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색시와 함께 도망 나왔네?
소마불과 고혈도희가 가장 먼저 나서며 안으로 들어가자 뒤이어 다른 이들도 안으로 향했다.
진양은 끝까지 기다렸다가 가장 마지막에 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갑자기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 중 살아있는 사람은 전부 이곳에 모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딘가 이상했다.
이어서 한 걸음 더 안쪽으로 옮기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몸은 중력을 잃은 듯 붕 뜨는 느낌이 들었고, 이성도 깊은 공허 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땅을 밟는 느낌이 드는 순간,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안경창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는 분명 도궁 아래에 혼자 남으며 이곳의 기운을 양분 삼아 법보를 강화시키겠다고 했었다.
분명 이곳 안쪽에는 법보 강화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훨씬 더 좋은 것들이 많이 있을 텐데, 어째서 그는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은 것이란 말인가?
설마 이미 죽은 걸까?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이제 막 산을 빠져나와 강호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풋내기의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해도 실력이 약한 건 아니었다.
단장공조차 살아남았는데, 어찌 그가 죽을 수 있겠는가?
이제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 짙게 깔렸던 어둠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눈앞은 희미했다.
달이 뜨지 않은 어두운 밤, 속이 훤하게 비치는 천을 눈에 두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신선한 보리 향기, 그리고 바람에 의해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똑똑히 느껴졌다.
갈대가 흔들리며 어깨를 스치는 느낌도 너무나도 생생했다.
희미했던 눈앞이 점점 맑아지기 시작했다.
허상에서 진실로 변하듯 말이다.
주위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퍼져있는 보리밭이 깔려있었다.
바람이 한 번씩 불어올 때마다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보리가 파도치듯 넘실거리며 흔들거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신선한 보리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진양은 천천히 호흡한 뒤 손을 뻗어 보리를 꺾었다.
그다음 입에 넣고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드럽고 달콤한 영력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환각은 아니군. 아직 완전히 여물지도 않았는데 영력이 흘러넘칠 정도라니…….”
진양은 중얼거리며 연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도 보리밭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영맥(靈麥, 영력을 품은 보리)은 보통 줄기 하나에 열여덟 알 정도만 달려도 꽤 많이 달린 편에 속한다.
그런데, 여기 열려있는 영맥은 줄기 하나에 최소 팔십 알 정도는 달려있었다.
게다가 크기 역시 보통의 영맥보다 두 배 가까이 되었다.
그 말은 곧 이곳에 펼쳐진 영전의 등급이 아무리 못해도 오 품은 된다는 뜻이다.
허리를 굽혀 흙을 어루만졌다.
까만빛이 감도는 비옥한 토지였다.
어찌나 비옥한 토지인지 쥐어짜면 기름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영기 역시 상당히 풍부했다.
“돈지랄도 이런 돈지랄이 따로 없군. 오품 짜리 영전에 보리를 심다니…….”
머리 위로 해나 달, 별이 떠 있진 않았으나, 어디선가 뿜어져 나온 빛이 사방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도무지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진양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정면으로 삼고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석탑의 첫 번째 층에 보리밭이 깔려있을 줄이야.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무시무시한 묘지기, 사기로 가득한 천지, 위험한 기운.
많은 것들을 예상했으나 그런 것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저나 다들 어디로 간 거지?’
한 시진 정도를 걷고 나서야 마침내 보리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보리밭에서 벗어나자 이번엔 옥도(玉稻) 밭이 나왔다.
보리밭과 마찬가지로 전부 하나같이 굵직한 열매가 열려있었고, 병충해의 피해는 조금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자 이번엔 짙은 영기를 품고 있는 식물들과 영약이 잔뜩 심어진 밭이 나왔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인삼만 해도 전부 아무리 못해도 삼백 년에서 사백 년 정도는 묵은 것들 뿐이었다.
심지어 한 인삼밭에선 무려 팔천 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삼을 찾아냈는데, 이미 인간의 형상을 완벽하게 모두 갖춘 자삼이었다.
그러나 얼굴까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아 아직 이성을 갖게 된 건 아닌 듯했다.
“여긴 장해도군의 약초밭인 건가?”
진양은 오래된 영약 몇 가지만 채집했을 뿐, 나머지는 손도 대지 않았다.
욕심이 없었던 게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이곳에서 썩어도 다 채집하지 못할 만큼 많은 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백 리 넘게 뻗어진 약초밭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다시 길을 떠난 지 어느덧 하루가 지났다.
질리도록 뻗은 밭은 어느덧 사라졌다.
대신 조용히 흐르고 있는 시냇물이 나타났다.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 하류로 향하니 어느덧 이십여 장 정도 되는 넓이의 강이 나타났다.
물은 깊지 않았으며 흐르는 속도는 수면이 흔들리는 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렸다.
진양은 강을 따라 걸었다.
잠시 후, 물가에 묶여있는 대나무 뗏목과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나무에 세워진 대나무 상앗대가 보였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흔적을 발견하진 못했다.
대나무 뗏목이 매우 깔끔한 것으로 보아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것인 듯했다.
그 말은 곧 이곳에 누군가 있다는 뜻.
조용히 묶여있는 줄을 풀고 뗏목에 올랐다.
굳이 노를 젓거나 상앗대로 밀 필요 없이 뗏목은 흐르는 물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주위는 고요했다.
새 지저귀는 소리, 벌레 우는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뗏목에 서서 주위를 바라보는 진양의 표정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처음 이곳을 볼 때만 해도 마음속의 번뇌와 잡념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은 맑은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갈수록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기름이 흐를 만큼 비옥한 이 땅에, 각종 귀한 영약이 가득 자라있는 이 땅에, 어째서 살아있는 벌레나 동물이 한 마리도 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강물은 강바닥에서 너풀거리고 있는 수초의 잎사귀를 셀 수 있을 만큼 맑았다.
그러나 물고기는커녕 송사리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진양은 뗏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흐르는 물을 따라 떠내려간 지 어느덧 삼 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강폭은 이전에 비해 훨씬 넓어져 있었고, 가장자리는 울퉁불퉁하게 변해있었다.
울퉁불퉁한 가장자리의 땅 위에는 수많은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진양은 조용히 앞을 바라보기만 할 뿐, 뗏목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반나절 정도가 또 지나자 이번엔 갈림길이 나타났다.
뗏목은 이상하게도 넓은 쪽이 아닌 삼 장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좁은 폭의 물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물길을 따라 또다시 수 시진을 흘러갔다.
그제야 물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길의 끝엔 오 장 정도 되는 높이의 동굴이 있었다.
물살은 여전히 잔잔하고 느릿했다.
지하로 이어지는 폭포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동굴 안으로 들어선 지 일 각도 채 되지 않아 어딘가를 통해 들어온 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자세히 보니 물길과 이어진 출구에서 들어온 빛이었다.
계속해서 물이 흐르는 곳을 따라 반대편 출구로 빠져나왔다.
동굴을 빠져나오자 바깥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멀리 연기가 하늘 높이 피어오르는 모습, 그리고 희미하게 마을의 모습도 보였다.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보니 물 위에 떠 있는 어선의 모습이 보였다.
여러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도 들렸다.
월척이라도 잡은 건지 환호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생생하게 들릴 정도였다.
고개를 숙여 물속을 바라보니 꽤 많은 물고기가 있었다.
“멍멍!”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엔 다소 마른 한 마리의 검은 개가 진양을 바라보며 짖고 있었다.
그때, 사납게 짖는 검은 개의 뒤로 한 나이 든 농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의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고, 피부는 새까맸다.
전형적인 나이 든 농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진양의 등에 업힌 소녀에게 향하는 순간, 그는 갑자기 활짝 웃으며 진양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진양은 그를 자세히 살폈다.
누가 봐도 평범한 농부의 모습이었다.
양손에는 밭일하다 온 흔적이 가득했다.
‘뭐야? 왜 저렇게 날 반기는 거지?’
잠시 뒤, 강가로 올라온 진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르신, 잠시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오랜만에 사람이 찾아온 것도 모자라 색시까지 데려오다니. 한데, 행색을 보아하니 도망쳐 나온 모양이구만.”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장인어른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색시를 데리고 도망쳐 나온 것으로 오해한 것이었다.
“네?”
진양은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 잘 왔네. 오늘 우리 마을에서도 경사가 있어서 말일세. 왕이네 아들이 장가를 가거든. 새색시가 어찌나 예쁘던지. 자, 함께 갑세. 가서 술이라도 한잔하지. 마침 마을 사람들도 모두 모일 걸세. 왕이 그 친구 용어(龍魚)를 붙잡아온다고 하더니. 잡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어.”
“아까 오다 보니 어선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었습니다. 아마도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용어를 잡은 게 아닐까 싶네요.”
“하하하, 그럼 어서 가보자고. 용어라니! 자네, 먹을 복이 있구만.”
노인은 진양이 뭐라고 할 틈도 없이 그를 마을로 데려갔다.
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사방이 초롱과 오색천으로 장식되어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의 탁자가 줄을 맞춰 놓여져 있었다.
진양을 발견하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자 노인이 대신 나서서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진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인어른의 횡포를 이기지 못하고 새색시를 납치하여 도망쳐 나온 용감한 신랑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진양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마을이었으나 이곳은 검은 석탑 내부에 있는 마을이다.
보통 마을이었다면 별다른 생각이 없었겠지만, 이곳에선 작은 것 하나조차 이상하게 여겨졌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들에겐 영력이라곤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마칠 틈도 없이 진양은 곧장 노인의 손에 이끌려 한쪽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게 되었다.
그 누구도 왜 새색시를 계속해서 업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매우 정상적이라는 것처럼 행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