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학살의 시작
진양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서혼수의 힘이 그저 조금 흩어졌을 뿐인데, 진양은 신혼이 흔들리고 육체가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커다란 놈이 완전히 깨어나 직접 공격한다면 아마 순식간에 자신의 신혼은 서혼수의 이빨 사이에 끼게 될 거다.
묵록 한 권을 꺼내서 발아래 펼쳐서 금광대로를 만들어 고개를 돌려 도망쳤다.
달리면서 오징어에게 물었다.
“서혼수는 무슨 약점이 있지?”
“약점이 있다는 말을 못 들었습니다. 저건 우리와 똑같이 신혼도 없습니다.”
오징어는 안절부절못하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했다.
“맞다. 우리도 신혼이 없지. 그럼 내가 서혼수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잖아?”
“헛소리는 그만하지. 내가 죽으면 너도 얼마 되지 않아 죽을걸. 그럼 저것하고 대화해볼 수 있나? 예를 들어, 이곳의 진상을 말해 주던가. 어쩌면 서혼수도 여기서 벗어날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잖아.”
“듣기로는 서혼수는 바다에서 유일하게 죽지 않은 생령이라고 했습니다. 저건 열반해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답니다.”
“…….”
진양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역시 해파리처럼 생긴 건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다.
신혼도 없고 진짜 죽지도 않는 것하고 무슨 대화를 하겠나.
도망이나 가자.
회전계단을 따라서 달렸다. 발을 디디고 나가는 순간, 한 줄기의 붉은빛이 더 빠른 속도로 쫓아와 강타했다.
진양의 몸이 떨리면서 땅에 쓰러졌다. 두 눈은 넋을 잃었고 초점도 사라졌다. 수많은 기억이 눈앞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뒤에서 짙은 남색으로 빛나는 촉수 하나가 천천히 뻗어왔다. 그리고 허공에서 환영으로 변하더니 사라졌다.
잠시 후 창백한 얼굴의 진양이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지?”
“운이 좋았습니다. 방금은 기억만 사라진 겁니다. 서혼수가 쫓아온 힘으로는 당신을 죽일 수 없어서 그저 흔적만 남긴 겁니다. 당신을 자신의 먹잇감이라고 표시했으니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오징어는 마치 남의 고통을 보고 좋아하는 거 같았다.
“뭘 좋아하는 거야,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 거야!”
진양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비볐다. 아직도 무서웠다.
만약 방금 해천신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자신도 정말 끝났을 거다.
신혼이 있는 모든 생물은 모두 서혼수의 먹잇감이었다. 그리고 서혼수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신혼이 상대의 이빨 사이에 낀다는 건 확실했다.
그걸 생각하면 진양은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정말 운이 없는 거 같았다.
서혼수는 언제 죽을까? 해요장곡이 울릴 때쯤이면 자신도 분명히 죽게 될 거다.
결국 자신은 죽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지?”
진양은 몸을 일으키면서 오징어를 잡고 어깨에 올려놓았다.
“왕의 궁전으로 갔습니다.”
오장어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두 눈을 뜨는 순간 공포에 질린 표정이 드러났다.
“제 생각에 당신이 말했던 거리낌 없이 죽이는 날이 온 거 같습니다.”
“안내해.”
진양은 이를 악물고 계속 앞으로 돌진했다.
도망갈 수 없었다. 이곳은 폐쇄된 세계였기에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유일한 열쇠는 바로 해요 선자의 본체였다. 그녀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였다.
우선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죽어도 그곳에서 죽어야 했다.
묵록을 펼치고 금광대로에 발을 올렸다. 오징어의 안내를 따라서 빠른 속도로 달렸다.
잠시 후 모퉁이를 돌자 바로 복도 안이 보였다. 몇 명의 해족이 뿔뿔이 흩어져서 땅에 쓰러져 있었다.
문어 시종, 거북이 집사, 갈치 호위 모두 땅에 곤두박질쳐 있었다.
앞으로 가서 살펴보자 진양은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이들은 죽지 않았네?”
그들은 전부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육체는 아무런 손상도 없었고 신혼도 손상을 입은 흔적이 없었다. 시체를 만지는 능력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혼수상태였다.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가는 도중에 정신을 잃은 해족이 갈수록 많아졌다.
가장 중심의 왕궁 대전에 들어가자 마침내 해요 선자가 보였다.
왕궁 대전의 앞에는 갑옷을 두른 교인(鮫人)과 삼 장 높이의 거대한 해수가 수풀처럼 늘어 서 있었다. 적어도 수백 명은 되었다.
신광이 모여서 만들어진 거대하기 그지없는 짙은 남색의 부문이 허공에 걸려 있었다. 신광이 떨어져서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해요 선자는 짙은 남색의 긴치마를 입고 있었고 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왼손에는 야광배(夜光杯)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요쟁(瑤箏)이 걸려 있었다. 얼굴엔 살며시 미소를 띤 채 태연하게 앞에 있는 모든 해족을 보고 있었다.
“뭘 망설이는 거지? 결국은 모두 죽게 될 거다.”
수 장 길이의 거대 고래 대요가 중추(重錘)를 쥐고 울부짖자 마치 거대한 산처럼 억눌러 왔다. 짙은 영광과 사나운 요력이 이 공간을 부술 거 같았다.
굉음이 나면서 왕궁 전체가 모두 흔들리는 거 같았다. 수백 장의 거대 고래는 포효하며 해요 선자의 머리를 향해 중추를 내리쳤다.
해요 선자는 긴 머리를 날려서 술잔에 있던 술을 모두 마셨다.
“시간이 다 됐군. 위대한 왕도 이제 죽을 때가 됐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요 선자의 오른손이 천천히 요쟁을 만지는 게 보였다.
둥.
삽시간에 바람이 잔잔해지고 파도가 모두 사라졌다. 거대 고래는 허공에 고정되었다.
요쟁에서 잔잔히 물결이 일어나더니 천천히 흩어졌다.
잔잔한 물결이 거대 고래의 몸을 스쳤다. 거대 고래의 피부가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것처럼 출렁거렸다.
거대 고래의 눈에는 공포가 떠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정된 모든 게 다시 원상복구 되었다.
피식!
거대 고래의 몸이 갑자기 혈무(血霧)가 되어 폭발했다. 그리고 혈무가 땅으로 떨어졌다.
해요 선자가 위로 떠 오르자 긴 치마 밑에 있던 꼬리가 천천히 분열되어 흰 다리로 변했다. 그녀는 맨발로 땅에 있는 피를 밟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오늘부터 나는 교인이 아니고 해족 왕족의 일원이 아니다. 너희는 나를 해요라고 불러라.”
말이 끝나자 요쟁에서 갑자기 살벌한 기운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짙은 살기에서 헤어지기 싫은 연인 같은 간절한 곡조가 연주되었다.
흐릿한 곡조 속에는 근심이 깃들어 있었다. 공허하고 그윽함 속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이건 내 새로운 곡이다. 해요장혼곡 제일 장이니까 너희가 느껴 보아라.”
요쟁의 소리가 들리면서 신광이 퍼져나갔다. 맞은편에 진열되어 있던 신광이 강제로 와해되고 부문이 부서졌다. 해족들은 눈에 공포로 가득했지만, 얼굴은 취한 듯했다.
이런 흉포한 기세에 영광이 사방으로 넘치던 해족도 미쳐 반항할 겨를도 없었다. 마치 보리를 베는 것처럼 신광이 출렁거리자 줄지어 쓰러졌다.
해요 선자는 맨발로 피를 밟으며 한가로이 정원을 걷듯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왕궁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막지 못했다.
뒤쪽에서 진양은 돌기둥에 기대어 힘겹게 침을 삼켰다.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역시 거리낌 없이 죽이기 시작했어.”
해요 선자가 왕궁으로 들어가자 진양은 그제야 뒤에서 걸어 나왔다.
왕궁 앞에는 시체로 가득했다. 선혈이 땅을 붉게 물들였고 시냇물이 되어 움푹 팬 곳을 향해 흘렀다.
진양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시체들을 따라 앞으로 갔다. 몇 걸음 가지 못해서 한 구의 온몸이 피로 가득한 교인의 시체가 비틀거리며 앉는 게 보였다.
이어서 시체 하나둘씩 앉기 시작했다. 모두가 똑같이 멍하니 땅에 앉아 있었다.
진양은 앞으로 다가갔지만, 그들은 반응이 없었다. 약해 보이는 두 명을 선택해서 그들을 검사해보았다.
그들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신혼도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앞서 보았던 정신을 잃은 그들 같았다. 하지만 그들의 의식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그들의 힘은 강했다. 이 힘이 통제를 잃기 시작하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여 통제 불능이 될 수도 있었다.
“이게 해요장곡 제일 장인가?”
진양은 침을 삼켰다. 너무 놀라서 손과 발이 차가웠다.
이곳의 호위 중 가장 약한 자도 삼원 절정의 수련 경지였다. 그리고 이 교인들 중 몇 명의 기운은 신해기 수도사와 같았다. 게다가 교인의 천부적인 신통까지 더하면 보통 신해기 수도사보다 더 강했다.
해요 선자가 이 정도까지 강해졌다니.
매번 그녀를 만날 때마다 확연히 다른 기질이 느껴졌었다. 기억들 사이에는 적어도 수백 년 이상이 흘렸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가장 무서운 건 해요장혼곡을 해요 선자 본인이 만들었다는 거였다.
교인 왕족의 자질보다 훨씬 강했다. 정말 무서웠다.
그녀는 목소리를 잃고 악기에 심취하여 모든 신통도 포기했다. 해요 선자는 그저 해요장혼곡을 만들어서 모든 걸 죽이는 거에 만족했다.
해요장혼곡은 진우달이 들었던 이야기 중에서 첫 번째 곡일 뿐이라고 했었다.
뒤에는 벽해조생곡(碧海潮生曲)이 있고, 얼마나 무서운지 아무도 모르는 어면안신곡(漁眠安神曲)이 있다고 했었다.
“우리도 도망갑시다. 일곱째 아가씨는 이미 미쳤어. 너무 무섭다고……”
오징어는 몸을 떨었다. 곧 죽을 거 같았다. 진양이 말했던 것보다 더 무서웠다.
“도망갈 수 없어. 그녀는 지금 이곳의 핵심이야. 우리가 도망가려면 그녀를 통과해야 해. 지금 그녀는 그저 해요장혼곡 일장만 연주했는데도 강제로 해족 강자를 모두 바보로 만들었어.
만약 그녀가 모든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면 그때는 모든 게 사라지고 모든 생령이 다 죽게 될 거야. 우리가 어디에 숨어도 소용이 없어.”
진양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를 악물고 왕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히 방법이 있어. 여기는 어쨌든 그저 해요 선자의 기억일 뿐이잖아. 허점이 없을 수가 없어! 해결 못 할 리가 없어!”
왕궁 안으로 들어가자 해요 선자가 보였다.
두 발은 아주 깨끗했다. 맨발로 수정의 지면을 밟고 마치 연회에 온 공주처럼 우아하게 천천히 걸었다.
여유가 넘치는 모습에 호감이 생길 정도였다.
맞은편에는 다양한 모습의 해족이 빼곡히 모여 있었다. 해요 선자가 한 걸음 다가서면 모두 겁에 질려서 뒤로 한발 물러섰다.
“반역자!”
호통 소리가 상석인 왕좌에서 들려왔다.
왕좌에는 위엄있는 얼굴에 옥관을 쓰고 있는 교인이 있었다. 손에 눈부신 신광이 빛나는 대극(大戟)을 쥐고 손을 흔들어 베었다.
대극이 마치 공간을 베듯이 해요 선자의 앞에 나타났다. 대극이 해요 선자를 반으로 베었다.
촤아악!
물소리와 함께 절반으로 잘린 해요 선자의 상처에서는 선혈이 보이지 않았다.
수광(水光)이 반짝이더니 물살이 천천히 모여들었다.
해요 선자의 반으로 잘린 몸은 너무나 쉽게 합쳐졌다.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회복되었고 머리카락 하나 상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