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629
629화 나는 너다
몽의의 앞에도 묘축이 나타났다.
한참 동안 여러 가지 얘기를 쏟아낸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세 사람 중 충분한 지혜와 실력을 가진 건 오직 그대뿐일세. 내가 하려던 말은 여기까지고, 할지 안 할지 선택은 자네의 몫이네. 알다시피 진양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중상을 입었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 날 도와준다면 나의 힘으로 진양을 회복시켜주도록 하겠네.”
묘축이 사라지고 난 뒤.
몽의는 제자리에 선 채 한참 동안 그가 사라진 자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봉우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용사는 천신만고 끝에 악룡의 둥지에 도착했고, 금은보화 위에 누워 자고 있는 악룡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를 챙겨 고향을 돌아와 영웅이 되었다.’
진양이 어릴 때부터 자주 보아오던 이야기다.
당시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영웅의 이야기에만 집중했지만 크고 나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의로운 용사와 악룡이 만나는 순간 정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물론 악룡이 다소 흉측하게 생긴 건 맞지만, 어찌 보면 집에서 조용히 자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봉변을 당한 꼴 아닌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진양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고, 의문이 이어질수록 묘축에게 세뇌당한 생각들도 하나씩 무너져갔다.
애초에 이런 얘기는 세상의 쓴맛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믿지 않았다.
‘원한과 악념으로 이루어진 악룡이라고?’
이 세계에 들어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런 존재가 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책에서조차 한 줄도 언급된 적이 없다.
심지어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들조차 자신들의 핏줄에 응룡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설령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한들 문제될 게 뭐가 있겠는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악룡을 쓰러뜨리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안전하게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악룡은 사악한 존재가 되고, 반대로 아니라면 악룡은 정의로운 존재가 된다.
결국 입장 차이에 따라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것.
무조건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어쨌든 악룡에 대한 판단은 일단 보류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확실한 건 그 묘축이라는 녀석, 질 좋은 녀석은 확실히 아니었다.
놈은 일부러 수많은 것을 숨겼을 뿐만 아니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주입시키기까지 했다.
순수한 목적을 가진 사람이 이런 짓을 저지를 리는 없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채 걷다보니 어느새 거대한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풀 한 포기조차 자라지 않는 민둥산 위로 옅은 안개가 깔려있었고, 은은한 빛이 흘러나와 어두운 이곳을 밝혀주고 있었다.
진양은 산봉우리의 남쪽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요모는 동쪽에서, 몽의는 서쪽에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정상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육중한 힘으로, 진양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은 힘이었다.
진양은 동술(瞳術)을 펼치며 정상을 바라보았다.
안개가 사라지고 산 정상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관이 둥둥 떠 있었다.
관에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응룡이 조각되어있었다.
멀리서 보니 마치 응룡이 관을 둘러싼 채 완전히 가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진양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관에서 은은하게 힘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응룡 조각의 눈이 번쩍 뜨이며 진양을 바라보았다.
변화를 느낀 진양은 곧장 눈을 질끈 감으며 상대의 시선을 피했다.
강력한 힘의 파동이 물처럼 흘러내리며 산 정상에서부터 전해지는 것이 다시 한번 생생하게 느껴졌다.
청동으로 만든 관 안에 있는 무언가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관 외부를 뒤덮고 있는 강력한 힘이 그것을 강하게 짓누르고 있었다.
나오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둘의 힘은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막상막하였다.
파동은 한동안 이어졌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잠잠해졌다.
‘묘축이 전부 거짓말만 한 건 아니군.’
관에 있는 무언가를 봉인하고 있는 힘은 아마도 묘축의 힘일 것이다.
막상막하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묘축은 용의 후예가 아닌 제삼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었다.
한바탕 힘의 파동이 지나가고 난 뒤, 진양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언덕을 넘는 순간, 마치 칼로 깎아낸 듯 평평한 땅이 나타났다.
이어서 전방에 우뚝 서 있는 석벽도 매끈한 거울로 변하며 진양의 모습이 비치었다.
진양이 땅 위로 발을 내딛자 거울 속에 있는 진양도 같은 동작을 취했다.
그런데, 한 걸음 내딛기 무섭게 녀석이 거울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거울 속에 있는 그림자 역시 마찬가지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며 거울 밖에 있는 진양을 응시했다.
진양은 고개를 들어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은 방금 전에 있었던 힘의 파동 때문에 일어났을 것이다.
상대는 모종의 힘으로 진양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진양은 팔짱을 낀 채 맞은편에 있는 자신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 모습을 흉내 냈다가 무사한 사람은 없었는데. 너 자신 있냐?”
“난 너다. 단순히 흉내 내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지, 그렇기 때문에 네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수 있고, 네가 알고 있는 것도 전부 알고 있어. 그리고 이곳으로 나오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 널 죽이면 난 비로소 네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말이지.”
상대 역시 팔짱을 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가 날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아니, 아무리 나라고 해서 네가 할 줄 아는 것들을 전부 그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 그러니 아마도 싸운다면 내가 지게 될 거야. 게다가 난 너잖아. 널 공격할 생각은 없어.”
“그럼 조용히 물러서도록 해.”
진양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가짜의 모습이 사라졌고, 이어서 머리 위에서 엄청난 압박이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 위에 나타난 가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혈을 한곳에 모아 진양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진양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그동안 숨겨두었던 힘을 끌어모아 녀석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맞부딪치는 순간.
콰과과광-!
엄청난 굉음과 함께 기혈이 타오르며 흘러나온 불꽃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가짜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거꾸로 날아가 석벽 거울에 부딪혔다.
가짜의 손은 기괴한 형상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난 녀석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과연, 정말 내가 맞구나. 이제야 믿겨지네.”
진양은 그제서야 가짜의 말이 믿겨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답이 없다고 해도 일단 지르고 보는 게 진양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몰론이지. 역시 내 본체답네. 아직 제대로 된 패를 꺼내지도 않았는데도 나보다 강하다니.”
“네가 나라면 왜 물러서라고 했는지 알고 있을 거다. 그렇지?”
“물론 알지. 아무리 그래도 본체를 대신할 순 없으니까. 괜히 남의 말에 속지 말고 그냥 물러서라는 거잖아.”
“잘 알고 있네. 그럼 헛소리는 그만하고 이만 사라지도록 해.”
“좋아. 이만 물러서도록 할게. 대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절대 우연히 이곳에 나타난 게 아니거든. 놈은 단순히 널 막으려는 게 아니야. 더 얘기해주고 싶지만 말할 순 없으니, 나머지는 네가 직접 깨닫도록 해.”
가짜는 다시 석벽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가짜의 모습은 점차 다시 평범한 거울 속에 비친 진양의 모습으로 변했다.
진양은 산 정상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단순히 진양의 겉모습만 닮은 녀석을 보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속까지도 똑같이 베낀 녀석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굳이 싸울 것도 없다.
본체를 대신할 수 있다고?
어린애조차도 믿지 않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가짜가 마지막에 했던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말하고 싶지만 할 수는 없는 말.
분명 아주 중요한 정보라는 건 확실하다.
‘단순히 날 막으려는 게 아니라니. 그럼 또 무슨 목적이 있을까?’
‘본체를 대신한 뒤 상대의 명령을 따르려는 것일까?’
‘묘축과 한 패였지만 악룡 쪽으로 넘어가려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맞는 듯했다.
‘그래. 그거구나.’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약간의 여지는 흘리고, 결국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다시 거울 속으로 끌려갔다.
그렇다는 건 또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석벽에 비친 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어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남은 건 진짜 거울에 비친 모습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다시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찌 되었든 결국 마지막까지 가보면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 *
같은 시각.
삼안요모와 몽의 역시 진양과 마찬가지로 거울 속에서 나타난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넓게 트인 평평한 땅 위로 수많은 잔상이 펼쳐지며 서로가 치열하게 맞붙었다.
서로 맞부딪칠 때마다 챙- 하며 금속음이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펼쳐진 잔상은 두 곳을 중심으로 몰려들었고, 결국은 두 명의 요모만 남게 되었다.
이어서 마지막 남아있던 잔상이 사라지는 순간.
두 사람의 속도가 극한까지 발휘되었다.
픽- 하고 사라진 두 사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서로를 스치고 지나간 뒤.
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한쪽 팔로는 땅을 짚고 있었고, 나머지 한쪽 팔은 잘려 나갔고, 얼굴은 창백했다.
나머지 사람은 얼굴에 긁힌 상처 조금 난 것 외에는 멀쩡했다.
하지만 상처가 꽤 깊었다.
만약 조금만 빗겨나갔더라면 목이 잘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찢어진 볼에서 흘러나온 피를 손으로 닦으며 차갑게 웃었다.
“난 너다. 하지만 널 죽이기 위해서라면, 그리고 네 손에 쥐어진 기회를 빼앗기 위해서라면 이깟 얼굴쯤은 충분히 포기할 수 있지. 하하하!”
그때, 진짜 요모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씨익 웃어 보였다.
어느새 주위의 땅 전체가 수많은 실로 둘러싸여 있었다.
실들은 꽤 넓게 거리가 벌려져 있었지만, 요모가 주먹을 쥐는 순간 중심을 향해 수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수천충의 고치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고치는 순식간에 주먹만 한 크기로 줄어들며 허공에 둥둥 떠 있었고, 안에서는 무언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요모의 세로 눈이 떠지며 고치를 향해 한 줄기의 빛이 쏘아졌다.
빛이 사라지며 수천충의 고치는 사라졌다.
그리고 안에 있던 가짜 요모도 사라졌다.
요모는 잘려 나간 팔을 주워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댔다.
이어서 요기가 뿜어져 나오며 팔이 다시 붙었다.
요모는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본 뒤 석벽에 달린 거울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같은 힘이라도 누가 쓰냐에 따라 다른 법이지. 게다가 가짜 따위가 쓰는 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