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98
1198화 쓰고 싶으면 직접 써라!
서심고 사건의 여정을 모두 마친 진양은 다시 물의 장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왠지 모를 위화감과 함께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양은 곧장 사자결을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놓치고 있던 모든 부분을 끌어모아 하나로 만들었다.
그때, 그가 앉아있던 책 위로 새로운 붉은 글씨들이 나타났다.
‘진양은 마침내 이야기를 간파하며 자신이 이야기 속에 들어와 그곳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는 모든 힘을 모아 사령으로서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일격을 발휘했다…….’
검은 칼날이 물의 장막을 갈랐고, 남자의 몸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가 앉아있던 책도 연기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진양이 타고 있던 배는 금세 소설가가 있던 곳에 도착했다.
그는 소설가가 있던 자리를 박차고 도약하며 물의 장막을 뛰어넘었다.
* * *
대머리는 눈을 크게 뜬 채 책에 나타나는 글을 바라보았다.
그는 진양이 이야기 속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 일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였던 것.
실제로 진양은 배에 탄 채 계속해서 물의 장막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그의 속도는 다른 사령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진양이 탄 배가 책 앞에 도착했을 때.
진양은 멍한 얼굴로 도약했다.
마치 물의 장막을 뛰어넘을 것 같은 기세로 책을 밟고 도약한 것.
그의 몸은 점점 작아지며 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머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얼굴엔 이내 숨길 수 없는 실망감이 번졌다.
충분히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특별한 사령이 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진양이라는 녀석의 이야기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이게 전부였다.
생전에는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일격에는 힘없이 무너졌다.
다른 사령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주인공이 될 자격을 갖춘 사령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만 이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 될 게 뻔했다.
어쩌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이미 많은 걸 잊었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기억나질 않았다.
다만, 자신이 소설가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고, 한때는 인간이었다는 사실만 기억했다.
소설가는 멍한 얼굴로 계속해서 기다렸다.
그러나 진양이 멍한 얼굴로 책 속으로 뛰어들 때, 어딘가 다른 게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 *
다시 정신을 차린 진양은 이번에는 청림성에 와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게 앞에 의자를 두고 반쯤 누워 햇볕을 쬐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한 자루의 흑검이 한계를 베어버리기라도 한 듯 머릿속에 있던 몽경 광구들이 터져나갔다.
동시에, 모든 기억이 다시 돌아왔다.
한참 뒤.
진양은 고개를 들며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자세를 바꾼 채 눈을 감고 계속해서 햇볕을 쬐었다.
“죽고 나서도 다시 햇볕을 쬘 수 있게 될 줄이야. 느낌도 꽤 그럴싸하잖아.
아니지. 그럴싸한 게 아니라 이건 현실이지.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잖아.”
진양은 싸구려 영과를 베어 물며 옆집 가게주인과 인사를 나눴고, 눈앞에 있는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애초에 소설가라는 녀석이 글을 쓰는 능력을 가진 걸 본 순간부터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모든 것, 겪고 있는 모든 것, 심지어 이야기를 간파한 모든 것까지 전부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건 이미 깨달은 뒤였다.
특히, 마지막 일격은 언급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조잡했다.
앞서 있었던 이야기는 전부 진양의 기억을 핵심으로 삼고 있었다.
이는 곧 소설가에 의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뜻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전부 소설가가 덧붙인 내용들이었다.
다만 그가 덧붙인 결말은 진양의 성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결말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성불시키지도 않은 건 그렇다고 치지만, 쓸데없는 소리까지 늘어놓을 리는 없다.
솔직히 진양은 물의 장막을 뛰어넘는다고 해서 무언가 큰 기대를 품을 만한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기껏해야 완전한 죽음을 맞이하며 소멸되거나, 혹은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전부다.
그것도 아니라면 진정한 사후 세계에 도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먼저 그곳에 간 친구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시 부활할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후 세계가 마음에 들어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즐겁게 그곳에서의 삶을 즐겨도 된다.
더 이상 영원히 자아를 잃지 않게 된다면 어디에 있든 큰 상관은 없다.
삶과 죽음 역시 하나의 상태에 불과하다.
자기 자신을 성불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런 모습이 되었을 때부터 진양은 이미 해탈한 상태였다.
* * *
한참 실망감에 빠져있던 소설가는 마지막으로 다시 새롭게 나타난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일전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기 위함이었다.
그는 진양의 능력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아마 이야기의 첫 부분이라면 나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나타난 글을 읽던 그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지기 시작했다.
‘진양은 반나절 정도 햇볕을 쬐다가 방으로 돌아가 낮잠을 잤다. 그리고 또다시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었고, 공법을 연마하다가 다시 햇볕을…….’
글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진양은 반나절 정도 햇볕을 쬐다가 공법을 연마했고, 그다음엔 차를 한 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진양은 공법을 연마한 뒤 식사를 했고, 식사를 마치곤 계속해서 햇볕을 쬐었다.’
‘진양은…….’
글은 마치 흐르는 물, 아니, 폭포처럼 마구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진양의 삶은 그야말로 반복되는 일상 그 자체였다.
햇볕을 쬐고, 공법을 연마하고,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낮잠을 자고…….
끊임없이 같은 일상만이 반복되었다.
소설가의 머리 위로 하얀 김이 올라왔다.
그는 금방이라도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부라렸고, 글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게 도대체…….”
이마엔 새파랗게 힘줄이 일어났고,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잠깐 화를 내는 사이 책의 내용은 어느덧 이십 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책은 계속해서 똑같이 찍어낸 듯한 일상을 뱉어내고 있었다.
소설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손을 뻗으니 커다란 붓이 하나 잡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흘러나온 글씨 맨 뒤에 이렇게 적었다.
‘진양이 죽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새로운 글씨들이 나타났다.
‘죽은 진양은 검은 바다에 빠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소설가를 만나 이야기 속에 빠지게 된다.’
‘진양은 햇볕을 쬐고, 공법을 연마하고, 낮잠을 즐겼다.’
‘진양은…….’
소설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 네 녀석이 이겼다!”
그는 붓을 부러뜨린 뒤 거칠게 책 위로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분에 풀리지 않았는지 광기 어린 모습으로 책장을 마주 찢어 갈겼다.
진양에 관련된 부분이라면 조금도 남김없이 전부 찢어버렸다.
그리고 찢은 조각들을 전부 진양의 쪽배로 집어 던졌다.
찢어진 종이에서 ‘진양’이라는 글씨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글씨는 점점 진양의 형상으로 변했다.
눈을 뜬 진양은 다시 죽음의 세계로 돌아왔다.
더 이상 따사로운 햇볕을 뿜어내는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대머리 녀석을 본 진양은 숨김없이 실망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런. 이번에는 이야기 속이 아니라 현실인 모양이군.’
“제 인생을 몰래 훔쳐보는 건 아무렴 상관없습니다. 다만 잘살고 있는 사람을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끌어내는 법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러지 말고 다시 저를 이야기 속에 집어 넣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머리끝까지 화가 난 소설가는 부러진 붓을 진양에게 던졌다.
“그렇게 쓰고 싶으면 네놈이 직접 쓰거라! 자, 어서 ‘나는 죽었다’라고 써!”
그는 자신의 쓴 글이 엉망이 되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애써 써 내린 글이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는 수십 년간의 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진양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사양했다.
“어휴, 무슨 말을 그렇게 험하게 하십니까? 비록 죽어서 만나긴 했지만 서로 다 이성이 살아있는 상태잖아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서로 험한 말을 주고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도 부러진 붓을 집어 품속에 넣고 연화시켰다.
소설가는 그런 진양을 빤히 쳐다보았다.
비로소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진양은 오히려 이번 일로 이성이 한층 더 깨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르며 사람 자체가 더 밝아진 느낌이랄까.
“그럼 내 붓은 왜 가져가는 것이냐?”
“나중에 시간 날 때 고쳐보려고요.”
“됐으니까 내놔. 내가 알아서 고칠 거야.”
“글쎄요. 아마 안 될 텐데요. 어쨌든 선물 감사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줬다가 다시 뺏는 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무엇보다 이 붓은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다.
이런 기념성 짙은 물건을 그냥 놔둘 순 없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눈을 부릅뜬 채 서로를 쳐다보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자 소설가는 지쳤는지 한숨을 푹 쉬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진양은 그런 그의 모습은 못 본 척하며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여행기 하나를 꺼내 소설가에게 건넸다.
“그만 삐지시고 이거나 읽어봐요. 꽤 재미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한다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어차피 죽은 마당에 그런 것까지 신경 써서 뭐 하겠습니까?
솔직히 이런 식으로 써가지곤 턱도 없을 겁니다. 아니, 수백 년씩 갇혀있게 된다면 오히려 저야 환영이죠.”
소설가는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이야기 안에 있는 일들은 현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안에서 보내는 날들은 전부 진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죽은 사람에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이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니…….
물론 화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생겼는데 그냥 넘길 순 없었다.
이곳은 책은커녕 대화를 나눌 사람조차도 없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이성을 가진 이와 대화를 나눠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였다.
책을 받아든 소설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물었다.
“이게 뭐냐? 이상한 글자가 적혀있는데.”
아무래도 너무 오래전에 죽어서 지금 시대에 사용하는 문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진양은 당시 사용했던 문자와 지금 사용하는 문자가 모두 적혀있는 사전을 하나 만들어 소설가에게 건넸다.
소설가는 금세 진양이 건넨 책에 푹 빠졌다.
잠시 지켜보던 진양은 영과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곤 하나를 소설가에게 던져주며 물었다.
“왜 저를 죽이지 않으신 거죠? 이성이 이야기 속에 빠졌다고 해도 몸은 바깥에 있었잖아요. 그렇다면 충분히 절 죽이실 수 있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