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rcist and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60
260
# 시사회와 저승의 피리 (2)
이모가 그 무서운 얼굴을 희번덕거리면서 물었다.
[만약 네 말대로 저수지에 빠진 설을 다시 찾았다면 왜 지난 10년 동안 꺼내지도 않고 불지도 않은 거야?]숙희가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때 이상한 꿈에서 깨고 나서 그 검은 기운이 바람처럼 내게 이렇게 속삭였어. 앞으로 10년 동안 설을 잊고 살게 될 거라고. 근데 정말로 난 설을 잊고 살았어. 설은 늘 내 곁에 있었고 내가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그게 설이란 걸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무슨 소리야, 나도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설을 보지 못했는데. 네가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다면 나도 봤겠지.]“그건, 내가 설을 주머니에 넣어 놓고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숙희는 고아원을 나온 후 팬시점에서 훔쳤던 고급 만년필 케이스를 들어 보였다.
만년필은 한참 전에 망가져서 버렸지만 케이스는 예뻐서 늘 가지고 다녔는데 거기에 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 설을 집어넣은 것도 다름 아닌 숙희 자신이었고 신기하게도 단지 기억을 못했을 뿐이었다.
“근데 참 이상하지? 난 기억하지 못했는데 내 몸 어딘가에서 예전의 그 검은 기운이 해 주었던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나 봐. 설이 내게 돌아온 지 정확히 10년이 지난 오늘, 내 생일에 갑자기 설에 대한 생각이 난 거야. 아참, 맞다. 오늘이 내 생일이야, 아무도 축하해 주진 않지만, 풋. 그래서 내가 만년필 케이스를 열어 봤더니…… 이렇게 설이 있는 거야.”
숙희는 감격한 표정으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생일을 축하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다시 태어나려고 화장을 한 거야. 설을 보니까 왠지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지금까지는 세상에 내편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설을 내게 가져다준 그 검은 기운. 그 기운이 지금까지 날 지켜 주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 이제 설을 한번 불어 보고 싶어. 아니, 마치 바람 소리처럼 뭔가가 내게 설을 불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그럴 때가 되었다고.”
숙희가 설을 입에 물려고 하자 이모가 겁먹은 표정으로 벽을 타고 뒤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난 책임 못 져. 그거 불 때마다 늘 나쁜 일이 일어났잖아. 설은 귀신을 불러내는 피리야. 그래서 원장이 저수지에 갖다 버린 거고.]“그래, 맞아. 내겐 좋은 일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에겐 늘 나쁜 일이 일어났지. 설을 버린 그 다음 날 원장의 시체가 저수지에 둥둥 떠 있던 것도 그렇고. 수십 년 동안 고아원 지하실에서 지박령으로 떠돌던 이모를 불러낸 것도 바로 이 설의 피리 소리였잖아. 귀신을 불러냈으니 다른 사람들에겐 나쁜 일이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았잖아. 난…… 귀신들을 더 많이 불러내고 싶어. 귀신들은 늘 내 편이었으니까, 히힛.”
이모는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한편으론 묘한 기대감으로 두 눈이 반짝였다.
숙희가 보랏빛이 도는 입술로 설을 물었다. 보랏빛 입술로 붉은빛이 감도는 설을 입에 물고 피리를 불기 시작하자 악기에서 기이한 음률이 흘러나왔다. 설의 기운이 파동을 만들며 밤의 기운 속으로 퍼져 나갔다.
잠시 후 눈앞에 작은 회오리 같은 작은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에서 검은 안개 같은 귀기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멍은 점점 커졌고 쏟아져 들어오는 귀기의 양도 점점 늘어났다.
귀기가 방 안을 가득 메우더니 숙희를 보호하듯 휘감았다.
숙희의 입술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입술만이 아니었다. 얼굴은 물론 몸 전체로 색정적인 기운이 번져 가는 것만 같았다.
분명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어떤 남자라도 안아 보고 싶은 욕망을 품게 만드는 요부의 기운이 그녀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넌 지금 문을 열고 있는 거야. 설은…… 이승과 연결된 저승의 문을 여는 피리라고.]숙희가 계속 설을 불자 처음엔 눈동자 크기만 하던 구멍이 숙희의 얼굴 크기로 커졌다. 회오리 안에서 노란 눈빛이 번들거리는 뭔가가 밖으로 나오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헉.”
숙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술에서 설을 뗐다. 허공에 나타났던 구멍이 금방 사라졌고 귀기도 더 이상 유입되지 않았다.
숙희가 설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중얼거렸다.
“어지러워서 더 이상 못 불겠어. 좀 더 많은 귀신을 불러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이모가 말했다.
[아직은 네가 힘이 약해서 그래. 네 몸이 귀기를 더 많이 받아들이면 설을 더 오랫동안 불 수가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이곳엔 저승의 기운인 귀기가 넘쳐날 테고 이승은 영혼들의 세상이 되겠지.]언론 시사회가 진행되는 상영관 옆에서는 배급 시사회가 열리고 있었다. 배급 시사회는 전국의 극장주들이 모여서 영화를 보고 자신의 극장에 영화를 걸지 말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시사회였다. 말하자면 배급 시사회 결과에 따라서 상영관의 개수가 정해지는 것이다.
제작비 규모나 여러 여건을 감안하면 상영관 400개 정도만 확보하면 선방했다고 볼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배급 시사회가 끝나고 배급 팀의 박일영 과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태수와 황태식 팀장에게 다가와서 배급 쪽 분위기를 전했다.
“배급 시사 반응이 괜찮습니다. 적어도 700개 관 이상은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황태식 팀장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700개요?”
박일영 과장이 말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그 이상도 가능할 것 같은데,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관의 수를 말씀드린 겁니다.”
황태식 팀장이 흥분한 음성으로 태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축하합니다, 대표님.”
“어? 벌써 이런 축하를 받아도 되나요?”
“700개 관만 확보할 수 있다면 개봉 첫 주에 최소 50만 관객은 무난하게 돌파할 수가 있을 겁니다.”
개봉 첫 주에 50만 명의 관객을 돌파할 수 있다니.
황태식 팀장의 말에 태수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손익분기점이 80만 정도인데 개봉 첫 주에 50만을 돌파한다면 일단 걱정하던 손익분기점은 무난히 돌파할 수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박일영 과장이 말했다.
“솔직히 현재의 분위기상으로는 최소 150만 관객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 공포 영화에서 그 정도의 성적이라면 중박을 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마케팅을 담당한 영화홀릭 송혜진 대표의 표정도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언론 시사회가 끝나고 2시간 후엔 VIP 시사회가 이어졌다. 언론 시사회와 VIP 시사회를 같은 날에 진행을 하는 이유는 언론 시사회에 참석했던 기자들을 계속 붙잡아 두려는 전략이었다.
영화사나 투자사에서 언론 시사회나 VIP 시사회를 여는 목적은 한 가지다.
당연히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서다. 영화의 마케팅 팀은 영화 상영 전은 물론이고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단 한 줄의 기사라도 더 내보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언론 시사회나 VIP 시사회는 전쟁의 포문을 여는 이벤트이자 영화를 홍보할 수 있는 가장 큰 행사이기에 시사회와 관련된 기사를 최대한 많이 쏟아 내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VIP 시사회와 언론 시사회를 같이 하면 힘들게 기자들을 모아야 하는 수고로움을 줄일 수가 있다.
기자들 입장에서도 VIP 시사회에는 수많은 스타가 참석하기에 웬만하면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취재를 하는 게 편하다. 때문에 기자들도 두 시사회를 같은 날 진행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캐주얼한 정장을 입은 태수는 상영관 입구에 서서 직접 손님들을 맞으려다가 계획을 바꿨다.
VIP 시사회에 참석하는 스타들의 레드카펫에 몰려야만 하는 관객과 취재진의 시선이 모두 태수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태수는 오늘 VIP 시사회에 그동안 신세를 지거나 안면이 있는 지인들을 대부분 초청했다.
가까운 지인들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지인들까지 한 자리에 초대해서 자신이 제작한 영화를 보여 준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때는 왠지 불편한 생각이 들어서 지인들을 몇 명밖에 초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영화관에 도착한 지인은 드림대학 미스터리 클럽 후배들과 박대식, 고민석 교수였다. 박대식 교수와 고민석 교수는 태수가 영화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수업에 많은 편의를 제공해 줬다.
그렇다고 특혜를 줬다는 얘기는 아니다.
신생 대학인 드림실용예술전문대학은 학교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학생들이 재학 중에 장편 상업 영화에 스태프로 참여하거나 인턴으로 취업을 하면 근무시간을 학점으로 대체해 주는 제도를 시행해 왔기 때문이다.
태수 덕분에 현재 드림실용예술전문대학은 1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지도와 위상이 높아졌다. 입학에 필요한 수능 점수도 평균 7, 8등급에서 올해는 3등급도 합격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시사회 1시간 전부터는 연예인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관객들 사이에 환호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천길강과 구본수, 전미순, 에서 열연을 펼쳐준 학교 얄개 유승현과 재연 배우 이지숙이 함께 도착했고 의 안연수와 김예림도 오랜만에 얼굴을 봐서 반가웠다.
특히 김예림은 집착을 촬영한 후 처음 보는 것이라서 유독 반가웠다.
“태수야.”
익숙한 목소리가 불러서 돌아보니 의 김영아 작가가 권창훈 피디와 함께 와있었다. 김영아가 주위를 둘러보며 속삭이듯 물었다.
“혹시 오늘 조승수 님도 오니?”
“네,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승수 선배 오시면 누나랑 사진 찍도록 해 드릴게요.”
“정말? 나 너무 떨릴 것 같아.”
김영아의 얼굴이 소녀처럼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때 레드카펫 쪽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들려왔다. 특급 스타가 왔다는 신호였다.
김영아가 설레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웃거리며 말했다.
“조승수 님이 왔나? 어? 김찬하고 박보윤이다!”
태수가 VIP룸 앞에서 손을 흔들자 김찬과 박보윤이 태수를 발견하고 역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관객과 취재진한테 둘러싸여서 포즈를 취하며 포토 타임을 가지느라 태수 쪽으로는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시 극장이 떠나갈 것 같은 환호성이 울리며 최고의 스타 두 명이 경호원의 안내를 받으며 영화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손예지와 조승수였다.
태수가 손을 들어 인사를 했고 두 사람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 역시 관객들과 취재진한테 붙잡혀서 포토 타임을 가졌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데 태수의 팔을 살짝 잡아끄는 사람이 있었다.
돌아보니 여동생 혜령이었다.
“어? 혜령아. 엄마는?”
혜령이 고개를 돌리자 뒤쪽에서 엄마는 물론이고 형과 형수까지 식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형수가 너무도 상냥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며 말했다.
“도련님,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형수님.”
형수가 뒤쪽에서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하고 서 있는 20대 여자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거기 숨어 있지 말고 이리 나와서 인사해.”
여자가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오는데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형이 옆에 있다가 말했다.
“기억 안 나? 우리 처제야. 결혼식 때하고 상견례 때 봤잖아.”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형수의 여동생이었다. 말하자면 사돈처녀.
예전 상견례 했을 때도 사돈처녀는 태수가 잘생겼다고 말을 했다는 소리를 태수가 들었는데 지금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태수가 인사를 하자 사돈처녀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형수가 말했다.
“제 동생이 도련님 완전 팬 됐어요. 이전부터 한번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는데 도련님이 워낙 바빠서…….”
“아, 네.”
형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혜정이하고 사진 한 장 찍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럼요.”
태수가 흔쾌히 대답하자 사돈처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중얼거렸다.
“어떡해, 나 너무 떨려.”
태수는 사돈처녀는 물론이고 형수와 가족들하고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또한 가족들을 연예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VIP 룸으로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키고 나오다가 송현주를 만났다.
송현주는 엄마와 혜령하고는 같은 건물에서 지내는 데다 태수가 이전에 인사를 시켜서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안녕하세요?”
송현주가 식구들한테 인사를 하자 엄마와 혜령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형과 형수는 엄마와 혜령이 송현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요즘엔 송현주도 드라마의 서브 주연을 맡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져서 형과 형수한테 송현주는 당연히 유명 연예인이었다.
혜령이 형과 형수에게 송현주를 소개했다.
“큰오빠, 송현주 씨하고 작은 오빠랑 되게 친해.”
송현주가 형과 형수에게 인사를 하고 엄마한테도 꼬박꼬박 ‘어머니’라고 부르자 마치 상견례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엄마는 최근 들어 태수만 보면 현주 같은 참한 색시를 며느리로 맞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기에 오늘도 기분이 무척 좋은 듯했다.
지인들이 대부분 왔지만 태수가 가장 기다리는 사람들이 도착을 하지 않았다.
태수가 초조하게 시계를 보는데 뒤늦게 반가운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형진 신부와 현준, 이설아였다.
세 사람은 충청도 괴산의 희망복지원에서 어렵게 올라오는 길이었다. 현준은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설아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강 신부가 말했다.
“올라오는데 폭우가 쏟아져서 차가 얼마나 막히는지, 자칫하면 늦을 뻔했네.”
“고생하셨어요, 신부님. 현준이랑 설아도 오느라 고생했어.”
처음에 태수는 강 신부와 현준, 설아를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 설아가 시각장애인이라서 영화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근데 설아가 강 신부한테 태수의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에 가서 보고 싶다고 먼저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설아의 경우 영능력을 사용하면 앞을 볼 수는 있지만 80분이 넘는 시간을 계속 영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간 그야말로 영능력이 바닥나서 몸에 귀기가 보충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기다려야할 테니까.
하지만 설아는 영화관에서 약간의 영능력만 사용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 덕분에 설아는 소리만 듣고도 영화의 장면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태수가 세 사람을 영화관으로 안내하는데 설아가 말했다.
“참, 올라오는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어요.”
설아의 말에 강 신부의 표정도 굳어졌다.
태수가 의아하게 물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니? 그게 뭔데?”
설아가 말했다.
“지금까지 제가 느꼈던 그 어떤 귀기보다 강한 귀기가 오늘 눈을 떴어요.”
설아의 말에 태수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아가 지금까지 느꼈던 그 어떤 귀기보다 강한 귀기라면, 귀사리나 얼마 전 퇴마한 경대의 귀기보다도 강하다는 얘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