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62
1462화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들었네
대황.
가희는 조용히 진양의 화신을 지켜보았다.
그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계속해서 호량 조각을 강화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점차 찌푸려졌다.
더 이상 홀로 망자의 세계로 넘어가 버린 진양에 대해 걱정이 되진 않았다.
다만 이토록 중대한 사안을 자신과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정해버렸다는 사실에 단단히 화가 났다.
심지어 마음대로 정해버린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이 직접 찾아와 ‘해명’을 하는 대신 분신을 보내 ‘통보’까지 해버렸으니,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가희는 성큼성큼 무표정으로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화신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양! 차라리 그냥 평생 거기서 살지 그래요!”
화신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지금 제가 가진 실력만 놓고 본다면, 아쉽게도 아무리 소리쳐도 제 본존에겐 소리가 닿지 못할 겁니다.”
“흥!”
가희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잠깐. 그 말은 당신의 실력이 충분해지면 진양에게도 제 목소리가 닿는다는 뜻인가요?”
“저는 망자의 세계의 선천지물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망자의 세계와는 이어져 있는 존재죠. 만약 도군 정도의 수준이 된다면, 어쩌면 본존에게도 말을 전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화신은 솔직하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
가희는 돌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열심히 수련하도록 하세요. 혹시 필요한 건 없을까요?”
“없습니다.”
그녀는 처음 올 때와는 달리 비교적 환한 얼굴로 이곳을 떠났다.
그러나 화신이 있는 곳을 빠져나오자마자 다시 냉정한 대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신수 바깥에는 대규모 군대가 집결해있었다.
이 외에 특별히 신조 내에서 선발한 인원들도 모두 도착해있었다.
가희는 장검을 뽑아 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출발!”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문이 열리자 모두들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들이 들어선 세계는 진양의 기준으로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비교적 약소한 세계였다.
사방엔 요괴들만 가득했다.
일단 사전 정찰에선 인간의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대영 신조의 영토로 합병시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 * *
수도사들은 각각의 경지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조금씩 다르게 느낀다.
진양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천 년이라는 긴 시간이라고 할지라도 체감상 한 달 정도로 느끼게 된다.
진양도 지금의 경지에 오르고 나니 고수들이 하급 수도사들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힘이든 수명이든 하급 수도사들이 추구하는 것은 전부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생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것들을 추구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다른 쪽으로 눈이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망자의 세계도 나타났고, 또 생기를 다시 되살릴 수 있는 방법도 생겼기 때문에 수명은 더 이상 진양의 발목을 붙잡지 않게 되었다.
다만 앞으로 높은 확률로 도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는 점은 아쉬웠다.
이로 인해 봉호의 경지를 바라는 것도 어렵게 되었다.
물론 아쉽다고 해서 후회가 되는 건 아니었다.
길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후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정 안 되면 나중에 죽고 나서 망자의 세계로 넘어가서 길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어차피 그곳에선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길을 찾지 못한다면 환생을 통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지금 당장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망자의 세계에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다음엔 태일을 완전히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고, 그다음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상외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기록을 마치고 강자들을 모두 환생시키고 난 진양은 또다시 홀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도과 때문에 더 이상 경지를 발전시키는 게 어렵다면 실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여섯 번째 금단을 만든다든지 말이다.
물론 여섯 번째 금단을 만드는 건 지금 당장도 가능하다.
단지 아직 어떤 신통력을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 보지 못했기에 미뤄두고 있는 것뿐이다.
오히려 일곱 번째 금단에 대한 가닥은 이미 잡혔다.
영원의 연옥 공법에 일어난 변화를 통해 대략적으로 어떤 것이 만들어질지 가늠이 잡혔던 것이다.
한참의 생각 끝에 일단은 망자의 세계의 일부터 해결하고 보기로 했다.
진양은 흑옥 신문을 꺼냈다.
응룡 조각상이 천천히 눈을 뜨며 걸어 나왔다.
예전에는 응백에게 기념품으로 선물로 준 뒤에 망자의 세계로 건너왔었지만, 이번에는 직접 가지고 왔다.
진양이 물었다.
“응룡 형님, 얼마나 회복이 되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직까지 망자의 세계에 나타나시지 않을 걸 보니 아예 나타나지 않으실 것 같군요.
제게 대담한 계획이 하나 떠올라서요. 어떤지 들어보시고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제 경지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남은 건 단순히 실력을 키우는 것뿐이고요. 운 좋게 봉호도군을 꺾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고 해도 결국은 도과조차도 없는 도군으로 살아가야 하겠죠.
그래서 문득 부군이 떠오르더군요. 그는 자신의 신통력을 통해 망자의 세계 안에 거대한 문을 만들어놨잖아요.
그래서 저도 흑옥 신문을 제물로 바쳐볼까 생각 중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여섯 번째 금단 안에 녹여 넣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형님께 주어진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게다가 망자의 세계라는 존재 자체가 형님께 이러한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지금 벗어나지 않으신다면 다시는 부활을 꿈꾸실 수 없을 겁니다.”
응룡은 조용히 진양을 응시했다.
그는 진양의 힘을 빌려 부활했지만 진양은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가 어느 정도로 회복되었는지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물어온 적이 없다.
이대로 계속해서 지내다 보면 그는 더욱 빨리 부활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성기의 힘을 그대로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흑옥 신문의 족쇄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두터워질 것이다.
그리고 흑옥 신문을 벗어날 기회는 영원히 박탈될 것이다.
그저 하나의 영혼문이 되어 영원히 문을 지키는 게 전부일 것이다.
진양이 솔직하게 얘기를 꺼낸 것만 해도 이미 본인이 해야 할 도리 그 이상으로 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 굳이 이런 걸 묻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응룡은 할 말이 없다.
진양의 입장에서도 오히려 그게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사실 응룡은 거의 부활했다고 봐도 될 만한 상태가 되었다.
다만 부활한 것은 이성뿐.
힘까지 부활하려면 아직은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응룡은 잠깐의 고민 후 천천히 흑옥 신문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진양은 마치 과거에 응백에게 자신의 흑옥 신문을 기념품으로 건네주었을 때처럼 흑옥 신문에 대한 지배력을 모두 끊어버렸다.
응룡의 몸이 완전히 흑옥 신문에서 분리되는 순간.
새까만 그의 몸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유체이탈을 하는 것처럼 응룡 본체의 허상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나 응룡 조각상은 여전히 흑옥 신문에 붙어있었다.
허상은 연기로 바뀌었고, 진양의 앞으로 모여들며 점차 사람의 형상을 이루었다.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망자의 모습이었다.
어찌나 힘이 약한지 주위에 가득한 죽음의 기운이 미친 듯이 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진양은 황급히 그를 말리려고 했으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놀란 진양이 말을 더듬었다.
“형님, 이게 도대체 무슨…….”
확실히 응룡은 흑옥 신문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그러나 흑옥 신문을 통해 회복한 자아이성, 힘, 신묘함 등은 단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다.
흑옥 신문은 비록 진양의 것이긴 하지만, 이것이 형성되는 과정 중에는 응룡이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함께 노력하여 이득을 얻었음에도 자신의 몫은 전부 남겨두고 간 것이었다.
사람의 형상을 갖춘 응룡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다시 형상을 갖추고 생기를 찾은 것만으로도 더는 바랄 게 없네. 다만 한 가지만 부탁할 게 있네.”
“뭐든 말씀하십시오.”
“날 환생시켜주시게.”
“하지만 지금은 별로 환생하기 좋은 시기가 아닙니다.”
당연히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응룡이 십방계로 환생하게 된다면 그땐 모든 게 끝이었으니까.
환생을 하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진룡이 아니다.
죽어서도 쉽게 소멸되지 않는 능력 또한 갖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응룡은 다시 부활한 자신의 모든 것을 진양에게 넘겼다.
하지만 진룡의 능력이라면 설령 환생을 한다고 할지라도 충분히 자신의 이성과 기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진양은 이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미 너무 오랫동안 그녀를 기다리게 만들었네.”
진양은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순간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이어진 기다림으로 인해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힘에 대해서도 더 이상의 미련은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현재 그는 망자의 세계에 있다.
흑옥 신문도 이곳에 있으니 벗어날 기회는 충분하다.
진양이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는 이상 응룡이 먼저 얘기를 꺼낼 일은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며 흑옥 신문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존재로 어디서 환생하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나중을 위해 표식을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성공적으로 환생하신다면 반드시 모시러 가도록 하죠.”
“부탁하겠네.”
응룡은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붓을 꺼낸 진양은 심사숙고 끝에 붓으로 흑옥 신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곳에 남아있던 응룡 조각상은 곧바로 모든 기운을 잃어버린 것처럼 늘어졌다.
대신 붓의 끝은 푸른 먹물이 찍힌 것처럼 변했다.
응룡은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아무 힘 없는 일개 망자에 불과하다.
당장 이곳 부유섬 전체를 샅샅이 뒤진다고 해도 그보다 약한 망자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는 그저 진양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진양의 붓이 응룡의 미간을 뚫고 몸 안쪽에 닿았다.
그의 몸에 부문이 새겨지며 빛이 번쩍였다.
마치 응룡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듯한 형상을 닮은 부문이었다.
이것은 본래 응룡의 것으로 오직 응룡 본인에게 속한 진룡의 진의였다.
단지 진양에게 남겨준 것일 뿐.
이것만 있으면 설령 응룡의 이성이 흑옥 신문에서 분리된다고 해도 응룡 조각상은 여전히 위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진양이 충분히 강해지게 되면 응룡 조각상은 마치 응룡의 진신처럼 흑옥 신문을 지키게 될 것이다.
진짜 진룡이 문을 지켜준다니.
이 정도는 돼야 체면이 서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이런 물건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자니 영 불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진양은 씨익 웃으며 붓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응룡이 뭐라고 하기 전에 잽싸게 환생시킬 준비를 했다.
“형님, 그럼 조심히 가십시오.”
응룡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소 놀라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감동이기도 했다.
그렇게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그는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