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12
712화 화근주의 위력이 빛을 발하다
진양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애써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글자를 좀 가르치고 있었거든요. 많이 배워둬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래야 저번처럼 남에게 속지 않을 테니까요.”
진양이 지난번의 일에 대해 언급하니 청유와 용귀왕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백리칠에게 위험한 것을 가르쳐줬다며 나무라지도 않았다.
수행의 길에서 위험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는가?
배우는 것과 배우지 않는 것 모두가 위험하다면 차라리 덜 위험한 쪽을 선택하는 게 낫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혹여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백리칠도 힘이 필요하다.
적어도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고 있는 것보단 상대에게 한 방이라도 먹이는 게 나을 테니까.
오랜 시간 떠나있다가 간만에 돌아온 백리칠은 꽤 기분이 좋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잠시 두 노인과 시간을 보내다가 홀로 바다 안으로 풍덩 들어갔다.
그리곤 상당히 즐거운 모습으로 수영을 하며 놀았다.
백리칠이 떠나고 나니 청유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게냐?”
진양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설명해 주었다.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닙니다. 실수도 아니고요. 누군가 고의적으로 납치한 게 확실합니다. 일부러 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백리칠이 암살자의 손에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해안에 숨겨두었던 겁니다.
누가 이런 짓을 벌인지는 이미 짐작이 가는 상황입니다.
제가 신분을 바꾸고 찾아온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는 백리칠은 저와 함께 있으면 너무 위험합니다. 그래서 데려다주러 온 겁니다. 둘째로는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입니다. 이런 짓을 벌인 자들을 벌하기 위해서죠. 하지만 계획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 누구도 백리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아선 안 됩니다. 심지어 해족들도 말이죠.”
“잘 알겠네. 그건 걱정하지 마시게나. 용귀왕 영감과 내가 있는 한 문제 없을 걸세.”
듣기만 해도 든든했다.
예전에 약했을 때는 용귀왕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어쨌든 ‘고수’의 반열에 오르고 나니 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다.
눈짓 하나만으로 진양을 제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이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양은 그 이후로도 반나절 넘게 두 사람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곳을 떠난 뒤로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고양이에 대한 안부도 묻고.
그렇게 궁금함을 모두 해소하고 나서야 그곳을 빠져나왔다.
백리칠이 납치되었을 때, 온우백과 다른 사람들은 고양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알게 되었다.
당시 해족과의 접촉도 하나의 우연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때 떠돌이 해족들과 마주했었는데, 그들은 백리칠을 발견하고 강제로 빼앗으려고 했었다.
이에 고양이는 폭주하며 한입에 떠돌이 해족들을 전부 삼켜버렸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어버리는 바람에 단시간 내에 소화가 불가능해졌고, 이에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물론 떠돌이 해족들을 너무 많이 삼켜서 그런 건 아니다.
당시 교전을 벌였던 곳에 활화산이 한 곳 있었는데 그곳에는 영석 광맥이 화살(火煞) 지맥과 함께 숨겨져 있었다.
이걸 삼켜버리는 바람에 고양이는 소화불량에 걸려버린 것이다.
어쨌든 고양이가 무사하다는 소식에 진양은 안심했다.
다시 수신 상태로 돌아간 진양은 해족의 방어망을 뚫고 백랑해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같은 시각.
침묵 속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도에서는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화근주를 마신 태자에게 화근이 될 만한 일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 * *
영제의 본체가 사라진 상태인 만큼 법신은 안정을 추구하고 있었다.
태자나 다른 친왕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최대한 정세에 영향을 줄 만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생각인 게 분명했다.
이건 일전에 이도 부근의 저택에서 지낼 때부터 예상하고 있던 사실이다.
태자의 몰락은 사실 큰 변화라고 할 수 없다.
뒤이어 연쇄적으로 벌어진 일이야말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영제 법신의 힘이 부족한 것이다.
영제의 본체가 있었다면 단숨에 상황이 일단락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진양은 이도의 상황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을 보고 과감하게 먼 길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자에게 사건이 터질 거라곤 진양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살신전이 사라진 걸 알았을 때, 태자는 어떻게든 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조왕이 개입하는 바람에 절벽으로 몰리고 말았다.
모르는 척하며 넘어가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고, 이에 마음 같아선 사실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을 잡아다 살인멸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시 태자를 배반한 심복이 조왕에게 붙어 모든 것을 불었을 때도 사실 큰 여파는 없었다.
태자가 얼버무리며 넘어가며 조용히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심복은 비록 살아남았으나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계속해서 형부 감옥에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적어도 이곳이라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용히 동궁에 처박혀있던 태자가 어느 날 열었던 연회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누군가 형부 감옥에 갇혀있는 배반자에 대한 얘기를 꺼냈는데, 무의식 중에 그런 놈은 죽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물론 그의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함께 있던 모든 자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배반자는 죽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대로 본을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누군가 태자를 배반하고 조왕에게 붙어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자는 술기운이 오른 탓인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당장 배반자를 죽일 사람이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어벌쩡하게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미 뱉은 말을 도로 주워 담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깐의 대화가 오가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이 영광스러운 기회는 어느 잠입의 고수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의 일로 큰 벌을 받지 않았던 탓일까.
태자는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잊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는 절대 흔들려선 안 된다.
특히 누군가의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가 걸려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태자가 배반자를 죽이려는 모습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쨌든 잠입의 고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임무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얼마 뒤에는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다.
옥졸을 돈으로 매수한 다음 조용히 형부 감옥으로 숨어든 것이다.
그리고 배반자를 죽이려는 순간.
심성낙이 설치해둔 진법을 건드리며 현장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심성낙은 결코 융통성 따위는 없는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런 연줄도 인맥도 없이 형부 상서의 자리에 앉은 만큼 엄격하고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야만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심성낙을 걸고넘어질 수가 없었다.
굳이 걸고넘어진다면 그가 다른 사람에게 밉보이게 된 이유가 전부다.
영제는 심성낙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두려울 것이 없이 소신대로 행동하면 그만이었다.
때문에 심성낙의 자리는 매우 안정적이었다.
형부 감옥에 숨겨져 있던 진법도 심성낙이 직접 설치한 것들로 이것에 대한 존재를 아는 사람은 형부에도 몇 없을 정도다.
그리고 암살을 하러 온 잠입의 고수가 재수 없게 첫 번째로 이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붙잡힌 그는 배반자를 바라보았다.
멀쩡히 잘 살아있었다.
비록 감옥에 갇혀있긴 하나 잘 먹고 잘 마시며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보호를 받고 있었기에 암살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배반자의 처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이어서 이 일을 태자가 알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심성낙이 소신껏 일 처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그를 죽이려 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를 살인멸구하려는 자들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형부의 사람들이 심문을 하기도 전에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불어버렸다.
조용히 지나가나 싶었는데 또 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또 다른 배신자가 나오자 태자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곧바로 암살자를 보내 배반자를 죽여 입을 막도록 했다.
이런 일이 두 번이나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본을 보이지 않는다면 또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살자는 목표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는 그림자 안으로 숨어드는 공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다.
때문에, 잠입에 능할 뿐만 아니라 그림자를 통해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했다.
그림자로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만 빼고 본다면 상당히 익숙한 공법이다.
바로 도문의 능허탁보.
그는 도망쳤으나 살인멸구를 하려 했다는 사실은 덮을 수가 없었다.
소문이 퍼지게 되며 능허탁보와 비슷한 능력을 사용하는 자가 태자의 배반자를 살인멸구하려 한 것으로 사실이 변질되었다.
여기에 능허탁보를 사용하는 도문의 잔당으로 의심되는 자가 태자의 일을 돕는 것으로 소문은 다시 한번 와전되었다.
그리고 소문은 돌고 돌아 결국 도문이 태자를 돕고 있다는 소문이 만들어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갖 오해를 뒤집어쓰게 된 태자는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그를 더욱 멍하게 만드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 소식을 퍼뜨린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태자의 곁에는 확실히 대신하여 계획을 세우고 지저분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하여 정천사가 나서서 태자의 막료들에게 조사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천사가 어떤 곳이란 말인가?
도문의 잔당으로 의심되는 자는 정천사로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다시 조사를 받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오십 개의 살신전 사건을 그가 벌인 것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그땐 정말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태자가 황급히 암살자를 불러들여 상황에 대해 논의하려고 했으나 그는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스스로 찔리는 게 있어서 도망간 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태자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더 이상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부하들은 이미 마음이 해이해진 상태였고, 자신과 가까운 귀족들을 찾아가 목소리를 내달라고 얘기하다 원한을 사버렸다.
그리하여 귀족들은 전부 침묵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태자는 가복덕의 온갖 액운이 담긴 화근주를 꽤 많이 마셨다.
그리고 비로소 지금이야 그 위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