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31
331화 살릴 수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렇게 끝낼 순 없지.’
진양은 탑 하층부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예상했던 대로 능력은 발동되지 않았다.
이어서 진원을 뿜어내 탑 전체를 휘감았다. 그러자 능력이 발동했다.
습득부터 연화까지, 모든 것이 단숨에 끝났다.
거대한 탑은 진양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자 곧바로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진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것을 챙겼다.
‘조금이라도 더 건져가지 못해 아쉬웠는데. 막판에 이런 횡재라니.’
한편 왕계현은 아직 탑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고혈도희를 세뇌시킨 건 어쩌면 스스로 무덤을 판 행위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왕계현이 떠난다고 하더라도 고혈도희가 그를 떠나도록 놔둘 리 있겠는가?
어쨌든 이젠 진양이 탑을 가지고 나가게 되었으니 떠날 수 있게 된 셈이나 다름없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부서진 하늘 너머로 허공의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한 가지 더 유감스러운 일이 남아있었다.
바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소녀, 등 뒤에 업혀있던 그 소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쉽군. 밖으로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대로 얼굴도 못 보고 나가야 할 듯했다.
“소저, 한 가지만 확실하게 합시다. 이건 제가 당신을 버리고 가는 게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도망친 겁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제 탓을 하시면 안 돼요. 전 그래도 나름 끝까지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고요.”
하늘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치던 진양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며 새파랗게 질렸다.
허공 사이로 무언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붉은 옷을 입고 있고, 어찌 된 일인지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면사포를 쓰고 있는 여인.
바로 진양의 등 뒤에 업혀있던 그 소녀였던 것이다.
콰광-!
굉음과 함께 거대한 산봉우리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폐허에 처박힌 그녀를 꺼내주었다.
뼈는 어깨를 뚫고 나왔고, 사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있고, 배를 뚫고 나온 갈비뼈까지.
상당히 처참하고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폐허에서 빠져나오기 무섭게 아무 말 없이 폴짝 진양의 등 뒤에 업혔다.
“허공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제 목소리 듣고 여기까지 찾아온 거죠?”
그녀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느낌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온몸의 뼈가 박살 나버린 것처럼 흐물흐물 해져있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뼈를 뚫고 들어올 것만 같던 한기도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있었다.
아무래도 힘을 모두 소모해버린 듯했다.
상처까지 심한 그녀를 이곳에 버리고 간다면 비경이 박살 나는 순간 함께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어휴, 난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깐. 어쩔 수 없지. 그럼 데리고 나가야지. 그렇다고 죽을 걸 알면서도 여기 버려두고 갈 순 없잖아.”
진양은 그녀가 듣든 말든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무 요괴 영감님이 그랬거든요. 이 비경은 대세계에 붙어있는 비경이라고. 그래서 저기 보이는 저 입구가 쓸 수 없게 되더라도 상관은 없어요. 제게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법보가 있거든요. 근데, 당신까지 같이 데리고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미리 말해줬으니까 만약 당신을 같이 데리고 나가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날 원망하면 안 됩니다. 알겠죠? 난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요.”
진양은 손바닥만 한 작은 나무 조각을 꺼내 들었다.
베를 짤 때 쓰는 북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곳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예전에 얻은 일월성사, 어디 있든 미리 지정해둔 안전한 장소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물건이다.
지금까지는 마땅히 쓸 곳이 없어 가지고 있기만 했지만, 이제는 쓸 때가 온 것이다.
소마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도 당황하지 않았던 건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나무 정령은 다시 진양의 간으로 들어가 있으면 되지만, 등에 업힌 소녀까지 데리고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어쩔 수 없지. 직접 부딪쳐보는 수밖에.’
진양의 손에 들린 나무토막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진양과 소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진양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소마불, 겨우 그딴 허술한 수로 날 엿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냐? 꿈도 꾸지 마라. 너,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진양은 빛에 휩싸인 채 하늘로 솟구쳤고, 이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 * *
잔잔한 바다 위, 새까만 배 한 척이 조용히 떠 있었다.
갑판 위에는 뒤룩뒤룩 살이 찐 새까만 강아지가 혓바닥을 쭉 내민 채 늘어져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옆으로 새까만 당나귀도 강아지와 같이 축 늘어진 채 혀를 쭉 내밀고 있었다.
이 외에 험악하게 생긴 선원들이 갑판을 오가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새하얀 옷을 입고 검을 찬 청년, 백의는 한 손으로는 선실을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남소연을 붙잡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소연 소저, 겨우 며칠이나 지났는데 벌써 이렇게 초췌해진 겁니까? 이러다가 정말로 큰일 날 겁니다. 자, 제가 좋은 공법을 하나 전수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만 배우면 앞으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며 살아갈 필요 없을 겁니다.”
“흥! 당신 같은 인간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거든요. 저리 비켜요. 그놈의 쌍수 공법 따위엔 관심 없으니까.”
남소연은 콧방귀를 뀌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깡마른 그의 팔다리로는 그를 밀쳐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소연 소저, 난 정말로 당신이 안타까워서 그러는 겁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믿어주시겠습니까?”
“웃기고 있네. 내가 남정네들에 대해 잘 모르는 줄 아나 보군요. 이 배에 선장님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인간 하나 없다는 건 이미 진작 파악했다고요. 그러니까 당장 이거 놔요!”
바로 그때, 하늘 위로 별똥별이 반짝였다.
남소연이 그것을 가리켰다.
“좋아요. 가서 저 별을 따다 주면 당신을 믿도록 하죠.”
백의는 그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겨우 천외운성(天外隕星, 별똥별) 따위.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팟-
백의는 곧바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별똥별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이거 참, 하늘도 나를 돕는구만.”
그가 검을 뽑자 화려한 검화(劍花)가 피어올랐다.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검화는 별똥별과 부딪쳤다.
바로 그 순간, 별똥별 속에서 진양의 등에 업힌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는 검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곤 곧바로 오른손을 쭉 뻗었다.
콰광-!
화려한 빛을 뿜어내던 검화는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째서 이런 일이…….”
백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멀리서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힘이 날아와 남자를 덮쳤다.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힘에 남자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곧바로 검을 들어 올려 앞을 막았다.
콰과광-!
힘과 부딪치는 순간 남자가 입고 있던 옷은, 심지어 속옷까지도 전부 가루가 되어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는 잔상을 남기곤 바닷속으로 처박혀버렸다.
한편 빠른 속도로 갑판 바로 위까지 날아온 별똥별은 갑작스럽게 속도가 줄어들며 천천히 갑판 위로 착지했다.
“이야, 백의! 어떻게 내가 온 줄 알고 마중까지 나온 거야? 이거 감동인걸.”
진양은 흡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나 가서 바다로 떨어진 녀석 좀 주워 와. 살았으면 데려오고, 죽었으면 관에 잘 수습해 주고.”
참으로 간덩이가 부은 녀석이 아닐 수가 없었다.
소녀는 비록 중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가진 무시무시한 힘은 여전했다.
그런 소녀에게 겁대가리 없이 검화를 날리다니.
“선장님, 오셨군요.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남소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진양의 팔에 매달렸다.
그러다 문득 진양의 등에 업힌 소녀를 발견했다.
“선장님, 이 소저는 누굽니까? 장환 언니가 선장님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여자를 데려오시면 어떡해요?”
“모르는 척하긴. 너, 이 사람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에이, 그냥 반가워서 농담 한마디 한 건데요. 그렇게까지 정색하실 건 없잖아요.”
새로운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남소연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개만 빼꼼히 선실 밖으로 내밀고 있는 소장환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됐고, 뭐가 보이는지 얘기나 해봐.”
남소연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상대의 수명과 관련된 것들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전까지는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수명이 흐르는 걸 막아내고 있었지만, 이젠 다시 수명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길어야 한 달이면 수명이 다할 거예요.”
“대인, 오셨습니까?”
소장환이 다가와 진양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제게 맡겨주시지요.”
“아니야.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람이라 괜히 다칠 수도 있어. 내가 할게.”
그때, 바다에 떨어진 백의를 주우러 갔던 선원이 돌아왔다.
그는 온몸의 뼈가 박살 나 있었고, 정신은 이미 완전히 나가 있었다.
몸에서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생기만 아니었다면 진작 관에 수습해 주었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
“가서 단약을 먹이고 쉴 수 있게 해줘. 당장 죽진 않을 테니까 걱정할 필욘 없고.”
진양은 한마디를 남기고 소녀를 업은 채 선실로 향했다.
그러다 한 가지 잊은 게 있는 듯 뒤돌아보며 말했다.
“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거야. 절대로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밖에 알려선 안 돼. 만약 이 소식을 밖으로 흘렸다간 누구든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조심해.”
선장실로 온 진양은 침대에 소녀를 눕혔다.
그녀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건 진양도 알고 있었다.
물론 온몸의 뼈가 성하지 않긴 했지만, 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겨우 그 정도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녀의 수명이 다시 소모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안정적이던 생기가 줄어가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는 아니었으나 억제하는 건 매우 힘들었다.
진양은 기이과 덩굴이 든 상자를 꺼냈다.
기이과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소연아, 기이과를 먹이면 살릴 수 있을까?”
남소연은 넋 나간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기이과를 향해 손을 뻗었다.
탁-!
진양이 남소연의 팔을 잡았다.
“덩굴에게 생기를 빨아 먹히고 싶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걸.”
“앗, 저도 모르게 그만…….”
“됐고 묻는 말이나 대답해 줘. 살릴 수 있는 거야?”
“살릴 수야 있겠죠. 이 정도 힘을 품고 있는 열매라면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은 수명 삼천 년이 늘어날 겁니다. 여기 누워계신 소저께 사용하신다면 아무리 못 해도 천 년은 늘어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