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79
1079화 범인은 진양뿐
종문 내의 고수들은 한곳에 모여 회의 중이었다.
유명성종과 부도마교의 일은 결코 남의 일로만 볼 순 없었기에 황천마종도 어느 정도 방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다.
한창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
최양평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손을 뻗었다.
그의 앞에 수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경 안에선 이따금 한 번씩 미세한 물결이 일어나고 있었다.
곁에서 그 모습을 본 한 장로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부도마교의 사람입니까? 건방진 놈! 감히 이런 시기에 이곳에 기어들어 오다니!”
최양평은 어떻게든 수경에 비친 모습을 뚜렷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아무리 기를 써도 사람의 형상은 흐릿했다.
몰래 이곳에 숨어든 자는 익숙하게 길을 따라 뒷산으로 향했다.
그 모습에 찌푸려졌던 최양평의 얼굴이 다시 펴지며 미소가 걸렸다.
“아니, 부도마교의 사람이 아닐세. 이런 시기에 놈들이 어찌 감히 이곳에 올 수 있겠나? 분명 진양일 걸세.”
최양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살기등등하던 고수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언제 그랬냐는 듯 살기도 깔끔하게 사라졌다.
“진양이었군요.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습니다. 최 노조께서 곳곳에 설치해 둔 함정은 설사 저희조차도 피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기 가득한 눈으로 수경을 바라보던 장로도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는 수경을 살피며 연신 감탄했다.
“그새 실력이 이렇게 늘었단 말입니까? 놀랍습니다. 최 조사님의 함정 속에서도 완벽하게 자신의 모습을 가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니. 듣자 하니 도궁 경지에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인재로군요. 벌써 도궁의 경지에 접어들다니. 아무래도 장문인 후보자 명단에 진양의 이름도 올려야 할 듯하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이 정도면 경지도 충분하고, 유령호를 관리하는 모습만 봐도 자질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나이가 어린 것쯤은 크게 문제가 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지금으로선 장문인의 자리를 이어받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진양뿐인 것 같군요.”
한참 고수들의 말을 듣고 있던 최양평은 껄껄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만들 두시게나. 그 녀석이 어디 한 곳에 가만히 앉아있을 법한 위인이던가?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간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도 않을 걸세.”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무엇보다 진양의 의견이 중요한 거니까요.”
“맞습니다. 강요를 해선 안 됩니다. 다만 도궁 경지에 올랐다면 맥주 칭호를 내려도 무방할 듯합니다. 아니면 장로 칭호를 내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최양평은 피식 웃어버렸다.
이들은 장문은 무리일 것 같으니 조금씩 낮춰가며 협상을 하려는 것이었다.
설령 장로 칭호를 받는다고 해도 당장 종문의 일에 신경 써야 할 건 없으니 부담 가질 건 없다.
하지만 최양평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진양에게 물어보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게나.”
황천마종의 고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최양평은 훤히 꿰고 있었다.
진양은 좋은 물건이 생길 때마다 전부 최양평에게 보냈다.
얼마 전에 보낸 영맥도 마찬가지다.
다만 최양평은 자신이 가지고 있어봤자 크게 쓸모가 없었기에 종문에 영맥을 넘긴 것이다.
진양과 최양평의 관계, 그리고 진양과 황천마종의 관계는 그 차이가 상당하다.
현재 진양은 황천마종의 제자보단 최양평의 제자에 더욱 가깝다.
진양은 분명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소리 없이 강해지고 있었다.
그가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황천마종의 고수들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체면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진양은 겨우 이백 살도 채 되지 않아 도궁에 올랐다.
그가 앞으로 도군의 경지까지도 넘볼 수 있는 인재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진양은 재력이나 인맥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었다.
이런 진양 앞에서 체면 따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만약 이들이 진양의 성격을 잘 몰랐다면 진작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아부를 떨어댔을 것이다.
유령 선장, 갑부, 대제의 최측근 등.
현재 진양에게 따라붙은 꼬리표 중에 본인의 실력과 관련된 건 단 하나도 없다.
진양에 대한 소문은 오래전부터 세간에 떠돌고 있었다.
이 중에는 실제로 증명이 된 것도 있었다.
진양은 기반에 큰 손상을 입어 그 누구도 그의 앞길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엄청난 꼬리표까지 따라붙으니 진양 본연의 실력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몇 없었다.
물론 몇 없다고 해도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황천마종의 몇몇 고수들이 그렇다.
이들은 그동안 진양이 발전해 오는 모습을 직접 목도했다.
마치 한계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듯 매번 만날 때마다 진양은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이런 모습을 직접 보고도 기반에 손상을 입었다는 등의 소문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최양평은 그 누구보다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여러 맥주와 장로들은 어느덧 회의 의제도 잊은 채 최양평을 보내려고 했다.
오랜만에 진양이 왔으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 * *
진양이 뒷산에 들어섰을 무렵 멀리서 한 줄기의 빛이 날아왔다.
빛이 사그라들며 최양평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못 본 사이에 최양평의 안색은 더욱 좋아져 있었다.
기운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왕성했다.
기반과 경지 모두 안정을 되찾은 것이다.
청탕의 위력은 생각 이상이었다.
최양평의 팔팔한 모습에 진양은 안심이 되었다.
이대로라면 한 단계 위의 경지도 충분히 노려볼 만했다.
“축하드립니다, 사부님!”
진양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예를 거두거라. 이 스승이 조금이나마 더 오래 살 수 있게 된 건 다 네 덕이 아니더냐.
그건 그렇고 어쩐 일로 돌아온 게냐? 게다가 아무도 모르게 이곳까지 들어오다니…….”
최양평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유명성종이 있는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설마 너와도 관련이 된 게냐?”
진양은 웃기만 할 뿐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이렇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럴 리가요. 이런 시기에 부도마교 녀석들이 갑자기 유명성종을 습격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최양평은 껄껄 웃으며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듣자 하니 이리저리 날뛰며 여러 수도사들을 산채로 삼키던 월치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더구나. 부도마교에선 아직까지도 월치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고 하던데. 이런 일만 없었다면 부도마교가 이렇게까지 낭패를 보진 않았을 게다.”
그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비록 확증은 없었지만, 이 일이 어느 정도 진양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진양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최양평이 계속해서 말했다.
“솥이 망가져서 당분간은 탕을 만들 수가 없구나. 그러니 좋은 재료를 구해도 일단은 보낼 필요 없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최양평은 이미 모든 걸 눈치챈 듯했다.
이런 시기에 조용히 황천마종으로 숨어들어온 진양, 며칠 전에 부도마교와 유명성종 사이에 있었던 일, 그리고 사라진 월치까지.
정황만 보면 범인은 진양뿐이었다.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월치가 사라진 건 진양과 깊게 연관되어있는 게 확실했다.
“사부님, 아무래도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다른 건 제가 한 게 아니거든요. 그저 지나가던 길에 월치 녀석이 함부로 수도사들을 마구잡이로 집어삼키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잡아들인 것뿐입니다.”
진양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사실 황천마종에 온 것도 최양평에게 월치로 탕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최양평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좋은 식재료를 가지고 있어도 어떻게 처리하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고 말이다.
제대로 처리한다면 좋은 탕이 나오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자칫 귀한 재료를 낭비할 수도 있다.
최양평은 여전히 차분한 모습이었다.
전혀 놀라지 않은 듯했다.
“혹시 널 발견한 사람은 없었더냐? 월치를 포함해서 말이다.”
진양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그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월치도 진양을 보지 못했다.
월치가 보았던 건 두 번째 형태의 묵양뿐이었다.
하지만 설령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고 해도 그건 문제될 게 없다.
진양은 그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딱 긋고, 누구든 자신 있으면 묵양과 직접 해결을 보라고 하면 된다.
과연 누가 묵양을 꺾을 수 있을까?
당시 상황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사방에서 교전이 일어나고 있기도 했고, 거기에 진양의 분신까지 폭발을 일으켰다.
설령 누군가 은거울로 시간을 되돌려본다고 하더라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그건 그렇고 월치는 어떻게 되었느냐? 아직 살아있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죽었으면 얼른 꺼내 보거라. 금방 푹 끓여오도록 하마.”
“뭐가 다른 거죠?”
진양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한마디를 더했다.
“근데 월치는 분명 저번에 제이검군 형님께서 베지 않으셨습니까? 어째서 또다시 살아난 거죠? 날개 한쪽이 없던데.”
최양평은 죽간 하나를 꺼내 진양에게 건넸다.
“과거 부도마교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장해도군의 도움 덕분이었다. 단순히 작은 도움이 아니라 부도마교에 큰 보탬이 될 만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지. 이 중 가장 큰 도움은 쟁녕일맥과 월치일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지도 않았었지. 사람들도 그저 그들이 쟁녕과 월치를 갖게 됨으로서 일맥의 이름을 이것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어.
사실상 개명은 필수적이었지. 쟁녕과 월치에겐 그 이름도 필요했고, 일맥으로서의 대우도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이 일맥은 오히려 쟁녕과 월치가 함께 이익을 얻도록 도움을 주었지.
월치 맥주가 월치 둔법을 익힌 것만 해도 그렇다. 동급 수도사 중에 이 정도 수준으로 둔법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이들이 이와 같은 흉물을 조련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명맥부소(命脈符召) 덕분이다.
명맥부소를 쥐고 있다는 건 곧 괴수들의 생사를 쥐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부소가 파괴되지 않는 이상 괴수들이 완전한 죽음을 맞이할 일도 없지.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제물만 있다면 다시 부활시킬 수 있지.
물론 명맥부소를 파괴하여 목숨을 끊는 것 외에 완전히 괴수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똑같이 명맥부소에 목숨이 걸린 괴수가 제거하고자 하는 괴수를 삼켜버리는 것이지.
이제 알겠느냐?
월치가 살아있음에도 그들이 월치를 찾을 수 없는 건 네가 감각을 차단하는 공법을 썼기 때문인 게지. 하지만 밖으로 꺼내는 순간 부도마교 녀석들은 곧바로 이를 감지하게 될 게다. 그땐 월치를 죽여도 큰 의미는 없겠지.”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외층 공간에 있을 때 보았던 천마의 기억을 통해 장해도군이 과거에 대황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해도군은 어쩌면 바로 이때 쟁녕과 월치의 명맥부소를 천외에서부터 가져온 것일지도 모른다.
월치가 다시 살아난 이유도, 날개가 한쪽 없었던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과거 쟁녕일맥의 야씨 가문이 일맥을 배반했을 때 쟁녕을 납치해간 적이 있다.
이때 월치를 습격하여 한쪽 날개를 베어버렸다.
쟁녕이 배신을 했다는 건 명맥부소가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갔다는 뜻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