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39
439화 아니라니깐요?
“변 공자님, 좋은 술을 대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마시겠습니다. 자, 한 잔 하시지요.”
진양은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향긋한 술의 향기가 입안에 맴도는 것이 썩 훌륭했다.
그러나 진양이 술잔을 내려놓은 뒤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변소인은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남경에선 남에게 술을 권하기만 하고 자신은 마시지 않는 게 관례인가 봅니다. 아니면, 남경의 관례가 아니라 신전후부의 전통이 그런 것입니까?”
진양은 여유로운 얼굴로 상대의 속을 긁었다.
이건 변소인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다.
후부의 체면도 함께 걸려있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여기서 술을 마시지 못하고 물러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했다.
아마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신전후부의 변소인은 술도 못 마시는 약골이다’라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었다.
솔직히 다른 이들이 뭐라고 떠들어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소식이 아버지와 세자의 귀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다.
아마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기랄!’
변소인은 이를 꽉 악문 채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술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기 무섭게 변소인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몸 밖으로 흘러나온 진원은 어지럽게 날뛰고 있었다.
마치 맹독에 중독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주량이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겨우 한 잔에 취해버리시다니.”
진양은 한 잔 더 따라 마신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변소인과 함께 온 자들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멀뚱멀뚱 쓰러져있는 변소인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건 말건, 진양은 술을 한 잔 더 따라 마셨다.
황금빛 술기운이 주위를 맴돌자 술 냄새가 한층 더 강해졌다.
한편 변소인은 힘없이 움찔거리기만 할 뿐.
심지어 술기운이 강해지며 이러한 움직임도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고, 기운도 점점 미약해지기 시작했다.
진양은 차가운 눈빛으로 술독에 잠식되어가는 변소인을 바라보며 또 한 잔의 술을 들이켰다.
“지, 진 사숙!”
보다 못한 안기휘가 그를 불렀다.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뒤늦게 진양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이다.
진양의 의도는 간단히 술 한 잔 마시려는 게 아니었다.
상대를 술독에 빠트려 골로 보내버리려는 것이 진짜 의도였던 것이었다.
강력한 술독에 의해 변소인의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등불처럼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그의 생기가 점점 더 약해지기 시작하자 함께 온 자들도 당황한 듯 허둥대며 그를 데리고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힘으로는 주위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술기운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감히 조금이라도 다가갔다간 곧바로 취해서 풀썩- 하고 쓰러져버렸다.
그러나 진양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네 번째 잔을 따라 마셨다.
그때, 갑자기 창밖에서 어느 한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노인의 몸 표면에는 은은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강렬한 술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가 변소인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그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주위에 자욱하던 술기운이 점점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고, 안기휘는 그제야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다.
“사숙님…….”
“안 형, 뭘 그리 울상인 겁니까? 제가 억지로 마시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먼저 마시자고 달려든 것 아닙니까? 단지 본인의 주량이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뿐인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진양은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와 함께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한마디 했다.
처음 왔을 때는 이곳의 규칙에 대해 잘 몰랐으나, 며칠을 지내다 보니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의 가장 큰 단점, 바로 ‘체면’이었다.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체면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 구지신후같이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자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는 진양 역시 마찬가지였다.
체면? 자존심?
그딴 건 이미 개나 줘버린 지 오래다.
신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혼란스러운 곳에 살다 온 진양이었다.
그런 곳에선 체면 따위를 챙기는 사람만큼 일찍 죽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변소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멍청했다.
그놈의 체면이 뭐길래 무모하게 술을 다 받아마신단 말인가?
변소인을 데려간 노인은 아마도 구지신후가 붙여 둔 비밀 호위무사였을 것이다.
목숨에 해가 갈 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다.
진양은 추후의 일에 대해선 일절 걱정이 되지 않았다.
본인이 먼저 객기를 부리며 덤벼들었다가 능력 밖의 상황을 만나 저런 꼴이 된 건데, 누굴 탓한단 말인가?
게다가 끝까지 버텼거나 진양을 꺾었으면 상관없었겠지만.
처참하게 패배한 놈이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는가?
한바탕 난리가 끝나고.
안기휘는 멍한 얼굴로 탁자에 앉아 진양을 반나절 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진양은 멀쩡했다.
그 독한 술을 연달아 네 잔이나 마시고도 말이다.
칠 품 오화양은 도궁 강자들이나 마시는 술이었다.
심지어 도궁 강자라 하더라도 전부 소화시킬 수 있다고 보장하기 어려운 술이기도 했다.
진양은 한참 동안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안기휘의 모습에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순간 울컥해서 저질러버리긴 했지만. 이건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닌데…….’
진양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시지요. 전 예전부터 몸이 약해서 그냥 집히는 대로 전부 주워 먹으며 살았을 뿐입니다. 물론 조금 독한 술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는 취하진 않더군요. 손상된 기혈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긴 했지만 손상된 정도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이긴 하지만…….”
말을 마치자 술로 인해 붉게 달아올랐던 진양의 얼굴은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원래의 병약한 모습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어딘가 모르게 살이 찐 듯한 모습이었다.
술에 녹아있던 힘을 전부 깔끔하게 소화시켰기 때문이었다.
비록 진양이 힘을 숨기고 있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진양의 변화를 보고 나니 말도 안 되는 핑계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듣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화양은 비록 독이 든 술이긴 했지만, 소화시킬 수만 있다면 충분히 몸보신에 도움은 되니 말이다.
게다가 진양이 독특한 공법을 익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몸 상태가 허약해질수록 더욱 많은 양의 음식을 소화해낼 수 있는 그런 공법 말이다.
최양평이 만들어준 탕을 꿀꺽꿀꺽 잘 마시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런 엄청난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삼키고 소화시킬 수 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어쨌든 여기서 못 믿겠다고 해도 마땅한 대안은 없었기에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곁에 있는 호위무사들은 아니었다.
탁자 위에 놓인 술잔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엔 마치 ‘한 마디라도 믿으면 내가 성을 간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 걸려있었다.
몇 번 겪어보니 진양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죽인다고 하면 결코 다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움직이는 칼 같은 결단력.
과연 마도 문파의 제자다운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무시무시하군. 술로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하다니…….’
한편, 이 층에 남아있는 건 진양 일행뿐이었다.
다른 탁자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던 자들은 난리가 벌어진 것을 눈치채기 무섭게 도망을 쳤기 때문이었다.
한바탕 난리가 잦아들자 진양에게 건방을 떨었던 점소이가 잽싸게 다가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대인, 제가 대인을 몰라뵙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진양은 괜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나 그는 할 말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양이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름 아니라 저희 장거 대인께서 대인을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오양화 장거가?”
안기휘는 놀랍다는 듯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의외로군. 이제껏 단 한 번도 오양화의 장거가 직접 나와 손님을 대접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 혹시 후환이 두려워서 그러는 게냐?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거라. 신전후부에서 아무 짓도 할 수 없도록 조치를 해 두겠다.”
“대인,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저희 오화양은 단 한 번도 후환을 불러올 만한 일을 일으킨 적도 없고, 후환을 두려워해 본 적도 없사옵니다.
단지 장거께선 그저 보기 드문 진정한 주객(酒客)을 만나게 되셨다며 특별히 대접하고 싶으셔서 그런 것입니다. 안에 좋은 술이 마련되어 있으니 함께 가시지요.”
“하하! 좋은 술이 있는데 어찌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진양이 껄껄 웃으며 안기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잠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진양은 점소이를 따라 긴 복도를 걸었다.
복도 끝에는 잘 차려진 특실이 마련되어있었다.
안쪽에는 여족의 차림을 한 여인이 나무 상자를 든 채 진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진양에게 예를 갖추었다.
“현여족 한향이라고 합니다. 소주(少主) 님을 몰라뵙고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고 주셨던 보물은 다시 거두어주시지요.”
상자를 받아든 진양은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죽은 서심고의 시체가 몸을 동그랗게 만 채 누워있었다.
“너무 그렇게 예를 갖추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당신이 말하는 소주도 아니고 그저 운이 좋아 흑여, 백여, 현여의 어르신들과 연을 맺게 된 것뿐이니까요. 단지 술 한 잔 맛보러 들어왔다가 내부에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 녹아있다 싶었는데. 현여족 장거가 직접 연 곳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극진히 예를 갖추었다.
“죽은 서심고의 모습만 봐도 소주님이시라는 건 이미 증명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주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주님을 만나 뵈었던 일에 대해선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계시지요. 소주님을 모시는 것 역시 제 임무니까요.”
“한향 소저, 미안하지만 전 여족 사람이 아닙니다. 제 이름은 진양이고요, 당신이 말하는 그 소주라는 사람도 아닙니다. 서심고는 재수 없게 감염됐었던 거고, 여기 들어있는 이 서심고는 화요 어르신께서 성수를 이용하여 제거하여 주신 것뿐이고요.”
그냥 인사나 하려고 왔건만, 상대가 이리도 고집스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꽤 오랜 시간 여족 마을에서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여족 구지 중 소주 같은 게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소주님, 무례를 용서하시지요. 하나, 소주께서는 두 여족의 신물을 꺼내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어허, 그것참. 난 그놈의 소주가 아니라니깐요?”
진양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예쁘장하게 생긴 거랑은 다르게 굉장히 고집이 세군.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안 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