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36
336화 이만 편히 가
소마불은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해수면 위를 바라보았다.
하늘 위로 단낭이 나타났다.
“소마불, 이만 포기해라. 이번에는 나와 같은 경지를 가진 고수 세 사람이 방원 삼천 리 내의 모든 곳을 감시하고 있다. 설령 다시 천마사신 공법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상태로 봐선 더 이상 천마사신 공법을 사용하는 것도 무리겠지만.
그러니 이만 포기하고 장해비전을 내놓거라. 그렇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소마불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은연중에 기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단낭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말씀하신 대로 더 이상 도망치는 건 무리일 듯합니다. 하지만 소승에겐 아직 힘이 남아있습니다. 적어도 당신들 중 한 사람 정도는 무리 없이 저승길 길동무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죠.”
“소마불,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그때, 소마불의 입에서 혈도가 튀어나왔고, 두 눈은 새까맣게 변하며 몸 주위로 마기를 발산했다.
“이신사마(以身飼魔)!”
혈도가 휘둘러지며 허벅지만 남은 소마불의 다리를 베었다.
떨어져나온 살점은 혈도가 모두 삼켜버렸고, 혈도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소마불이 빠른 속도로 단낭을 향해 달려 나갔다.
단낭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이 전방의 공간을 두 조각으로 갈라버렸다.
그러나 소마불은 피하지 않았다.
단낭의 단공(斷空) 공법이 왼쪽 어깨부터 쓸고 지나가며 소마불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소마불의 몸은 경직된 상태로 바다 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수중에 들려있던 혈도가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갔고, 단낭의 방어와 단공 공법 따위는 모두 무시한 채 단낭의 머리를 뚫고 들어갔다.
“화, 화혈마도(化血魔刀)가 어떻게 사용자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단낭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혈도에 서려 있던 수많은 원혼들이 갈라진 단낭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반으로 갈라진 그의 영혼을 사정없이 뜯어 먹기 시작했다.
풍덩-!
껍데기만 남은 단낭의 시신은 바다에 떨어져 버렸고, 혈도는 다시 소마불의 근처로 돌아왔다.
혈도는 계속해서 소마불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혈도에 서려 있는 원혼들이 귀곡성을 내지르며 소마불의 체내로 달려 들어가려 했으나, 새까만 빛무리에 의해 저지당했다.
“사용자가 마도에게 반서(反噬)의 기회를 준다면 손을 벗어날 수 있게 되죠.”
그때, 두 개의 빛이 날아와 허공에서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다.
두 사람 모두 신문 경지의 고수였다.
대략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놀란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단낭이 순식간에 당할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칠 힘은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빨리 죽이십시오. 하나, 한 가지 명심하십시오. 소승의 마도는 이미 반서된 상태입니다. 누구든 절 죽이신다면 곧바로 화혈마도에 의해 저주를 받게 될 것이고, 곧이어 이곳에 도착할 우리 부도마교의 고수께 죽게 될 겁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종문까지도 멸문을 당하게 될 겁니다.”
두 고수는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선뜻 나서진 못했다.
소마불의 협박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단낭을 베어버릴 정도의 인물이라면 분명 아직 남아있는 숨겨둔 수단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소마불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아예 대놓고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세 시진이 지났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상의했으나 마땅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쯤 되자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참 아래의 실력을 가진 자 앞에서, 그것도 중상을 입은 자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쩔쩔매는 꼴이라니.
자존심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장해비전을 살펴보고 싶으신 거라면 흔쾌히 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덧 눈을 뜬 소마불이 세 뼘 정도 되는 크기로 줄어져 있는 석탑을 꺼냈다.
그리고 멀리 있는 힘껏 던져버렸다.
석탑은 그렇게 빛이 되어 멀리 날아가 버렸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빛이 되어 그것을 따라 날아가 버렸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소마불이 아닌 장해비전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사라지고 나자 소마불은 대황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한 줄기의 검은 빛이 날아와 소마불 옆에 착지했다.
역삼각형의 눈, 툭 튀어나온 이마, 그리고 가늠할 수 없는 깊은 기운까지.
심상치 않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소마불이 장해비전을 던져버린 곳을 가리켰다.
“전 괜찮습니다. 비전 보책이 두 신문 고수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제 막 저쪽으로 갔으니 충분히 쫓아갈 수 있을 겁니다.”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바로 그곳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소마불은 다시 혈도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소마불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누군가 마치 평지를 걷듯 파도를 밟으며 다가왔다.
“대머리, 오랜만이야.”
“당신이었군요.”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를 보자마자 이 모든 것이 그의 짓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론이지. 그럼 날 한 방 먹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소승의 화혈마도는 반서된 상태입니다. 만약 소승을 죽이신다면 혈도에 의해 저주를 받게 될 것이고, 당신은 물론 당신의 종문까지 전부 우리 부도마교의 고수에 의해 멸문당하게 될 겁니다.”
소마불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 또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방금 왔던 그 사람 말하는 거야? 안타깝지만 그 사람이 돌아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쫓아간 사람은 보책을 들고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 시간도 조금 남으니 천천히 대화나 해 보자고.
아마도 보책에 대한 비밀을 지키려고 날 살인멸구할 생각이었나 본데, 사실 난 애초부터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얘기할 생각이 없었거든. 겨우 그까짓 일로 이 몸을 엿 먹여?”
그러나 진양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 입장에서 보면 그게 제일 안전한 거니까. 물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어.”
“마교의 원한을 살 수도 있는데, 전혀 두렵지 않은 겁니까?”
소마불이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전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쓸데없이 길게 말하고 싶진 않았는데 정 궁금하다면 설명해 주도록 하지.
너, 내가 뭐하던 사람인 줄 알아? 난 무려 시신 수습 일을 하던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어째서 시신을 불로 태워버리지 않고 굳이 거금을 들여서까지 나에게 수습해 달라고 부탁했을까?
왜냐하면 내가 처리한 시신은 이제껏 단 한 번도 흔적을 남긴 적이 없거든. 네가 방금 말한 그 저주도 그렇고, 다른 흔적을 남기는 공법도 예외는 아니지.
그래도 영광스러운 줄 알아. 마지막까지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니까.”
진양은 작은 비검을 꺼내 소마불의 심장을 찔렀다.
심장을 찌른 비검에서 검기가 흘러나왔고, 검기는 혈맥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그의 생기를 끊어놓기 시작했다.
소마불은 멍한 얼굴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겁 없이 부도마교와 척지는 일을 벌이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눈으로 바라볼 거 없어. 사람들은 모두들 내가 아직 비경 안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러니 부도마교 녀석들도 네 대신 복수해 줄 순 없을 거야. 그러니까 이만 꿈은 깨도록 해.”
“아무래도 소승이 진 것 같군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소마불은 완전히 숨이 끊어졌다.
그와 동시에 화혈마도는 진양에게 저주를 걸려고 했다.
진양은 소마불의 머리를 만지며 습득 능력을 사용했다.
빛이 뿜어져 나오며 화혈마도는 소멸했고, 진양의 손에는 모두 세 개의 광구가 들려있었다.
하나는 황금색이었고, 나머지 두 개는 보라색이었다.
진양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야! 대머리 이 녀석, 제법이잖아! 황금색 광구라니. 설마 마불일맥의 보도마전?”
진양은 두근거리며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실망스럽게도 기능서는 아니었다.
까만 금속으로 만들어진 해골이 한 구 들어있었다.
진양은 그것을 연화시켰다.
잠시 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불골금신(佛骨金身)?’
소마불이 불골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습득 능력을 통해 얻은 건 불골금신이었다.
이건 불골과는 큰 차이가 있는 물건이었다.
불골금신은 불도의 공법을 극한의 경지까지 수련하고 나서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소마불의 불골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상당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이 뒤로 더욱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양은 관을 꺼내 불골금신을 그곳에 넣고 단단히 밀봉한 뒤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다음 남은 두 개의 보라색 광구를 살폈다.
하나는 위력이 강한 만큼 대가로 무시무시한 천마사신 공법이었다.
희생하는 부위가 중요한 부위일수록 그 위력은 더욱 강력해지는 공법인데, 엄청난 속도는 물론이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효과 하나는 확실한 공법이었다.
또 다른 광구는 그가 사용하던 혈도였다.
혈도의 본명은 화혈마도.
심장의 피로 만들어낸 마도로 적을 베는 순간 상대의 정혈과 영혼을 빨아먹는데, 이렇게 빨아먹은 정혈과 영혼을 양분으로 성장하며 위력이 더욱 강력해진다.
수련 방법은 상당히 단순하며 강해지는 위력의 한계 역시 끝이 없었고, 시전 방법 또한 상당히 간단했다.
그저 검을 뽑아 사람을 베어버리는 그만이었다.
혈도는 실존하는 듯 허상인 듯한 형태를 갖추며, 그 어떠한 공법도 무시할 수 있었다.
반드시 사용자가 직접 휘둘러야 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긴 하나, 앞서 말한 장점 하나로 모든 단점을 메꾸고도 남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화혈마도는 쉽게 반서 상태에 빠진다.
사람을 베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반서 상태에 빠진다고 봐도 무리가 아닐 정도였다.
혈도는 소마불이 만들어낸 것이다.
소마불이 죽으며 혈도는 법보와 같은 물건으로 변했고, 강제로 연화되며 우선은 잠잠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모든 일은 만일이라는 게 있는 법.
자주 사용하다 보면 혈도의 위력이 높아지며 갑자기 또다시 반서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진양은 혈도에서 겹겹이 봉인을 걸은 뒤 철로 만든 상자에 넣고 밀봉하여 주머니에 넣었다.
“소마불, 그럼 이만 편히 가.”
진양은 관을 꺼내 그의 시신을 수습해 주었다.
손을 대는 순간 체내에 아직 온전히 남아있는 뼈가 느껴졌다.
상처는 이미 모두 아물었고, 뼈는 평범한 백골이 되어있었다.
진양의 추측은 이제 확신이 되었다.
소마불은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불골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