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7
“강도준?”
김진숙 작가가 되물었다.
“네. 저희가 생각하는 이미지랑 잘 맞지 않나요?”
두 명의 보조작가 중 한 명인 박민지가 말했다.
“이미지야 잘 맞지. 근데 그 친구 영어 할 줄 아나?”
역시 영어 얘기부터 꺼내는 김진숙 작가였다.
김진숙 작가는 데뷔와 동시에 와 , 일명 ‘러브스토리’ 시리즈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장르의 한 획을 그었다.
평생 두 작품만 성공해도 할 일 다 했다는 평가를 받는 드라마 판이었다. 그만큼 두 작품 이상 성공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그러나 김진숙은 데뷔부터 싹이 달랐던 만큼 드라마 활동을 한 지 십 년째에 이른 지금까지도 손대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뜨리고 있었다.
몇 년 전 방영한 은 그야말로 대박 신화의 정점이었다. 온 국민이 의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에 나오는 옷이나 화장품, 소품들은 모두 완판이었고, 각종 대사가 유행어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남자주인공의 경우에는 당시 톱스타의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도 의 후광을 누리며 활동했다.
거기에 최근 작품인 에서도 김진숙 작가는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를 창조해내며 인기가 식어가던 중년 배우들을 다시 화제의 배우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십 년 넘게 톱 작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진숙 작가가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였다.
는 김진숙 작가로서는 꽤 큰 도전이었다.
알콩달콩한 사랑 얘기를 쓰는 터라 본래 그녀의 작품은 스케일이 커 봐야 ‘러브스토리’ 시리즈처럼 해외 로케 촬영이 많은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주제는 여전히 사랑이었지만, 배경 자체가 제3세계 국가였고 파병을 나간 군인들의 이야기였다. 테러리스트와 재난 속에 피어나는 사랑을 그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 스케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남자주인공이 영어를 해야 하는 조건도 그래서 생겨나는 것이었다.
물론 대사 전부가 영어는 아니니, 대사로 나오는 영어만 해도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김진숙 작가의 생각은 달랐다.
영어 대사 중에서도 중요한 대사가 많았다.
기본적으로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이와 아닌 이의 대사 습득 능력이나 숙련도는 확연히 차이가 날 것이었다.
남자주인공 배우 캐스팅의 첫 번째 조건으로 영어를 내건 것은 그 이유였다.
“할 줄 알던데요?! 그것도 꽤 유창하게······ 유학파 발음은 아니었지만요.”
박민지가 이어서 대답했다. TV 속 화면은 이미 의 다른 코너로 넘어가 있어 당장 김진숙에게 보여줄 수 없어 아쉬울 뿐이었다.
“차기작도 아직 안 정했다고 하고, 대본 보내 봐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 마음에만 드시면.”
옆에 앉아 있던 임은아가 박민지를 거들었다.
“그래?!”
의외라는 듯 김진숙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생기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인기 많은 남자 배우만을 캐스팅해 온 김진숙 작가였다.
그러니 처음 남자주인공 캐스팅 목록에는 당연히 도준도 있었다. 마침 이미지도 잘 맞았다. 그러나 당시 제작진은 도준이 영어가 가능한지 몰랐고, 어차피 도준이 영화 촬영으로 바빠 검토할 수 없다고 들어 도준을 목록에서 제했었다.
때문에 대본은 다른 남자 배우들에게 넘어갔다.
“나야 강도준이 해주면 좋지. 마스크도 훌륭하고, 연기도 좋고······.”
김진숙 작가가 말끝을 흐렸다.
이미 여러 사람이 거절한 대본을 과연 아쉬울 것 하나 없는 도준 쪽에서 하겠다고 할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기 남자 배우를 캐스팅해 더 높고 견고한 톱스타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김진숙 작가 드라마의 법칙이라면, 법칙이었다.
때문에 늘 남자주인공 캐스팅은 치열했다. 의 남자주인공이 말도 못 할 인기를 누린 이후에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번 만은 상황이 달랐다. 1순위에 있던 배우들이 모두 고사한 탓에 캐스팅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일단 영어를 할 줄 아는 톱급 남자 배우가 많지도 않았던 데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강도준······ 나이가 서른 넘었댔지? 군대는 갔다 왔니?”
군대 문제였다.
얼른 인터넷을 검색해 본 임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역으로 갔다 왔네요! 데뷔하기도 전에 갔다 왔대요. 완전 깨-끗!”
아무래도 남자들한테 군대 문제는 민감한 사항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자주인공 직업이 군인이었다.
군대를 다녀오기 전이거나, 현역 출신이 아니면 군인 역할을 하는 배우에게 비아냥이 쏟아질 것 정도는 남자 배우들도 알고 있었다.
시대극도 아닌 현대극이니 더욱 그랬다.
군인 역할을 하는 데 거리낄 것이 없고, 영어를 할 줄 아는 2, 30대 톱급 남자 배우.
처음 작품을 기획할 때만 해도 이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조건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김진숙 작가였다.
군대까지 현역으로 다녀왔다면, 도준은 남자주인공으로 누구보다 완벽했다.
이전에 대본을 보냈던 남자 배우들보다 훨씬 이미지도 잘 맞았다.
‘더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고······. 사실 꼭 우리 작품이 아니어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강도준보다 더 완벽한 남자주인공은 없지.’
김진숙은 생각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남자주인공 캐스팅부터 여러 가지 문제로 제작이 미뤄지고 있었다. 대본은 벌써 10부까지 나왔는데 언제까지 일이 미뤄지게만 둘 수 없었다.
도준이 할지 안 할지는 몰라도 제안을 해 보는 게 맞았다.
“어, 대표님. 나예요. 우리 남주 새로운 소식 없지? 어. 아니 애들이 강도준 어떻겠냐고 하는데······ 어. 할 줄 안다는데? 몰라. 이제는 강도준이 한다고 하면 대사라도 바꿔야 할 판인데. 응. 연락해 봐.”
제작사 대표와 통화를 마친 김진숙 작가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어, 작가님. 인터넷에 벌써 강도준 영어 인터뷰 영상 떴어요. 보실래요?”
“그래, 한번 봐보자.”
임지은이 내미는 휴대폰 화면으로 김진숙 작가가 시선을 돌렸다.
***
뜨거웠던 팬미팅의 열기에서 빠져나온 도준은 집에 돌아와 그야말로 뻗어 버렸다.
무대 위에 서는 것은 연기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가 필요했다. 거기에다가 칠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도준 하나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만큼 모든 것이 도준을 중심으로 돌아간 두 시간이었다.
“후······.”
이틀 전의 일이었는데도 아직까지 여운이 남을 정도였다.
도준은 협탁 위에 올려진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간신히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어제는 내내 집 안에서 쉬었지만, 오늘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내일부터는 다시 새벽 운동을 시작해야지.’
계속 침대에 누워 있다가는 끝도 없이 누워만 있고 싶을 듯했다. 거실로 나온 도준은 습관적으로 TV부터 켰다.
TV 소리가 흘러나오게 내버려 둔 뒤에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셨다.
차가운 물을 마시니 정신이 좀 깨는 듯했다.
틀어놓은 케이블 채널에서는 그제 있었던 도준의 팬미팅 현장 소식을 뒤늦게 전하고 있었다.
도준의 팬미팅은 그 자체로 충분히 화제가 되었지만, 로버트 테일러의 방문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욱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할리우드 연예 채널에서도 테일러 부부가 한국 배우의 팬미팅 현장을 찾았다는 소식을 보도했다고 들었다.
‘로버트 테일러를 만나다니······.’
규홍처럼 팬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계적인 스타였다. 로버트와 제인을 만난 일은 도준에게도 꿈 같은 일이었다.
‘정말로 그들이 내 연기까지 볼까?’
미국판을 꼭 보겠다 약속하고 돌아간 테일러 부부였다.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본다고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했다.
크게 기대하는 것은 없었다. 자신에게 반해 팬미팅을 찾아온 것만 해도 이미 놀라운 일이었고······.
‘규홍이가 로버트의 사인을 받고 울먹거리는 모습을 본 걸로도 충분하지.’
도준은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꽃등심을 십 인분 넘게 사 줘도 웃기만 하던 규홍은 도준 덕분에 로버트의 사인을 받게 되자 고맙다며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아무튼, 자신 때문에 행복해하는 이들을 많이 본 하루였다. 그래서 더 여운이 길게 남는 듯했다.
도준은 식탁에 앉아 어제 미처 다 보내지 못한 감사 메시지를 마저 보냈다. 이치훈과 박혜서에게는 어제 이미 보냈고, 오늘은 공연팀 스태프들이 남아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던 도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성현 실장이었다.
“네, 형.”
-잘 쉬고 있냐?
“그럼요. 어제도 잠만 잤는데, 오늘도 늦잠 잤어요.”
-잘했어, 잘했어. 근데 이거 어쩌나······.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어, 일이지. 일 들어왔네, 또. 하여튼 인기 배우라 가만히 두질 않네. 사람들이.
도준히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김진숙 작가 알지?
모를 수가 없었다. 도준이 “네.” 하고 답하자 진성현 실장이 말을 이었다.
-준비 중인 신작 남주 역에 너 어떻냐고, 회사로 연락 왔나 봐. 일단 대본 받아놨는데······ 어때?
“어? 라고 했던가요? 그거 저 영화 들어갈 때부터 캐스팅 하고 있지 않았어요?”
김진숙 작가의 작품이면 도준도 무척 해 보고 싶었다.
당시에는 촬영 중이라 스케줄을 알 수 없어 대본조차 받지 못해 아쉬웠다.
유치하다, 사랑 얘기만 한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그런 말들도 다 인기가 있고, 재미있기 때문에 나오는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도준의 어머니도 김진숙 작가의 작품을 무척 좋아했고, 도준도 어머니의 옆에서 늘 재미있게 보았다.
-맞아. 아직도 안 정해져서 너한테 다시 온 모양이야.
“그래요? 의외네요. 김 작가님 작품이면 다들 하고 싶어할 텐데.”
-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나 봐. 남주 역할이 까다롭기도 하고······ 사전제작이기까지 하니 부담스러웠겠지······.
“아아······.”
사전제작이라는 말에 도준도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는 아무리 많이 준비를 하고 들어가도 방송이 시작되면, 방송에 촬영이 쫓기게 돼 있었다.
영화를 하던 배우들이 드라마에서 힘들어 하는 점도 바로 그 점이었다. 쫓기듯 촬영을 하다 보면 대본은 물론이고, 연출이나 연기에 있어서도 퀄리티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1부보다 훌륭한 10부를 만날 수 없는 이유가 그 이유였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그 문제에 대한 개선책으로 드라마 판에도 사전제작 붐이 불었었다.
16부까지 사전에 제작해 방영한 작품이 세 작품 정도 있었고, 8부 정도까지 반만 사전 제작한 드라마도 꽤 됐다.
그러나 시청자 반응을 보고 조금씩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일까. 사전제작으로 제작된 작품들의 성적이 모두 엉망이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다시 사전제작을 하지 않는 추세였다.
“그래도 일단 대본부터 봐야죠. 제일 중요한 건 대본이니까.”
-다른 배우들한테 돌았던 건데, 그건 상관 없어?
“네. 상관 없어요.”
-그래, 그럼 메일로 대본 보내줄게. 읽고 얘기해줘. 급할 건 없고. 급한 건 저쪽이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진성현 실장이 말했다.
도준은 곧바로 진성현 실장이 보내 온 메일을 열었다.
시놉시스와 1, 2부 대본 파일이 들어 있었다.
도준은 빠르게 파일을 다운 받아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군인이라는 직업도, 영어 대사도 도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연기를 해볼 수 있는 기회 같아 흥미로웠다.
그리고 역시 김진숙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온 작가이니만큼 대중들이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고, 어떤 대사에 열광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쓴 대본이었다.
그러나 다른 부분이 도준의 마음에 걸렸다.
‘이게······ 이러면 안 되지 않나?’
2부 대본을 끝까지 읽은 도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끝
ⓒ 천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