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91
1491화 이게 정말 될 줄이야
몽사는 덩치 큰 사내의 모습을 한 채 어느 한 주루의 주방에서 거대한 볶음 냄비를 돌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기름이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볶음 요리가 완성되었다.
이어서 이제 막 지은 새하얀 쌀밥까지 한 그릇 가득 퍼서 식사를 하려는 순간.
진양이 이곳에 나타났다.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식사하시면서 들으세요. 작은 부탁을 하나 하러 왔거든요.”
몽사는 신이 난 듯 식사를 하며 진양에게 ‘무슨 일인데요?’라고 묻는 듯한 눈짓을 보냈다.
“누군가의 꿈에 나타나고 싶거든요.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의 혈육이 아니라서요. 그렇다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에요. 정 찾을 수 없다면 후손이라도 상관은 없는데…….”
진양은 잠시 뜸을 들였다.
“제가 괜히 식사하시는 데 방해한 것 같네요. 다음에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
몽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진양의 몸속으로 빛을 흘려 넣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식사를 하는데 여념이 없었지만, 머릿속에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몽진경을 익혔다고 했었죠? 이걸 줄 테니까 직접 찾아보도록 하세요. 전 지금 바빠서 말이에요.”
간간히 들려오는 쩝쩝거리는 소리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음식에 정신이 팔려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진양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입구를 통해 나가려던 진양은 그녀를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에 볶음 요리를 만들 때는 소금 말고 간장을 넣어보도록 하세요. 그럼 한층 더 맛있어질 테니까요.”
몽사는 벙찐 얼굴로 텅 빈 접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 * *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복제 대황을 빠져나왔다.
‘직접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어 먹다니. 오히려 좋은데!’
하나의 요리를 만들더라도 어떤 조미료를 쓰고, 또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그녀를 족히 수백 년은 붙잡아두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예전에는 몽사에게 작은 권한을 하나 받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음식에 잔뜩 정신이 팔려있는 이상 웬만한 건 전부 다 허락해 줄 것이다.
* * *
권한을 손에 넣은 진양은 십방계를 살피며 꿈에 나타날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이어서 반나절 정도가 지났을 무렵.
진양은 적절한 대상을 하나 추려낼 수 있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가볼까?’
그는 곧바로 상대의 꿈속으로 향했다.
* * *
“당신, 이제 곧 죽겠군요.”
진양은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마치 행위예술을 하듯 바위에 등을 딱 붙이고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린 채 초점 없는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몽경 세계에는 검은색, 흰색, 그리고 회색 세 가지의 색깔만 존재했다.
마치 온 세계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가 앉아있는 곳을 중심으로 시들어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몽경 세계라도 이런 조짐이 보이는 경우는 오직 단 하나뿐이다.
바로 곧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뿐이다.
멍하게 정신까지 나간 것을 보아하니 이미 임종이 멀지 않은 듯했다.
몽경 속에 나타나는 것들은 한 사람의 경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진양은 앞서 여러 차례의 탁몽 경험이 있었기에 한눈에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현재 이 청년의 마음속에는 울분과 원한이 가득하다.
때문에 세계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죽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그는 그다지 강한 축에 들지 못하는 평범한 수도사다.
대략적으로 가늠해 보자면 신해에서 영태 정도의 단계에 머물고 있는 듯했다.
아마 마땅한 뒷배도 없는 그런 녀석이 분명했다.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 보면 그는 수도사들 중에서도 ‘중산층’에 해당하는 자였다.
강자는 아니었지만 한 세력의 일부를 받치는 중간 기둥 정도의 역할은 하는 그런 류의 수도사였다.
이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진양은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동공으로 빛이 모여들었다.
마치 정신이 돌아오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다가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분명 진상을 본 듯했으나 순식간에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숨을 한 번 쉴 때마다 계속해서 바뀌었다.
단 한 번도 중복되는 모습은 없었다.
마치 수많은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결국 더 이상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그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다간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정보의 양이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흩어지기 시작한 그의 이성을 진양이 붙잡아두고 있는 것조차도 의식하지 못했다.
“당신은 이제 곧 죽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왠지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청년의 머릿속에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르며 그의 얼굴엔 복잡한 표정이 나타났다.
원통함, 억울함, 분노, 아쉬움, 그리고 무기력함까지.
아마 본인의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자신은 이미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검은색, 흰색, 회색 삼색으로 이루어진 세계, 그리고 멀리 무너져내리고 있는 천지까지.
자신도 모르게 상당히 장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사후세계입니까?”
한때 의견이 분분했던 망자의 세계에 대한 전설은 이제는 모두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하나의 진리가 되었다.
최근 죽은 자들이 산 자의 세계에 있는 혈육들의 꿈속에 나타난다는 소문이 사방에 돌고 있었다.
망자의 세계에서 어떤 수단을 알게 되거나 특정한 물건을 손에 넣게 된다면 이를 통해 탁몽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수백 년 전 갑자기 고수가 된 자 역시도 꿈속에 나타난 선조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아니, 이곳은 망자의 세계가 아닙니다. 하지만 곧 그곳으로 가게 되겠죠.”
“그럼 당신은 누구시죠? 상고 지부의 사람인가요?”
“뭐, 상고 지부의 신분도 하나 가지고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럼 저를 데려가러 오신 거군요.”
진양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온갖 양념이 뿌려진 헛소문을 사실로 믿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데려가긴 뭘 데려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데. 그 사람들을 무슨 수로 일일이 다 데리러 간단 말이야?’
무엇보다 지금 단계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망자의 세계에 나타날 기회조차도 누리지 못한다.
“애석하지만 전 당신을 데리러 온 게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천지의 규칙에 따라 망자의 세계로 건너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망자의 세계로 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죠. 적어도 당신 정도의 실력으로는 꿈도 꿀 수 없을 겁니다.
전 당신과 거래를 하려고 온 겁니다.
당신의 육신과 영혼을 제게 빌려주십시오. 그럼 망자의 세계로 갈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사히 환생부라는 곳에 도달하여 환생할 수 있는 기회까지 누릴 수 있도록 해드리죠.
제 조건은 여기까지입니다. 어떤 쪽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진양은 곧바로 본론을 꺼내놓았다.
애초에 하급 수도사와는 협상 따위를 할 필요가 없다.
아니다 싶으면 그냥 다른 사람으로 바꿔버리면 그만이다.
어차피 십방계엔 차고 넘칠 정도로 수도사가 많지 않던가?
청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얕은 지식으로는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상대가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죽은 마당에 육신과 영혼 따위 빌려주지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상대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매한가지였으니까.
짧은 고민을 마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신을 대신하여 복수해달라는 말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강자는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빌려 간다고 했다.
혹여나 누군가 그를 향해 달려들게 된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가 용서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하셨군요. 지금으로선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겁니다.”
아무리 진양이라도 탁몽을 하면서 청년을 구할 수는 없다.
애초에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죽일 사람의 꿈에 찾아가 죽이는 게 더 빨랐을 것이다.
진양이 손을 뻗자 손바닥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부문과 도문이 나타났다.
이어서 한 권의 책이 진양의 손에 잡혔다.
책의 표지에는 눈을 흘기고 있는 강아지가 새겨져 있었다.
진양은 책을 펼쳐 청년 앞에 내려놓았다.
“자,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손도장을 찍으면 모든 게 끝납니다.”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었다.
어차피 고민한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니까.
청년은 곧바로 책에 손도장을 찍었다.
진양은 미소를 지으며 책을 거둬들였다.
책은 곧장 빛이 되어 진양의 몸속으로 사라졌다.
이어서 손가락을 뻗어 청년의 미간을 찔렀다.
그러자 그의 미간에 징표가 새겨졌다.
이것만 있으면 그는 반드시 망자의 세계로 갈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무 문제 없이 고해 뱃사공의 배를 얻어탈 수도 있을 것이다.
고해를 건너고 나면 그곳에 있는 도문의 일원들이 징표를 알아보고 그가 환생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호위까지 해 줄 것이다.
“그럼 잘 가요.”
청년의 형상이 무너져내리며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계속해서 얼굴이 바뀌던 진양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모습이었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도 같았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눈빛이었다.
그러나 의식이 흐려지기 바로 직전 그의 눈빛마저도 자신과 완전히 똑같아졌다.
그는 돌연 깨달음을 얻었다.
상대에게 자신의 신분을 넘기는 게 결코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청년이 사라진 뒤.
진양은 청년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며 흡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정말 될 줄이야.’
다소 편법을 쓰긴 했지만 그래도 망자의 세계는 너그럽게 넘어가 줬다.
넘어가야 할 때는 모르는 척 넘어가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