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treme Concept RAW novel - Chapter 155
75화.
“탈도 많고 참 이런저런 논란도 많았던 글로벌 퀘스트가 드디어 마무리 되었습니다. 생각 외로 퀘스트가 빠르게 클리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현재 바실레이아 대륙은 퀘스트의 후유증이 남아 있어 많은 곳이 황폐화 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륙의 영웅이 어둠의 마법사를 물리쳐 준 것으로 만족한다며 오히려 기뻐하고 있습니다.”
“대륙의 영웅, 천마!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즐거움으로 플레이어들을 즐겁게 해 줄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글로벌 퀘스트가 끝난 직후, 모든 채널에서 천마의 이야기로 떠들기 바빴다.
글로벌 퀘스트를 극적으로 클리어 한 것은 천마 본인이지 않던가. 또한 그의 마지막 퀘스트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모두 재방송을 돌려 보느라 바빴다.
[오늘 재방송만 3번 봤다.]-그만 보고 싶다. 누가 나 좀 말려줘
-나도임 ㅋㅋㅋ
-나도 천마형 영상만 계속 돌려 보고 있는 중. 미치겠다. 낼 출근인데, 새벽에도 이 지랄이네
-천마형이 갑자기 분위기 바뀌고 모습도 조금 바뀌는 거 같은 스킬이 있는 거 같던데. 그거 써서 마지막에 정화의 정수도 퐁당 떨어뜨린 거 아녀?
-ㅇㅇ나도 그게 이상해서 몇 번 질문을 했는데, 대답을 안함. 일부러 공개 안 하는 거 같음
-그럴 수도 있겠다. 이것저것 다 공개해 버리면 다른 길드에서 그걸로 약점을 찾아낼 거 아니야
-하긴. 너무 많은 걸 보여 주긴 했어. 이제 슬슬 기밀 유지 할 때가 되긴 함
커뮤니티 회원들은 아직 천마에게 악의 승천 스킬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러 비공개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유명세를 얻으면 얻을수록 숨겨야 할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플레이어들과 전투를 벌였을 때, 히든 카드를 공개할 수 있으니까
.“이걸로 한동안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 없겠네.”
천강은 폭발적인 조회수와 더불어 벌써 350만 명까지 치솟은 구독자 숫자를 보며 입가를 씰룩였다.
이 정도로 빠르게 구독자 숫자가 상승하는 경우는 천마 채널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
기대 월 수익이 벌써 억 단위에 다다라 솔직히 이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매 방송마다 후원금은 수천만 원씩 들어오고 광고비와 방송사에서 받는 돈까지 합한다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평생 만져 보지 못할 돈을 얻게 된 천강은 애써 침착해 지려고 했다.
인기라는 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 업적은 모두 제 형이 세운 것이지, 절대 천강이 세운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이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조차 없었다.
‘나중에 정산이 되면 이것들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회의를 해야겠어.’
지금 중요한 건 돈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글로벌 퀘스트가 끝난 직후로 게임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천마가 마음에 걸렸다.
글로벌 퀘스트를 완수한지 이제 3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천마는 여전히 캡슐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퀘스트가 끝난 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에 대해 물어봐도 천마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는 캐묻진 않긴 했다만······.
“형. 오늘도 캡슐에 안 들어갈 거야?”
앉아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천마가 대꾸했다.
“아니. 오늘은 들어가야겠지. 그놈이 또 어떤 귀찮은 걸 준비했을지······.”
천강은 천마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천마는 사실 헬라가 했던 말이 계속 신경쓰였다.
헬라는 천마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떤 존재였는지를 이해하는 중이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그 다음 말이 문제였다.
천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겠다는 그 말.
왠지 그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왠지 게임에 들어가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드는 건 괜한 걱정이려나.
“이런 건 역시 본좌의 성미에 맞지 않는구나. 지금 들어가자.”
“응? 지, 지금?”
“그래.”
천마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천강도 후다닥 뒤를 따라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제국의 기사단이었다.
“대륙의 영웅이시어. 당신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파란 사자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과 황금 갑옷은 이들이 어디 소속인지를 알려 준다.
바로 브리쉘 제국의 황제만이 움직일 수 있다는 황실 기사단이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대륙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에게 크게 감사하고 계십니다. 그에 따라 황제께서는 큰 보상을 내리시고자 합니다.”
“음······. 보상이라면 본좌는 괜찮은데.”그렇지 않아도 헬라가 남긴 말 때문에 선물, 혹은 보상이란 것에 민감한 천마였다.
“무려 제국의 황제께서 하사하시는 포상입니다. 부디 거절하지 마시길.”
거절한다면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풀풀 풍겼다.
이제 막 방송을 킨 천강은 천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 그래요. 천마님. 무려 황제께서 내리시는 포상이잖아요.”
“맞습니다. 이것만큼 무한한 영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방송 알림이 뜨자마자 달려온 시청자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천하!!
-오오 황제의 포상이라니
-황제한테 직접 보상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진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몇 명 밖에 안 받아봄
황제가 직접 주는 보상은 이제까지 10명도 안 되는 플레이어들만 받았다. 당당히 그 명예의 전당에 천마의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도 천마가 황제로부터 보상을 받게 될 거라는 기사가 미리 나와 있었던 상태.
하지만 정작 천마 본인은 껄끄러웠다.
“쯧. 본좌가 원래 황제라는 놈들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
헬라 때문도 있고, 무림에서도 천마는 황제라는 놈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천마에게 고개를 숙이며 빌빌 기었어야 했으니까.
“또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 본좌는 평생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만약 황제에게 포상을 받게 되면 황실의 예절을 미리 익혀 놓아야 하고 예의란 예의는 전부 차려야 한다.
“본좌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니 황제에게 전해라. 포상은 사양하겠다고.”
천마의 말에 황실 기사단장은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 영웅이시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본좌의 말을 듣지 않았느냐. 본좌가 거기까지 가서 포상을 받을 이유는 없다. 처음부터 뭔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
“하, 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대륙의 영웅이시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 대륙이 어둠의 마법사 손에 들어가는 걸 막은 분입니다! 당연히 그에 따라 제국에서는 보상을 드려야 합니다!”
“됐다. 본좌는 관심 없으니까, 다른 사람이나 주거라. 아참. 이번에 죽은 빛의 심판관 카라스에게 줘도 괜찮을 거 같은데.”
“······.”
기사단장과 천강 모두 얼이 빠진 얼굴로 천마를 쳐다보았다.
황제가 직접 하사하는 포상을 거부하는 건 아마 천마 밖에 없을 것이다.
“처, 천마님. 진심이십니까? 정말 포상을 포기하시려고요?”
“그래. 받을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 그래도······.”
그동안 천마가 글로벌 퀘스트를 깨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수많은 길드에게 쫓기고 몬스터들과도 치열하게 싸우며 마침내 어둠의 마법사를 막아냈다. 당연히 엄청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터.
그런데 천마는 그걸 과감히 포기해 버렸다.
“저희는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는 충실한 기사들입니다.”
기사단장의 굳은 목소리에 천강은 슬몃 걱정이 되었다. 만약 기사들이 천마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면 여기서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륙의 영웅께서는 끝까지 겸손하시군요. 그 대단한 업적을 세우시고도 자신의 명예를 과시하지 않으시다니. 오늘 참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
그런데 이어지는 기사단장의 말이 조금 이상했다.
“영웅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희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당신의 그 위대한 마음가짐을 널리 퍼뜨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황실 기사단에게도 그 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큰 보상이 있음에도 그것을 거부할 줄 아는 절제된 마음. 그리고 그 겸손함에 브리쉘 제국 황실 기사단장 하바르가 크게 감명했습니다.] [하바르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앞으로 황실 기사단은 당신에게 큰 호의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뭔가 이상한 쪽으로 잘못 이해한 기사단장 하바르는 정중히 예의를 차린 다음 천마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든 힘이 필요하시다면 불러 주십시오. 한 번쯤은 영웅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바르에게 있는 호감도를 사용해 황실 기사단의 힘을 1번 빌릴 수 있게 됩니다.]황실 기사단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권을 던져 주고 사라진 하바르였다. 하지만 황제가 천마에게 내렸을 포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리라.
‘아깝다······.’아깝지 않다면 사람도 아닐 터.
그러나 이건 천마의 결정이지 않은가.
-황제의 러브콜을 차 버리는 건 천마형 밖에 없을 듯ㅋㅋㅋ
-미친ㅋㅋㅋ레알ㅋㅋㅋ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아까운데
-황제가 내릴 정도면 포상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걸 뻥 차 버리네. 역시, 천마형 클라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천강과 천마가 이제 그만 신전에서 벗어나려 할 때였다.
[크나큰 포상을 거부하고 공을 다른 이에게 돌리는 겸손한 영웅의 마음가짐! 브리쉘 제국의 황제는 영웅의 뜻을 받들어 그에게 하사하려 했던 모든 포상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브리쉘 제국은 도시 복구에 힘을 다 하기로 결심했으며, 영웅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에 쓸 예정입니다.]“엥?”
브리쉘 제국 황제는 각 도시에 칙령을 내려 대륙의 영웅이 가진 뜻을 전하였고, 그에게 내리려 한 모든 포상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기로 했다. 또한 창고까지 열었다고 하니, 백성들이 천마를 칭송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브리쉘 제국에 속한 모든 도시의 주민들이 영웅의 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니다.] [마타하니 도시에서는 백성들이 돈을 모아 영웅을 위해 동상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웅의 뜻 깊은 마음에 감명 받은 백성들이 앞으로 당신에게 호의를 아끼지 않을 겁니다.][이제 당신은 브리쉘 제국에 속한 도시에서 80% 가량 낮은 가격에 물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각 도시의 성주들은 앞으로 당신을 왕족에 걸 맞는 대우를 해 주게 됩니다.]황제의 포상을 거부하니, 다른 방식으로 포상이 돌아왔다.
바실레이아 대륙에서 가장 크다는 브리쉘 제국에 속한 모든 곳에서 물품을 싸게 사고 왕족에 걸 맞는 대우까지 받게 된다.
-이 정도면 거절할 만 했다.
-그래도 좀 아깝긴 하지만, 이 정도면 좋은 거지
-지금 도시 주민들이 전부 천마 형 얘기 밖에 안 함. 대륙의 영웅께서 백성들을 위해 포상도 마다했다고 ㅋㅋㅋㅋ
천강은 다시 한번 속으로 감탄했다.이런 식으로 포상이 돌아오다니.
물론, 천마는 이럴려고 포상을 거절한 게 아니었다.
헬라에게 들었던 말도 있고, 황제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을 뿐.
“뭐, 이런 것까진 거부할 순 없겠지.”
천마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신전 밖을 나가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신전을 나오기 무섭게 바실레이아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시스템 창 하나가 나타났다.
[영웅을 위한 보상이 내려집니다.] [대상자: 본좌는 천마다] [7일 후에 혼돈의 탑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그 시스템 창을 본 천강과 시청자들이 모두 경악했다.“호, 혼돈의 탑?”
그리고 천마는 직감했다.
헬라가 쓸데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고.
극한의 컨셉충 76화
“아니. 이게 도대체 뭐죠? 혼돈의 탑이라니요. 거기다가 지정자가 천마님이라니.”
혼돈의 탑은 2년 전에 처음 나왔던 바실레이아 대륙 이벤트였다. 물론, 기간 한정 이벤트라 한 달 만에 없어지긴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주어지는 이벤트 퀘스트!
그것은 바로 혼돈의 탑을 정복하라는 것이었다.
혼돈의 탑이 나왔을 때 엄청나게 많은 유저들이 그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제는 누구도 혼돈의 탑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2년 전에도 세계 랭킹 1위를 지키고 있던 판테온과 그의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혼돈의 탑이라니 ㄷㄷ
-언젠가 다시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
-지정자라는 건 대체 뭐임?
-와씨 2년 전에 나왔던 게 지금 또 나오네
2년 전 혼돈의 탑에서 겪은 일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시청자들이었다.
“혼돈의 탑이 뭔데 그러는 것이냐?”
“음. 이 혼돈의 탑은 말입니다. 분명 겉에서 보았을 땐 100층은 족히 넘을 정도로 높은데, 층수는 그리 높지 않아요. 처음 혼돈의 탑이 나왔을 땐 층수가 딱 7층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혼돈의 탑을 정복하려고 했죠. 분명 꼭대기에 엄청난 보상이 있을 거라 기대하며. 하지만 세계 랭킹 1위인 판테온도 5층을 못 넘기고 결국 혼돈의 탑을 빠져 나왔어요.”
대부분 유저들은 3층에서 아웃이 됐고 판테온과 그를 따르는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4층을 클리어했다. 하지만 5층에서 결국 막혀 버려 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혼돈의 탑은 딱 두 번의 기회만 줍니다. 그 안에서 두 번 죽게 되면 탑에서 나오게 돼요. 판테온도 2번 죽는 바람에 거기서 나와야 했고요.”
-기억난다-판테온 꿍한 얼굴로 탑 나오던거 ㅋㅋㅋㅋㅋ
-그때 ㅈㄴ충격이었는데. 논란도 많지 않았음?
-ㅇㅇ판테온도 못 깰 정도면 난이도 개 헬이라고 욕 많이 먹었지
그 당시 판테온이 탑을 정복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플레이어들은 6층도 아닌, 5층에서 막혀 내려온 판테온을 보고 운영진을 비난했다.
하지만 의문인 건 아직도 판테온과 그날 5층을 올라갔던 플레이어들이 그곳에 뭐가 있었는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얼 보았기에 5층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일까.
“아무튼, 혼돈의 탑에 대한 추측은 많아요.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을지는 모르겠지만.”
혼돈의 탑의 첫 시작은 어느 초원에서부터였다.
고대 공룡들과 같은 몬스터를 플레이어들이 사냥했는데, 단 몇 시간 만에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낙오했다.
그 다음 층은 바실레이아 고서에 적혀 있는 고대 전쟁을 다뤘는데, 초원에서 몬스터들을 많이 잡은 순으로 계급이 결정되어 전쟁을 벌였다.
“이번에도 분명 그때처럼 롤 플레잉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게임이 펼쳐질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지정자라는 건데······.”
지정자가 무얼 의미하는 건지 천강은 알지 못했다. 그건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천마는 이 혼돈의 탑이 헬라가 말하던 선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이런 게 뭔 선물이라는 건지.’
혼돈의 탑이라는 퀘스트를 선물이랍시고 준다라. 그 발상 자체가 궁금했다.
어쩌면 이것도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천마님도 기대되시죠?”
“······전혀. 본좌는 혼돈의 탑이 생겨나도 가지 않을 생각이다.”
“예?”
그깟 선물 안 받으면 그만이다.
천마는 혼돈의 탑이 나타나도 아예 발을 들이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 * *
“혼돈의 탑이라······.”
혼돈의 탑이 곧 나타난다는 시스템 창을 읽은 레이피드는 씁쓸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 지랄 맞은 게 또 나오네.”
판테온도 혼돈의 탑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별로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판테온이 말하기 싫다고 얘기를 하지 않을 레이피드가 아니지 않은가.
“혼돈의 탑이 뜨면, 들어갈 거야?”
“들어가야 하는 건가?”
“대륙 전체 이벤트니까. 거의 대부분 유저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겠지. 우리라고 빠질 수 없잖아.”
“저번에 거길 들어가서 봤던 게 있는데, 거길 또 들어가자고?”
판테온의 대답에 레이피드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 악몽 같았던 혼돈의 탑.솔직히 레이피드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다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번에는 빠지자. 그동안 슬슬 구역 관리를 좀 해야겠어.”
최근 영토를 넓힌 네브레 길드는 글로벌 퀘스트로 인해 어수선했던 걸 정리하고 이제 영토 관리에 들어갔다
.
아직 그들은 제국 수준이 되지는 못했지만, 왕국을 건설한 최초의 길드이기도 하고 영토를 넓혀 영향력을 끼치는 중이다.
레이피드가 말하는 관리라는 건 이제 네브리 길드 영역에 있는 사냥터와 길목 모두 세금을 따로 걷는다는 뜻이었다.
원래 길드가 영향력이 커져 영토를 점령해 나가면 그곳에 속해 있는 사냥터와 지나는 길목을 독점하기에 이른다.
즉, 길드가 자체적으로 세금을 거두어 간다는 것인데, 이것 때문에 유저들은 피 같은 돈을 뜯기는 경우가 참 많다.
또한 길드원들에게 잘못 걸리면 가지고 있는 걸 모두 빼앗기는 사태도 벌어진다.
네브레 길드는 가장 큰 길드인만큼, 그런 쪽으로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그걸 가지고 판테온이나 레이피드가 나서서 제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네브레 길드가 갖는 특권이니까.
“그깟 혼돈의 탑은 실컷 들어갔다가 다 죽으라고 하고 그동안 우린 목표대로 대륙을 정복하면 되는 거야.”
2년 전과는 판테온의 능력도, 네브레 길드의 능력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판테온은 생각했다.
지금 들어간다고 해서 과연 탑을 정복할 수 있을까?
* * *
천강의 설득에도 천마는 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본인이 저렇게 들어가지 않겠노라 버티는데, 천강이 그걸 강요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천강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둘은 신전 밖으로 나와 오리아나 항구 도시를 벗어나 새로운 지역에 도착했다
.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소형 도시, 댄버스에 들어서게 된 천마는 입구에서부터 병사들의 제지를 받아야 했다.
“이곳은 라이칸 길드가 다스리는 댄버스 도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다.”
제국 산하에 있는 도시들 중, 특정 길드들이 다스리는 곳이 존재한다.제국으로부터 직위를 받아 도시를 다스릴 권한을 얻으면 되는데, 이곳 댄버스 도시도 그중 하나였다.
“여기 있습니다.”
이젠 워낙 자연스러운 일이라 천강이 값을 치러 천마와 함께 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보면서 천마가 천강에게 물었다.
“원래 다 저러는 것이냐?”
“예? 어떤 거요?”
“이제까지 도시에 들어갈 때 돈을 내고 들어갔던 적이 없었던 거 같은데.”
“아. 제국에서 직접 다스리는 도시들은 웬만하면 돈을 안 받아요. 그런데 여기처럼 길드가 다스리는 곳은 전부 받죠. 물품을 사고 팔 때도 비싼 세금을 받기도 하고요. 주변 사냥터도 돈을 내고 이용해야 돼요.”
-이게 다 네브레 길드 때문임
-그 새끼들이 도시 다스리고 나서부터 돈 받으니까, 다른 길드들도 다 따라함
-ㅈㄴ싫어
-내가 이래서 저런 곳을 안 감
이러한 문제 때문에 유저들은 길드가 다스리는 도시를 일부러 안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퀘스트 때문에 여행을 할 때, 그쪽 길목을 지나야 하는 경우가 많아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뭐, 착취죠. 착취. 다 같이 재밌게 플레이 하라고 만든 게임인데, 착취를 하고 앉았으니까요.”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하나 보지?”
“그렇죠. 가끔 마음에 안 든다고 길드원들이 단체로 플레이어 하나를 죽인 다음에 아이템을 전부 강탈할 때도 있으니까요.”
“여기도 그러나?”
“예. 라이칸 길드도 악명이 높죠.”
천마가 주변을 살펴보자 천강은 걱정할 거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무려 천마님에 저까지 있지 않습니까? 저희 둘을 상대하려면 라이칸 길드가 길드원들을 전부 다 끌고 와야 할 걸요?”
-ㅋㅋㅋPD 자신감 넘치누
-방패 가졌다 이거냐?
-참된 자신감 인정한다
-하긴. 천마형 하나만 있어도 넘사벽임
더 이상 천강과 천마를 길드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일단, 그 끝을 알 수 없는 천마의 전투력도 있고 그의 옆에 항상 붙어 있는 천강도 문제였다.
천강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방패라는 아이템은 사기적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 둘을 상대하려면 길드의 본대가 나서야 해결이 될 정도라 건들지 않는 것이다.
괜히 건드렸다가는 손해를 보는 쪽은 공격을 한 쪽이 될 테니까.
“근데 여긴 왜 오자고 한 것이냐?”
“아. 저희가 요즘 너무 퀘스트만 하고 돌아다녔잖아요. 그래서 휴식도 좀 하는 김에 왔죠. 여기에 진짜 유명한 식당이 하나 있는데, 맛집 탐방도 하고 천마님 먹방도 할겸······.”
천강이 한창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성 안에 있던 병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서둘러 성벽으로!!”
“서둘러라!!”라이칸 길드원들도 병사들과 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에이 시발. 갑자기 그 새끼들이 여길 왜 온 거야?”
천강은 그걸 보고 잘못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아······. 설마, 님들. 아니겠죠?”
꼭 천마만 오면 사건이 터진다.
시청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뭐, 이미 예상하고 있었음
-언제 터지나 했네 ㅋㅋㅋ
-천마가 천마했을 뿐
“일단 맛집 탐방은 나중에 하고 다른 곳으로 피해야겠는데요? 아무래도 누가 쳐들어온 거 같은데.”
천강이 어떻게든 천마와 함께 성 밖으로 나가려 할 찰나. 저 위에서 뭔가가 굉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 어어···?”
떨어지는 쪽이 천강과 천마가 있는 방향이라서 반사적으로 방패를 높이 들었다.
콰아아아-!!
“히익!”
다행히 그것은 천강과 천마의 위로 떨어지지 않고 바로 뒤에 떨어졌다. 그리고 떨어진 것의 정체를 천강은 금방 알아보았다.
“어? 저 사람······.”
-잉???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뭐여?
시청자들도 금새 상대방을 알아보고 채팅창을 물음표로 도배했다.
“저기 있다!!”
“판테온이다!!”
“저놈부터 죽이면 우리가 이긴다!”
네브레 왕국의 왕, 판테온.
그가 적으로 뒤덮여 있는 댄버스 도시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
판테온은 천강과 천마를 의식한 것인지, 그들을 슬쩍 바라본 뒤 바닥에 있던 창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라이칸 길드원들과 병사들에게 그 창을 던져 버렸다.
콰아아앙-!!
창 하나 던졌을 뿐인데, 큰 폭발과 함께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이 그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판테온은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달려드는 잔여 병력들을 순식간에 도륙냈다.
저들의 힘이 결코 약하지 않을 텐데,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 주며 판테온은 구역 하나를 홀로 쓸어 버렸다.
항상 전투가 나면 가장 먼저 앞서 나간다는 말이 저것 때문인 것 같았다.
자제할 수 없는 전투력! 그리고 전투력에 걸맞는 컨트롤 능력까지!판테온이 세계 랭킹 1위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건 단순히 히든 직업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사기적인 히든 직업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음에도 판테온은 오로지 본인의 실력으로 그들을 쓰러뜨리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으니까.
“저 사람이 판테온이에요, 천마님. 바실레이아 세계 랭킹 1위.”
천강이 말하지 않아도 천마는 대충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만난 것들 중에서 판테온이 가장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으니까.
“응? 근데 왜 여기에 오는 거 같지?”
그런데 판테온은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천강과 천마에게 다가왔다.
천강은 순간 판테온이 자신들을 라이칸 길드원들로 착각해 싸우려는 줄 알고 다시 방패를 들었다. 그러나 판테온은 이 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여기에 온 건 도시를 정복하기 위함도 있지만, 천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천마 앞에 서게 된 판테온이 짧게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