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256
256화 후회되는구나
그 틈을 노린 유령 선장은 발을 뻗어 빛의 범위 안으로 내디뎠다.
범위 안으로 발이 닿는 순간 강력한 힘이 터져 나와 곧바로 진양을 덮쳤고, 순간 손에 힘이 풀린 진양은 조각상을 놓친 채 힘에 의해 수십 장 멀리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유령 선장은 땅 위로 떨어지려는 조각상을 받아들었다.
그는 조각상을 어깨에 들춰 멘 채 조타륜을 빠르게 돌려 공간을 왜곡시켜 단천궁이 빛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검은 그림자는 나가떨어진 진양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단천궁과 유령 선장만을 노렸다.
그러자 단천궁은 빛의 범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는지 곧바로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검광이 번쩍이는 듯싶더니 순식간에 백 장을 이동했고, 겨우 두 걸음 만에 그는 통로 속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는 단천궁을 쫓아가지 않았다.
대신 끝까지 유령 선장의 뒤를 쫓았다.
유령 선장은 조각상을 들춰 멘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그림자가 빛 가장자리까지 접근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빛이 번쩍이더니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석상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불꽃이 꺼진 것이다.
유령 선장은 크게 당황했다.
검은 그림자와의 거리는 기껏해야 십 장.
이대로 몸을 피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며 유령 선장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크아아아!”
조각상을 떨어트린 유령 선장은 새우처럼 몸을 굽히며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내질렀다.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복면이 산산조각 나며 그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놀랍게도 그의 머리는 문어였다.
네 개의 촉수는 수염처럼 앞에 붙어있었고, 나머지 네 개의 촉수는 머리카락처럼 뒤에 붙어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들어가자, 그의 여덟 개의 촉수는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새까만 그의 눈에선 번개가 튀어 올랐다.
어떻게든 검은 그림자를 막아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쩌적- 쩍-
그의 촉수는 한 가닥씩 끊어져 가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벽 구석에 처박혀 쓰러진 진양은 한쪽 눈만 뜬 채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겉보기엔 중상을 입은 듯한 모습이었으나 사실 그의 몸은 매우 멀쩡했다.
타격을 입는 순간 곧바로 거북이 등껍질을 꺼내 방어한 덕분이었다.
다행히 유령 선장은 진양의 목숨을 노리고 공격해온 것이 아니라 조각상을 노리고 공격해온 것이었다.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편 진양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덥썩 물었다.
유령 선장은 진양이 석상을 자신의 것으로 연화시켰다는 사실을 몰랐다.
사실 석상을 연화시켰다고 해도 자신의 신통력처럼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대신 불을 켜거나 끄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어쨌든 유령 선장에게 한 방 먹인 진양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며 신중히 고민했다.
‘유령 선장이 완전히 잡아먹히고 난 다음 불을 켤까? 아니면 지금 켤까?’
이대로 유령 선장을 살려주는 건 말도 안 됐다.
진양의 힘으로는 유령 선장을 쓰러뜨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유령 선장을 잡아먹은 그림자가 예상치 못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 역시 나름대로 골칫거리였다.
한참 고민하던 진양은 유령 선장의 머리에 달린 여덟 개의 촉수가 모두 끊어지는 순간 ‘지금이다!’라고 속으로 외치며 불을 켰다.
팟-
석상의 입에서 다시 한번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왔고, 빛이 퍼져나오며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유령 선장을 비추었다.
유령 선장의 입에서 대지를 뒤흔드는 듯한 포효성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일곱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왔다.
뜨겁게 타오르는 영혼의 불꽃은 유령 선장에게서 빠져나온 검은 연기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는 재빨리 빛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털썩-
유령 선장은 기진맥진하여 곧장 바닥에 쓰러졌다.
범위 밖으로 도망친 검은 연기가 다시 한곳으로 모이며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전에 비해 색깔이 다소 연해진 모습이었다.
검은 그림자는 과감하게 유령 선장을 포기한 채 구석에 쓰러져있는 진양에게 향했다.
진양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과 진양의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두 사람의 거리가 한 걸음 정도 남았을 때, 진양이 허리춤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조각상을 꺼내 검은 그림자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이거나 처먹어라!”
조각상이 검은 그림자의 코앞까지 날아든 순간.
푸확-
푸른 불꽃이 조각상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치지지지직-
불꽃에 그슬린 검은 그림자의 머리는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난 남은 부분은 벽으로 빨려 들어가며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진양은 피식 웃으며 던졌던 조각상을 다시 회수했다.
“멍청하긴. 이 몸이 조각상을 하나만 챙긴 줄 알았냐? 제일 큰 놈만 들고 다닌 건 그만큼 안전 범위가 넓어지기 때문이었지, 하나만 챙겨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림자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주겠다던 진양의 계획은 그렇게 성공으로 돌아갔다.
물론 검은 그림자를 완전히 소멸시키진 못했지만 어쨌든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진양은 회수한 조각상을 옆구리에 낀 채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선장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선장이 있는 곳에서 꽤 먼 곳에 멈춰선 진양은 먼저 선장 옆에 있는 조각상의 불을 껐다.
그리곤 큰소리로 물었다.
“이봐요, 유령 선장님. 설마 죽은 거 아니죠? 죽었으면 대답 좀 해 봐요.”
진양의 부름에도 유령 선장은 아무 대답 없이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아무 대답 없으면 살아있는 걸로 간주합니다.”
진양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
그때, 진양이 뒤로 물러서기 무섭게 유령 선장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자책하듯 중얼거렸다.
“험난한 강과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왔건만. 겨우 이런 수에 당할 줄이야…….”
“역시 살아있었군.”
비록 힘이 전부 빠져버린 듯한 모습이긴 했으나 진양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기로 했다.
괜히 방심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너, 진양이지?”
예상과는 달리 말을 꺼내는 유령 선장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평온했다.
“응? 진양이 누구죠?”
진양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허허…….”
유령 선장은 기가 찬다는 듯 웃으며 조각상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진양을 바라보았다.
“무능한 부도마교 놈들이 여기까지 살아남는 것도 대단한데 날 함정에 빠트리기까지 한다?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말을 믿고 말지…….”
진양은 입술을 쭉 내밀며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젠장! 어떻게 안 거지?’
“맞아요. 전 진양이에요.”
“그럴 줄 알았다니깐. 콜록…….”
유령 선장이 힘겹게 기침을 하자 그의 얼굴에서 한 조각의 살이 떨어져 나가며 사라져버렸다.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꽤 많은 부분이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린 뒤였다.
선장은 품속에서 단약을 꺼내 집어삼켰다.
기운은 많이 안정되었으나 생기는 더욱 희미해졌다.
상처가 꽤 깊은 것으로 보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자넬 화신으로 만들진 않을 테니까…….”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양의 모습에 선장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허…….”
진양은 의미 없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까이 다가가진 않았지만.
“방금 보았던 검법 수도사의 이름은 단천궁. 나의 화신이지.”
유령 선장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나갔다.
“단천궁은 순풍이 데려왔던 녀석이다. 그 녀석, 겨우 영태 경지에서 검기화사를 익혔을 정도로 검법에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던 녀석이야. 하지만 아쉽게도 사마에게 현혹을 당하는 바람에 유령 해적단에서 방출되고 말았지. 원래대로라면 죽었어야 할 운명이지만 난 녀석을 데려왔고 화신으로 만들었어. 하지만 녀석은 또다시 사마의 꼬임에 넘어가 날 배신하고 말았지…….”
평온하게 얘기를 이어나가고 있었으나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화신이 주인을 배반한다. 왜? 믿지 못하겠는가?”
“아뇨. 믿어요.”
화신이 주인을 배신한 일, 그리고 주인을 상대로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일.
한두 번 들어본 일이 아니다.
단천궁이 다시 사마에게 넘어간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검법을 연마한 수도사들은 멍청할 정도로 순진하고 단순했다.
그런 자를 현혹하는 건 누워서 식은 죽 먹기만큼 쉬운 일이었을 테다.
“삼신술. 그런 걸 연마하는 게 아니었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목소리에선 깊은 후회가 묻어났다.
“알겠으니까 몸조리나 잘하세요. 전 이만 가볼 테니까요.”
선장 곁에 놓여있는 조각상을 두고 가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그렇다고 목숨 걸고 선장 곁으로 다가갈 순 없는 법.
‘어쩔 수 없지. 정 아쉬우면 새로 하나 파내는 수밖에.’
그렇게 진양이 떠나려는 순간.
“잠깐!”
유령 선장은 아무리 그래도 진양이 이 정도로 신중할 줄은 몰랐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선장의 부름에도 진양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재촉했다.
“난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그러니까 괜히 힘 빼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
“허…….”
유령 선장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당신과 싸웠던 게 당신의 화신이라는 것도 믿고, 당신의 화신이 꼬임에 넘어가 당신을 배반했다는 것도 믿겠습니다만. 솔직히 그건 제가 알 바가 아니죠. 게다가 당신의 화신은 아직 살아있잖아요. 괜히 여기 있다가 나한테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만…….”
“아니…….”
“아니는 무슨! 괜히 힘 빼지 말라니깐요? 어차피 들어줄 생각 없으니까.”
진양은 유령 선장이 말을 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유령 선장이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참으로 후회되는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을 먼저 베었어야 했는데.”
“아이고, 그러시구나. 그럼 계속 후회하고 계세요.”
진양의 모습은 어느덧 통로 너머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오직 진양의 목소리만 멀찍이 들려올 뿐이었다.
유령 선장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진양! 넌 여기서 나갈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지. 그러니 우리 거리를 하자고!”
유령 선장은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꾹 눌러 참으며 소리쳤다.
그는 진양이 사라진 통로를 눈이 시릴 때까지 노려보았으나 진양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