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가늠할 수 없는 강자
지난번 함부로 약을 써서 현혹한 건 그렇다고 치지만 이번은 아니다.
‘갑자기 불쑥 찾아오더니, 나타나자마자 또 지난번과 같은 술수를 써? 개 버릇 남 못 주지! 맞아 죽어도 싸!’
이 세계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더 무섭고 악랄하다는 사실은 진양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지금까지 만나본 여자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화선에 있던 여인들의 본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만약 갑자기 나타난 오만청이 ‘귤대인’이라고 부르며 본심을 드러내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아마도 진양은 오만청의 생사부터 확인했을 것이다.
그렇게 진양이 멀리 떠나고 나자 멀리 떨어진 숲에 누워있던 오만청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입에선 선혈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갈비뼈는 세 대나 부러져있었다.
심해창룡의 핏줄이 없었더라면 한 방에 요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고양이가 일말의 자비를 베풀어준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오만청은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제자리에 선 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이곳까지 오면서 습관적으로 용연보향을 써왔다.
그리고 방금 전 진양을 만났을 때도 습관적으로 용연보향을 사용했다.
하지만 용현보향을 사용하는 순간 곧바로 자신의 행동이 바보 같은 행동임을 깨달았다.
지난번에도 간파당했는데 이번이라고 똑같은 수가 먹힐 리 없지 않은가?
그나마 맞아 죽지 않은 건 들고 있던 영패 덕분이었을 것이다.
오만청은 영패를 꺼내 살폈다.
고양이 발자국이 찍힌 영패는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잠시 망설이던 오만청은 은거울을 꺼내 들었다.
잠시 뒤, 은거울에서 은은한 물결이 치는 듯싶더니 한 노부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할머니, 아무래도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 것 같아요.”
한편, 진양은 백리 칠을 안은 채 나귀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를 빤히 살폈다.
“어르신,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녀석들이 백리 칠의 존재를 알아버렸다고요.”
고양이는 피식- 하고 콧방귀를 뀌며 발톱을 뽑아 보였다.
“지금 제정신이에요?”
진양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렇다고 백리 칠을 공격해오는 사람들을 전부 다 죽일 겁니까? 그러다 영태성녀가 찾아오면요? 현천성종의 장문이 찾아오면요? 그 사람들까지 전부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양의 말에 고양이는 멋쩍은 듯 발톱을 감추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고양이는 꽤 영리한 편이다.
비록 미덥지 못한 구석도 있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똥과 된장은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백리 칠의 일은 확실히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예전에 교왕 왕족이 사해에 살고 있었을 때의 호량 수도사들은 감히 교왕 왕족을 조종하여 사해를 제 맘대로 다닌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교왕 왕족이 큰일을 겪으며 사해를 떠나게 되자 조금씩 여지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진양은 결코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백리 칠의 신분을 숨기고 다녔던 것이 아니다.
편두는 호량에서 가장 가까운 섬의 이름이었다. 자원이 그다지 많지 않기에 수도사들의 실력도 전체적으로 낮은 곳이었다.
이곳의 최상위 문파들은 새끼 시절부터 기른 바다 괴수들을 토대로 발전해온 자들이다.
그러므로 진양의 물음에 고양이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천지를 뒤집어놓을 만큼 일이 커질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는 게 있는 법.
거기에 진양까지 엮이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일이 커질 가능성이 다분했다.
진양의 이동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동하는 와중에도 각종 열매, 식물을 채취하거나 광석을 파내는 등의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지 삼 일째 되던 날.
모두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진양은 진득한 검은색의 고약을 앞에 둔 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음, 이거면 되겠지.”
백리 칠에게 가장 튀는 부분은 꼬리가 아닌 머리카락이었다.
지금까지는 포대기로 싸고 다녔기에 꼬리는 그다지 크게 튀지 않았으나, 머리카락은 도저히 숨길 방법이 없었다.
대황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는 만큼 다양한 모발이 존재했다.
그러나 호량 사람들은 대부분 검은 모발을 가지고 있었고, 극소수의 특별한 체질을 가진 사람만이 다른 색깔의 모발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단 하나, 모발을 검은색으로 염색해버리는 것뿐이었다.
물론 이 방법을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껏 만들어냈던 염색제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 색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효과가 좋은 염색약도 있긴 했지만 그만큼 독성이 강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번에 만들어낸 염색약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무려 고급 묵영석까지 더해 만들어낸 염색약이었다.
진양은 우선 자신의 몸에 실험해 보았다.
염색약이 무해하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백리 칠에게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진양이 머리카락에 염색약을 발라도 백리 칠은 그저 노는 것으로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이번 염색약은 성공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머리카락은 여전히 검은색이었던 것!
진양은 그제야 안심하며 길을 떠날 수 있었다.
한편 백리 칠은 거울을 바라보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이크, 만지면 안 돼! 이번에도 실패하면 진짜 답이 없다고.”
진양은 백리 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염색을 하고 나니 확실히 덜 튀는 모습이었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갓난아기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검은색을 머리카락에 입힌 것처럼 보였으나 이번에 만든 염색제는 이전에 만든 것과는 크게 달랐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검은색을 입힌다는 생각으로만 만들었지만 이번에 만든 건 그림자를 입혀 머리카락의 색깔을 가리는 원리를 이용한 염색약이었다.
만약 이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면 진양은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게 삼 일이 지났다.
백리 칠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진양은 크게 기뻐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니깐!”
고양이는 영 미덥지 못하다는 듯한 반응이었으나 딱히 제지하거나 방해하진 않았다.
그 역시도 백리 칠의 머리카락 색깔이 크게 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고양이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먼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뚫어질 듯 먼 곳을 바라보던 고양이는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천천히 나귀의 머리에 엎드렸다.
“무슨 일이에요?”
고양이의 반응에 진양이 놀란 듯 물었다.
그러나 한참을 쳐다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평소 고양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 진양의 머릿속으로 무언가 번쩍하고 지나갔다.
“설마 오만청의 일행인가요?”
며칠 동안 고양이의 손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오만청이 유일하다.
그리고 고양이가 자비를 풀어 준 사람도 오만청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만청이 아니라 오만청의 윗사람이 찾아온 듯했다.
“어디 있죠?”
진양이 물었으나 고양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언젠간 만나게 될 거란 얘기잖아요. 일단 만나서 얘기나 해 보자고요. 주먹으로 해결하는 건 그다음이고요. 무엇보다 왜 여기까지 왔는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고양이는 앞발을 뻗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렇게 고양이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수십 리 정도를 걸었다.
숲을 빠져나오니 앞쪽에 평야 한가운데 자리 잡은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도시 안에 있다는 건가요?”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었으나 이로써 악의를 품고 찾아온 게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해족의 몸으로 육지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그것도 인간의 도시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만약 이러한 사실이 소문으로 퍼지게 된다면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나타난다는 것은 음흉한 수를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도시 안으로 들어온 진양은 한 주루 앞에 도착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삼 층 창가에 앉은 노부인이 자애로운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양은 크게 놀랐다.
상대가 꽤 실력 있는 강자일 것이라곤 예상은 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본인이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의 강자일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노부인의 모습에 불과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가 기운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의 기운을 숨기고 있는 건지는 추측조차 불가능했지만.
주루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고양이가 가장 먼저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 분리되어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자애로운 미소를 띤 부티 나는 노부인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오만청이 앉아있었다.
무슨 재료로 만든 천인지는 몰라도 피가 전혀 배어 나오지 않는 모습이었다.
진양이 문을 닫자 노부인이 들고 있던 용머리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빛의 장막이 퍼져나가며 방 전체를 감쌌다.
그녀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혔다.
“소녀 청유, 귤 대인을 뵙습니다.”
고양이는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식탁으로 올라가 엎드려 누웠다.
청유는 개의치 않다는 듯 은은한 미소를 띠며 진양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자님이 바로 도완 선자의 후계자시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진양은 대답 대신 형식적인 인사말을 건넸다.
“그럼 앉으시죠.”
청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이렇게 보자고 하신 건지 궁금하군요.”
진양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서도 재빨리 손을 움직여 식탁에 올려진 음식을 맛보았다.
그렇게 백리 칠이 먹어도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백리 칠에게도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어주었다.
물론 백리 칠은 그런 건 아무렴 상관없다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얼굴에 온통 기름칠하며 고기를 맛있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백리 칠의 모습을 바라보던 청유의 눈에 기이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전 악의를 품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러니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 역시 칠 선자와 도완 선자께 은혜를 입은 몸입니다. 그분들 덕분에 해족들을 데리고 화선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매일 같이 이어지던 불안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늙은이가 지금까지 연명해나가고 있는 건 그분들께 보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진양은 천천히 그녀를 관찰했다.
‘고양이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설마 수천 년을 살아온 요괴라는 뜻인가?’
그러나 고양이의 무심한 반응으로 보아 그렇게 위협이 되는 상대는 아닌 듯했다.
“지난번 만청이가 저지른 무례에 대해선 이미 크게 꾸짖었으나, 또다시 이런 망동을 저지를 줄은 몰랐습니다. 이 늙은이가 대신 사죄드리니 공자님께선 이만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청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양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놀란 진양은 벌떡 일어나 함께 허리를 굽혔다.
“아닙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양은 진심으로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