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33
“…이리스.”
신음과도 같은 내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이리스가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언니! 언니!”
“…언니?”
왜 이리스가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내 의문에 답을 해 주겠다는 듯이 카를이 소리쳤다.
“인사는 해 주지 그래? 네 어미가 도망칠 때 품고 있었던 네 동생인데.”
“무슨 소리….”
이리스가 이벨리나의 동생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쩐지… 성력이 그냥 아무의 몸에나 들어갔을 리가 없지. 자매가 사이좋게 신의 선택을 받았군!”
카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계속해서 소리쳤다.
“네가 대신전만을 믿고 의지하도록 일부러 네 부모가 돈만 요구하고 너를 버렸다 말했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었어. 나중에 귀찮게 성녀의 부모입네, 하고 나타날 게 짜증 나 죽여 버리려고 했는데 눈치채고 도망쳤으니 말이야!”
그 말에 이리스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카를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부모님이 계속 신전에 못 가게 한 것도… 신전이 없는 곳에서만 사신 것도 설마….”
예전에 읽었던 그녀의 가족에 대한 기록이 떠올랐다. 그녀의 부모는 신전에 성녀의 부모랍시고 돈을 뜯어내다가 아주 많은 돈을 받고 나서는 두 번 다시 그녀를 찾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카를이 죽이려 해 도망을 쳤단 말인가?
그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리스는 큰 충격을 받았을 게 분명했다.
“어쨌거나 널 버린 것은 사실이지. 지금까지….”
“아니야!”
카를의 손에 잡혀 있던 이리스가 크게 소리쳤다.
“아니야! 부모님은 매일 기도하셨어! 신전에 안 가도 매일 언니를 위해 기도했었다고! 마수에게 쫓겨 살던 곳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을 때도! 그래서 산속에서 잠이 들어야 했을 때도 아침저녁으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기도했었단 말이야!”
몸부림치는 탓에 이리스의 목에 겨눠졌던 칼이 그녀의 목에 상처를 내어 피가 흘렀다. 그 모습에 나는 이리스가 제대로 성력을 쓰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와 같은 상태인 건가.’
처음 내가 이벨리나의 몸속에 들어왔을 때, 성력을 갖고 있음에도 나는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 탓에 시델을 막지 못했던 것이 기억났다. 이리스도 그와 같은 상황일 것이다. 성력을 제대로 쓸 수 있었다면 저 칼 정도는 충분히 막았을 터이니.
“이건 무슨….”
당황해하는 레온의 목소리만큼이나 나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죽기 전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그 책 어디에서도 이런 내용은 없었다.
“…동생?”
그때 이벨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까지 들었던 것 중에서 가장 형편없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동생이 있었어…?”
이벨리나의 의식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나는 그녀가 그동안 감추고 있었던 그녀의 기억을 전부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짧은 시간에 여러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린 이벨리나가 신전에 처음 오고 나서 하루 종일 부모를 찾아 울던 모습.
제 생일이 정말로 태어난 날이 아닌 대신전에 오게 된 날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모습.
제 딸을 살려 달라 비는 여자를 보고 다른 신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의 다 죽어 가던 아이를 살려 준 다음 다행이라고 울며 기뻐하는 여자를 멍하니 보던 모습까지.
그러는 사이에도 카를의 모습이 여러 번 나타났었다. 그는 이벨리나가 어릴 적부터 그녀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정한 목소리로 차가운 거짓을 말했다. 당신을 버린 그런 부모 따위는 이제 잊으라고. 당신에게 가족은 없다고.
“…다 거짓말이었군.”
경악에 찬 내 목소리에 카를은 웃었다.
“당연하지. 그래야 네가 나를 더 따르고 내게 매달릴 터였으니.”
의식 속에서 이벨리나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알게 된 진실에 울지조차 못한 채, 억울함과 분노를 토해 내는 소리였다. 그때였다.
콰쾅!
귀가 얼얼할 정도의 굉음과 함께 내 옆에 있던 건물 위로 아슬란의 몸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고대 신의 빛줄기가 아슬란을 휘감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붉은색 마력이 그 빛줄기를 막아 내려 하고 있었지만 아슬란의 몸 곳곳이 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라트반이 필사적으로 고대 신의 빛줄기를 잘라 내며 아슬란을 돕고 있었지만, 고대 신은 아슬란을 먼저 끝장내겠다는 듯 제 몸이 잘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아슬란을 휘감았다.
크아아아악!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아슬란이 제 다리를 붙잡은 빛줄기에 몸부림쳤다.
건물이 육중한 그의 몸을 버텨 내지 못하고 부서졌다. 아슬란과 고대 신의 힘이 사정없이 바닥에 내리꽂히자 다시 지진처럼 땅이 흔들리고 갈라졌다. 그 탓에 서 있던 모두의 몸이 흔들렸다. 레온이 재빨리 나를 끌어안고 스크롤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곧바로 땅을 굴렀을 것이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넘어지며 무너졌다. 그것은 카를과 이리스도 다를 바 없었다.
주저앉은 땅 아래로 두 사람의 몸이 굴렀다.
“이리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카를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다시 이리스의 머리채를 붙잡아 끌어당기며 나에게 소리쳤다.
“동생을 살아서 만나고 싶으면 당장 황태자가 갖고 있는 스크롤을 던져!”
“……!”
그 말에 나는 레온을 바라보았다.
“…리나.”
그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제 스크롤은 한 장뿐입니다. 더 위험해지기 전에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야 해요. 그게 아슬란과 라트반 경을 위한 일입니다.”
그 말을 들은 것일까. 카를이 다시 소리쳤다.
“더욱 잘된 일이군! 어서 던지지 못해!”
카를의 칼끝이 이리스의 목을 파고들었다. 조금 전보다 더 많은 피가 이리스의 목을 타고 흘렀다. 이리스는 저를 붙잡은 카를을 노려보더니 소리쳤다.
“안 돼! 어서 피해요! 어서 도망가!”
“……!”
이리스의 말에 내 손이 조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이벨리나…?’
이미 이 몸에 대한 모든 통제권을 잃었음에도 이벨리나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레온의 손에 들려 있는 스크롤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머릿속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이리스를 살려 달라 하고 싶겠지. 하지만 조금 전, 그녀는 제 몸을 포기하며 나에게 말했었다. 자신이 이 몸을 더 필요로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이벨리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리스를 살려 달라고 하는 순간, 내가 그녀를 외면하고 이 자리를 뜰 것을.
“어서 내놔!”
카를은 가만히 있는 나를 보며 초조한 얼굴로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트반과 아슬란은 목숨을 걸고 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레온 역시 마찬가지로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구하러 이곳에 왔고. 세 사람의 노력을 생각하면 나는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옳았다.
‘이리스는….’
지금까지 그녀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얼마나 두려워했었는지가 생각났다. 나에게 이리스는 죽음과 같은 의미였다. 그녀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원래의 흐름대로 될 것이라 생각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음을 안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아닌 이벨리나의 동생이다.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리스를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 않자 카를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게 보였다. 그때였다.
“윽!”
이리스가 그대로 몸을 돌리더니 카를의 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놔!”
이리스는 제 목에 칼끝이 스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성력을 언니에게 돌려줘야 한단 말이야! 내 것도 아닌데! 진짜 성녀는 언니인데!”
신음 소리와 함께 카를의 몸이 크게 비틀거리며 이리스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리스의 몸이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게!”
이제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카를이 단검을 든 손을 높게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손을 뻗어 레온의 손에 들려 있던 스크롤을 빼앗듯이 잡아챘다.
“리나!”
레온이 소리쳤지만 나는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카를에게 외쳤다.
“여기! 네가 원하는 게 있어! 그러니 이리스를 놔줘!”
“진작 그렇게 할 것이지.”
카를은 내가 흔드는 스크롤을 보며 웃더니 넘어진 이리스의 등을 발로 밟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어서 그걸 던져!”
그 말에 나는 있는 힘껏 카를을 향해 스크롤을 던졌다. 구겨진 종이가 그의 옆으로 떨어지자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레온과 내 몸은 다시 땅 위에 섰다. 마법의 시간이 다 끝난 것이다. 카를은 그런 나와 레온을 확인하더니 “이게 마지막이랬지?”라며 웃었다.
“어서 이리스에게서 비켜!”
“물론 그래야지. 성력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성녀 따위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으니까.”
카를은 그렇게 말하며 종이로 된 스크롤을 찢었다. 그 순간 그의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법이 제대로 발동된 것을 확인한 카를이 미소 지었다.
“카를!”
내가 외친 순간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던 이리스의 등을 그대로 걷어찼다.
“꺄아아아악!”
이리스는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균열 아래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