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진양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희가 그냥 떠난다고 해도 당신이 우릴 막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나귀가 먼저 잘못했으니 당신에게 보상해 주는 것이 인간으로서 도리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하죠. 당신은 토(土)의 성질을 가지고 태어난 바위 요괴입니다. 양화(陽火)와는 상성이 좋으나 음금(陰金)과는 상성이 좋지 않죠. 한 가지 법문을 전수해드리겠습니다. 본체에 있는 오행의 기운을 아주 오랜 시간 유지 시킬 수 있는 법문이죠. 당신이 잃어버린 보석에 비하면 훨씬 더 이득일 겁니다. 어떻습니까?”
바위 요괴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본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전수해달라.”
“아쉽지만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네요. 대신 법문을 익힐 수 있는 보물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더 안심되지 않으시겠어요?”
진양은 미소를 지으며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 근데 혹시 인간의 문자는 알아보실 수 있나요?”
바위 요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양은 계속해서 종이에 무언가를 적으며 생각했다.
‘어딜 개수작을 부려! 날 본체 안으로 들이겠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순 없지!’
정신이 멀쩡하게 깨어있는 바위 요괴의 몸 안으로 들어간다는 건 보통 대담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다. 재수 없으면 뼈도 못 추리고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문을 다 적은 진양은 종이를 바위 요괴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약간의 을목정기 결정과 일원중수 몇 방울, 현철 광석 한 조각, 그리고 오동염 속에서 숯가루와 함께 긁어낸 화염 조금을 전부 바위 요괴의 배에 달린 거대한 입에 넣어주었다.
“전부 법문 수련에 쓰이는 물건들입니다. 오행 순환에 도움이 될 테니 가서 직접 적힌 대로 해 보시죠. 나중에 제대로 익히고 나면 이것들이 당신이 말한 그 보석에 비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졌는지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제가 얼마나 합리적인 사람인지도 알게 될 거고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당신의 본체를 파헤치고 뒤집어놓았을 겁니다.”
진양의 말이 끝났으나 바위 요괴는 여전히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멍하게 서 있었다.
그러자 진양이 말했다.
“계산 다 끝났는데 멍하게 서서 뭐해요? 인간들이 바위 요괴를 찾으려고 얼마나 기를 쓰는지 몰라요? 못 본 척해 줬으면 얼른 사라져야죠.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바위 요괴는 진양이 건넨 종이를 말없이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바위 요괴는 돌아서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나귀야, 네가 싼 똥을 치우려고 이 몸이 얼마나 비싼 값을 치뤘는지 너는 모를 거다. 앞으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래도 나랑 있으면 적어도 굶는 일을 없을 거다. 어쨌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하자고.”
진양은 팔로 나귀의 머리를 감싸고 거칠게 쓰다듬으며 본인을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상기시켜주었다.
“생각해 봐. 놈들이 아무리 돌대가리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이렇게 쉽게 돌아설 리 있겠어?”
나귀는 진양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바보 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진양의 손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한편 고양이는 여전히 느긋하게 앉아 고기를 뜯고 있었다. 그러다 눈을 내리깔며 한심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진양을 힐끔 쳐다보았다.
진양은 못 본 척하며 고개를 돌리고 계속해서 나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실 진양이 바위 요괴에게 준 물건들은 그다지 귀한 것들은 아니다. 가장 귀한 물건이라고 해봤자 을목정기 결정이 전부일 것이다.
현철 광석은 다소 흔하긴 해도 화맥(火脈)을 품고 있으니 바위 요괴와 상성 좋은 재료로 쓰기엔 충분할 것이다.
일원중수는 얻는데 다소 시간이 들긴 하지만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으니 그렇게 귀한 재료는 아니다.
오동염에서 긁어낸 숯가루도 기껏해야 몇 개월 불타오르고 나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런 재료들로 오행의 조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리 없다.
사실 어느 정도는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기껏해야 바위 요괴 본체의 몸을 약간 다스리는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힘을 축적하는 속도가 약간은 증가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건 무리다.
바위 요괴는 확실히 인간의 눈에 띄는 걸 두려워했다. 무엇보다 바위 요괴가 인간의 문자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자신에게 알맞은 법문을 배우는 건 더욱 어려웠다.
지금까지의 관례를 보면 대체로 인간 수도사들은 다른 종족들에게 법문을 전수해 주지 않는 편이다. 좋은 법문은 고사하고 아무리 기초적인 법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와 다른 종족들은 언제 내 등에 칼을 꽂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괜히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진양은 이런 사실을 모를 뿐만 아니라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신경 쓸 사람도 아니다.
나귀는 진양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그저 바보 같은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나귀의 머리를 쓰다듬던 진양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장 나귀가 도망가지 않는 건 십중팔구 고양이에게 잔뜩 쫄았기 때문이다.
이젠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사인데 계속해서 공포심으로 붙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이나마 진실된 마음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물론 원한다고 해서 한순간에 이러한 마음을 심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때론 채찍과 당근을 모두 써야 하는 법이다.
‘채찍은 이미 한참 때렸으니까 이제 남은 건 당근인데……’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나귀야, 사실 난 대력우마신(大力牛魔身)이라는 요족들이 수련하는 법문에 대해 알고 있거든. 도경 법전보다 조금 못한 수준의 법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강한 요족에게 배워온 법문이지.
얼마나 강한 요족이냐면 무려 수만 장이나 되는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고 가벼운 발걸음 한 번으로 바위산을 박살 내고 한입에 강줄기를 모두 마셔버릴 정도지. 심지어 삼대 성종의 종주들보다 훨씬 더 위에 있는 존재라 종주들도 감히 찍소리 못할 정도다 이 말씀이야.
솔직히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잖아. 그래서 네게 이 법문을 전수해 주려 하니까 머리를 가까이해 봐.”
진양은 나귀의 머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대력우마신의 첫 세 단계를 나귀에게 전수해 주었다.
전수가 끝나자 진양은 가볍게 나귀의 머리를 두드렸다.
“열심히 수련해야 돼. 날 실망시키진 말아 달라고. 이건 엄청난 능력자에게 배워온 신공이거든. 제대로 연마하고 나면 어르신도 함부로 널 죽이진 못할 거야.”
나귀는 기쁜 듯 이곳저곳을 빠르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바위에 앉아 계속해서 느긋하게 고기를 뜯고 있던 고양이가 마치 인간 말종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진양을 째려보기 시작했다.
“왜 그런 눈빛으로 보시는 겁니까? 약간의 양념을 치긴 했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요.”
진양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한마디 했으나 고양이는 여전히 한심하다는 듯 진양을 쳐다보았다.
진양은 아예 고개를 돌리며 고양이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대력우마신은 대우의 몸에 습득 능력을 발동하여 얻은 법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감히 수련해 볼 엄두가 나질 않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종족의 공법에 대한 이해도 없는데 괜히 겁 없이 수련했다가 머리에 쇠뿔이라도 자라면 그땐 수습도 불가능하다.
백리 칠에게 전수받은 삼신보술(三身寶術)도 아직 수련해 보지 않았다. 어찌나 괴상한 법문인지 배우는 사람마다 좋지 못한 꼴을 보였기 떄문이다.
어쨌든 마침 좋은 실험 대상이 생기자 진양은 지체 없이 나귀에게 법문을 전수해 주었다.
어차피 소든 당나귀든 둘 다 말발굽이 있는 짐승 아니던가?
어차피 못생겼는데 뿔 하나 더 자란다고 크게 달라질 게 있겠는가?
오히려 새로운 공격 수단도 생기고 좋은 것 아니겠는가!
‘일단 세 단계 정도면 전수해 주고 나머지는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자.’
진양은 축기 시절에 복용하던 단약을 전부 꺼내 나귀에게 먹였다. 한시라도 빨리 법문을 익히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이틀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귀의 실력이 쑥쑥 성장했다. 한 번에 요괴 병사 정도의 수준에서 거의 요괴 장군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귀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힘을 축적해 두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의 상태로 보아선 요괴 장군의 절정까지 도달하고 나서야 멈출 듯했다.
진양은 나귀의 머리를 유심히 살폈으나 아쉽게도 뿔은 자라지 않기에 다소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러다 순간 예전에 구석에 버려두었던 한 쌍의 청각우(青角牛)의 뿔이 떠올랐다.
청각우의 뿔은 훌륭한 재료이자 청각우의 허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법보다. 만약 완전하게 연화시켜 둘을 하나로 만든다면 청각우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데, 법보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허공답보 능력을 갖춘 훌륭한 탈것으로 쓸 수도 있다.
나귀의 깡마른 몸에서는 사나운 기운과 함께 하늘을 찌를 듯한 요괴의 기운이 솟구치고 있었다.
진양은 흐뭇한 눈으로 나귀를 바라보며 쇠뿔을 꺼내 나귀의 머리에 대보았다.
“좋았어. 나귀야, 네게 이 법보를 선물로 주도록 하마. 완전히 연화시키고 나면 앞으로 날 수도 있을 거야.”
진양은 쇠뿔 내에 새겨진 각인을 지운 뒤 나귀에게 건넸다.
나귀는 어찌나 기뻤는지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던 환한 미소와 함께 혀를 쭉 내밀어 진양이 건네는 쇠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꿀꺽 삼키며 연화시켰다.
요족은 그야말로 실용파였다. 실용적이기만 했다면 외관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존재기 때문이었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나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롭게 얻은 탈것에 상당히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렇지! 부하를 부릴 거면 이런 쓸모 있는 놈을 부려야지.’
닭과 고양이는 생각만 하면 한숨이 먼저 나왔다.
심지어 고양이는 진양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함께 다니게 다닌 경우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감히 건드릴 수가 없었기에 강제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귀는 맷집도 좋고, 딱히 가리는 것도 없고, 무엇보다 눈치도 꽤 있었다.
게다가 못생긴 얼굴로 히죽거리고 있는 나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분이 풀리곤 했다.
* * *
일주일 후.
굵고 커다란 청색 쇠뿔을 단 깡마른 나귀는 마치 땅을 밟는 것처럼 푸른 안개 사이를 내달리고 있었다.
진양은 나귀의 등에 타고 있었고, 고양이는 늘 그렇듯 진양의 어깨에 축 늘어진 채 매달려있었다.
진양의 등 뒤로 머리를 향한 채 매달린 고양이는 어딘가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양이 고양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어르신, 그래도 보시다 보면 익숙해질 겁니다. 이런 나귀의 모습도 썩 나쁘진 않은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