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086
1086화 장정의 현상수배지
진양은 겨우 삼천 리 남짓 움직이는 동안 벌써 일곱 번이나 큰 전투를 목격했다.
이 중 네 번은 남쪽에서 온 상단을 공격하며 벌어진 전투였고, 나머지 세 번은 강도 무리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한 상단을 털게 된 강도 무리가 자신보다 먼저 상단을 습격한 강도 무리를 공격한 듯했다.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위에 화가 난 모양이었다.
“쯔쯧, 저렇게 한 번에 전부 벗겨 먹으면 안 되지.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군.”
진양은 혀를 끌끌 차며 멀리서 전투를 구경했다.
이곳에 상황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동해의 혼란이 잦아들며 질서가 잡히기 시작하자 대영의 상단은 동해로 교역을 나서기 시작했다.
시장도 훨씬 더 크고, 돌아올 때 동해의 특산품을 챙겨와 돈도 짭짤하게 벌 수 있으니 대연으로 교역을 나가는 것보다 훨씬 더 이득이었던 것이었다.
대연은 그나마 유일하게 대량으로 물건을 소화해낼 수 있는 시장이다.
게다가 대영에서 값싸게 사들인 자원은 이곳에선 매우 비싸게 팔아넘길 수 있다.
이 두 가지만 아니었다면 대영의 상단은 대연이라는 시장을 완전히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연이 이토록 개판이 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국경지대를 넘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도가 들끓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평범한 강도 무리는 아니었다.
대연 신조의 국경 수비대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대연 내부에 국경조차 돌보지 못할 정도로 큰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싸움은 먼저 싸움을 걸어온 강도 무리의 승리로 끝났다.
그런데 그들은 적을 물리치기 무섭게 진양의 비주를 향해 날아왔다.
대략 열 명 남짓 되는 이들이 진양의 퇴로를 막아섰다.
이 중 장신에 수염을 잔뜩 기른 도궁 수도사가 수도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큼직한 대검을 들고 비주 앞을 막아섰다.
그 모습을 보며 진양은 혀를 끌끌 찼다.
‘또 불나방 한 마리가 덤벼드는군.’
이제 보니 이미 지나간 상단 때문이 아니라 진양이라는 살찐 양을 두고 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이봐, 이름이 뭐지? 처음 보는 얼굴인 것 같은데. 여긴 처음이냐?”
수염 난 남자는 다른 모습으로 위장한 진양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비주를 힐끔 쳐다보았다.
“전불인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곳은 처음이고요.”
진양은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추었다.
“대영 전씨 가문 사람이냐?”
남자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전씨 가문의 차기 계승자인 전난우가 바로 제 형님이십니다.”
“하하하, 웃기지도 않는 소리군.”
남자는 고개를 젖히며 큰소리로 웃었다.
그리곤 이제 막 지나간 상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지나간 녀석들도 전씨 가문 녀석들이다. 최근 들어 대연으로 들어오는 상단은 전부 전씨 가문 아니면 황씨 가문의 사람이더군.”
강도 무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보아하니 한두 번 마주쳐본 건 아닌 듯했다.
“…….”
진양은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이곳을 지나가려면 이 할의 물건을 내놔야한다. 물론 뒤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는 이 몸도 보장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영석으로 드리면 안 될까요?”
“누굴 바보로 아나. 뺏은 물건을 잘만 팔면 곱절은 더 값을 받을 수 있는데 뭐하러 영석 따위를 받는단 말이냐?”
“…….”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보아하니 상대는 꽤 전문적인 강도였다.
“어쩔 수 없죠. 그럼 바로 내어드리겠습니다.”
잠시 뒤.
수염 난 남자는 ‘지금 농담하는 거냐?’라는 표정으로 진양을 노려보았다.
“전부 옥도뿐이잖아?”
“그렇습니다. 최근 대연의 식량 가격이 곱절로 뛰었다고 들어서요. 게다가 옥도는 딱히 가리는 사람도 없으니 이만큼 안전한 물건은 또 없죠.”
진양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말했다.
수염 난 남자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러나 마땅히 할 말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규칙은 규칙이니 물건은 받아야지…….”
진양이 대연까지 오면서 본존의 모습으로 왔을 리는 없다.
이름과 얼굴이 꽤 알려졌기 때문에 본존의 모습으로 다니기엔 난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히 신분을 날조해냈다.
원래는 조용히 옥도를 팔러 온 척 연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시작부터 꼬이고 말았다.
수염 난 남자는 원하는 만큼 옥도를 가져갔다.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말해 주지 않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크게 흥미는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괜히 자리만 차지하는 건 둘째치고 일단 돈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행료 계산이 모두 끝나고 나자 수염 난 남자가 한마디 했다.
“충고 하나 해 주마. 이번 교역이 끝나면 앞으로는 이곳에 오지 마라. 네가 정말 전씨 가문의 사람이라면 대영에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장사를 하는 게 더 좋을 게다. 게다가 웬만하면 도성 근처에는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북동쪽은 황태손이 점령하고 있는 곳이라 그나마 조금 안전할 게다. 그곳으로 가면 큰 도시가 나올 테니 얼른 물건을 털어버리고 떠나도록 해. 최근 들어 분위기가 썩 심상치 않거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태자와 황태손이 박 터지게 싸우고 있다는 얘기 못 들은 겐가? 얼마 전에는 황태손이 저택에서 암살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던데.”
진양은 그저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진양의 모습에 수염 난 남자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금껏 이곳을 지나다니는 상단을 수도 없이 만나왔지만 옥도를 가지고 온 녀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문 수도사들이 먹는 단약 하나만 가져다 팔아도 비주 가득 실린 옥도보다 훨씬 더 많이 벌 텐데 말이다.
볼일을 마친 강도 무리는 곧바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진양은 멀어지는 녀석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꽤 착한 녀석이군. 조언까지 해 주다니 말이야. 강도짓 말고 나처럼 착하게 살면 얼마나 좋아.’
진양은 수염 난 남자가 남기고 간 신물을 바라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뒤쪽에 있는 부하들에게 진양은 털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려두었다.
진양은 조언대로 방향을 북동쪽으로 틀었다.
일단 내부 첩자는 대연 사람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러나 이 정도로 큰 공을 들일 수 있는 여유와 실력을 모두 갖춘 사람.
지금으로선 대연 황실의 망할 황태손 녀석뿐이었다.
처음 그를 만난 건 그가 가희를 새어머니로 삼아 데려가기 위해 대영에 왔을 때다.
진양은 그때부터 녀석이 마음에 안 들었다.
적어도 무능한 태자보단 더 큰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부 분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적당히 미끼를 던져줬다.
다만 미끼를 던졌다고 해서 사람이 바보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됐다.
진양 같았어도 다른 이의 칼을 빌려 진양을 죽일 수만 있다면 당장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수염 난 남자가 준 신물을 가지고 있으니 이어지는 여정은 순조로웠다.
다만 모두들 하나같이 옥도를 잔뜩 가져온 진양을 미친놈 쳐다보듯 쳐다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도시에 도착한 진양은 옥도를 모두 처분하기도 전에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성벽에 붙어있는 현상수배지에 익숙한 얼굴이 있었던 것이었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저건 정의잖아. 저 녀석 한동안 사라졌다 싶었더니 대연에 있었던 거야? 근데 어쩌다 현상수배를 당한 거지?’
장정의가 이런 곳에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비록 순목과 비슷한 구석이 많긴 하지만 그동안 보아온 시간이 있는 만큼 진양은 두 사람을 정확하게 구분해낼 수 있었다.
현상수배지에 그려진 얼굴은 분명 장정의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현상수배지에서 자신의 얼굴을 봤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장정의가 매일 사방을 돌아다니며 남의 무덤을 털 궁리를 하고 다니는 건 맞다.
그동안 그가 거쳐 가던 무덤만 하더라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붙잡힌 적이 없었다.
설령 재수 없게 붙잡힌다고 하더라도 결국 발견되는 건 장정의의 모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한 장정의였다.
도망의 달인이나 다름없는 장정의의 본모습이 현상수배지에 떡하니 내걸려있다는 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진양은 수배지의 내용을 살폈다.
무슨 이유로 수배령이 떨어진 것인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다만 장정의의 목에는 웬만큼 이름난 악당보다도 더 큰 액수가 걸려있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큰 세력에 밉보인 정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최근 붙여진 듯한 수배지에는 이름조차 적혀있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떨어진 현상수배는 조정과 연관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정의가 큰 사고를 친 것 같진 않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런 수배지가 붙은 이유는 딱 두 가지뿐.
첫째, 단순히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다.
높은 확률로 장정의가 진양에게 무언가 전할 말을 남긴 것이다.
어쩌면 ‘사형, 저 여기 있으니 빨리 와서 제가 싼 똥 좀 치워주세요’라는 뜻일 수도 있고, ‘사형, 재미 볼 만한 걸 찾았지만 재수 없게 갇히게 됐습니다. 와서 구해주시면 이익을 절반 떼어드리겠습니다’라는 뜻일 수도 있다.
둘째, 누군가를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일부러 벌인 일일지도 모른다.
겁 많은 장정의가 이 정도로 큰 희생을 감내하면서 함정에 빠뜨릴 만한 사람.
그건 순목이 유일했다.
장정의가 자기 자신을 현상수배지에 올린 건 곧 순목을 현상수배지에 올린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닐 것이다.
이 정도 피해를 감내했으면 순목에게 적어도 수천 배는 돌려줘야 수지가 맞는 법이다.
두 가지 경우를 모두 생각해 보았으나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두 경우 모두 해당될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건 정의가 단순히 사고를 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성안으로 들어온 진양은 일부러 최대한 초짜인 척 행동하며 두 배도 못 되는 가격에 가진 옥도를 전부 처분했다.
사실 진양은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가격에 팔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대연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아무리 못 해도 네 배는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건 시장에서 대량으로 거래될 때의 가격이다.
대형 문파나 세력에 팔아넘길 때는 이보다도 훨씬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지만 다른 기초 수련 자원들의 가격이 오른 것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에 불과하다.
십만 리 넘는 거리를 목숨을 걸고 건너왔다.
이곳까지 오는 데 들인 시간, 비용, 거기에 중간에 만났던 강도 무리에게 주었던 통행료까지.
모든 걸 고려한다면 상당히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수염 난 남자가 다시는 이곳에 장사하러 오지 말라고 했던 이유도 이제 알 것 같았다.
진양이 초짜인 걸 알아보고 말리려고 나섰던 것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애초에 진양은 돈을 벌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