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67
1467화 단순한 그림이 아닌 부문
십이에게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인 것이라고 확고하게 말해준 사람은 온 세상을 통틀어 진양이 유일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해 준 것도 진양이 유일하다.
마찬가지로 자신을 양분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은 사람도 진양이 유일하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때까지 그녀가 만난 모든 생명체는 그녀를 ‘선초’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진양만 아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순간 중 가장 기쁜 순간은 바로 분신술을 분석하는 지금 이 순간이었다.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순 없었지만 일단 거부감이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만약 정반대의 반응이었다면 앞으로 십이에게 부탁을 할 때마다 눈치를 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무언가를 바라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어쨌든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걸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새롭게 해석된 분신술을 살폈다.
신통력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문제부터 답안까지의 중간 과정이 더해졌을 뿐이다.
예전의 분신술은 이미 정해진 공식과도 같았기에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쓰면 그만이었다.
찬찬히 내용을 살펴본 진양은 그제야 왜 자신의 분신이 분신 같지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생성된 분신들은 각자 자신만의 자아이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들이 가진 자아이성은 전부 진양으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진양이 분신술을 사용할 때 머릿속에 남아있는 생각들이 방향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모든 부분들이 그의 일부면서도 일부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즉, 분신이 독립된 존재라고 해도 맞다는 뜻이다.
다만 진양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독립된 존재일 뿐이다.
본존을 배반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주권이 커지면 생성되는 분신도 훨씬 더 강해진다.
분신이 사망하거나 진양의 의지로 거둬들이면 회수되는 건 그가 가지고 있던 기억뿐.
이건 진양의 일부에 의해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다.
분신이 죽은 뒤로도 상대의 시선을 끌어왔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고수들은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이다.
이것은 혈맥 신통력이다.
일전에 이족들이 시전할 때는 이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단순했다.
아무 생각 없이 싸움만 벌이는 등 매우 간단하고 명확한 목적만 있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족의 머리로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건 고사하고 아예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진양은 안심이 되었다.
다시 익히고 나면 지금처럼 어떤 녀석이 나올지 운에 맡기는 게 아니라 훨씬 더 정확하게 분신을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진양은 십이의 능력을 확인하게 되었다.
진양은 백옥 신문을 꺼내 자신의 손등에 올려놓았다.
습득 능력은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법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태생적으로 타고난 신통력과 같았다.
“이번에도 잘 부탁할게. 하지만 이건 꽤 골치 아픈 능력이라서 말이야. 안 되는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진양은 불안했는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곤 주위에서 적당한 물건을 하나 골라 습득 능력을 발동시켰다.
능력이 반응을 일으키는 순간, 백옥 신문에 있던 복숭아나무의 뿌리는 가까운 거리에서 정보를 그대로 접할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십이의 눈앞에 손바닥 모양의 그림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책이 아니었다.
십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를 집는 듯한 간단한 그림은 돌연 부서지며 수백만 개의 생소한 부문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수백만 개의 부문은 계속해서 부서지며 세분화되기를 반복했다.
십이의 눈에서 초점이 사라졌다.
마당에 심긴 복숭아나무의 밑동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빛은 순식간에 나무 전체를 삼켜버렸다.
꽃이 피어나며 달콤한 향기가 사방에 퍼졌고, 마치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폭풍이 일어났다.
그렇게 부문이 네 번째로 세분화되는 순간.
십이는 정신을 잃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바깥에 있는 진양은 유심히 백옥 신문에 새겨진 복숭아나무 조각을 살폈다.
뿌리에서 흘러나온 빛은 빠르게 퍼져나가며 나무 전체를 환하게 비췄다.
다만 백옥 신문조차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빛이 사라져버렸다.
“십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십이!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진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때,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듯한 십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협, 제가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요.”
“뭐라고?”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정보에 능숙하게 진화한 선초가 돌연 기절을 하다니?
진양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괜찮으니까 더 이상은 하지 마! 괜히 몸만 더 상할 수도 있으니까.”
“네…….”
그녀는 여전히 몽롱한 듯 대답했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도록 해.”
“네…….”
놀란 건 십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방금 자신이 보았던 것을 진양에게 전부 넘겨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진양은 어쩔 수 없이 사자결 두 번째 단계를 발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간신히 폭발적으로 밀려오는 부문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그림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부문은 무려 네 번이나 분열을 일으켰다.
그 양은 도저히 가늠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마 그녀가 기절하지 않았다면 분열은 계속해서 이어졌을 것이다.
진양은 네 번째 분열이 끝나고 난 후 나타난 부문 중 하나를 살폈다.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진양은 곧바로 시선을 거둬들였다.
심지어 그것을 살펴보았던 순간의 기억까지도 베어버렸다.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양은 자신의 손등에 새겨진 습득 능력의 그림을 쳐다보았다.
아니, 더 이상은 그것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째서 능력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부문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부문 안에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양의 정보가 들어있었다.
단지 분석을 시도했을 뿐인데도 성숙한 선초를 기절하게 만들 정도였다.
선초의 본체까지 상처를 입힐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신을 잃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더 이상은 십이에게 부탁하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심지어 습득 능력보다 한층 더 낮은 능력인 환생 신통력도 부탁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은 자신이 어째서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것인지 분석할 만한 능력이 없다.
능력이 닿지 않는다면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진양이 한참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십이가 하나의 부문을 진양에게 보내왔다.
“소협, 네 번째 분열 후에 나타난 부문 중에 제가 분석해낼 수 있는 부문이 있더라고요. 제가 알고 있던 부문이었요.”
“십이, 아직은 너무 무리할 것 없어. 아무래도 내가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아니에요. 천천히 하면 돼요. 마침 딱히 할 일도 없거든요. 게다가 이건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대략적으로 분석을 해봤는데, 최소 아홉 번의 분열이 일어나고 나서야 기본적인 정보들이 나타날 것 같아요.”
“뭐……. 정 그렇다면 알겠어.”
진양은 십이가 보내온 부문을 유심히 살폈다.
그의 능력으로는 그것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 부문과 부문이 담고 있는 정보가 이 세계의 것이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진양은 굳이 무리해서 그것을 연구하진 않았다.
문득 부군이 만나고 싶어졌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부문의 능력이 같은 것인지 살펴보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같은 능력이라면, 부군은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게 된 건지도 물어보고 싶었다.
십이가 추측한 것들을 놓고 고려해 본다면, 만약 부군이 이러한 능력을 만들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미 천제보다 한 수 더 높은 경지에 오른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을 생각하면 그는 아직 진양이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로 시작된 일이다.
가희의 말을 듣고 나서 호기심이 생겨 분신술을 분석해 보려던 게 전부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일단 잡념을 비운 진양은 서둘러 호량으로 향했다.
가희는 전선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처리하러 갔다.
때문에 진양도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할 순 없었다.
대황이 힘차게 나아가며 세계를 정복하는 상황을 직접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 상황만으로 본다면 십방 대제를 상대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이것뿐이다.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충분한 실력과 대세를 갖추고 역사의 차륜이 십방 대제를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만 보면 가희의 방식은 상당한 성과를 보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가희 본인의 경지가 발목을 잡지 않는다는 것만 봐도 실로 무시무시했다.
봉호로 열반했다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진양도 잘 모른다.
다만 과거 가희가 열반을 통해 부활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 정도는 가능했다.
진양은 그녀가 봉호의 경지에 올랐으니 자신의 신통력도 한층 진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아예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 진양이 그녀를 돕기 위해 불어넣었던 모든 힘은 이제 완전히 가희 본인의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덕분에 완벽하고 무결할 수 있던 것.
열반도군(涅槃道君)이라니.
지금까지 이런 봉호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량에 도착하니 몽의가 신수 아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지난번에 그 세계에서 부활했던 상고 대요는 대제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 허나 이번엔 또다시 새로운 녀석이 나타난 것 같네.
전달된 소식에 따르면 이번에 나타난 상고 대요는 스스로를 칠성도관(七星道官)이라고 하는 자라고 하더군.”
진양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도관이요?”
“그래. 칠성도군말일세.”
“가희 소저는요?”
“이미 건너갔다네.”
진양은 두말없이 곧장 그곳으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