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80
1080화 뒤집어씌우기
최양평이 죽간 하나를 내밀었다.
“이 죽간은 내가 직접 기록한 것들이다. 대황에는 단 한 번도 흘러나간 적 없는 정보들이니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거라.”
진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죽간을 펼쳤다.
부소에 관한 것들이 기록되어있었다.
현재 대황에는 수많은 부소들이 존재한다.
신조의 관원들이 가진 신물도 사실은 부소의 일종이다.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 사용하는 비호부소(庇護符召)도 부소의 일종이다.
하지만 명맥부소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었다.
모든 부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뿌리는 단 하나다.
바로 상고 천정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알 거 같았다.
대황에는 상고 지부에 대한 기록은 넘칠 정도로 많이 남아있지만, 그에 비하면 상고 천정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명맥부소는 상고 천정으로부터 비롯된 물건으로 대부분의 경우 탈것으로 쓸 괴수를 길들일 때 사용한다.
명맥을 통제하는 것이긴 하지만 괴수에게 생명의 보장을 허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고 천정이 전성기일 땐 꽤 많은 이들이 천정으로 몰려든 듯했다.
큰 나무의 그늘이 시원한 법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만약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장해도군은 모종의 방법을 통해 두 개의 부소를 손에 넣게 되었을 것이다.
문파를 발전시킬 귀한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산귀처럼 제물을 바쳐야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문파 내부에선 이를 중심으로 강력하고 온전한 일맥을 발전시킬 수 있다.
전기에는 크게 쓸모가 없겠지만 후기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법상을 모을 때 살아있는 괴수가 있다면 참고하여 법상을 모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월치 법상을 모으고 월치와 관련된 공법을 시전한다면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최대치가 폭증하게 된다.
대황에서 실전된 공법 중에는 꽤 강력한 공법도 포함되어있다.
이것들이 실전된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수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상을 모으는 일만 두고 봐도 그렇다.
법상을 모으는 방법 중에 진룡법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는 매우 강력함에도 오늘날 실전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진룡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상을 통해 진룡을 만들어내 그것으로 법상을 모을 수도 없는 법.
정말로 그런 짓을 했다간 높은 확률로 주화입마에 빠져 죽게 될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운 좋게 법상을 모은다고 해도 그것이 진룡법상이라는 보장은 없다.
진룡인 줄 알고 봤더니 지렁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진양은 계속해서 죽간을 읽었다.
뒤쪽에는 부소에 관한 자잘한 내용들이 기록되어있었다.
명맥부소보다 더 좋은 건 많이 있었지만, 자세하게 적혀있진 않았다.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던 진양이 멈춰 섰다.
펼쳐진 장에선 최고 등급의 부소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모든 부소법(符召法)은 바로 이것에서부터 파생된 것이었다.
상고 천정이 건재하던 시기에 이것은 상고 천정의 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절세의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이것의 이름은 봉신방(封神榜).
중간엔 간단한 기록 한 줄만 남아있었다.
봉신방은 상고 천저에서 누군가에게 봉신을 해 줄 때 사용되던 보물이라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봉신방은 일반적인 부소가 가진 제약과 단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같은 명맥부소 생명체에게 삼켜진 부분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봉신된 존재는 그렇지 않다.
봉신방은 절세 보물답게 파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한다.
봉신된 생명체는 그 순간부터 불사불멸의 존재가 된다.
또한 충분한 대가만 치르면 부활도 가능해진다.
상고 천정의 가장 듬직했던 보루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최양평이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 알 것 같았다.
분명 깡마른 뱃사공에게서부터 얻은 게 분명했다.
대황에선 봉신방이라는 이름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어봤지만 이런 이름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죽간을 모두 읽은 진양은 그것을 다시 최양평에게 돌려주었다.
최양평이 죽간을 건네받으며 물었다.
“또 다른 문제는 없느냐?”
여기서 말한 문제는 월치를 처리하는 문제다.
곰곰이 생각하던 진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혹여나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 이 스승을 찾아오거라. 황천마종이 항상 네 뒤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방금 너와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문파 내의 고수들이 날 찔러보며 널 장문에 앉히려고 하더구나. 허나 네 성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어 단칼에 거절했다. 다만 가능하다면 장로나 맥주의 칭호라도 내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구나.
원하는 대로 하거라. 어쨌든 나름의 도움이 될 게다. 이런 칭호를 가지고 있으면 혹여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종문에 도움을 구할 수도 있을 테니까.
물론 칭호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매정하게 널 내버려 두진 않을 게다. 어쨌든 손을 써야 할 때는 쓸 수밖에 없을 테니까.
네가 이런 것에 마음을 두고 있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스승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네 스스로의 결정에 맡기도록 하마.”
“맥주는 됐고 장로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진양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최양평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최양평은 비록 진양의 의견을 존중한다며 아무런 선택도 내리지 않았지만, 그는 어쨌든 평생을 황천마종에서 보낸 황천마종의 사람이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더라도 칭호 정도는 내리고 싶을 것이다.
이 정도는 진양도 크게 상관은 없다.
이름뿐인 허수아비 장로 하나만으로 최양평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사실 칭호는 중요한 게 아니다.
최양평이 이곳에 있는데 황천마종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진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천마종에 머무는 동안 문파 내의 고수들은 진양이 온 것을 끝까지 모른척하며 넘어가 주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최양평이 장로 영패를 가져왔다.
보기 드물 정도로 신속한 일 처리였다.
진양은 이후로도 며칠 정도를 더 머문 뒤 최양평에게 받은 탕 제조 비법을 챙겨 황천마종을 떠났다.
* * *
황천마종을 빠져나온 진양은 곧장 다시 흑림해로 향했다.
다시 칼날로 베어낸 듯한 산봉우리로 돌아왔다.
이전과 크게 다른 건 없어 보였다.
진양은 자신의 외모와 기운을 순목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원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순목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순목은 장정의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오히려 장정의가 난처해질 수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소책자를 꺼내 살폈다.
그리고 백령의 모습으로 다시 외모를 바꾸었다.
이어서 묵양을 꺼냈다.
“두 번째 형태로 변신해봐. 월치와 얘기를 좀 해봐야겠어. 만약 녀석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곧바로 죽이도록 해. 대신 시신은 남겨줘. 탕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알겠다.”
묵양은 백령의 모습으로 변한 진양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묵양은 두 번째 형태로 변신하여 배 속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월치를 꺼냈다.
전부 다 꺼내진 않았다.
머리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뚜껑을 닫아 녀석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붙잡았다.
“네 명맥부소를 되찾아올 테니 앞으로는 나를 따르도록 해.”
진양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감히 네 녀석 따위가?”
과연 월치는 길들이기 쉬운 녀석은 아니었다.
“나 아직 할 일 많아. 네 녀석이랑 한가하게 떠들고 있을 시간 없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
“웃기지도 않군. 네놈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나를…….”
월치는 여전히 비협조적인 모습이었다.
진양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묵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죽여.”
묵양은 곧바로 월치 녀석의 목을 비틀었다.
뚜둑- 소리와 함께 목이 한 바퀴 돌아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월치는 색색거리며 힘겹게 숨소리를 냈다.
묵양은 월치를 밖으로 꺼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녀석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월치는 힘겹게 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쓰러진 채 진양을 바라보았다.
이성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진양이 다시 틈 안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월치의 숨이 완전히 끊어지자 진양은 다시 돌아왔다.
손을 가져다 댔으나 능력은 반응하지 않았다.
진양은 곧바로 녀석의 피를 빼고 탕을 끓이기 좋게 토막 낸 뒤 상자에 나눠 남았다.
처리를 마친 뒤엔 묵양과 함께 홀연히 자리를 떠났다.
원래는 월치를 완전히 세뇌시킬 생각이었다.
한 번으로 부족하면 여러 번 시도하여 바보로 만들어 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기로 했다.
부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대황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도 거의 없었고 연구된 자료도 전무했다.
만약 강제로 월치를 세뇌시키려다가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진양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게 밝혀지게 될지도 모른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지는 셈이다.
게다가 당장은 아쉬울 게 없다.
지금으로선 녀석을 탕으로 끓이는 것 외에 별다른 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백령에게 뒤집어씌운 건 즉흥적으로 떠오른 방법이다.
월치 녀석이 부도마교에서 부활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어차피 모든 건 백령이 뒤집어쓰게 되었으니까.
백령은 분명 상고 지부 조각 내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녀석에게 뒤집어씌웠다.
백령과 부도마교 사람들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결코 평화롭게 앉아 대화로 풀어나갈 위인들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도마교 녀석들이 어느 정도 갱생이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동안 잠잠했던 건 단순히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부도마교 사람들은 백령을 발견하는 즉시 죽어라 달려들 것이다.
아니, 어쩌면 백령을 붙잡아 죽기 직전까지 고문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이들이 백령을 살려둔다면 반대로 백령이 그들을 죽이려 들 것이다.
어찌 되든 결과는 단 하나뿐.
지독한 원한을 맺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슨 일로 원한을 맺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부도마교의 입장에서 보면 백령 같이 희귀한 녀석은 상당한 가치를 가진 보물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게다가 백령의 몸에서 끄집어낸 영혼들은 전부 이성을 회복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백령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가 벌였던 모든 일들, 그리고 그가 처한 상황이 밝혀질 것은 시간문제나 다름없다.
만약 상황이 정말로 그렇게 흘러간다면 부도마교는 누가 월치를 죽였는지 따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백령을 붙잡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백령의 몸에는 인간보단 이족이나 요족, 요괴의 영혼이 더 많이 들어있다.
이들은 이성 없는 순수한 영혼 그 자체다.
일부 공법을 수련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