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05
1405화 도대체 왜?
부군은 한걸음 물러서며 포권을 취했다.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소. 그렇다면 남은 네 개도 기쁘게 받아주시겠소?”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하지만 더 이상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상대는 단 한 번의 찔러보기로 많은 정보를 얻었을 테니까.
진양이 여전히 몸을 숨긴 채로 답했다.
“주신다면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좋소.”
말을 마친 부군은 곧바로 제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부군은 다시 수구 안으로 돌아갔다.
내부 상황은 이미 완전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양쪽 모두 싸울 의지가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시 돌아온 부군은 여자 수도사를 보며 말했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놈들을 처치할 수 있겠나?”
그 말을 듣자마자 여자 수도사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강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며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지금 날 모욕하는 것인가!”
그 모습에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었던 네 대신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갑시다.”
나지막한 한마디와 함께 지곡의 주위로 펼쳐진 왜곡이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가 서 있는 공간은 중심을 향해 수축되고 있었다.
진화의 포효성과 함께 태양진화가 물결치며 사방으로 뻗어져 나갔다.
사성이 손가락을 뻗자 사성신광(死星神光)이 뿜어져 나와 눈알을 파괴했다.
이어서 신광 대신관의 빛이 네 사람을 뒤덮었다.
그리고 사성의 사성신광을 따라 함께 뻗어져 나갔다.
부군의 왼쪽 눈의 시선은 급격하게 확대되며 상대에게 단단히 고정되었다.
이어서 그는 시선을 다리로 삼으며 제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부군은 네 명의 대신관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몸은 사성의 냉기에 의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부군이 팔을 뻗어 건장한 남자를 끌어당겨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혈을 불태우고 있는 순수한 연체 수도사와 순수한 힘이 맞부딪쳤다.
신광이 부서지며 왜곡된 공간이 무너졌다.
그리고 빛에서 네 명의 대신관이 튀어나왔다.
“전부 다 이곳에서 죽을 순 없소.”
지곡의 몸은 새끼줄처럼 꼬여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뻗자 손끝에서 작은 왜곡이 일어났다.
권력의 구상지물을 이용하여 이곳에 강제로 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신광 대신관의 몸이 부서지며 빛이 되었다.
이어서 빛은 벌려진 틈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순수한 빛이다.
전성기에는 그 누구도 그의 속도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단순히 속도만으로 따지면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만 리를 돌파하는 것도 가능했다.
만약 지곡 대신관과 함께 힘을 합친다면 순식간에 하나의 대세계를 뛰어넘는 것도 가능하다.
* * *
한편, 진양은 수구 밖에서 조용히 부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더는 발각될까 봐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이를 놓친다면 다시는 모든 대신관의 권력을 전부 봉인할 수 있는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관은 아예 천궁에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설령 동귀어진을 한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권력을 빼앗아가도록 당하고만 있지도 않을 것이다.
천제를 한 손으로도 가볍게 짓누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천제의 모든 권력을 봉인할 방법은 결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강력한 힘에 의해 공간이 왜곡되는 게 느껴졌다.
이어서 거대한 수구 표면에 미세한 틈이 벌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진양은 곧바로 틈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한 줄기의 빛이 안에서 흘러나왔다.
강력한 권력의 힘을 품은 빛이었다.
진양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몸으로 그곳을 틀어막았다.
틈에서 흘러나온 빛은 진양의 육신으로 들어갔고, 곧장 해안에 있는 봉신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봉신서에는 새로운 장이 만들어졌다.
빛을 묘사한 도안과 함께 ‘신광’이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빛은 봉신서를 빠져나오려는 듯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러나 텁- 하고 봉신서가 덮이며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진양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 어쨌든 잡았으니 된 거지.’
* * *
수구 내부.
부군은 빙결 상태에서 벗어나며 지곡을 향해 달려들었다.
건장한 남자는 사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여자 수도사는 진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군과 건장한 남자의 경우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지곡의 권력은 왼쪽 눈을 가진 부군에겐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사성 역시 뜨거운 기혈로 불타오르고 있는 건장한 남자를 얼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진화를 상대하는 여자 수도사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전임 진화 대신관은 여자 수도사에 의해 궁지에 몰리며 자결을 선택했었다.
그녀는 태양진화 안으로 뛰어들며 육신으로 뜨거운 화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졌고 몸의 상처도 갈수록 심각해졌다.
곳곳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며 차마 눈을 뜨고 봐줄 수 없을 만큼 처참한 모습이 되어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중에서도 그녀의 살기는 한층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익혀왔던 신통력은 폐지되어버렸다.
썩 달갑진 않았지만 그녀는 극단적인 길에서 또 다른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날 죽일 순 없다. 오히려 날 더욱 강하게 만들 뿐!”
확실히 태양진화로는 그녀를 죽일 수 없다.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혀봤자 오히려 그녀의 살기를 한층 더 높여주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살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녀는 검은 그림자가 되어 새까만 화염을 내뿜으며 태양진화 내부를 걸었다.
검은 그림자 위로 보이는 건 두 개의 새빨갛게 달아오른 눈이 전부였다.
강력한 살기가 그녀의 자아이성마저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느덧 진화의 앞으로 다가간 그녀는 도저히 사람의 목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포효성을 내지르며 손을 뻗어 진화의 목을 조였다.
진화는 그런 그녀를 비웃었다.
이어서 여인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진화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성과 영혼까지 전부 소멸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여인을 뒤덮었던 그림자가 사라지며 다시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극에 달했던 그녀의 힘도 빠른 속도로 빠르게 폭락했다.
그녀는 마치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눈이 여전히 붉게 물들어있었다.
아직 이성이 되돌아오지 않은 듯했다.
아무래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듯했다.
* * *
진양은 조용히 거대한 수구를 살폈다.
수구에 떠 있는 거대한 눈알에는 진양의 진짜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오직 단 하나의 눈에서만 모호하게 투명한 무언가 비쳤을 뿐이다.
최근 들어 시시각각 성은 상태를 유지한 덕분에 숙련도가 매우 빠르게 상승했다.
진양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에 벌어진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대신관을 처치하는 일은 장기적인 목표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순조롭게 일이 풀려버렸다.
석양은 함정에 빠뜨려 봉인하는 데 성공했고, 대일은 아예 부군이 입에 떠먹여 주었고, 신광은 알아서 진양의 봉신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셋이나 되는 대신관을 제압해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석양 권력을 봉인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었다.
나머지 권력까지는 욕심을 부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현재 남은 건 진화, 사성, 그리고 지곡까지 겨우 셋뿐이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상황으로만 봤을 때, 부군이 이곳에 남겨둔 화신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화신인 듯했다.
반면 안에 남아있는 세 대신관은 권력 지배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편에 속한다.
특히 진화는 이제 겨우 자리에 오른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부군의 화신이 직접 나선다면 다른 이들을 제압하는 것도 크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한참 생각에 빠져있을 때.
수구의 표면에 물결이 일어났다.
이어서 짙은 권력의 위세가 묻어있는 태양진화가 밖으로 흘러나왔다.
“…….”
멍하게 지켜보고 있던 진양은 재빨리 날아가 태양진화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것을 삼켜버렸다.
봉신서에는 새로운 장이 나타나며 불꽃 도안과 함께 ‘진화’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부군의 화신이 이토록 강했단 말인가?’
그러나 그가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인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성은 성관이 숨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직접 칼자루를 쥐고 나섰다.
그리고 태호가 책봉한 대신관의 권력을 박탈하여 태미의 성관에게 넘기고 있었다.
태호와 태미는 비록 앙숙과도 같은 관계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따진다면 어쨌든 같은 편에 서 있는 자들이다.
아무리 치고받고 싸운다고 해도 결국은 집안싸움이라는 얘기다.
태호의 대신관들을 처치하고 모든 권력을 박탈한다면 오히려 태미의 힘을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오히려 도와준 이들에게 달려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설마 도와준 정을 생각해서라도 봐줄 거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부군은 결코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 * *
수구 내부.
부군과 여자 수도사, 그리고 건장한 남자는 남아있는 사성, 그리고 지곡과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뻔했다.
부군은 지곡이 펼치는 왜곡 따위는 완전히 무시할 수 있었다.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손이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곡의 몸에선 엄청난 양의 선혈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오는 선혈과 함께 생기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사성은 건장한 남자와 맞붙으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등한 싸움이 이어졌으나 광기에 사로잡힌 여자 수도사가 나서며 전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극단에서 또 다른 극단을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길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실력은 과거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일반적인 수도사가 입마 상태에 빠질 때 증가하는 힘의 양은 불골금신을 익힌 승려가 입마를 통해 얻는 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와 같은 원리로 생각하면 된다.
극단적으로 뒤틀어질수록 그로 인해 더욱 강력한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여자 수도사는 다시 새까만 그림자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새빨간 눈을 번쩍이며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줄기의 이성을 붙잡은 채 사성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편, 건장한 남자는 이미 최대치로 기혈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새 얼굴엔 노화가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여자 수도사가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사성을 붙잡았다.
이어서 여자 수도사의 손이 사성의 얼굴에 닿았다.
빠각-
해골밖에 남지 않은 사성의 머리는 여자 수도사의 손에 완전히 박살 나버렸다.
얼어붙은 육신은 바람과 함께 소멸되었다.
회백색의 영롱한 마노와 같은 무언가 떨어지자 강력한 한기를 품은 힘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부군이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파도는 사성이 남긴 권력의 구상지물을 덮쳤고, 그것은 이내 수구에서 모습을 감췄다.
수구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양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성의 권력을 덥썩 집어삼켰다.
봉신서에는 또 새로운 장이 만들어졌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지곡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진양은 더욱 불안했다.
아무리 대신관들이 전반적으로 권력 지배력이 약한 편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압도당할 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화신에 불과한 부군마저도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할 정도라니.
그렇다면 과거의 부군은 도대체 얼마나 강했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