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02
이로써 도준의 집 거실 장식장에는 드라마로 받은 상만 해도 신인상과 최우수상, 대상이 나란히 놓이게 되었다. 진성현 부장은 마치 제 일처럼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문득 물었다.
“근데 너 수상소감 때 말한 거··· 그거 무슨 뜻이야?”
트로피를 장식장에 잘 올려 놓은 진성현 부장은 이야기가 길어질 듯해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도준도 그 맞은 편에 앉았다.
“수상소감이요?”
“어. 어머니 얘기하면서······.”
여상한 어조로 물었으나 실은 내내 궁금하던 이야기였다. 아무리 가족처럼 지내는 매니저와 배우 사이라지만 가족 얘기는 너무 사적인 얘기일 수도 있어 질문을 피해왔다.
그런데 어제 대상 수상소감을 하며 도준이 평소와 달리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를 입에 올린 것이다.
도준의 대상 소식과 함께 도준의 수상소감은 인터넷에서 조용히 화제가 됐다. 이미 도준에 대해 조금이라도 깊이 아는 이들이라면 도준이 미혼모 가정에서 태어나 어렵게 자란 사실은 알고 있었다.
도련님처럼 귀하게 자랐을 거라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사실인지라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도준의 가정 환경이나 성장 배경은 인터넷상에서도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과거의 불우했던 이야기를 깊게 해 봐야 여러모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에 도준은 언급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여러 가지 배역을 소화해내야 하는 배우로서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과거로 인해 선입견이 생기는 게 싫었고, 승승장구 하는 배우가 과거의 불행한 이야기를 자꾸 해 봐야 지금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추억팔이로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때문에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도준이 수상소감을 통해서 여태까지 한 번도 입에 올린 적 없던 ‘아버지’를 언급한 것이다.
진성현 부장은 관계자석에서 지켜 본 도준의 대상 수상 장면을 떠올렸다.
트로피를 받은 도준의 눈가는 이미 그렁그렁했다. 많은 이들이 도준이 대상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해왔음에도, 도준 본인도 대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실제로 대상이라는 큰 상을 받자 너무나 기쁘고 떨렸다.
대상이었다. 배우를 꿈꾸던 도준의 생각 끝에는 늘 대상이 있었다. 대상 배우가 되는 게 도준이 생각하고, 꿈꿀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런데 이제 배우 3년에서 4년 차로 들어선 도준의 나이는 서른 셋이었다. 배우로서 이제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 갈 수 있는 길도 무궁무진했다. 실제로 생각지 못한 길이 도준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미국 드라마라니······. 생각도 못 해 본 게 사실이야.’
여기가 끝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더 벅찼다.
마이크 앞에 선 도준은 곧이라도 왈칵 눈물을 쏟아낼 듯했지만 끝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대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도준은 천천히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도준은 차례대로 배우들과 작가, 감독, 관계자들에 대한 인사와 자신의 친한 지인들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정말로, 모두 감사합니다······. 그리고 항상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이 모습을 보셨다면 어땠을까···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어쩌면 그냥 자기 위로인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이렇게 꿈꿔왔던 큰 상
을 받으니까······ 제 곁에 어머니가 계셨다면 어땠을까··· 너무 간절히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평소 깔끔하게 멘트를 하는 도준답지 않게 소감은 두서도 없었고, 중언부언 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만큼 감격에 젖어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고, 진솔한 만큼 가슴 아픈 얘기에 시상식장의 있던 이들 모두 안타까운 표정으로 도준의 소감에 집중했다.
“그렇지만 대신 제 곁에는 팬 여러분들이 있어서 한편으로는 너무 기쁩니다. 활동하면서 제가 한 번도 외롭고 쓸쓸하지 않았던 건 제게 늘 따듯한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제 일을 자신의 일처럼 웃고, 우는 팬 여러분들 보면서 더 잘해
야겠다고··· 늘 생각했고. 아마 지금도 저만큼이나 기뻐해주고 계시겠네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 제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와··· 팬 여러분들께 이 상을 바칩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였는데 결국에는 목이 꽉 막힌 듯 ’바칩니다.’ 하고 말하는 도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소감을 마친 도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뜬 후 허리숙여 깊숙이 인사했다. 도준이 트로피를 건네받을 때만큼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도준의 수상소감에 가장 감동을 받은 건 역시 팬들이었다. 강도준이라는 연기자를 좋아한 이후 도준에게 한 번도 실망한 적 없었던 팬들이었지만, 이제는 도준이 어떤 일로 실망시킨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도준을 계속해서 좋아할 수 있을 만큼 도준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좋아하고, 애정을 쏟는 만큼 그것에 대해 감사하는 도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도준의 어딘가 넋이 나간 표정을 보며 진성현 부장은 생각했다.
‘정말 많이 감격했구나······.’
진성현 부장도 대상 배우를 키워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금 느꼈다. 동시에 수상소감 중 말한 ‘아버지’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됐다.
물론 별 내용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유일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언급한 것뿐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도준은 여태까지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도 ‘아버지’라는 단어를 말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 자체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미혼모니 아버지라는 존재가 꺼려지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지만, 당연하기에 새삼 아버지라는 단어를 쓴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나름대로 깊은 속내를 나눈 적도 있었지만 도준은 단 한 번도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든가, 아버지가 밉다든가 하는 스치듯 할 수 있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슬쩍이라도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진 진성현 부장이었다.
“네가 아버지라는 말을 한 건 처음 들어 봐서······.”
“아······.”
도준은 진성현 부장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깨달았다. 도준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그 웃음에는 조금 씁쓸함도 담겼다.
“말 그대로예요.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계속 어머니만이 유일한 가족이라는.”
도준의 말에 진성현 부장은 끄덕이면서도 물었다.
“혹시··· 부친 쪽에서 연락오거나 한 건 아니지?”
연예인들 가운데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실제로는 그 자식을 키우지 않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스타가 된 자식을 TV에서 보고 연락하는 경우 말이다. 연락이 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으면 인터넷이나 기자를 통해 자신이 부모임을 밝히고, 스타들은 밝히고 싶지 않아하는 불우한 가정사를 퍼뜨렸다. 심지어 이복 남매까지 줄줄이 나타나 입을 여는 경우도 많았다.
고소를 통해 소식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연 끊고 살았던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팔아 돈을 빌리거나 사기를 쳐 그 자식의 이름을 먹칠하고, 자식이 빚을 갚는 경우는 최악이었다.
‘그때는 사정이 안 돼 너를 키우지 못했지만, 이제는 네 부모 노릇을 하고 싶다.’ 하는 구구절절한 메시지와 함께 스타가 된 자식을 찾아오면 자식들은 그 부모를 내치기 힘들었다.
당연하게도 어렵다고 자식을 나몰라라 한 부모가 제대로 된 부모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이 스타가 된 자식의 돈을 바라고 찾아온 경우였고, 그런 부모들에게 돈을 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건 그들이 대중들 앞에 서는 연예인이기 때문이었다.
대증은 돈 뜯으러 온 부모라고 처음에는 부모를 욕하지만 막상 그 배우가 부모를 등지고 손가락질할 게 분명했다.
도준이 이제 와서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어머니만이 유일한 가족이다 못 박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만약 도준의 아버지가 도준을 찾아오거나 도준에게 피해입힐 가능성이 있다면 진성현 부장 쪽에서도 미리 알고 대비를 하는 게 좋았다.
그렇게 하는 게 배우 강도준뿐 아니라 자신이 아끼는 동생을 위한 길이었다.
“아. 그런 건 아니에요.”
도준이 아니라고 답하자 진성현 부장은 조금 안도하며 이어 말했다.
“그래? 조심스러워서 말하기 어려웠는데······ 말 나온 김에 묻자. 도준이 네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예 모른다고 했던가?”
“···네.”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도준은 조금 미안해하며 답했다. 다른 평범한 가정사였다면 아무리 아픈 가정사였어도 진성현 부장 정도에게는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숨겨야 하는 부분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래······.”
도준은 진성현 부장이 이 얘기를 꺼낸 진짜 의도와 그의 우려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도준도 연예인이 가족 문제로 곤혹을 치루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아마 찾아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살아있든, 죽었든······.”
“그래?”
“네. 아예 제 존재를 모를 테니까.”
진성현 부장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에 와서는 다행인 얘기였지만, 다행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는 더 묻지 않고 얘기를 정리했다.
“그럼 됐다.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로 네가 상처입을 까봐 걱정 돼서······.”
도준이 진성현 부장의 마음을 안다는 듯 끄덕였다. 매니저로서든 친한 형으로서든 그가 신경 쓸 만한 일인 게 당연했다.
도준은 잠시 자신의 아버지인 백정한 회장을 떠올렸다. 수상소감에서 그 얘기를 한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진심으로, 가족은 어머니뿐이라는 걸 제 스스로에게 다시금 새겨넣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이후, 도준은 맨몸으로 백정한 회장을 찾아가 자신이 아들이라고 밝히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영원히 밝히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다.
제 꿈을 짓밟은 백정한 회장에게 복수해야겠다는 마음은 명확했지만 부자관계를 언제, 어떻게 밝힐지. 아니, 밝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도준도 생각이 많았다.
그러나 백정한 회장을 마주한 이후 도준은 확실히 마음을 정할 수 있었다.
도준은 끝에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을 생각이었다.
***
한국에 머무른 지 한 달 만에 도준은 다시 한국을 떠나기 위해 인천 땅을 밟았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에 오래 머무를 건 아니었다. 미팅과 계약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와 정식 비자를 발급받아 다시 미국에 갈 예정이었다.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도 수고스러웠지만 미국 체류 비자를 받는 일이 꽤나 복잡스러워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번 미국행 비행기에 함께 몸을 싣는 건 진성현 부장도, 규홍도 아닌 홍보팀 임지유 팀장이었다.
캐리어를 부치는 임지유 팀장과 도준 곁에서 규홍과 진성현 부장은 섭섭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였다.
“형······.”
도준을 부르는 규홍의 목소리가 아련하기만 했다.
끝
ⓒ 천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