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04
904화 뒷다리는 너무 기름져
갑자기 나타난 묵양의 모습에 쌍둥이 자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묵양의 미간을 강타한 은실은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었고, 묵양을 몇 바퀴나 감쌌다.
묵양은 순식간에 은색 실타래에 의해 꽁꽁 묶이게 되었다.
자매 중 한 사람은 은실을 꼭 쥐고 있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온 힘을 다하는 듯했다.
그러나 은색 실타래는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진양이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진 첩신호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묵양이 모습을 드러내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한 사람이 묵양을 속박하고 있는 사이, 나머지 한 사람은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진양의 몸에 꽂혀있던 수십 개의 은침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어서 은침은 조금씩 후토진체를 뚫고 진양의 육신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진양은 여전히 제자리에 선 채 미동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진양의 머리 위로 빛의 고리가 하나 나타났다.
이어서 체내의 진원이 불타오르며 강력한 신통력의 위력이 발휘되었다.
빛의 물결이 일어나며 주위로 퍼져나갔다.
순간, 진양은 금속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몸에 꽂혀있던 은침이 부들부들 떨리며 밖으로 뽑혀 나왔다.
뽑혀 나온 은침은 흘러나온 빛의 물결에 휩싸이며 진양의 주위를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번개가 흘러나오며 은침은 더욱 빠른 속도로 돌기 시작했고, 이내 거대한 은색 폭풍을 이루었다.
이때, 진양의 몸에 피어있던 하얀 꽃들이 한 번에 우수수 땅 위로 떨어졌다.
진양은 고개를 까딱이며 굳어있던 근육을 풀었다.
그리고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돼지를 들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건 돌려드리도록 하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개가 번쩍이며 은색 기둥이 돼지를 들고 있는 여인을 둘러쌌다.
은색 기둥은 마치 등불이 꺼지듯 훅- 하며 사라져버렸다.
여인은 은침에 대한 제어권을 빼앗아오려는 듯 계속해서 수인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세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몸엔 아무런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동공은 점점 풀리고 있었다.
버둥거리던 돼지는 마침내 그녀의 손에서 벗어났다.
돼지는 곧장 진양의 발아래로 달려왔다.
그리곤 마치 강아지가 반갑게 주인을 맞이하는 것처럼 배를 보이며 애교 같지도 않은 애교를 부렸다.
진양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녀석을 발로 차버렸다.
이어서 진양의 시선은 묵양을 속박하고 있는 여인 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실타래 사이로 묵양의 손이 쑥- 하고 나타났다.
이어서 실타래는 묵양의 괴력을 버티지 못하고 후두둑 끊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탈출조차 하지 못한 묵양의 모습에 진양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걸까?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묵양의 몸이 팽창했다.
그러자 남아있던 실타래는 마치 썩은 밧줄처럼 터져버렸다.
묵양이 반격을 가하기도 전.
진양의 주위에 일어난 검은 번개가 번쩍이더니, 끊어진 은실의 일부가 바늘로 변하여 곧장 여인의 미간을 꿰뚫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상대의 얼굴에선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숨이 끊어지며 미련 가득하던 눈빛은 점점 흐려졌다.
진양은 쓰러진 두 사람을 모두 성불시킨 뒤 관 두 개를 꺼내 시신을 수습해 주었다.
두 사람의 충성심은 가히 칭찬을 해 주고도 남을 정도였다.
윤제가 영제의 검에 맞으며 생기가 완전히 끊어지는 순간.
전조에 협력했던 자들과 애초부터 전조 세력의 사람이었던 자들 모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아니었다.
설령 성공적으로 진양의 숨통을 끊어놓는다고 해도 도망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진양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진양이 방심하고 있을 지금이야말로 진양의 숨통을 끊을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진양은 비록 신문 경지에 불과하지만, 여느 신문 수도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진양의 실력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체질 개선부터 육신 단련까지.
진양은 단 한 번도 수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최근 몇 년간은 직접 손을 쓰지 않은 이유는 결코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굳이 실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었거나, 혹은 목숨을 걸고 덤벼야 간신히 꺾을 수 있을 정도라 최대한 싸움을 피했던 것일 뿐이다.
진양은 전투에 미친 사람도, 전투를 통해서만 경지를 돌파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 만큼 굳이 목숨 걸고 손을 쓸 필요는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살아남는 것이다.
죽으면 결국 모든 것이 허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진양은 두 자매를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
물론 두 사람이 죽으며 남긴 두 개의 보물은 따로 잘 챙겨두었다.
은실과 은침.
두 개가 하나의 조합을 이루는 법보인 듯했다.
상당히 단단한 법보였다.
은침은 그 난리를 겪고도 멀쩡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묵양이 끊어버렸던 은실은 어느새 스스로 이어 붙으며 원상복구까지 된 상태였다.
삼 척에 이르는 꽤 긴 실이었다.
진양은 그것을 모두 연화시킨 뒤, 은침과 은실을 밧줄로 만들어 머리에 묶어두었다.
쌍둥이 자매에게선 사람마다 하얀 광구 하나와 파란 광구가 나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파란 광구는 일반적인 파란 광구와는 달리 다소 짙은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보라색 광구에 근접한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하얀색 광구에선 예상했듯 기억이 들어있었다.
시장에 팔아 넘겨진 두 사람을 대국공이 사들였다.
대국공은 두 사람의 몸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곳으로 데려가 전승을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두 개의 파란색 광구는 하나로 합치니 온전한 전승이 되었다.
수놓는 여인이라는 뜻의 수낭(繡娘)이라는 전승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전승을 배우러 갔던 곳은 수낭부(绣娘府)라는 곳이었다.
진양은 전승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상당히 심오한 내용이었다.
경전의 항렬에 오르지 못한 건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기예(技藝)가 우선이었기 때문인 듯했다.
기예라는 것은 결코 전승만 가지고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치 상고 인족 십이사가 자신들의 기예를 온전히 전승으로 남겨두었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들만큼 발휘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계속해서 살펴보다 보니 수낭부가 동해에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간이 되면 한번 가봐야겠군.’
보아하니 인족 십이사 외에도 기예가 도의 경지에 오른 정상급 고수들이 꽤 많이 있었던 듯했다.
그런데, 진양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일전에 윤제의 무덤을 지키고 있던 태감에게서 연화보전을 얻었던 게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 얻은 수낭 전승까지.
‘이게 뭐지?’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때.
사지가 속박되고 입이 꿰매진 돼지가 진양의 발아래로 굴러왔다.
그는 불쌍한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은 고개를 숙이며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네 녀석이 끌어들인 거냐?”
돼지는 자신은 절대 아니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으로도 부정을 하고 싶었지만 ‘읍읍’하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그때, 진양의 머리에 묶여있던 은실이 날아와 돼지의 입에 걸려있는 은실과 맞닿았다.
순간 은실은 하나가 되었고, 다시 진양의 머리로 날아가 휘감겼다.
“대인, 이건 저와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전 그저 대인께서 이곳에 안 계신다고 말한 게 전부일 뿐. 정말 아무것도 모릅니다.
“오호, 그래?”
진양은 녀석을 발로 뻥 차버린 뒤 뒷마당으로 가서 솥을 꺼냈다.
돼지는 쪼르르 달려와 솥 옆에 섰다.
그러나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보곤 근처에 있던 냇가로 향했고, 깨끗이 씻고 나서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녀석은 군말 없이 솥으로 들어가 두 다리를 푹 담갔다.
그리고 두 다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밖으로 천천히 기어 나왔다.
“대인, 정말로 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일개 잡요괴에 불과한 제가 무슨 수로 이런 일을 벌인단 말입니까?”
사실 진양은 녀석을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솥에 들어가 주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저택을 떠날 때 데려가겠다는데도 굳이 고집을 피우며 남겠다고 한 게 괘씸해서라도 어느 정도 혼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버릇을 단단히 고쳐놔야지.’
진양은 아무 말 없이 긴 막대로 솥에서 끓고 있는 탕을 휘저었다.
돼지는 잔뜩 초조한 얼굴로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 진양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불과 진양이 자리를 비운 며칠 동안 벌어졌던 일만 봐도 그렇다.
그렇게 한참 탕을 끓이던 진양이 돼지에게 다가왔다.
돼지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진양을 바라보았다.
“내가 시키면 뭐든 할 거야?”
“물론이죠. 대인, 말씀만 하십시오.”
“알았어. 그럼 가서 앞다리 좀 담그고 있어 봐. 뒷다리는 너무 기름져서 말이야.”
“…….”
돼지는 앞발뿐만 아니라 머리까지도 푹 솥 안에 담갔다.
그리고 잠시 뒤.
뼈만 남은 돼지가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원상복구가 되었다.
그 모습에 진양은 혀를 내둘렀다.
‘봉인된 게 이 정도 수준이라니. 그럼 봉인되지 않은 시절엔 얼마나 강했단 얘기야?’
다음부터는 아예 녀석을 솥 안에 푹 담그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어차피 녀석이 거절할 이유는 없다.
탕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봉인이 약해지니 말이다.
물론 그만큼 자신의 힘도 일부 빠져나가긴 하겠지만, 적어도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 우선 아니겠는가?
한편, 돼지는 진양의 음흉한 시선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불안한 마음에 녀석은 잔뜩 자세를 낮추었다.
“대인, 다음번에는 저도 데리고 나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진양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돼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뒤.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네? 그게 무슨…….”
돼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진양은 한숨을 푹 쉬며 그런 녀석을 발로 뻥 차버렸다.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지내는 게 더 나을지도.’
진양은 돼지를 무한으로 제공되는 식재료로, 돼지는 솥을 자신의 봉인을 풀 유일한 열쇠로.
이대로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진양은 묵양에게 부서진 저택을 수리하도록 시킨 뒤, 자신은 수련을 할 때 사용하는 조용한 방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장정의가 떠오른 것이다.
녀석은 상처가 다 낫기 무섭게 어디론가로 또 사라져버렸다.
물론 녀석이 걱정되는 건 아니다.
다만, 연화보전과 수낭의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 장정의라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