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11
1011화 내 힘 말고 네 힘으로
추격수는 거대한 체구답게 상당한 양의 기혈을 품고 있었다.
동급 인간 수도사와 비교하면 수백 배는 차이가 나는 수준이었다.
상당히 맷집이 좋은 녀석이었기 때문에 압도적인 실력으로 한 번에 밀어붙이지 않는 이상 상대를 단숨에 끝내는 건 불가능하다.
진양 역시 연체 수도사였기 때문에 녀석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귀찮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덤벼라!”
진양은 마도를 강하게 움켜쥔 채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기혈을 방출하며 다가오는 진양의 모습에 추격수는 눈빛을 반짝이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는 자신의 주위를 맴돌던 기운을 모두 거둬들인 뒤 다가오는 진양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진양의 마도와 추격수의 주먹이 중간에서 맞부딪혔다.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이 터져 나오며 기혈의 충돌로 인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강력한 기혈 폭풍에 진양은 휘말려버리고 말았다.
밀려난 진양은 나뭇잎 두 장을 뚫고 가지에 부딪치고 나서야 멈춰 섰다.
온몸의 뼈에 금이 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진양은 곧바로 신수 수액가 용혈보술을 사용하여 온몸의 상처를 회복시켰다.
순식간에 모든 상처가 회복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한층 더 강력해진 느낌이 들었다.
진양은 미소를 지으며 마도를 다시 거둬들였다.
일격에 숨통을 끊지 않는 이상 순수한 육신의 힘만으로 진양을 꺾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추격수를 죽일 수 없다는 건 진양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계속해서 소모전을 이어나가려면 상대가 충분히 힘을 소모할 수 있도록 싸움을 유지해야 한다.
방금 전의 그 수준이면 무리 없이 소모전을 이어나갈 수 있을 듯했다.
뿐만 아니라 육신을 단련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는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네 번째 단계의 패왕사갑 덕분에 간신히 추격수의 공격을 버틸 수 있었지만, 진양은 오히려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충분히 버텨나갈 수 있다.
여기에 해안에 쌓아둔 엄청난 양의 힘까지 더한다면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전투를 이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신수 줄기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영기까지 흡수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다.
진양과 다르게 추격수에겐 해안이 없었다.
비록 진양만큼 많은 양의 힘을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힘을 소모하며 싸우는 건 무리일 것이었다.
소모전은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이어졌다.
무함경, 오신보경, 장해수수전을 기반으로 진양의 육신 강도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젠 패왕사갑 네 번째 단계를 펼친 상태로 상대의 공격을 받아도 멀쩡한 지경에 이르렀다.
진양은 마침내 한층 공격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다시 마도를 꺼내 움켜쥐니 도신에서 눈부신 빛과 함께 세 개의 부문이 피어올랐다.
이어서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패왕사갑 다섯 번째 단계가 펼쳐졌다.
몸에서 다시 한번 기혈이 뿜어져 나오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기혈의 힘은 타오르는 태양의 기운으로 전환되었고, 삼양개태지법을 펼치자 양기가 다시 한번 폭발하듯 솟구쳐올랐다.
마도를 휘두르자 도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추격수의 뻗어진 주먹과 맞부딪쳤다.
예상했던 굉음은 없었다.
강한 태양의 빛과 마도에서 흘러나온 혈광이 뒤섞이며 소리 없이 추격수의 주먹 안으로 흘러들었다.
두 빛이 뒤섞이며 추격수의 주먹을 꿰뚫는 순간 추격수의 주먹에서 피어오르던 혈기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기혈이 완전히 파괴되자 추격수의 주먹을 뒤덮고 있던 피부는 빠르게 메말랐고 피부 아래의 살들은 전부 증발해버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빛이 사그라들며 추격수의 한쪽 손은 피골이 상접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진양은 마치 불타오르는 태양과 같이 허공에 떠 있었다.
그의 수중에 들려있는 마도는 붉은 검영을 뿜어내며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추격수로부터 흡수한 기혈을 소화시키는 것이었다.
진양은 우선 새로운 기운에 적응을 한 뒤 힘의 강도를 한층 더 높였다.
패왕사갑을 펼친 자를 상대로 한참 부족한 기혈을 가지고 끝까지 육탄전을 벌이는 건 무모한 짓이다.
연체 수도사에게 치명적인 대일신광, 그리고 혈기와 생기를 흡수하는 화혈마도.
이것이야말로 추격수를 상대할 진짜 무기였다.
진양이 믿고 있던 구석은 바로 이것이다.
끝까지 소모전을 벌이겠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식으로 소모전을 벌이겠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근접 육탄전만으로 추격수의 힘의 소모를 폭증시키는 건 어렵다.
추격수가 주먹을 뻗으니 체내에서 기혈이 돌며 메마른 손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시켜주었다.
진양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이전과는 달리 한층 더 진지해졌다.
“인간 연체 수도사에 치명적인 공법과 마도라. 내가 네 녀석을 너무 얕잡아본 보양이구나. 이제야 밑천을 드러내다니.”
낮은 외침과 함께 백여 장에 이르던 거대한 몸집은 빠르게 평범한 사람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짙은 혈기는 실체화되며 단단한 갑옷처럼 온몸을 둘러쌌다.
녀석이 진양을 바라보는 순간 진양은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몸이 먼저 반응하며 전방을 향해 마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추격수는 순식간에 진양의 앞에 나타났다.
진양이 뿜어낸 대일신광은 육신 표면에 갑옷의 형상으로 드러난 기혈의 힘과 맞부딪쳤다.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왔으나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뻗어 가볍게 진양이 휘두른 마도를 붙잡았다.
도신에서 부문이 피어오르며 태양의 힘은 육신을 꿰뚫을 수 있는 빛으로 변해 추격수의 손을 덮쳤다.
그리고 추격수의 손을 뒤덮은 실체화된 기혈을 긁어냈다.
그러나 속도가 너무 느렸다.
추격수는 힘을 주어 마도의 도신을 박살 낸 뒤 손바닥을 뻗어 진양의 머리를 강타했다.
‘피하지 못하면 죽는다!’
진양은 황급히 흑옥 신문을 꺼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광-!
굉음과 함께 추격수의 공격이 흑옥 신문을 강타했다.
신문이 미세하게 떨리며 추격수의 손을 중심으로 실금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실금이 신문의 절반을 정도를 뒤덮을 즈음.
응룡 조각상이 눈을 번쩍 뜨자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실금이 사라져버렸다.
괴이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흑옥 신문에 작은 틈이 벌어졌다.
마치 금방이라도 문이 열릴 듯한 모습이었다.
추격수는 잔뜩 경계하며 재빨리 제자리에서 물러났다.
흑옥 신문은 다시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변하며 진양의 손으로 회수되었다.
진양은 차가운 눈빛으로 추격수를 노려보았다.
녀석이 법상천지와 비슷한 신통력에 능통한 줄은 전혀 생각조차 못 했다.
다른 점이라면 인간 수도사가 시전하는 법상천지는 요족을 본떠 진신을 만들어내고 몸을 수십 배에서 수백 배로 팽창시키며 전반적으로 힘을 강화시키는 공법이다.
하지만 추격수는 태어날 때부터 백여 장에 이르는 거구를 가졌다.
그의 신통력은 인간의 것과는 반대로 육신을 축소시켜 속도, 힘, 방어 등 각 방면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형식이었다.
육신의 힘에 의지하여 싸우는 연체 수도사에겐 비약적으로 실력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었다.
진양이 강하게 마도를 움켜쥐자 붉은빛이 흘러나오며 부러진 마도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패왕사갑 다섯 번째 단계에 대일신광까지 펼쳤음에도 상대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화혈마도의 힘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추격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어서 진양도 사라지며 허공으로 향했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순간 진양의 몸에서 기혈이 방출되며 다시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두 눈에서는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마치 마신이 강림한 듯한 모습이었다.
패왕사갑 여섯 번째 단계.
시전되기 무섭게 진양의 피부에 균열이 일어났다.
균열은 도문의 형상을 이루며 자연스럽게 부문이 피어올랐다.
진양의 손에 들려있는 화혈마도는 수정처럼 투명하게 변했다.
마도를 든 채 추격수의 뒤에 나타난 진양은 추격수의 허리를 향해 힘차게 마도를 찔러넣었다.
수정을 변한 마도가 조금씩 부서져 나갔다.
그러나 추격수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기혈의 갑옷도 대일신광과 마도에 의해 빠르게 깎여나갔다.
기혈 갑옷이 완전히 뚫리는 순간 마도에서 다시 한번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추격수의 허리를 꿰뚫었다.
추격수는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지르며 손을 휘둘렀고, 이에 맞은 진양과 마도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추격수의 기혈 갑옷도 절반 정도 함께 떨어져 나갔다.
피가 뚝뚝 흐르는 마도를 든 진양의 모습은 상당히 기괴했다.
화혈마도의 붉은 그림자는 떨어져나온 절반의 기혈 갑옷을 둘러쌌다.
둘러싼 곳에서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추격수의 기혈 갑옷은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나뉘어지며 마도에 의해 완전히 삼켜졌다.
붉은 그림자가 된 화혈마도는 다시 한번 하나로 뭉치며 실체화되었다.
도신은 자흑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추격수의 기혈 갑옷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이어서 진양의 기혈이 뒤덮으며 붉은 수정의 형상이 드러났다.
진양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 힘으로 뚫을 수 없다면 네 녀석의 힘으로 뚫으면 되지!”
진양은 연체 수도사에게 쥐약인 공법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
끝까지 버티기만 해도 결국 나가떨어지는 건 상대다.
화혈마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괴상한 공법이다.
적의 기혈, 육신, 영혼, 생기를 집어삼켜 자신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마도의 힘이 충분히 강해져 손을 벗어나는 순간 강력한 반서를 일으킨다.
일종의 동귀어진과 같은 기괴한 공법으로 먼저 적을 죽인 다음 자신을 죽인다.
적과 자신은 똑같이 마도에 의해 모든 것이 삼켜지는 결말을 맞게 된다.
웬만해선 이런 방법까지 쓰고 싶지 않았다.
마도는 태생적으로 모반의 상을 지니고 태어났다.
모든 사람들은 마도에게 있어 도구에 불과했다.
해안에서 충분한 교화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아예 처음부터 마도를 꺼내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화혈마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만큼 기혈의 힘에 상당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고, 기혈과 혈육을 삼키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무엇보다 마도가 가장 무서운 건 한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를 집어삼키는 즉시 힘이 증가하게 된다.
진양이 기혈을 운용하니 몸의 상처가 다시 회복되었다.
이어서 두 손으로 마도를 움켜쥔 채 다시 박차 올랐다.
* * *
두 사람의 전투는 상당히 치열했다.
두 연체 수도사가 기혈을 방출하며 근접전을 벌이는 만큼 여파가 신수 밖까지 퍼져나가는 걸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소모전이 며칠씩이나 이어지니 신수족과 신수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거대한 이무기를 닮은 푸른 애벌레였다.
거대한 잎사귀에 매달린 녀석의 몸길이는 무려 삼천 장에 이르렀다.
온몸에 미세한 털이 자라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부드러운 털과는 거리가 멀었다.
날카롭고 뾰족한 바늘에 더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