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진짜가 확실하다
“당신은 단 형과 만났다고 했으나 단 형은 당신과 만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곧 당신이 만난 사람이 무면인이라는 뜻이죠. 여기 있는 모두가 그 무면인과 만났고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어째서 당신만 그를 피해갈 수 있었단 말입니까? 솔직히 믿겨지지 않는군요.”
소마불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한마디를 더 꺼냈다.
“지금은 모두가 협력해야 할 때입니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무면인과 마주하기 전에 서로가 휘두른 칼에 맞아 죽게 될 겁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지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 앞으로 얻게 되는 모든 물건에 대한 최우선적인 선택권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소마불, 입마 상태가 되더니 철이 들었네. 이전과는 달리 시원시원해서 마음에 들어.”
고혈도희가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에게 한마디 했다.
한편 모두들 소마불의 말에 동의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만약 진양의 말이 가짜라면 진양이 무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진짜라면?
무면인에게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뜻이었다.
진양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소마불,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인상 깊게 남아있던 인물이다.
그는 일부러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진양에게 집중시켰다.
그리고 진양을 난처하게 만들어 궁지에 몰리게 만들었다.
만약 그에게 무면인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결론은 오직 한 가지.
그의 말은 모두 거짓이며, 사실은 그가 무면인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모두가 덤벼들게 될 것이었다.
그러다 죽고 난 뒤에 무면인이 아닌 것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 중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슬퍼할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진양이 진짜 본인이 맞는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소마불은 진양을 처음 보는 순간 곧장 그가 진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다른 건 몰라도 진양의 등 뒤에 있는 소녀는 결코 놓칠 리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진양의 등 뒤의 소녀가 어딘가 특별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으나, 소마불은 그걸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지난번에 만났을 땐 안경창의 등에 업힌 노인을 한눈에 알아보았었다.
이런 그가 진양의 등 뒤에 업혀있는 소녀가 심상치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다.
‘저 자식, 지금 복수하는 건가?’
“이봐요. 무슨 그런 망발을 하는 겁니까? 스스로 눈알을 뽑고 장님이 되더니, 이젠 심안(心眼)까지 뽑아버린 겁니까?”
진양은 일부러 최대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검은 천으로 가려진 소마불의 눈으로 향했다.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 형, 이만 무면인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시지요. 이건 모두의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그 방법만 얘기해 준다면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아봐요. 그렇게 복수를 하고 싶었으면 얘기하지 그랬어요.”
진양은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자, 어디 한 번 해봐요. 전 언제든 환영이니까요.”
소마불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곧바로 합장하며 주문을 외웠다.
“말해 주지 않겠다면 직접 말하도록 만드는 수밖에. 그럼 잠시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주문과 함께 소마불의 머리 뒤로 두 겹의 후광이 나타났다.
이어서 그의 몸 주위로 짙은 마기가 증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마불이 움직이자 고혈도희도 기다렸다는 듯 자수(刺繡)를 꺼냈다.
마른 시신의 형상을 한 자수였는데, 그녀가 밖으로 꺼내기 무섭게 자수 안에서 건장한 근육질의 고혈도병이 튀어나왔다.
사기와 혈기가 뒤섞이며 기분 나쁜 소리를 만들어냈다.
마치 귀곡성 비슷한 소리로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다.
단장공은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이내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수인이 맺히며 목검이 그의 앞으로 둥둥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밝은 빛을 토해냈다.
검에선 최소한의 예리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공허함이 느껴졌을 뿐이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기운이 샘솟고 있었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이 펼쳐졌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인 만큼 그 누구도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때문에 등종 종주와 대장로도 혼등을 꺼내 들며 싸울 준비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다면 그 사람이 무면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이렇게 된 이상 선택권은 없다.
무조건 전투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
첫 번째 목표는 진양이 되었다.
하지만 상관은 없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포위 공격의 목표물이 자신만 아니라면 그만이었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소마불이 있는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었다.
말 한마디로 쉽게 사람을 선동할 수 있었다는 건 곧 그가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모두 꿰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괜히 경솔히 행동했다간 모든 이들의 의심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될 바엔 모두들 그냥 소마불의 말을 믿기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죽는 건 자신들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옳고 그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던 나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사실 진양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소마불과 고혈도희는 진짜가 맞았다.
불골입마(佛骨入魔)는 매우 특별한 상태인 만큼 특별한 기운을 내뿜는다.
아무리 위장술에 능숙하다 하더라도 그 특유의 기운까지 흉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육신을 얻게 되며 영혼과 육신 간에 일어나는 부조화 역시 위장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경우는 상당히 애매했다.
무면인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모방해낼 수 있을 정도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서 가장 의심스러운 건 단장공이었다.
그는 과거 여족에게 받은 신상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곤 했으나 정말로 신상을 가지고 있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마불을 향해 다가가는 진양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졌을 무렵, 진양의 육신에서 힘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진양은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소마불의 코앞까지 다가갔다.
진양의 두 주먹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한쪽에선 검은 불꽃이 일어나며 차가운 기운을 풍겼고, 나머지 한쪽에선 번개가 일어나며 파괴의 기운을 풍겼다.
“제가 어떻게 도망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죠? 좋습니다. 그럼 직접 보여드리도록 하죠!”
기합 소리와 함께 진양의 두 주먹이 휘둘러지는 순간, 번개와 불꽃이 교차하며 동시에 여러 가지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소마불은 굳은 얼굴로 재빨리 합장하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의 머리 뒤에 있던 후광이 모여들며 백여 장 높이의 흑불(黑佛)의 허상이 나타나 허공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손바닥 허상은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손바닥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날아왔고, 크기는 점점 더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의 손바닥만 한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작게 줄어든 손바닥은 곧장 진양의 뇌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손바닥은 곧장 뇌화를 뚫고 진양의 얼굴을 향해 날아간 것이다.
진양은 무표정으로 제자리에 선 채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손바닥을 피하지도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손바닥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순간, 코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강렬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등에 업힌 소녀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양의 추측이 맞았다.
소녀는 지금껏 진양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경우에만 움직였던 것이었다.
손바닥이 진양의 얼굴을 덮치려는 순간, 진양은 소마불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빠르게 허리를 틀어 뒤로 돌았다.
손바닥이 소녀의 얼굴로 향할 수 있게 말이다.
순간 소마불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낮은 신음을 뱉었다.
그의 뒤에 나타난 흑불의 허상 역시 얼굴을 잔뜩 찌푸리는 듯싶더니 이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소멸되어버렸다.
그리고 소녀의 뒤통수로 날아간 손바닥도 뒤통수와 닿으려는 순간 피식- 하며 소멸되어버렸다.
“쿨럭……. 푸확…….”
소마불의 입에서 새까만 선혈이 분출되었다.
무려 수 장이나 말이다.
한바탕 피를 토해낸 소마불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은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있었고, 피부는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모두들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감히 진양에게 덤벼들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양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마불은 마지막 순간에 힘의 역류를 무릅쓰며 강제로 공격을 회수한 것이다.
모두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소승이 당신을 너무 얕잡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쿨럭!”
소마불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연신 피를 토해냈다.
그런 와중에도 합장을 한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재미없게 뭐 하는 거예요? 계속 공격해야죠. 마침 저도 소저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그러지 말고 계속해 봅시다. 얼른요!”
진양은 히죽거리며 그를 약 올렸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 아직도 제가 무면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로써 진양이 무면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하게 밝혀진 셈이다.
“아무도 없는 거죠? 좋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여러분을 의심할 차례군요. 일단 소마불, 제게 조금 재수 없게 굴긴 했지만, 저 사람은 무면인이 아닙니다.”
이쯤 되자 모두들 대충 눈치를 챘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소마불이 왜 저러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으로 물타기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죽기 살기로 진양에게 덤비는 소마불의 모습을 보고 나니 이젠 알 것 같았다.
소마불은 애초에 진양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때려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목적을 달성하려는 순간, 자신의 공격이 붉은 혼례복을 입은 소녀에게 닿으려는 걸 보자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공격을 회수했다.
엄청난 힘의 역류를 받을 걸 알면서도 말이다.
여기에 소마불이 스스로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들었던 일까지 함께 떠올린다면…….
여기까지 알고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진양의 등 뒤에 업혀있는 저 소녀는 비록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기운을 풍기고 있긴 했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고수라는 점은 확실했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실혼의 강자라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이고, 눈썰미가 없다고 해도 감히 덤벼들 상대가 아니라는 걸 느꼈을 것이었다.
저런 무시무시한 강자를 등에 업은 상황까지 위장술로 펼쳐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그게 무면인이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진양은 진짜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