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17
517화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진양은 파망지동을 사용하여 주위를 살폈다.
환술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급할 건 없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니 천천히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가 흘렀다.
마작을 치고 방으로 돌아온 진양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환해찰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마치 이 방의 주인이라도 된다는 듯 계무도를 향해 손짓했다.
“돌아오셨군요. 어서 앉으시지요.”
“거참, 얼굴 한 번 뵙기 힘드네요.”
진양은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제가 무슨 일로 당신을 찾아왔는지 먼저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아뇨, 일단 제가 당신을 부른 이유부터 말씀드리도록 하죠.”
진양은 옥새와 특제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선물입니다. 엽건중을 제거하고 싶으시죠? 이 물건이 아주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환해찰나는 ‘이게 뭡니까?’라는 표정으로 상자와 옥새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것을 쳐다보는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그렇습니다. 전조의 옥새입니다.”
진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환해찰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자 진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모조품입니다.”
“모조품이라고요?”
환해찰나는 다시 옥새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선 피식 웃으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눈치를 채신 것 같군요. 이건 며칠 전에 여자청이라는 모조품 제작의 대가가 제게 주고 간 물건입니다. 그는 헌국공에게 큰 원한을 진 사람인데, 얼마 전 제가 진천고를 울리며 헌국공을 고발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물건을 주고 간 것이지요.”
환해찰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상자와 옥새를 들어 이곳저곳을 살폈다.
한참을 살핀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부문으로 이루어진 상자군요. 게다가 상자 안에 영맥이 박혀있는 것으로 보아 상고의 물건은 아닌 것 같고, 아마 근 만 년 내에 만들어진 물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환해 공자님, 어떻습니까? 쓸만해 보입니까?”
진양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혹여나 그가 이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펼쳤던 수단을 생각해 본다면 큰 문제 없이 상자를 잘 써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이죠. 물론이고 말고요!”
환해찰나는 옥새를 상자 안에 집어넣은 뒤 뚜껑을 덮었다.
그러자 상자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며 뚜껑과 상자 사이의 틈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어서 빛이 완전히 사라지며 상자는 단단히 밀봉되었다.
“그렇다면 가져가시죠. 이 물건이 환해 공자님의 근심을 덜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좋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지요.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환해찰나는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상자를 들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가 본체로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분신을 보낸 것인지, 심지어 그가 진짜 환해찰나인지는 진양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을 코앞에 두고 파망지동으로 살피는 건 예의가 아니다.
때문에 진양은 그가 떠나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파망지동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환해찰나는 상자를 든 채 아무도 없는 길 상가를 조용히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상자를 연화시키려고 시도를 해보았으나 평범한 연화술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상자를 부수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상자에 힘을 가하는 순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부문들이 떠올랐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혀 알아볼 수도 없는 부문들이었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 상고 시대에 사용했던 부문이라는 사실은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상자 바닥에 새겨진 복잡한 부문은 연도나 시대조차 분별이 불가능했다.
그저 어느 이름 모를 이족의 부문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상자를 살펴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상자는 전조 황실의 보물을 보관하던 상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이 상자를 진양에게 전해주고 간 이름 모를 그 사람은 아마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전조의 일당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상자로 인해 만들어질 결과뿐이니 말이다.
심지어 환해찰나조차 처음 옥새를 보았을 때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해내지 못했었다.
유심히 만져보고 살펴보고 나서야 이것이 가짜라는 것을 간신히 알아냈을 정도다.
그조차 혼동할 정도인 만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전조의 옥새라니.
이런 건 설령 손에 넣는다고 해도 결코 함부로 열어서 살펴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설사 확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일단 당장은 아닐 것이었다.
때문에, 옥새의 진위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 *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며 어느새 며칠이 지났다.
마 낭중의 얼굴엔 잿빛이 가득했다.
오늘로 그의 아들이 죽은 지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르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형부 관아를 뛰쳐나온 그는 고요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귓가에선 엽건중이 방금 했던 말이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마 낭중, 자네의 마음은 잘 헤아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게나. 허나 지금은 아니야. 중요한 일을 앞둔 상황인 만큼 대의를 위해 잠시 참아줄 순 없겠나? 추후에 일이 모두 풀리고 나면 내 반드시 어떤 방법을 찾아서라도 자네의 아들의 잔혼을 끌어모아 다시 소생시키도록 해보겠네.’
마 낭중은 침통한 표정으로 정당 뒤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사당이 한 채 지어져 있었는데, 내부에는 얼음으로 만든 침대 위에 싸늘하게 죽어 있는 마 낭중의 아들의 시신이 있었다.
아들의 시신을 보고 있자니 마 낭중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신조의 문신이든 사방에 흔히 널려있는 수도사든 강한 실력을 지닌 사람일수록 자식을 갖는 건 어려워지는 법이다.
남자 수도사는 보통 자신의 자식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길러내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심지어 자신의 생기와 수명까지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여자 수도사들은 기껏해야 경지가 조금 낮아지거나 기혈에 다소 손상을 입는 경우가 전부다.
이마저도 어느 정도의 요양과 수련을 거치면 다시 완벽하게 회복할 수가 있다.
현재 싸늘하게 누워있는 그의 아들은 그가 그나마 과거에 실력이 아직 지금만큼 높지 않았을 때 가진 아들이다.
물론 지금은 수명이 넉넉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들을 하나 더 가질 만큼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아들아!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이 애비가 반드시 널 다시 되살려주마. 널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도록 하마…….”
마 낭중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 낭중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그러면서 관인(官印)을 꺼내 들어 사방으로 광막을 펼쳤다.
“누가 감히 겁대가리 없이!”
그러자 또다시 귓가에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저예요. 저 여기 있어요.”
마 낭중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싸늘하게 누워있는 아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언제 떴는지 모를 그는 눈동자 없는 눈으로 마 낭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 낭중은 미간을 찌푸리며 윽박지르듯 말했다.
“이놈아!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길 상가에서 구르던 년 따위를 탐한 게냐!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단 말이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는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아버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엽 상서가 일부러 처리를 미루며 아버지를 위로하는 척하고 있는 게 왜 그런 건지 모르시겠습니까?”
“그건…….”
차마 그 이상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러건 말건 말을 이어갔다.
“이유는 대충 알고 있지만, 감히 상상하실 수 없는 거겠죠. 왜 그럴까요? 그건 바로 절 죽인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기서 엽 상서가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는 곧 그 역시도 남의 아들을 함부로 죽인 꼴이 되는 겁니다. 그게 지금의 상황과 어찌 같을 수 있겠습니까?”
마 낭중은 둔탁한 무언가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렇지. 결코 같을 순 없지…….’
두 낭중이 서로 대립하는 것과 낭중이 상서에게 원한을 품고 대립하는 게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이는 차원이 다른 얘기다.
“아버지, 아직도 그자를 믿으시는 겁니까? 오래전 그의 딸이 죽었던 일을 잊으신 겁니까? 그 자에게 죽은 자를 살릴 능력이 있었다면 어째서 자신의 딸을 가장 먼저 살리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전 더 이상 살아날 수 없을 거라고요.”
그의 한 마디가 마 낭중의 가장 아프고 민감한 곳을 마구 난도질했다.
“누구냐! 도대체 누가 감히 본좌를 농락하는 것이냐!”
마 낭중은 울부짖듯 사방을 향해 고함을 쳤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리고 시신을 바라보았을 때.
시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마 낭중은 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관인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싸늘하게 누워있는 자신의 아들의 시신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그는 매일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아들이 누워있는 사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게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어느덧 이 상황에 익숙해지고 나니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억지로 자신의 마음속에 피어오른 의심마저 외면해버린 것이다.
엽건중의 약조가 전혀 의미 없는 약조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편, 자신의 아들을 지켜낸 또 다른 낭중은 엽건중에게 더욱 충성을 다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도 충신으로서 그의 곁을 지켰으나, 지금은 목숨까지도 내던질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마 낭중 역시 겉으로는 엽건중의 약조를 믿는 척하며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과 마찰이 일어났던 낭중에 대한 분노까지도 완전히 숨겼다.
혹여나 그런 모습을 보였다간 엽건중에게 내부 불화의 원인 제공자로 찍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속의 고통은 날로 커져 갔다.
매일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싸늘하게 누워있는 자신의 아들의 시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마 낭중은 오늘도 여김없이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자신의 아들이 누워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 낭중이 나타나자 시신은 조용히 눈을 떴다.
“아버지, 이제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래도 엽 상서를 믿으실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