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29
829화 변화가 이득이다
산겸과 장문 사형의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가희의 체면을 생각하여 어느 정도는 대접을 할 것이다.
마침 인마 녀석이 잘 지내는지 궁금하던 참이었다.
소식만 들어보면 꽤 잘 지내고 있는 듯했다.
어느덧 오행산의 세력 범위에 계천행이라는 이름이 퍼져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정도면 적어도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어버린 계무도보다는 훨씬 나은 수준이었다.
어느덧 오행산과 가까워질 무렵.
가희와 함께 따라나섰던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양은 대열에 합류하여 순방대의 신분으로 오행산에 함께 들어갔다.
이제 막 도착하여 차를 마시려는 순간.
산겸이 보낸 사람이 진양을 찾아왔다.
그 길로 곧장 뒷산으로 가보니 산겸이 있었다.
여전히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다.
“스승님, 오랜만입니다! 어째 갈수록 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진양은 반가움에 멀리서부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기 무섭게 강력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어찌나 강한 위압감이었는지 두 다리가 한 뼘 정도 땅으로 푹 들어갈 정도였다.
진양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확실히 여전하시군…….’
진양은 곧바로 기혈을 방출하여 위암감을 밀어냈고, 한 걸음씩 산겸을 향해 다가갔다.
기혈로 버텨낸 덕분인지 발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산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가까이 다가온 진양을 노려보는가 싶더니, 이내 손바닥으로 진양의 머리를 쳤다.
진양은 팔을 들어 그의 손바닥을 막았고, 동시에 지기진체를 사용하여 몸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산겸은 의외라는 듯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바로 수백 배 더 강한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양의 발아래 대지가 갈라졌다.
진양의 몸은 마치 못처럼 그대로 대지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고, 어느새 머리만 홀랑 밖으로 빠져나와있는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산겸은 그제서야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제법이군. 겨우 신문 경지로 나의 힘을 버티다니.”
산겸은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여족 출신의 수도사 중 이 정도 경지까지 육신을 연마하다니.
지난 만 년을 돌이켜보면 오행산에서조차 겨우 둘에서 셋이 전부다.
물론 진양을 직접 가르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에게 공법을 전수해 주었다.
게다가 방금 사용한 신통력은 누가 봐도 오행산의 신통력이었다.
이는 곧 그가 제대로 가르쳤다는 뜻이었다.
“영혼 수련은 좀 어떤가?”
잠깐의 인사를 나눈 뒤, 산겸이 물었다.
진양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신해를 열긴 했지만 아직 딱히 수련을 한 적은 없었다.
“이제 겨우 입문입니다.”
“흘누 이 망할 영감탱이. 자네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모양이군…….”
“그게 아니라 사실…….”
“어허, 대신해서 변명해 줄 필요 없어. 신해를 열 수 있었던 것도 전부 다 자네가 훌륭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세. 그러니 당연히 자네의 문제는 아닐 테지.”
진양은 입을 꾹 다물고 그가 떠드는 것을 한참 들었다.
물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쓸데없는 얘기를 주고받은 후.
산겸은 그제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대제희 때문에 여기까지 왔겠지?”
“그냥 잘 계시는지 보러 온 게 전부입니다. 아무래도 순방대에 속해있는 몸이긴 하니까요.”
“알겠다.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는 것 같으니, 네 체면을 보아서라도 섭섭지 않게 대접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가희의 일이라면 이 정도로 충분하다.
산겸이 직접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오행산에 있는 다른 이들도 알아서 가희의 체면을 생각하여 움직일 것이다.
이 외에 오행산의 세력 범위 내에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근에 천하가 많이 어지럽다고 들었다. 전조 세력까지 판을 치고 있다고 하던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겠느냐?”
산겸은 가볍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 말투였으나, 진양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산겸은 오행산을 대표하여 질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올 진양의 대답은 단순히 자신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잠깐의 고민 뒤, 진양이 입을 열었다.
“그저 작은 소동에 불과합니다. 녀석들이 아무리 날뛰어봐야 이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개인적인 생각이든, 아니면 대영 조정을 대변하든 모두 적절한 대답이었다.
산겸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혹시 어느 황자를 지지하고 있는 겐가?”
그러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됐네. 이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 걸로 함세.”
진양은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설마 뭔가 눈치채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 없다.
그가 비록 가희와 가까운 사이라곤 하지만 그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상황에선 그 누구도 가희가 황위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리가 없다.
잠시 고민을 해 보았으나, 아무래도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가 이도에서 누구를 지지하고 있는지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누가 자리를 계승하든 그 힘과 수완, 그리고 위엄 등은 한때 팔국을 멸망시켰던 영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영제를 능가하는 대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전조 세력들이 양지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몰래 움직이고 있는 이유.
대황에서 대영 다음으로 강한 나라인 대연조차 대영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
그건 바로 영제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대연의 황제는 이미 모든 미련을 버린 지 오래다.
감히 영제의 인내심을 실험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대영에서 새로운 대제가 탄생한다면 그가 누가 되든 모두에게 좋은 일이나 마찬가지다.
당장의 이익은 몰라도 일단 숨통은 트이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오행산은 연체 수도사들의 성지라고 불리며, 튼튼하고 깊은 기반을 가지고 있는 초대형 세력이다.
이들이 대놓고 나서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새로운 대제도 오행산과 대립하려 하진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오행산과 대립한다면 새로운 대제의 입장에선 기반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제는 다르다.
그는 오행산과 대립하고도 충분히 기반을 지켜낼 수 있을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대형 세력들이 영제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니 조금만 생각해 봐도 산겸이 크게 개의치 않아 한다는 건 이상할 게 없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던, 오행산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들에겐 아무런 영향이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정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오행산에게는 이득이다.
외부 압력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사실 진양은 산겸이 어떤 입장인지 직접 찔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산겸이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을 보니 대충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쪽으로는 더 이상 얘기를 이어나가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괜히 얘기를 더 이어나가봤자 서로의 기분만 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참을 다른 얘기를 이어나가다 보니 인마 얘기가 나왔다.
계천행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마자 산겸은 흡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계천행이 어떤 출신을 가지고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
현재 계천행은 온전한 생명체가 되었다고 한다.
재능, 근골, 그리고 이해력도 훌륭하고, 스스로도 매우 부지런하다고 하다.
여기에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진양이 직접 교육시키고 난 뒤 오행산으로 데려왔으니, 품성이나 품행에는 결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산겸은 계천행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계천행은 최근에 폐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전에는 천하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인품과 실전을 연마했었는데, 그러다 한 요녀의 눈에 들게 되었다고 한다.
산겸은 도와주지 않았고, 그저 계천행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장문인 장추우는 어느새 계천행을 다음 가주로 키울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암암리에 붙여두는 호도인조차 없었다.
스스로의 실력이 부족하여 외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이 역시 수련의 일부다.
인마가 화근으로 발전하지 않고 계천행처럼 올바른 존재가 된 것은 수만 년 이래에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는 경우다.
수도사의 세계에서 진양처럼 인마를 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깊게 뿌리 박혀있는 편견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정파의 수도사들은 인정사정없이 인마를 죽이려고 드는 게 일반적이고, 사파 수도사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진정한 사마로 만들려는 것이 일반적이다.
진양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겸의 눈에 계천행은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잘 키운다면 언젠간 봉호도군의 경지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행산은 적어도 수만 년 동안 안정과 평화를 누릴 것이다.
어쨌든 여러 이유로 요녀에게 눈에 들게 된 것을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계천행은 스스로의 본심을 잘 지켜냈다고 한다.
상대가 강제로 채보(采補, 상대의 정혈을 취하여 자신을 보익하는 것이나, 여기서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를 하기 위해 달려들었으니, 계천행은 강경하게 대응했다고 한다.
산겸과 장추우 모두 상당히 흡족스러워 했으며, 그가 돌아오자마자 미리 준비해둔 자원을 주고 곧장 폐관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고 한다.
산겸은 자식 자랑에 한참 신이 난 모습이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진양이 물었다.
“요녀요? 어떤 녀석이죠?”
“동쪽 국경지대에서 쌍수법을 연마하는 녀석들 중 정도의 길을 걷는 건 합환문뿐일세. 이런 사도의 방식으로 채보를 하는 걸 일반적인 수도사보다 더 못 받아들이는 녀석들이지. 동쪽 국경지대에서 채음보양(采陰補陽)을 하다 죽은 사도의 남자 수도사들은 대부분 합환문의 손에 죽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사도 여자 수도사는 소수 중에서도 극소수일세. 대부분 제대로 된 녀석이 없어.”
산겸은 크게 개의치 않다는 듯 말했다.
“천행이가 만났던 그 사도 여자 수도사는 신문에 근접한 경지였다네. 합환문의 사람이었다면 겨우 그 정도 수준으로 감히 돌아다니지 못했을 걸세. 겨우 한 달도 채 못 버텼을 테니까.”
진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합환문 사람이었군요. 하긴, 대놓고 대영 신조와 대립하고 있는 마당이니. 참 많이도 컸습니다.”
가희가 동쪽 국경지대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로 합환문은 겁먹은 자라처럼 머리를 쏙 움츠려버렸다.
한편, 그들은 찾아오는 사람마다 지난번 태자의 장례식에서 일을 벌였던 자는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합환문은 비교적 복잡한 조직이다.
서로 복잡한 관계로 얽혀있는 것도 그렇고, 여러 크고 작은 세력으로 이어져 있다.
이는 그녀들에게 세탁할 기회를 준다.
하여 정천사는 계속해서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아마 대략적인 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