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56
456화 웃기고 있네
풍도령은 예전에 월치 맥주의 시신에서 얻었던 물건이었다.
처음 얻었을 땐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나중에 제이검군에게 사용법을 듣게 되었다.
과거 월치 맥주는 풍도령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부의 조각 내에서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마음껏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비밀창고가 지부 조각 내에 자리 잡고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할 건 없었다.
이곳은 상고 지부의 기운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설령 단서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이곳의 위치를 추론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설령 지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직접 한 걸음씩 걸어가며 찾아야 했다.
그러나 내부는 황량했다.
영석이 산처럼 쌓여있고, 영맥이 강물처럼 넘쳐날 줄 알았는데.
진양이 상상하던 보물창고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진양은 허공으로 떠오르며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시선에 들어오는 건 새까만 황무지가 전부였다.
‘이게 보물창고라고?’
그때, 무언가를 느낀 진양이 화들짝 놀라며 비경 입구를 쳐다보았다.
변소무가 씩씩거리며 비경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진양을 발견하기 무섭게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노서곡! 내가 죽을 줄 알았느냐!”
진양은 꽤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저 녀석, 살아있었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연기를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흥미롭네요. 어떻게 거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어차피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이곳에서 죽게 될 텐데. 죽기 전에 천천히 얘기나 좀 들어보자고요.”
진양은 허공에 둥둥 뜬 채 여유롭게 말했다.
변소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변소무는 무언가 짓눌러오는 듯한 힘에 가슴속에서 폭발하듯 솟구쳐 나오던 분노가 다소 잦아들었다.
“흥! 어차피 죽을 놈이 궁금한 것도 많구나. 허나, 정 궁금하다면 이 몸이 자비를 베풀어 알려주도록 하마.
네 놈의 계획대로 난 비경 너머의 허공의 폭풍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려 팔십 년이나 공을 들여 간신히 손에 넣은 법보가 파괴되어버리고 말았지. 뿐만 아니라 어군(禦軍)에 있을 때 하사받은 금도장도 파괴되고 말았지. 부친 대인께서 내게 주신 대제께서 직접 하사하신 만법여의가 아니었다면 아마 진작 목숨을 잃고 말았겠지. 하니, 노서곡! 오늘 반드시 네 놈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변소무의 눈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죽을 뻔한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치가 떨렸다.
진양은 눈을 감으며 앞으로 손을 뻗었다.
한 자루의 혈도가 손에 잡혔다.
이어서 몸을 타고 검은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기운은 몸에서 뿜어져 나온 진원과 합쳐져 연기가 되어 주위를 자욱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진양의 머리 위로 작은 종 하나가 생겨났다.
“아무 흔적 없이 사람들을 제거해 나가는 게 어딘가 이상하다 했더니. 전부 만법여의 덕분이었군요. 마침 궁금했었는데, 덕분에 의문이 하나 풀렸네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겠죠? 아마 제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하실 텐데. 답례로 직접 보여드릴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양에게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빛은 한층 더 차가워졌고, 본격적으로 광폭 공법이 시전되었다.
진양의 손에 들린 화혈마도는 한시라도 빨리 피를 마시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진양의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온몸을 뒤덮은 마수의 힘과 체내에서 흘러나온 진원이 한곳으로 모이며 강력한 힘을 만들어냈다.
“일한재인무행(一恨才人無行)!”
“이한홍안박명(二恨紅顏薄命)!”
“삼한강랑불식(三恨江浪不息)!”
진양은 힘을 극한으로 끌어모아 십이마검을 펼쳤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검이 세 번 휘둘러지며 진양의 기운은 순식간에 신문의 경지에 도달했다.
주위로 몰려든 진원과 기혈, 그리고 마수의 힘이 화혈마도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기운을 받은 화혈마도는 더욱 흉포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변소무는 잠시 놀란 듯했으나, 이내 차갑게 웃었다.
그의 몸에 전투 갑옷이 입혀졌다.
이어서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와 기혈이 하나로 합쳐지며 그의 뒤로 백호의 허상이 나타났다.
백호가 내뿜는 기운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들은 성난 함성을 내질렀고, 그 덕에 변소무의 위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마음껏 건방 떠는 것도 여기까지다!”
변소인의 일갈과 함께 그의 뒤에 있던 백호 허상도 포효를 내지르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터져 나온 포효는 백호보다 먼저 앞으로 날아가 폭풍처럼 주위를 휩쓸며 지나갔고, 하늘 가득하던 마기와 음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날려버렸다.
진양의 몸 표면에 핏방울이 땀처럼 맺히기 시작했다.
마치 수많은 바늘로 몸을 찌른 듯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진양은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망설임 없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사한세태염량(四恨世態炎涼)!”
“오한월태역누(五恨月臺易漏)!”
다섯 번째 검이 휘둘러지며, 진양의 기세는 이미 주위 환경에 의해 제약을 받는 변소무의 기운을 훨씬 압도하기 시작했다.
화혈마도 위로 사람의 얼굴이 여럿 떠올랐다.
마기에 닿은 사람의 얼굴은 흉악한 마두(魔頭)의 얼굴로 변했다.
잔뜩 상기된 얼굴들은 연신 마기를 내뱉으며 다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죽여! 죽여! 죽여!”
진양은 검을 들어 달려드는 백호를 향해 뻗었다.
마도가 지나가며 마도에 피어있던 마두의 허상들이 백호의 주위에 빽빽하게 서 있는 인간의 허상들을 전부 삼켜버렸다.
“엄청난 살기로군.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를 정도야. 주인, 어서 놈을 죽여! 놈을 죽이고 마두로 만들어버리자고. 하하하!”
마기에 젖은 마두의 허상들은 지능이 생겨났기에 사람처럼 시끄럽게 떠들기까지 했다.
그 소리는 변소무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한낱 마두 따위 감히 어디 입을 놀려!”
변소무는 일갈과 함께 순식간에 수백 장 크기의 거인으로 변했다.
이어서 모여든 살기가 백호 허상과 하나가 되는 듯하더니, 이내 백호는 수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괴수의 형상으로 변했다.
변소무가 손을 뻗자, 살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검이 손에 잡혔다.
그는 검을 휘두르며 진양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검이 휘둘러지자 수만 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성난 함성을 지르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듣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잃고 벌벌 떨게 할 것만 같은 위엄이 느껴졌다.
거대한 검이 화혈마도와 부딪치는 순간.
격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마도에 피어오른 마두의 얼굴들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게다가 마도에 가득하던 혈기도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진양의 몸에도 균열이 생겼다.
조금씩 핏방울이 배어 나오던 곳에선 마치 분수가 터져 나오듯 선혈이 터져 나왔다.
마도는 이를 놓칠세라 터져 나온 선혈을 한 방울도 흐리지 않고 모두 먹어 치웠다.
하지만 이런 의념(意念)은 진양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진양의 의지는 매우 굳건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양의 마음속에는 변소무를 죽이겠다는 생각만이 유일했다.
거기에 광폭 공법까지 더해지며 모든 잡념, 그리고 불필요한 감정들은 제거된 상태였다.
“육한난엽다초(六恨蘭葉多焦)!”
여섯 번째 검이 휘둘러졌다.
진양의 기운이 다시 한 번 폭발하듯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무런 변화가 없던 진양의 몸이 조금씩 말라가기 시작했다.
기혈을 소모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안에 저장되어있던 엄청난 양의 진원은 지칠 줄 모르며 화산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쯤 되자 마침내 힘으로 변소무를 압도하게 되었다.
진양의 일검은 혈광을 흩뿌리며 날아가 거인의 가슴을 꿰뚫었고, 뒤에 있던 백호의 머리까지 관통했다.
화혈마도에선 혈광이 피어올랐고, 마두들은 기다렸다는 듯 마구 삼켜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백호 괴수는 다시 살기로 이루어진 백호 허상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몸을 이루고 있던 살기는 마두들에 의해 전부 삼켜졌고, 몸은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화혈마도에 의해 삼켜져 버렸다.
변소무의 육신도 붕괴가 시작되었다.
체내에서 빠져나온 선혈은 한 줄기의 핏빛 기둥이 되어 마도에게 삼켜지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듯 기침을 하며 선혈을 토해낼 때마다 그의 기운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만법여의를 꺼내 들었다.
“만법여의여, 나의 목소리를 들으라…….”
그러자 여태껏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던 호양보종이 갑자기 그의 머리 위로 나타났다.
이어서 닭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종 위로 날아올랐다.
“목소리를 듣긴 개뿔!”
둥-!
웅장한 종소리와 함께 강렬한 음파의 물결이 일어났다.
물결은 곧장 바로 아래 있던 변소무를 덮쳤다.
살과 가죽이 분리되며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으나, 변소무는 차갑게 웃고 있었다.
“노서곡, 날 이겼다고 좋아할 것 없다. 내가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리면 조정의 대군이 네 놈이 살고 있는 그 땅을 짓밟게 될 테니까! 보물창고는 원한다면 가지거라. 단, 그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하하하!”
이어서 그의 수중에 들린 만법여의가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졌고, 안에 있던 황금용이 날아올라 변소무의 영혼을 휘감아서 하늘로 승천해버렸다.
진양은 뼈밖에 남지 않은 변소무의 해골에 손을 올리며 습득 능력을 시전했다.
“웃기고 있네.”
능력이 발동되자 빛이 진양의 손을 감싸며 빠른 속도로 변소무의 시신을 비추기 시작했다.
화혈마도에 당하는 순간 변소무는 육신과 영혼에 돌이킬 수 없는 중상을 입었다.
여기에 닭까지 가세하여 호양보종의 힘으로 공격했다.
영혼이 찢기고, 육신이 녹아내리며, 생기까지 끊어져 가는 순간.
변소무는 마지막 발악을 하는 대신 가지고 있던 만법여의를 박살 낸 뒤 그 힘에 자신의 영혼을 담아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습득 능력은 상대의 생기가 끊어지면 이미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영혼의 일부가 남아있거나 이성이 남아있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생기라는 것은 육신에도 녹아있고, 영혼에도 녹아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육신이 파괴된다고 하더라도 영혼이 온전하면 다시 부활할 수 있다.
하지만 육신과 영혼이 모두 멀쩡하다고 해도 영원한 잠에 빠지는 경우, 다시는 깨어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겉보기엔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생기가 끊어져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단지, 강자는 실력이 강할수록 완전히 제거하기까진 시간이 걸리는 법이었다.
봉호도군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육신의 생기가 완전히 끊어졌으나 몸은 강제로 죽을 때의 모습으로 고정되어있었고, 영혼이 부서졌으나 이성은 완강하게 남아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죽고 나서도 한참이나 부활하기 위해 몸부림을 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이 변소무는 만법여의를 박살 내고 그곳에 서려 있던 힘에 자신의 영혼을 실어 이곳의 모든 것을 가지고 돌아가려고 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