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찾았다
이제 남은 건 단장공, 고혈도희, 그리고 등종의 종주인 정동과 등종 대장로인 정삼모.
네 명 중 과연 누가 무면인이란 말인가?
비경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 중 살아있는 사람들은 전부 이곳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무면인의 마지막 습격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무면인은 아주 높은 확률로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진양은 우선 힘의 역류로 고통스러워하는 소마불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때, 고혈도희가 갑자기 진양과 소마불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당신, 연체 수도사지? 나 연체수도사 정말 좋아하는데.”
고혈도희는 왜소한 몸집과는 달리 상당히 성숙한 모습이었다.
볼록해야 할 부분은 과할 정도로 볼록했고, 들어가야 할 부분도 그에 맞게 들어간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상당히 과감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진양을 유혹하려는 듯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기까지 했다.
진양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쭈? 이것 봐라?’
아무래도 지난번에 사용했던 그 육신도 고혈도희의 원래 육신은 아닌 듯했다.
“미안하지만 나이 많은 아줌마는 별로 관심 없어서요.”
진양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딱 잘라 거절했다.
소마불과 고혈도희는 사실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위기일발의 순간에는 적어도 서로를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직접 나서서 진양을 막아선 것이었다.
“말 한 번 엄청 서운하게 하네.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도 아직 목숨이 붙어있는 걸 보니 운이 억세게 좋은 녀석인 모양이구나.”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진양을 찢고 싶었으나,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아넘겼다.
소마불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옆에서 보고도 진양에게 덤벼들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소마불의 성격상 자신이 큰 피해를 입을 걸 알면서도 강제로 공격을 회수했다는 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는 뜻.
이렇게 되면 고혈도희도 감히 손을 쓸 수가 없게 된다.
‘비겁한 자식. 소녀를 방패막이로 쓰다니.’
한편 진양은 다소 실망한 기색이었다.
‘뭐야? 진짜 이대로 물러서는 거야?’
그녀는 난폭하고 악랄한 성질머리를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보아하니 소문은 역시 참고용으로만 적합한 듯했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질질 끌고 싶지 않아졌다.
어차피 남은 사람도 몇 없겠다.
이렇게 된 이상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단장공, 이제 남은 사람들 중에 가장 의심스러운 건 당신뿐이오. 더 이상 질질 끌 것 없이 곧바로 진위를 가려보도록 합시다!”
정삼모의 어깨에 있던 혼등이 가볍게 흔들렸고, 빛이 뿜어져 나오며 주위를 물결치듯 왜곡시켰다.
이어서 정삼모가 있는 곳부터 단장공의 발아래까지 흙길이 만들어졌다.
“혼등인로! 혼이여 돌아오라, 혼이여 돌아오라, 혼이여…….”
정삼모가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단장공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가 밟고 있는 땅을 제외한 주위가 전부 어두워졌다.
유일하게 흙길 앞쪽으로 작은 등불이 은은한 불빛을 뿜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빛에 의해 영혼이 사로잡히며 정신이 몽롱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흙길 위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장공의 미간이 열리며 한 줄의 혈흔이 그어졌다.
영혼이 심하게 흔들리며 육체를 뚫고 나오려는 것이었다.
우웅-
단장공의 앞에 떠 있던 목검이 검명과 함께 단장공을 감싸고 있던 빛무리를 베었다.
그러자 단장공의 눈은 다시 초점을 되찾았다.
이어서 곧바로 수인을 맺으며 목검을 휘두르자 앞으로 뻗어진 흙길이 두동강으로 잘려 나갔다.
단장공의 시야는 다시 회복됐다.
심각한 얼굴로 목검을 쥔 그의 손목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혼등인로, 과연 명불허전이군요.”
“단공도의 참공(斬空) 공법이군. 아마 동년배 중엔 당신을 능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정삼모도 감탄한 듯 한마디 했다.
그때, 고혈도희의 검지 손톱이 뽑혀 나오며 작은 혈흔이 생겨났다.
이어서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손톱은 혈광이 되어 정동의 얼굴을 노리며 날아갔다.
정동은 등불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순간 등불에서 기름이 튀어 오르며 혈광을 향해 날아갔다.
콰광-
푸른 화염이 일어나며 기름과 손톱은 서로의 힘에 의해 상쇄되어 소멸했다.
“이제껏 등종은 기껏해야 혼등을 만드는 곳인 줄 알았는데. 혼등으로 그런 재주까지 부리는 줄은 몰랐구나. 재미있군. 죽일 수만 있다면 바로 고혈도병으로 만들어버릴 텐데.”
뽑혀 나간 그녀의 손톱은 어느새 새로 자라있었다.
“어디 한번 해 보시던가.”
정동의 손에 들린 등불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등불의 색은 더욱 짙어져 갔다.
흔들리는 작은 불꽃은 어느새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렇게 남은 네 사람은 서로를 향해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이들의 목적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
상대가 무면인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한편 이를 구경하던 진양은 힐끔 소마불을 바라보았다.
그는 힘의 역류로 인해 입은 내상을 치유하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을 두 명의 고혈도병이 지키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소마불을 처리해버리고 싶긴 하지만 괜히 시선을 끌 수도 있었기에 일단은 참기로 했다.
진양의 시선은 다른 구석으로 향했다.
그곳엔 등종 삼인방 중 한 사람인 이름 모를 중년인의 시신이 있었다.
싸늘한 황야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도 가련한데, 관 하나 없이 가야 하다니.
‘그렇다면 이 몸이 자비를 베풀어 주는 수밖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놀라움이 그대로 얼굴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적지 않게 놀란 듯했다.
정황상 무면인의 짓이 분명했다.
진양은 금사난목으로 만든 관을 꺼내 한쪽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중년인에게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응?”
진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능력을 사용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보통 두 가지 경우다.
첫 번째, 능력을 사용한 대상이 완전한 시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완전한 시체란, 시간이나 다른 이유에 의해 시신에 남은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남은 껍데기를 뜻한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놀란 것이었다.
무엇보다 현재 눈앞에 있는 이 시신, 분명 죽은 지 얼마 안 된 게 분명했다.
두 번째,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경우다.
습득 능력은 시신에 충분한 가치가 있어야만 발동했다.
건질 것도 없는데 능력이 발동할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역시 아닌 듯했다.
아무 능력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다못해 요리법 정도는 나오는데, 비경 깊숙한 곳까지 살아 들어올 만한 능력자가 아무것도 뱉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두 가지 이유가 모두 아니라면 남은 건 하나.
상대가 아직 죽지 않았을 경우다.
하지만 그의 몸에 손을 댔을 때, 명백한 죽음의 기운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미 사후경직이 진행 중이었고, 시반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껴지긴 했으나 당장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진양은 조심스럽게 시신을 관에 넣은 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등종 사람들에게 데려가라고 해야겠어. 아무리 그래도 객지에서 쓸쓸히 죽게 놔둘 순 없는 법이니까.”
이어서 관뚜껑을 덮으려는 순간,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아직 한 가지 가능성이 더 남아있다.
무면인.
현재 관 안에 누워있는 시신이 무면인일 가능성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가만히 있기만 하는 거지? 혹시 다른 속셈이라도 있는 건가?’
진양은 문득 자신의 등 뒤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 설마 소녀 때문인가?’
정확히 알 방법은 없었지만, 지금으로선 이쪽이 가장 유력했다.
확실한 건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무면인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면 위장술을 펼쳤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가 시신으로 위장했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만약 이 시신이 정말로 무면인이라면?
누구든 일단 상대가 살아있는 존재라면 전부 의심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누워있는 시신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모두가 습격을 당했다면 이들 무리 중에 당연히 가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결국엔 어떻게 되겠는가?
진양은 한참 싸움을 벌이고 있는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상대를 간보려는 것이 전부였으나, 어느새 전투는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고혈도희는 어느덧 광역으로 피해를 주는 공법을 시전하며 자신의 상대인 정동뿐만 아니라 단장공과 정삼모까지 함께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전투는 어느덧 네 사람의 혼전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네 사람 모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될 것이었다.
거기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있는 소마불, 그리고 혼자 남은 진양까지.
진양은 자신의 추측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무면인은 아무 이유 없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사냥감들이 힘이 빠질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위장한 채 습격을 가한 것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린 것일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면인에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이곳에 전멸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이렇게 된 이상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진양은 결단을 내린 듯 소마불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낀 소마불이 천천히 눈을 뜨며 진양의 눈을 마주쳤다.
진양은 아무 말 없이 시신을 넣어둔 관을 가리키며 자신의 얼굴을 한 번 쓸어 보였다.
소마불은 ‘그게 무슨 뜻입니까?’라는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금방 진양의 뜻을 알아들은 듯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럴 리 없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관에서는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도희, 혹시 흑혈고 남은 거 없어? 있으면 좀 나눠 줘.”
소마불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일단 이 망할 녀석부터 처리하고!”
전투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혈도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도희! 떠날 때 했던 얘기는 벌써 잊은 거냐!”
소마불이 소리쳤다.
그 순간, 고혈도희는 굳은 표정으로 재빨리 전투에서 벗어났다.
종문을 떠날 때, 그녀의 스승은 위급한 순간엔 무조건 소마불의 말을 따르라고 했었던 것이었다.
“나도 이젠 별로 없다고! 그리고 이제 막 육신을 바꿨기 때문에 나도 써야 한다고.”
고혈도희의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했다.
‘뭘 이런 걸로 발끈하는 거야?’라는 얼굴로 소마불을 쳐다보았다.
소마불은 관을 가리키며 진양이 했던 것과 같은 손짓을 했다.
고혈도희는 비록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듣진 못했으나 순순히 전투를 멈추었다.
갑작스럽게 고혈도희가 전장에서 빠져나가자 남은 세 사람도 서로 조심스럽게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