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24
524화 여한이 없습니다
헌국공과 엽건중의 말을 들을 새도 없이 곧바로 정천사 사장을 불러들이는 대제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폐, 폐하……!”
두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대제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헌국공은 그대로 날아가 뒤쪽 정전 대문에 처박혀버렸다.
그 모습에 엽건중은 한층 더 새하얗게 질리며 더욱 낮게 머리를 숙였다.
대제에게 느껴지는 엄청난 분노에 감히 입도 뻥긋할 수가 없었다.
잠시 뒤.
검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정전으로 들어왔다.
그는 대제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었다.
“신 위흥조, 폐하의 부름을 받고 왔나이다.”
“낱낱이 조사하라!”
“명을 받듭니다!”
위흥조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상자를 모두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이어서 엽건중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엽건중의 목에 칼이 채워졌고, 손과 발에는 굵직한 쇠사슬로 만들어진 수갑이 채워졌다.
이어서 엽건중의 몸에서 관인이 튀어나오며 위흥조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그 순간, 엽건중의 영태에서 어두운 빛이 흘러나왔다.
그의 신해는 완전히 봉인되었고, 두 눈은 혼탁해졌다.
평범한 범인 노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감히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한마디라도 했다간 곧바로 목이 날아갈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엽건중이 끌려 나가고 나자, 이번에는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온몸의 뼈가 부러진 채 벽에 박혀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헌국공을 대제의 앞으로 끌고 와 마치 물건처럼 패대기쳤다.
그리고 위흥조가 손을 들자 기다리고 있던 그의 수하들이 정전 안으로 들어와 만신창이가 된 헌국공을 끌고 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감방에 갇히게 되었다.
헌국공은 다행히 아직은 숨이 붙어있었다.
감방에 갇히기 전에 죽지 말라고 간수들이 약을 먹인 덕분이었다.
한편, 옆에서는 위흥조가 직접 엽건중을 심문하고 있었다.
위흥조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엽건중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엽 대인, 그간 수많은 자들을 속이고도 잘 살아남았으면서 어찌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었단 말이오? 다른 자들은 속여도 폐하께는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오?”
“한순간의 방심으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엽건중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그는 이미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엽 대인, 이만 솔직하게 말하시오. 이 이상 궤변을 늘어놓아봤자 상황만 더 나빠질 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오.”
위흥조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건중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자신의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누군가의 모함에 걸려든 게 잘못된 게 아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인 대제를 건드린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목여심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제가 헌국공부에 몰래 심어둔 밀정입니다. 아마 지금은 길 상가에 있을 겁니다.”
그래도 상황 파악이 빨랐던 엽건중은 곧이곧대로 자신이 아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 옥새는 형부의 마 낭중이 제가 가져온 것입니다. 출처는 저도 잘 모릅니다. 헌국공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는 상황인 만큼 대제께 함부로 진상하기 어려웠을 뿐입니다. 이 일의 발단은 목여심입니다. 그자가 헌국공에게 이것을 가져다주었고, 헌국공은 역으로 이것을 제게 다시 보냈고, 그렇게 되돌아온 물건을 대제께 진상하게 된 것입니다.
같은 물건이 두 개나 나타나게 될 줄은 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목여심 그 천한 것이 단숨에 저와 헌국공 모두를 함정에 빠트린 게 분명합니다. 아마 길 상가에서 제가 모르는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천천소는 아마도 관련이 없을 겁니다. 목여심 그년이 계무도라는 자와 짜고 저를 함정에 빠트린 게 분명합니다.
위 대인, 대인께서는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전 결코 폐하를 농락하려던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저 폐하께서 어떤 마음인지 잘 몰라 사족을 더한 것이 이러한 결과로 돌아오게 된 것뿐입니다.”
“그만!”
위흥조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호통을 쳤다.
“엽 대인, 당신은 아무래도 신하로서의 본분을 잊은 것 같소.”
말을 마친 위흥조는 곧장 감방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어서 직접 감옥 문을 굳게 잠그며 싸늘한 목소리로 간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폐하 외에는 그 누구도 들이지 말라.”
이어서 감옥에서 나온 위흥조는 곧장 한안명을 불러들였다.
“정천사 일품 외후 한안명.”
“소신 여기 있사옵니다.”
한안명은 크게 놀랐다.
자신의 스승이 이름이 아닌 공식적인 칭호로 불렀다는 건 그만큼 큰일이 벌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 즉시 길 상가로 가서 목여심과 계무도를 잡아들여라. 이 외에 체포를 방해하는 자도 이유 불문 잡아들이거라. 만약 두 사람이 완강하게 저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죽여도 좋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한안명은 곧바로 명령에 따라 길 상가로 향했다.
위흥조에게 직접 명령을 받은 만큼 수많은 금제에서 자유로웠다.
때문에, 말을 타고 길 상가로 향하는 게 아니라 곧바로 하늘을 날아서 길 상가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이도에 무언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잠시 뒤.
수많은 빛줄기가 장향각 앞으로 쏟아져 내렸다.
“포위하라! 그 누구도 들어가거나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반항하는 자는 죽여도 좋다. 움직여라!”
한안명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어서 큼직한 영패가 장향각을 중심으로 사방에 세워졌다.
무려 백여 장 높이까지 뻗은 영패에는 ‘금(禁)’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있었다.
이어서 영패에서 은은한 힘의 물결이 뿜어져 나오며 장향각을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시켰다.
이 외에도 검은 옷을 입은 정천사의 수도사가 장향각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법보를 든 채 싸늘한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든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준비가 된 모습이었다.
이어서 한안명은 부하들을 이끌고 장향각 내부로 들어갔다.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추거라! 움직이는 자는 이유 불문 즉시 체포하겠다!”
삼 층의 한 방에서 문이 열리며 바지만 입은 천천소가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리곤 진양이 있는 방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한안명, 자네로구만.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겐가?”
그는 곧바로 한안명에게 다가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천 공자, 스승님의 명이자 대제 폐하의 명이십니다. 계무도와 친분이 있는 건 알고 있으나 이 일은 당신과 관련 없는 일인 만큼 경솔한 행동은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안명이 굳은 얼굴로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서 한걸음 물러서며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목여심과 계무도를 체포하라!”
천천소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대제와 정천사 위흥조가 직접 명을 내릴 정도라니.
분명 큰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이 정도 사건이라면 아무리 넉살 좋은 천천소라도 함부로 막을 순 없는 법.
그렇게 한안명의 부하들은 장향각 내부로 뛰쳐들어가며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뒤늦게 나타난 장향각 여주인은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꾸물거릴 틈이 어디 있겠는가?
빠르게 상황 파악을 마친 그녀는 병사들을 곧장 목여심이 머물고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방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부숴라!”
작정하고 찾아온 이들이 자비 같은 걸 베풀 리는 없었다.
그렇게 잠시 뒤.
펑-!
굉음과 함께 방 안을 둘러싸고 있던 금제가 박살 나며 문이 열렸다.
이어서 초록빛 연기가 방안에서 외부로 흘러나왔다.
놀란 병사들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으나, 이들 중 일부는 늦게 반응하는 바람에 그만 연기를 들이마시고 말았다.
“커헉…….”
“켁, 켁…….”
“허억…….”
연기를 마신 병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씩 쓰러져버렸고, 순식간에 숨이 끊어져 버렸다.
한안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리자 내부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조심하시게나. 앙기(秧氣)로구만.”
천천소는 어느새 장향각 문밖으로 대피한 상태였다.
“앙기?”
“더 이상 볼 것도 없네. 이미 죽은 지 하루는 족히 지났을 걸세.”
천천소는 혹여나 앙기에 닿기라도 할까 봐 잔뜩 경계하며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겨우 여인 하나 죽이겠다고 이토록 지독한 앙기를 쓰다니. 한안명, 조심하시게나. 코딱지만큼이라도 닿는 순간 골로 갈 테니까. 이 정도 앙기라면 정천사의 영태 외후들조차 순식간에 보내버릴 수 있는 수준이야. 심지어 자네 스승님도 쉽게 버티진 못할 정도일 걸세.”
한안명의 표정이 한 층 더 찌푸려졌다.
‘무시무시한 기운인 건 확실하군.’
만약 목여심이 안에 있었다면 이미 진작 숨이 끊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방 안에 고여있던 앙기가 빠지며 내부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침대 위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누워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죽은 게 확실하군.’
그때, 밖에서 한 외후가 다가왔다.
“대인, 엽건중의 저택에 있는 목여심의 혼등이 꺼졌다고 합니다.”
한안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 얼어있는 여주인에게 물었다.
“계무도의 방은 어디 있소?”
여주인은 재빨리 한 방을 가리켰다.
뭐라고 명령을 내릴 것도 없이 병사들이 우르르 방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꿀꺽-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문이 열리고.
천하태평하게 앉아 차를 홀짝거리고 있는 계무도의 모습이 보였다.
“한 대인, 먼 길 오셨는데 차라도 한잔하고 가시지요.”
계무도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한안명은 손을 들어 부하들을 물린 뒤 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리에 앉은 뒤 물었다.
“내가 무슨 일로 온 지 알고 있는 겐가?”
“당연하죠. 전 애초에 헌국공이 죽는 꼴을 보려고 이도에 온 사람입니다.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한안명은 은거울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그가 은거울을 작동시키기도 전에 계무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인, 여심마저 살인멸구를 당했는데 저라고 이곳에 무사하게 있을 줄 알았습니까?”
“뭐라고?”
한안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거울까지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상황이 다급해 어쩔 수 없이 분신만을 남겨두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은거울을 쓰면 분신은 산산조각 나 버릴 것입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한 대인, 제 본체의 생기가 희미해져 가는 게 느껴집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단 제 얘기부터 들어보시죠.”
계무도가 말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듯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