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11
711화 같은 편이라고 하지 않았나
진양은 어쩌면 백랑해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며 형성된 바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원래 살던 세계였다면 분명 양식장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니다.
신선의 세계라는 특성상 온갖 위험한 요소들이 겹치며 위험한 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건 전부 진양의 예상일 뿐.
백랑해에는 사해와는 다르게 상당히 짙은 영기가 녹아있다.
백랑해에 대한 전설은 많이 있다.
그러나 동해, 남해, 대황에서 흘러나온 전설은 전부 제각각이었다.
대황에 널리 퍼져있는 소문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대영 신조에 의해 멸문당한 팔국의 사람들 중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이 전부 백랑해로 도망쳤다는 소문이었다.
이곳은 상당히 험한 바다인 만큼 추격이 상당히 어려운 곳이다.
그렇게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뒤.
살아남은 자들은 백랑해 근처에서 적합한 섬을 찾아 그곳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진양은 남해와 동해에 대한 전설을 그저 가벼운 이야기 정도로만 여기고 말았다.
전설은 허무맹랑한 소리가 대부분이다.
유명한 사람이나 유명한 장소에는 항상 전설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크게 믿을 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동해에선 청련검선이 백랑해 너머로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었고, 남해에서는 과거 남해도군이 백랑해를 쉽게 드나들며 악룡을 베었다는 전설도 있었다.
사실 온우백의 말에 따르면 백랑해는 영기가 다소 농후하고 조금 덜 격렬하다는 것만 빼면 사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곳에 사는 괴수들은 사해에 사는 괴수만큼 맛있지도 않다고 했다.
진양이 현재 만들어낸 신분은 백랑해 출신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백랑해는 상당히 위험한 곳인 만큼 진양이 만들어낸 출신이 사실인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게다가 백랑해는 부유섬이나 허공에 떠있는 섬, 심지어 유령섬도 많은 곳이다.
설령 이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지도를 제작할 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리는 없다.
이런 이유로 진양은 이번에 만들어낸 신분의 출신을 백랑해로 설정한 것이다.
전승을 손에 넣은 진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동해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목숨을 건지기 위한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일단 돌아가서 숨을 돌리고 전승을 완벽하게 수련한 뒤 다시 대황으로 돌아와 영제를 철저히 박살 내고 과거 목씨 가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말이다.
과거 목씨 가문에 대해 조사를 마친 진양은 만약 목씨 가문의 후손이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이런 선택을 했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갈지언정 결코 비겁한 수단은 취하지 않는 게 목씨 가문이다.
이런 자들이 결코 음모를 꾸미거나 단순히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을 리는 없다.
정의로운 기운으로 가득한 영웅과도 같은 그런 인물이었다.
그러나 목씨 가문이 남긴 밀실에서 빠져나온 진양은 자신이 경험적인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충성심이 강한 건 사실이다.
이건 목씨 가문의 선조들이 온갖 수단을 걸어놓은 것과는 사실 모순되지 않는다.
마치 그처럼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이 몰래 함정을 파놓는 것처럼 말이다.
진양은 곰곰이 생각했다.
목씨 가문의 선조들이 전승을 남긴 건 기회가 안 된다면 목숨을 건지고 혈맥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기회가 된다면 곧바로 영제의 뒤를 치라는 뜻이 분명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진양은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집 안에 숨어있었다면 이런 것들을 생각해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양과 영제는 숙적 관계다.
하지만 진양은 영제와 다르다.
진양은 만천하에 친구들이 깔려있다.
하지만 영제는 공공의 적이나 다를 바가 없다.
팔국을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졌을지 생각만 해봐도 그렇다.
아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들이 영제에게 원한을 품고 그의 목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정세가 안정되었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건 단순히 영제의 힘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힘도 강하고, 돈도 많은 사람에게 단순히 원한 하나만 바라보고 덤빈다는 건 무식한 짓이다.
때문에 전조의 잔당들처럼 조용히 숨어서 일을 꾸밀 수밖에 없는 것.
만약 기회만 생긴다면 전부 다 튀어나온다고 할 순 없을 진 몰라도 분명 참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사람이 꽤 될 것이다.
목씨 가문은 사라졌다.
그러나 천하에 ‘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고 나니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풀릴 듯했다.
원래대로라면 전조의 진영으로 숨어들어 일부러 실수를 연발하여 그들의 발목을 붙잡아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대영과 적대적인 자들이 훨씬 더 많은 듯했다.
그렇다면 일은 한층 더 수월하게 풀린다.
일단 적당한 방법으로 뱀 징표가 새겨진 남자를 죽이면 된다.
힘을 쓸 사람이 하나 줄어드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사람은 넘쳐나니까.
겨우 하나 죽는다고 해서 영제 사냥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기분 좋은 상상 속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동해 국가가 몰려있는 곳에 도착했다.
간만에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반가운 마음마저도 들 정도였다.
아직은 대영과 해족 간의 대치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해변을 순찰하고 있는 대영의 병사들도 보였다.
동해의 국가들은 감히 어느 쪽의 심기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때문에, 대놓고 군대를 보내와도 모른 척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진양은 일단 한 섬에 착륙하여 잠시 쉬며 정보를 수집하기로 했다.
최대한 짧게 볼일을 마친 진양은 다시 백랑해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나마 청유의 해룡호가 백랑해 근처에 있었기에 번거로움을 크게 덜 수 있을 듯했다.
진양은 어느덧 백랑해 북부에 도착했다.
백랑해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족들이 활동했던 흔적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이런 곳에도 해족들이 있다니.’
예전에는 청유와 해족 사이의 관계는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했다.
물론 백리칠 덕분에 양쪽의 관계가 많이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가까워졌을 줄은 몰랐다.
해족의 병력까지 청유에게 아무렇지 않게 맡길 정도라니.
아무래도 교인 황족이 백리칠을 데려간 건 단순히 혈맥 문제 때문은 아닌 듯했다.
진양은 기운을 최대한 죽이고 수신 상태로 변했다.
그리고 바닷속으로 들어가 천천히 해룡호 부근으로 다가갔다.
범위 내에 최소 세 명 이상의 진양을 한 방에 골로 보낼 수 있는 강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나마 이건 진양이 느낄 수 있는 자들이다.
아마 진양이 느끼지 못하는 자들도 분명 더 있을 것이다.
해룡호 아래까지 몰래 다가간 진양은 갑자기 멈춰 섰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양은 수신 상태를 해제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바닷속에 짙게 깔린 어둠 너머로 거대한 암초가 보였다.
그때, 길게 해초가 자란 바위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것은 차가운 눈빛으로 진양을 노려보았다.
단순히 눈빛만으로 진양을 얼어붙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상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진양쯤은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진양은 감히 움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눈알을 굴리며 암초 사이를 살폈을 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건 암초가 아니라 거대한 거북이 등껍질이었다.
“어르신, 잠시만요! 전 같은 편입니다!’
이어서 암초가 부들부들 떨리는가 싶더니 네 방향에서 거대한 발이 튀어나왔다.
거대한 거북이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백랑해의 사나운 해류들도 순식간에 위압감에 의해 잠잠해졌다.
강력한 압박감이 주변을 뒤덮었다.
진양 역시 마치 거대한 산이 몸을 짓누르는 것처럼 손가락조차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거대한 거북이는 몸을 움직이며 진양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는 다가올수록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마침내 머리가 벗겨진 한 노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노인은 진양을 찬찬히 살폈다.
그리곤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진양? 자넨가?”
“네, 맞습니다.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지난번에 줬던 등껍질은 어쩌고?”
“아……. 그거라면 전투 중에 부서졌습니다.”
“말도 안 돼! 누가 감히 나의 등껍질을 박살 낼 수 있단 말이냐?”
용귀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을 내저었다.
“대영 신조의 최강자가 부순 겁니다.”
“아, 그런 거구만.”
용귀왕은 그제서야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진양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 진양의 위장을 꿰뚫어 본 건 아닌 듯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자신이 진양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진양은 용귀왕과 함께 해룡호에 올랐다.
그러나 진양은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어르신, 도대체 어떻게 절 알아보신 겁니까?”
“같은 편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걸 듣고 딱 자네인 줄 알았네.”
용귀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비록 나이를 조금 먹긴 했어도 기억력 하나는 아직까지 실하다네. 자네 인간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저번에 백리칠이 자네의 대부(大副, 일 등 항해사)에게 들었던 말을 해줬었는데, 자네가 일전에 서혼수를 만났을 때도 똑같이 얘기해서 서혼수를 물러가게 만들었다고 하더군.”
“…….”
‘젠장, 다음부턴 절대 이 말은 하면 안 되겠어.’
해룡호로 들어온 진양은 곧장 용귀왕과 함께 배 안에 있는 작은 바다로 향했다.
그곳에선 청유가 기다렸다는 듯 진양을 맞아주었다.
“어르신, 여기선 기운이 새어나가지 않겠죠?”
들어오자마자 진양이 물었다.
“걱정 말거라. 설령 교황이라고 해도 이곳은 느끼질 못 할 테니.”
청유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눈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진양이 이곳에 온 목적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해안에 있던 백리칠을 밖으로 꺼내주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백리칠의 모습을 확인한 진양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백리칠의 주위로 수십 개의 부문이 둥둥 떠다니고 있던 것이다.
그건 상고 지부의 부문이었다.
진양도 처음 보는 부문이었으나 각 부문마다 사람의 영혼마저도 홀려버릴 듯한 강력한 힘이 서려 있다는 건 확실하게 느껴졌다.
백리칠은 진지한 얼굴로 부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주위의 환경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채곤 황급히 손을 휘저어 부문을 거두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진양의 품속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진양은 백리칠을 상대해 줄 여유가 없었다.
청유와 용귀왕이 이상한 눈빛으로 진양을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