췄다.
말소리가 새어 나갈 것을 염려한 건지 디바이스를 켜서 홀로그램에 메시지를 입력했다.
[독고미로] 지금 들리는 노랫소리, 어디서 들어 봤어.호족의 영역에서 체재한 지 꽤 되었으니 들어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독고미로는 그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닌 듯했다.
[독고미로] 공청훤 선생님이 부르는 것 같지 않아?독고미로가 공청훤을 언급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소리가 작고, 공청훤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몇 번 없기에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귀가 밝고, 어렸을 때부터 공청훤의 노래를 들어 본 독고미로는 달랐다.
이 유적형 시뮬레이터가 재현한 시대에는 신인이 생존해 있고, 아직 신인 암살 미수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공청훤은 신인이 인간이 된 모습이야. 목소리까지 닮은 건가? 호랑이들이 여전히 목소리가 좋다며 칭찬하긴 했지.’
그럼 진작에 호랑이들이 공청훤의 노래를 들어 봤다면 신인인 걸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설마 동일 존재일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겠지만, 분명 공청훤에게 관심은 가졌을 거다.
안타깝게도 5천 년가량 엇갈린 것 같지만 말이다.
‘공청훤의 이름은 중계석에 영상이 전달되기 전에 호랑이들이 편집하겠지. 그렇다고 해서 더 단서를 늘려선 안 돼.’
나는 일단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조의신] 잘 모르겠는데. [독고미로] 소리도 작고, 가사 없이 허밍 중이라 헷갈릴 수도 있긴 해. 그래도 가까이에서 들어 보면 너도 나랑 똑같이 생각할걸? 가자.독고미로의 주의를 돌릴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점점 노랫소리에 가까워졌다.
소리의 근원은 무녀의 상징을 발견한 장소와 가까웠다.
무성한 수풀 너머, 흐릿한 달빛 아래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와 연주하는 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노래를 부르는 자는 신인인 것 같았지만, 연주하는 자를 알아보긴 어려웠다.
연주자는 신인보다 더 어두운 곳에 있었고, 몸을 낮추고 있는 건지 체구가 작은 건지 매우 작게 보였다.
좀 더 가까이 관찰하려고 접근하려 할 때였다.
“오지 마.”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푸른 가면을 쓴 청호였다.
나와 독고미로는 청호의 존재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주변에서 계속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적의가 없었기에 감지하기도 어려웠지만, 굉장한 은신 솜씨였다.
청호는 우리가 더 다가가면 바로 공격할 생각인 건지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달을 등지고 태호권의 기본 동작을 취하고 있는 모습에 바로 한이가 떠올랐다.
“한…… 아니, 청호?”
독고미로도 한이를 떠올렸던 건지 말을 한 번 더듬었다.
청호는 그저 독고미로가 갑자기 나타난 상대를 보고 당황했다고 여겼다.
“밤에 은밀히 행동하는 것치고는 담력이 별로구나. 이 정도에 놀라서야 어찌 용족의 후예와 예언가를 수행하겠다는 거지?”
본의는 아니지만, 호족들은 우리 공격대를 용족의 후예와 예언가, 그 둘을 수행하는 셋으로 여기고 있었다.
졸지에 곽경구, 독고미로, 박승현을 수행원으로 삼은 꼴이었으나 정정해 봤자 이득 될 게 없어서 방치 중이긴 했다.
행여나 청호가 독고미로를 추궁하기 전에 내가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밤이네요. 좋은 노랫소리가 들려서요. 가까이에서 듣고 싶었어요.”
“좋은 노랫소리를 가릴 정도로 귀가 좋나 봐. 내 발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걸 보니 나만큼은 귀가 밝은 것 같진 않지만.”
청호의 말에 독고미로가 고글 너머로 얼굴을 굳혔다.
귀가 들리지 않는 한이와 비슷한 분위기의 청호가 저런 말을 하니 복잡한 심정인 것 같았다.
청호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계속 말을 걸었다.
“신인의 곁을 오래 비우지 않는 게 좋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네 말이 아니어도 그렇게 할 거야. 지금은 너희 때문에 잠깐 여기에 온 것뿐이야.”
“지금 노래하고 계신 건 역시 신인인가 보군요.”
나는 신인으로 추정되는 실루엣을 의식하며 말했다.
청호는 노래 감상을 방해받은 데다가, 다소 무방비하게 노래 중인 신인의 모습이 이방인 앞에 드러난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주먹을 더 거세게 쥐었다.
대화를 해 봤자 청호의 화를 부추길 뿐이겠지만, 정보를 캘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잠깐이나마 이리로 오신 걸 보면 연주자분을 믿고 계신가 봐요. 반주는 천신의 무녀께서 하시나요?”
사실 연주자의 정체는 짐작 가지 않았지만, 무녀들은 노래와 가까운 존재이며 이 주변에서 무녀의 상징이 발견되었다는 점을 떠올려 아는 척 떠들었다.
예언가라는 그럴싸한 직함 덕인지 청호는 내가 알면서도 떠보는 거라고 짐작했다.
“알면서 떠보는 건 기분 나빠. 신인 같은 귀한 분이 허술한 연주에 노래할 리가 없잖아.”
“호족의 영역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는 무녀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녀가 거동하기 어려운 밤에 연주하는 분이 누구인지 궁금했어요.”
“예언가는 먼 곳을 볼 줄 아는데, 가까운 곳을 볼 줄은 모르나 봐. 호족의 연주자라면 당연히…….”
위이잉……!
갑자기 귀에 날카로운 이명이 스쳤다.
귀를 관통하는 듯한 통증과 함께 갑자기 느껴진 이명에 순간 휘청일 뻔했다.
독고미로도 같은 걸 느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내 쪽을 봤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네.’
만약 넥워머와 후드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면 청호도 이상을 감지했을지도 모르겠다.
청호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건지 계속 말을 잇고 있었다.
“무녀의 연주를 듣고 싶어도 포기해. 그래도 보기와 다르게 그 녀석은 무녀보다 더 좋은 연주를 하니까 더 이득일걸? 인정하지 않는 자도 있지만, 그 녀석은 호족 최고의 연주자야.”
청호가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방금 건 단순한 이계 시뮬레이터의 오류인 걸까?
시뮬레이터가 신화시대를 구현했으니 사소한 오류가 일어나도 이상한 건 아니었다.
나와 독고미로가 잠자코 청호의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노래를 끝까지 들어도 좋아. 다 들은 후에는 얌전히 처소로 돌아가도록 해. 아니면 호족의 영역 밖으로 나가든가.”
청호는 그렇게 말한 후, 그 자리에 서서 계속 노래를 들었다.
나와 독고미로는 약속한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호족 최고 연주자의 반주와 신인의 노래를 들었다.
노랫소리가 멎고, 청호가 홀연히 모습을 감춘 후에도 우리는 잠시 동안 서 있었다.
‘청호가 호족 최고의 연주자에 관해 말할 때, 나와 독고미로에게 이명이 발생했지.’
어쩌면 이건 이계 시뮬레이터의 기록에도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청호의 말을 덮어서 지워 버리는 듯한 이명이 말이다.
한편, 독고미로는 이명보다는 신인과 청호, 공청훤과 한이를 떠올리며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들어 봐도 저 신인의 노래가 공청훤의 노래 같으니 어쩔 수 없을 거다.
‘그뿐만이 아니야. 이곳엔 누가 봐도 황지호를 연상하게 하는 황호가 있잖아.’
그리고 황지호는 한이와 자신이 친우와 죽마고우가 어쩌고저쩌고 떠들어 댔고, 독고미로는 그 발언을 매우 신경 쓰고 있었다.
독고미로가 이 시대에 등장하는 호족들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엮어서 생각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한이가 아주 잘 따르는 공청훤과 신인까지 엮어 생각하면 호족의 비밀에 가까워질 것이다.
내가 독고미로에게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곽경구였다.
“다들 빨리 돌아와라. 야오러치가 일어났다.”
* * *
호족이 내어 준 허름한 처소.
야오러치가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염준열과 중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이사하기 전의 용궁이 한국과 중국의 국경 사이에 있어서 그런가, 염준열도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구나.’
디바이스의 번역 기능을 활용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승현이 귀환한 우리를 보고 말을 걸었다.
“왔구나. 대화 내용 요약한 거 볼래? 번역 앱을 쓴 거라 좀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
“고마워, 볼게.”
대충 훑어보니 직전의 상황은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였다.
중국 대표팀은 신인, 웅족의 수장을 대상으로 한 암살 시도가 발생하지 않는 원인을 외적 내부에서 찾고자 했다.
좀처럼 단서를 찾지 못하자 이들은 두 개의 조로 나누어 행동했는데, 야오러치의 조를 습격한 외적은 이능 악기를 활용한 스킬이 조금도 통하지 않아 그대로 당하고 만 듯했다.
‘그럼 아직 루보원과 리웨이는 무사할 수도 있어. 둘이 쉽게 당하진 않았겠지.’
중국 대표팀의 상황 외에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
‘노랫소리에 눈을 떴다고? 신인의 노랫소리가 자고 있는 야오러치에게 들렸나?’
야오러치에게 할 질문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대화 내용을 정리하며 시간을 확인하던 박승현의 손이 멈췄다.
“디바이스의 시계를 봐. 해가 뜰 시간인데 밖이 캄캄해!”
박승현의 말에 전원이 어두운 창밖을 내다봤다.
그동안 외적의 영향으로 일출 시간이 되어도 어둡긴 했지만, 점점 날이 밝아 온다는 느낌은 들었다.
아무리 날이 흐려도 완전히 해가 진 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출 시간이 되었는데도 마치 밤 같았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삿된 어둠이 하늘을 완전히 덮었나 봐요.”
내 말에 공격대원의 얼굴이 흐려졌다.
우리는 보스 에너미를 찾지 못한 채로, 백호가 어둠을 가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