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39
1139화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은빛 호수에 고여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수은과 같은 액체 상태의 금속이었다.
‘한빙이 아니라 신금(辛金)의 기운이었군.’
영패는 은빛 호수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영패에 불과했기 때문에 진양을 아래로 데려다주진 못했다.
예상대로 영패 하나만 가지고 황실 무덤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할 듯했다.
대연 황실에서도 이곳에 수호자를 보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애초에 도궁 이하의 존재는 이곳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설령 도궁 강자가 온다고 하더라도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환상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환상에 의해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보다 더 강한 사람이 온다고 해도 은빛 호수를 뚫고 안까지 들어가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겉보기에는 단순히 밀도 높은 단단한 액체 금속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삼천인(三千銦)이라는 것으로 대영에서는 극히 드문 것으로 매우 귀하고 보관도 어려운 물건이었다.
때문에, 이것을 다룰 수 있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주로 검환(劍丸)이나 유검(柔劍)을 익히는 검객들이 전부였다.
겉보기엔 수은처럼 보였지만 삼천인은 매우 단단하며, 강함 앞에 더욱 강해지는 성질을 가진 액체 금속이다.
진양은 진신을 드러내며 원자신환을 발동하여 신금의 기운이 몸을 파고드는 것을 막았다.
그러면서 힘껏 발을 굴러 호수의 표면을 밟았다.
은은하게 물결이 일어나던 호수 표면에서 모든 물결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방으로 십여 리 넘게 뻗어있는 호수는 마치 은색 거울이 된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진양은 몸을 굽혀 조심스럽게 호수의 표면을 만졌다.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강제로 힘을 사용하여 안으로 깊게 파고들려는 순간 강한 반발력이 느껴졌다.
힘을 쓰지 않는다면 은빛 호수를 뚫고 들어갈 방법이 없었고, 그렇다고 힘을 쓰면 호수는 더욱 단단해진다.
이런 식으로 외부인의 침입을 완전히 막아내는 것이었다.
여기에, 은빛 호수 위쪽으로 중수(重水)가 깔려있어 은빛 호수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영력의 파동조차 없었다.
이로써 가장 단순하면서도 극강의 위력을 자랑하는 방어진이 형성된 것이다.
바깥에 이 정도 수단이 깔려있다면 안쪽엔 크게 위험한 건 없을 것이다.
진양의 머리에서부터 원자신환이 만들어져 팔목으로 떨어졌다.
진양은 손을 뻗어 호수 표면을 만졌다.
손목을 휘감고 있던 원자신환이 빠르게 돌아가며 원자의 힘으로 인해 역장이 만들어졌고 진양은 이것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손을 뻗어 가볍게 잡으니 은색 액체가 구형의 모습으로 손바닥에 잡혔다.
진양은 그것을 연화시킨 뒤 곧바로 해안 한쪽 구석에 던져넣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진양은 원자신환의 힘을 점점 넓히며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원자신환이 빠르게 돌아가며 그가 서 있는 곳이 움푹 파이며 공간이 드러났다.
진양은 천천히 은빛 호수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현재 십 리 넘게 펼쳐져 있는 은빛 호수는 전부 진귀한 삼천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흑백 세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원래의 진양이 한마디 했다.
“잘 기록해 둬.”
냉정한 진양은 곧바로 소책자를 꺼내 기록했다.
‘진귀한 자원 삼천인이 대량으로 묻혀있는 곳. 이곳에 들어오려면 마과의 영패 하나가 필요함.’
원래의 진양이 한마디 했다.
“웬만하면 마과의 모습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걸. 만일을 대비해서 말이야.”
냉정한 진양은 군말 없이 원래의 진양이 시키는 대로 외모를 바꿨다.
외모부터 특유의 기운까지 마과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이었다.
호수 안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을 때.
몸 주위에서 느껴지던 강한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거대한 지하 공간 위로는 은빛 호수가 둥둥 떠 있었다.
진양은 잠시 고민 끝에 ‘대량’이라고 적었던 걸 ‘극대량’으로 바꿔썼다.
대황에서 나는 삼천인은 대부분 대연 북쪽 지역에서 생산된다.
어쩌면 대연 북쪽에서 생산되는 삼천인의 대부분이 이곳에 쏟아 부어진 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오늘날 대황에 삼천인 부족 현상이 발생한 듯했다.
흑백 세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진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검종 종파를 하나 세우고도 만 년은 걱정 없이 먹고 살 정도잖아. 대연 대제도 참으로 사치스러운 녀석이군. 이 좋은 재료를 이런 곳에 낭비하고 있다니.”
진양이 나타나며 지하 공간 네 방향에서 빛이 피어올랐다.
이어서 밝게 빛나는 기둥이 빛이 피어오른 곳에서 솟구쳐올랐다.
기둥에 새겨져 있던 조각들은 살아 움직이며 갑옷을 입은 옹종갑사(翁仲甲士)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들은 붉게 물든 눈으로 죽일 듯 진양을 노려보았다.
꽤 강력한 기운을 뿜고 있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옹종갑사 중에는 으뜸이라고 볼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진양의 실력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이 정도면 일 다경 안에 네 명의 옹종갑사 모두 처치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눈을 뜬 옹종갑사들은 갑자기 기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옹종갑사들의 기운이 순식간에 법상 최고봉에서 법신으로 증가했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이들의 경지는 조금씩 상승했다.
그렇게 총 일곱 걸음을 걸었을 때 이들의 기운은 법신 최고봉에 이르렀다.
붉은 구리색 피부엔 검은 균열이 일어났다.
희미하던 얼굴은 점점 더 뚜렷해지기 시작했고 한눈에 봐도 위험한 기운은 수직으로 상승했다.
진양이 반응하려는 순간 가슴속에서 쿵쿵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래 진양이 보낸 신호였다.
“뭐 하는 거야! 녀석들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잠시 비켜줘. 만약 놈들과 싸웠다간 끝장이라고!”
냉정한 진양은 곧바로 육신에 대한 제어권을 원래의 진양에게 넘겼다.
제어권을 받은 원래의 진양은 즉시 영패를 꺼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예를 갖추었다.
“소인 마관,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수직으로 상승하던 옹종갑사의 기운이 돌연 멈춰 섰다.
기둥 안으로 들어가던 옹종갑사들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소인 공무로 이곳까지 왔으니 편의를 요청드리나이다.”
그러나 옹종갑사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진양이 크게 착각을 한 듯했다.
황실 무덤에 온 모든 이들이 이곳에 들어갔다는 보장은 없었다.
어쩌면 이들은 이곳에 전혀 들어가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마과도 아마 이곳에 들어갈 사람들을 문 앞까지만 안내한 것이 전부일 것이다.
진양은 잠깐의 뜸을 들인 뒤 한마디를 보탰다.
“태손 전하께선 태자 전하의 명성을 빛내기 위해 밤낮없이 수고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때가 되었사옵니다.
소인은 태손 전하의 명을 받고 이곳까지 왔으나…… 정확한 사유는 밝힐 수가 없사옵니다. 부디 태자 전하의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진양은 손을 뻗어 위쪽을 가리켰다.
그 말에 옹종갑사들은 앞으로 뻗었던 발걸음을 다시 거둔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진양이 천천히 뒤로 물러나 보았으나 옹종갑사들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양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진양이 제때 나섰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만약 여기서 싸움이 벌어졌다면 모든 일을 망쳤을 것이다.
이곳은 대연 신조의 힘이 가장 강하게 미치는 두 곳 중 한 곳이다.
눈앞에 있는 옹종갑사들은 본연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지만, 신조의 힘을 빌려 쓴다면 생전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조금 늙긴 했지만, 얼굴을 보면 황태손을 그대로 빼다 박은 것처럼 생겼다.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옹종갑사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대연의 선태자(先太子)였던 것이다.
선태자를 옹종갑사로 연화시켜 무덤을 지키게 하더니.
그래서 신조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대연 신조 국운의 허락 없이는 결코 불가능하다.
선태자를 제외한 나머지 세 옹종갑사 중 두 사람은 노인이었고 한 사람은 젊은이였다.
선태자가 죽은 후 황실 무덤에 묻힐 만한 자격을 가진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은 선태자보다 훨씬 더 전에 죽은 자들이 분명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어쩌면 높은 확률로 대연의 역대 대제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리 대제라도 옹종갑사로 다시 일어났다고 해서 생전의 힘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못해도 도군 이상의 힘은 무리 없이 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괴물들과의 싸움에서 승산을 바랄 순 없다.
잘못했다간 멍하게 서 있는 사이 이미 상대에게 목이 날아가 있을 수도 있다.
애초에 진양은 이곳에 싸우러 들어온 게 아니다.
좋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싸울 필요 뭐가 있겠는가?
그사이 옹종갑사들의 기운은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진양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연의 전통인지, 아니면 현임 대제가 독한 인간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황실 무덤에 묻힐 자격을 가진 황족들은 죽어서 모두 옹종갑사가 되어 황실 무덤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다.
이것이 대연만의 독특한 전통이라고 한다면 썩 나쁜 건 아니었다.
이들만큼 강력한 힘을 뿜어낼 수 있는 옹종갑사는 이 세상에 몇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대제가 저지른 일이라면 이보다 더 악독한 짓은 없었다.
선태자의 죽음만 해도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성을 잃은 옹종갑사들이 다른 말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다가 황태손이라는 한마디에 멈춰 섰을 리는 없다.
대연 황실 내에 이토록 자애로운 부친과 효심 깊은 아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양쪽 모두에 대비해야 했다.
진양은 선태자로 만들어진 옹종갑사를 한 번 바라본 뒤, 이어서 아직 제대로 깨어나지 않은 세 명의 옹종갑사를 바라보며 예를 갖추었다.
“황족께서 친히 황족 무덤을 수호하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경외스럽습니다. 다만 소신은 대연의 미래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것이니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뒤를 돌아서니 석벽에 석문 하나가 달려 있는 게 보였다.
새까만 석문에서는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석문에는 새하얀 두꺼비가 앉아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이 두꺼비는 대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엄동설한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겨울 두꺼비다.
대연 북부 빙원은 일 년 중 오직 삼 개월 동안만 생명체들이 활동을 할 수 있는 날씨가 찾아온다.
겨울 두꺼비는 일 년 중 아홉 달 동안 겨울잠을 자며 따뜻한 날씨가 찾아온 삼 개월 동안 먹이를 잡아먹고 살을 불리고 번식을 한다.
그리고 삼 개월이 모두 지나고 다시 엄동설한이 닥치면 깊은 겨울잠에 빠진다.
이런 식으로 아무리 평범한 겨울 두꺼비라도 족히 백팔십 년 이상을 살아간다고 한다.
대연 북부 빙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범인들에게 겨울 두꺼비는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길을 잃거나 먹을 것을 구하지 못했을 때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겨울 두꺼비를 파내면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 두꺼비에게 얻은 재료로 효과도 상당하고 가격까지 저렴한 동상 치료 영약도 만들 수 있다.
오랜 시간 대연에 이어진 전설에 따르면 대연 신조가 이제 막 세워졌을 때 북부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었던 건 전부 겨울 두꺼비의 덕이 크다고 한다.
한 나라의 국운의 화신이 용도 아니고 두꺼비라니.
다소 의외인 듯했지만, 그 연유를 살펴보면 크게 의외일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