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38
1138화 황실 무덤을 찾아서
의자에 앉은 마과의 옆으로 진양이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실 무덤에 출입할 수 있는 신분 하나면 됩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마과는 단호했다.
“당신이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사실은 금세 사방으로 퍼질 겁니다. 연명하기 위해선 전심을 다해 조식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도 모두가 알게 되겠죠.
이제 당신의 자리를 위협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의 사람을 건드릴 사람도 아무도 없고요.
전 이미 값을 치렀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당신에겐 크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당신이 묘지기 출신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황실 무덤에서 제전(祭典)이 있을 때마다 매번 참석하시더군요. 아마 그곳에서도 꽤 중책을 맡으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원하는 건 신분 딱 하나가 전부입니다. 설령 그런 신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대연에서 큰일을 벌이지 못한다는 건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입 싹 닫고 모른척하시겠다는 겁니까? 제 덕에 이득을 보고도 말입니까?”
마과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만약 이대로 입을 닫아버린다면 정말로 주화입마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상대라면 충분히 그를 그렇게 만들고도 남을 것이다.
한참 침묵하던 그는 품속에서 동으로 만든 영패를 하나 꺼내 진양에게 건넸다.
“당신이 원하던 물건이오. 그걸 가지고 있으면 스스로 길을 안내해 줄 것이오.”
“좋습니다. 그럼 거래 성사입니다.”
영패를 챙긴 진양은 또다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마과는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며 황급히 영약을 꺼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놈이로군.”
단약을 먹고 숨을 고르며 방금 전의 그 마기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아마 그에게 마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가 주화입마에 빠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느끼기에도 정말로 주화입마에 빠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정도로 순수한 마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는 별로 없다.
문득 얼마 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진양이 떠올랐다.
분명 그는 입마한 상태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방금 다녀간 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마과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으로 다사다난한 시기로구나. 허나 지금은 내 앞가림부터 할 때다. 그래도 그가 다녀간 덕분에 내 자리를 지킨 것이기도 하니 때마침 잘 와주었구나.
에라 모르겠다! 난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다.”
마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팔괘도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팔괘도를 수정하며 자신의 미간에 징표 하나를 새겼다.
그러자 방금 전의 기억이 깔끔하게 모두 사라졌다.
모든 것을 마친 뒤, 마과는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몸의 변화를 느낀 그는 밖을 향해 큰소리쳤다.
“내복아! 네 이놈, 네 상관이 주화입마에 빠지기 일보 직전인데 어딘 간 게냐! 지금 당장 떠날 채비를 하거라. 곧바로 요양을 하러 갈 것이다!”
잠시 뒤.
마과는 부하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서재를 떠났다.
그리고 텅 빈 서재 안.
진양의 모습이 소리 없이 의자에 나타났다.
“역시. 저런 재주가 있으니 오랫동안 무사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거겠지.”
진양은 그에게 받았던 영패를 해안에서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습득 능력을 사용한 뒤 조용히 느껴보았다.
진양이 의아해했다.
‘이게 뭐지?’
영패에서 두 개의 방향이 느껴진 것이다.
하나는 북쪽으로 대략 만 리 정도 떨어진 곳을 뚜렷하게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는 희미하게 궁성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나의 신조에 두 개의 황실 무덤이 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당장 해답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대연이 아무리 대영보다 열악하다고 해서 궁성의 방어까지 허술할 리는 없다.
도궁과 궁성에 어느 정도 수준의 방어 진법이 깔려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도궁 이하의 실력으로 강제로 돌파하려고 했다간 반드시 죽게 된다.
몰래 잠입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때문에, 대연 궁성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대연이 비록 대영보다는 못한 곳이긴 해도 충분히 신조라고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춘 곳인 건 사실이다.
신조의 대제도 아무리 못해도 도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궁성 쪽으로 가는 건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듯했다.
영패가 가리키고 있는 또 다른 방향은 아마도 진짜 황실 무덤이 있는 곳이 분명하다.
대연의 황실 무덤은 대영의 황실 무덤과는 조금 다르다.
대영 황실 무덤의 위치는 비밀이 아니다.
과거 영제가 대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시절 실력이 없는 자는 함부로 황실 무덤을 노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설령 실력이 있다고 해도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닌 이상 감히 황실 무덤을 노릴 순 없었다.
하지만 대연 황실 무덤의 구체적인 위치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극소수에 불과했다.
마과가 단순히 부윤의 자리에 앉아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과, 많은 걸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마과가 평범한 도성 부윤이었다면 황실 무덤에 가봤을 리 없다.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가봤다면 그만큼 중책을 맡은 인물이라는 뜻.
어쩌면 마과는 대연 황실 무덤의 수호자일지도 모른다.
그가 대연 황실 무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이미 여러 번 그곳을 방문해 본 적이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길잡이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그가 흔쾌히 신물 영패를 내어줬다는 건 설사 영패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으로 들어가는 건 결코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선 도궁의 기운이 느껴졌었다.
그는 마기가 서려 있는 진양의 일격을 맞고도 중상은 입지 않았고, 기운도 어지러운 가운데 안정됨이 느껴졌었다.
게다가 선혈을 마구 토해내는 완벽한 연기까지.
아마 평소에도 수도 없이 연습을 했던 게 분명했다.
어쨌든 여러 가지를 따져본 끝에 그가 순순히 자신을 황실 무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리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물론 영패를 내어준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부러 진양에게 한 대 얻어맞은 것도 눈앞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계산해 보면 나름 공평한 거래였다.
대연 도성을 빠져나온 진양은 영패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북상했다.
우선 도성에서 만 리 정도 떨어진 곳의 지도를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크게 의심이 갈 만한 곳은 없었다.
이곳은 대연 신조 내에서도 상당히 번화한 곳에 속한 곳으로, 수도사의 비율도 상당히 높았다.
북쪽으로 갈수록 기온은 차가워지고 빙원에 도달하면 만년설로 뒤덮인 땅이 나타났다.
거기서 조금 더 북쪽으로 가면 생명체의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극북빙원이 나타난다.
이곳은 만재현빙(萬載玄冰)과 같은 수많은 자원이 발견되는 곳이다.
품질 좋은 만재현빙은 대영이나 남만으로도 팔려 가곤 했는데, 이것으로 만든 침대는 주화입마를 방지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대연의 수도사들 중에 주화입마에 빠지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설령 주화입마에 빠진다고 해도 다시 회복할 방법이 많은 것도 한몫했다.
이곳에선 도시에서 천여 리만 벗어나도 스산한 기운이 사방에 감돌았다.
비교적 번화하다고 표현하긴 했으나 대영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인적은 거의 드물었고 사방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게 전부였다.
이따금 한 번씩 빛에 휩싸인 채 누군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그것도 매우 드물었다.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크고 작은 도시들이 여럿 보였다.
그러나 육천 리 정도 날아오고 나니 도시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신, 대부분의 땅을 황야가 차지하고 있었고, 그곳엔 수많은 요괴들이 살고 있었다.
요괴를 사냥하는 수도사들의 모습도 점점 적어졌다.
이 역시 대영과는 크게 다른 곳이다.
대영에서는 성지 부근에 있는 요괴나 야수들은 전부 보호종으로 지정해야 할 만큼 씨가 말랐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성지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만 리 정도 북상하고 나니 감각을 통해 느껴지는 방향은 한층 더 뚜렷해졌다.
앞쪽으로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 호수가 수백 리 넘게 펼쳐져 있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호수는 햇빛을 반사해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호수 연안에서 요괴들을 사냥하는 수도사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진양은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호수 안으로 들어갔다.
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강력한 살기가 온몸을 노리며 다가왔다.
곧바로 수신 상태로 차가운 호수와 한 몸이 되자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느껴지던 살기는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희미해졌다.
자세히 느끼지 않는다면 단순히 얼음 호수의 한기로 인해 피부가 따가운 것으로 착각을 할 정도였다.
진양은 연안에서 각자 볼일을 보는 데 여념이 없는 수도사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아무런 살기도 느끼지 못하는 듯 물 안으로 뛰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혈이 활발해지는 모습이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물 안에 녹아있는 살기는 강자일수록 더욱 뚜렷하게 느끼고 약자일수록 거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진양은 수신 상태로 호수 안을 누비며 감각에서 느껴지는 방향을 따라 깊은 곳으로 잠수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호수의 압력은 바다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느껴졌다.
겨우 천여 장 정도 잠수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바다 아래로 일만 장이나 들어온 것처럼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게다가 꽤 깊은 곳까지 들어왔음에도 주위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때, 진양이 가지고 있던 영패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조금 더 앞으로 가며 미묘한 경계선을 지나고 나니 눈앞이 밝아졌다.
귓가에 금속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많은 은빛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대열을 이룬 채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장면이 나타났다.
전장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수신 상태가 조금씩 흐트러지는 게 느껴졌다.
전투의 여파가 어느새 진양의 몸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진양은 동술을 펼쳐 주위를 살폈다.
눈앞에 있던 모든 것들이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그의 몸에 남겨진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은빛으로 뒤덮인 호수 바닥에 또 다른 은빛 호수가 보였다.
은빛 호수와 얼음 호수의 경계선은 명확했다.
얼음 호수에 녹아있는 강한 살기는 전부 은빛호수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진양은 천천히 은빛 호수로 다가갔다.
이어서 호수에 몸이 닿는 순간 짙은 황금빛 기운이 날카롭게 그의 체내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