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76
1376화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영감은 소언(素言)이라는 이름이 적힌 위패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과거 대신관의 이름이 아니다.
바로 현임 영감 대신관의 이름이었다.
그는 대신관 영감으로 책봉된 순간부터 이곳에 자신의 위패를 세워놨다.
목숨을 바쳐 태호 천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물론 태호는 그런 명분 따위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영감 본인도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건 단순히 아랫사람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위패를 만졌다.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공포가 남아있었다.
위패에는 작은 균열이 일어나있었다.
파괴의 힘이 사방을 덮칠 때 위패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영감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대략적으로 위패와 같은 위치에 조금씩 회복 중인 균열이 남아있었다.
심각하게 파괴된 위패의 뒷면은 시간이 흐르며 천천히 회복되었다.
그러나 균열의 회복은 상당히 더뎠다.
그가 가진 권력 외의 신기, 그가 죽지 않는 비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위패가 바로 그것이었다.
모두들 영감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추측해내도 어째서 그가 죽지 않는지는 추측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위패는 단순히 모든 공격을 막아주는 위해가 아니다.
물론 어딘가에는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신의 권력으로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건 결코 불가능하다.
위패의 권력을 손에 쥐며 신이 된 자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이미 영감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쥐고 있는 신기, 그것은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신기였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무서운 저주 신기다.
위패 정면에 사람의 이름을 쓰고 그 뒤에 봉호나 별호, 신명(神名) 등 자세한 내용을 적은 뒤 위패를 파괴하면, 이곳에 적힌 사람의 신분이나 경지에 상관없이 위패처럼 파괴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위패를 꺾으면 허리가 꺾여 죽게 되고, 위패를 뚫으면 온몸에 구멍이 뚫려 죽게 되는 것이다.
영감은 사방을 수소문하며 조사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위패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 위패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물건인지도 모른다.
다만 매번 누군가에게 사용되고 난 뒤에는 다시 ‘공백 위패’가 되어 자신을 사용해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아마 위패로 인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도 그다지 유명한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위패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어야 정상이다.
영감은 위패를 손에 넣자마자 자신이 가진 영감 권력으로 저주 위패에 대한 모든 것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구가 거듭될수록 유용한 결론들을 얻게 되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물건도 겉보기엔 극단적인 물건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의 일자결이 그렇다.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할 순 있지만 일자결에 입문한 인간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다.
설령 일자결에 입문한다고 해도 감정에 큰 손상을 입게 되며, 신통력을 시전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외에 강력한 힘을 가진 법보들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순간에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저주 위패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천지의 법칙을 거스를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품고 있다는 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즉, 누구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역으로 상응한 대가만 치른다면 불사의 능력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영감은 긴 연구 끝에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대담하게 자신의 결론을 행동으로 옮겼다.
저주 위패의 앞뒤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은 것이다.
그의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저주 위패는 그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버렸다.
그 어떠한 공격도 저주 위패만 멀쩡하다면 피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반대로 위패가 박살 난다면 그도 힘없이 박살 나게 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은 대신 똑같이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
어쨌든 저주 위패 덕분에 그는 어떠한 공격에도 피해를 받지 않는 몸이 되었다.
심지어 주심창에 정통으로 맞고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정도였다.
이 모든 건 그가 온갖 노력을 들여 연구하고, 또 대담하게 모험을 감행한 덕분에 손에 쥐게 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위패가 파괴되면 자신도 죽게 된다는 점은 상당히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만약 예전 같았으면 이러한 약점 따위는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영감궁 내에 있는 위패가 파괴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천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태호 천제가 직접 나서서 위패를 파괴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위패를 건드릴 수 없다.
물론 태호가 작정하고 그를 죽일 생각이라면 애초에 그런 수고를 할 필요도 없겠지만.
어쨌든 치명적인 약점이 생기긴 했으나 사실상 큰 의미는 없었다.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방금 겪었던 일로 그는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감히 영감궁 안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무시무시한 파괴의 힘 때문에 하마터면 저주 위패가 완전히 박살 날 뻔했다.
영감은 마치 목에 칼이 들어온 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
이대로 이곳에 위패를 보관하는 건 위험할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게 위패를 가지고 다닐 순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은 떠오르지 않았다.
영감은 영감 권력을 이용하여 온 천하를 감시하는 대신관이다.
그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많은 걸 알고 있었고, 또 많은 걸 보았다.
때문에,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오직 자신만 믿게 된 것이다.
이곳에 머물며 직접 위패를 지키는 것 외에 다른 안전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거나 방심을 했다간 누군가 또다시 이곳을 습격하며 저주 위패를 박살 낼 것만 같았다.
설사 상대가 저주 위패의 존재와 효과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말이다.
이렇게 영감은 마치 벼랑 끝에 손톱만 걸치고 매달려있는 듯한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 * *
조용히 불가계 안으로 숨어 들어간 진양은 구름을 따라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멀리 보이는 천궁의 입구인 천문을 살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장정의가 언제쯤 밖으로 나올지도 살펴보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천궁으로 들어가 자신이 뿌린 씨앗이 어떤 결과를 거두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물론 겨우 이 정도로 영감이 죽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주심창조차 아무렇지 않게 버텨낸 그가 겨우 훼멸구 따위에 골로 가버릴 리는 없으니까.
다만 결과에 상관없이 분명 유용한 정보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모든 피해에 면역을 가진 영감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는 눈이 멀었다.
하지만 이건 영감 권력 때문이지 신기를 사용한 대가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도록 진화된 존재다.
어쨌든 그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 건 분명 정체를 알 수 없는 신기 때문이 분명하다.
만약 진양의 추측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가 치러야 할 무시무시한 대가는 반드시 신기와 관련된 대가일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매우 치명적인 대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진양은 그가 사용하는 신기에 대해 아직 알아낸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장정의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진양도 더 이상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진양은 천천히 성은의 범위를 넓히며 안개에 가려진 비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영감을 괴롭히기 위해서였다.
심심할 때마다 그를 괴롭혀온 탓인지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비밀을 파헤치려는 순간 은연중에 영감과 진양을 연결시켜 주는 다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영감의 반응은 평소와는 달랐다.
차분하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평소와는 달리 울분으로 가득 찬 게 느껴진 것이다.
진양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주심창을 던졌다.
주심창이 지나가며 두 사람을 연결시키고 있던 다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영감은 주심창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어서 주심창이 사라지는 걸 보고 있으니 또다시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분노에 눈이 멀어 하마터면 주심 성관을 잊을 뻔했던 것이다.
지금 그가 살아있는 건 어떻게 보면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군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영감에 대해 상당히 많은 걸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이런 그가 만약 주심 성관과 손을 잡고 엄청난 파괴의 힘으로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면?
그건 곧 재앙의 시작이었다.
파괴의 힘을 피하는 건 쉽지만 제압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당시 파괴의 힘이 조금만 더 넓게 퍼지거나 조금만 더 그가 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더라면, 저주 위패는 허무하게 박살 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파괴의 힘을 사용하여 자신을 공격한 자가 주심 성관과 전혀 모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그가 주심 성관이 무슨 방법으로 자신과 자꾸만 연결된 다리를 만드는 것인지 모르고 있다는 점도 큰 다행으로 여겼다.
* * *
한편, 진양은 자신의 ‘선물’ 때문에 영감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랜 괴롭힘 때문인지 영감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작은 선물을 하나 날려 어떤 반응인지 살펴보려고 했던 게 전부다.
상대의 반응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그리고 그가 죽지 않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약간의 단서라도 알 수 있게 될 거라 기대한 것이다.
조금씩 실험 결과를 쌓아가다 보면 언젠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해한 결과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고 그를 죽인 다음 영감 권력을 봉신서에 봉인해버리면 모든 상황은 종료된다.
이로써 태호의 권력의 일부를 또 제거하게 되는 셈이었다.
다만 무엇이든 한입에 삼키려고 했다간 입이 찢어질 수도 있다.
빠른 것도 좋지만 조금 늦어도 확실하게 가는 게 안전하다.
일단은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
지금처럼 일인 다역을 하며 상대를 속이다 보면 분명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