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ke Saint Wanted to Quit RAW novel - chapter 149
기사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리나는 다시 동굴 안을 보았다. 그사이 빛의 너머는 다시 낯선 곳을 보여 주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게 이런 것이었을까.’
지금까지 혹시나 아슬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가. 이것과 비슷한 기적은 여러 번 보았으나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
리나는 허탈함을 느꼈다. 드디어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설프게 성력을 쓸 수도 없고.’
성력은 이 세계를 안정시키는 힘이다. 그렇기에 잘못 사용했다가는 불안정함의 증거인 이것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리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빛의 건너편을 보았다.
“아….”
빛의 건너편에는 어느새 바뀐 풍경이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바뀐 풍경의 가운데 아슬란이 본체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
그러자 갑자기 빛의 줄기가 폭발이라도 하듯 솟아오르면서 동굴 안이 눈이 멀 것 같은 강렬한 빛으로 가득 찼다.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석판 안에 갇혀 있던 고대 신이 이런 모습이었다. 빛줄기는 빠르게 리나와 라트반을 휘어 감았다. 그러더니.
“큭!”
빛줄기가 라트반의 목을 휘감아 조였다. 그는 재빨리 허리춤의 검을 꺼내 성력을 담아 빛줄기를 베어 내었다. 라트반의 손길에 힘없이 빛줄기가 후드득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막아 내는 줄 알았는데, 뒤에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던 빛줄기는 라트반이 검을 고쳐 잡느라 손을 놓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그의 품에 있던 리나를 휘감았다.
“악!”
“리나!”
갑자기 당겨지는 느낌에 리나는 놀라 성력을 끌어모으고 빛줄기를 향해 던졌다. 그러자 그것은 괴롭다는 듯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리나를 놓지 않았다.
“젠장!”
라트반은 저를 막아서는 빛줄기들을 잘라 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를 잘라 내면 두 개로 늘어 와 그를 덮쳤다. 그사이 리나는 기적의 가까이로 끌려가고 있었다. 리나는 고개를 돌렸다. 빛 너머에서 아슬란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대 신과 섞였었어.’
그렇다면 지금 이 빛줄기는 아슬란일 것이다. 빛줄기는 리나를 그저 끌어당길 뿐 어떠한 위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라트반을 향해서는 지독하리만큼 공격적이었다. 그 모습에 리나는 확신을 얻었다.
‘…아슬란이 확실해.’
레온도 싫어하긴 했지만 아슬란은 라트반을 더욱 경계했었다. 아마도 자신과 맞설 수 있는 자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이 몸은 더욱 빛에 가까워져 있었다.
‘나를 데려가려는 건가.’
분명 이 너머는 위험할 것이다. 다른 세계가 부딪히면서 생기는 공간을 인간의 몸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조금 전 가방이 떠올랐다. 만약 그렇게 되면…. 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빛이 회전하기 전에 넘어간 가방의 모습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 역시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리나는 빛을 살폈다. 또다시 회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분명 이 빛줄기는 저를 절대로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리나는 고개를 들고 숨을 크게 삼켰다. 잘못되면 분명 지금이 제 삶의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더 망설일 수는 없었다. 탁! 리나가 땅을 박차며 달려갔다.
“리나!”
뒤에서 라트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빛은 이미 회전을 시작하며 흐려지고 있었으니까. 리나는 그대로 수직 동굴의 끝에서 뛰어오르며 빛 너머로 몸을 던졌다. 저를 부르는 라트반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다음 그녀를 덮친 것은 끔찍한 아득함이었다.
“읏…!”
심장이 내려앉는 낙하감에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보다 더 그녀의 정신을 흩트려 놓는 것은 미친 듯이 번쩍이는 빛이었다.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 눈앞이 무서운 속도로 깜빡였다. 수천, 수만 번의 깜빡임이 지나가자 갑자기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을 본 순간 리나는 알 수 있었다.
떨어지고 있어!
제가 떨어질 곳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아래로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대한 섬도.
이대로 떨어지면 죽음뿐이다.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일단은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닌가. 미친 듯이 온몸을 때리는 바람 속에서 리나는 정신을 붙잡고 성력을 끌어모았다. 푸른빛이 빠르게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그사이 땅은 무섭도록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꺼운 푸른빛이 완전히 그녀의 몸을 감싼 순간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와드득. 우지끈, 뿌드득. 쾅.
꺾이고 부러지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몸이 정신없이 튀어 올랐다. 마치 고무공처럼 몸이 통통 튀어 올라 숲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탓에 시야가 정신없이 뒤집혔다.
다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리나는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한참 후에야 흔들림이 멈췄다. 대신 그녀 때문에 놀라 달아나는 산짐승과 새 떼의 울음소리만이 숲을 가득 채웠다.
“으으….”
리나는 힘겹게 눈을 깜빡였다. 몸을 더듬어 다친 곳이나 이상한 곳이 있나 살폈지만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리나는 손을 뻗어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었다. 다행히 평범한 나뭇가지였다.
“이거 본 적이 있는데….”
대륙의 남쪽을 돌아다닐 때 보았던 것과 같은 나뭇잎이었다. 게다가 주변을 뛰어다니는 산짐승을 보니 전부 제가 아는 동물들이었다.
“적어도 내가 있던 세계인 건 맞는 것 같네.”
안도의 숨이 저절로 나왔다. 기적들 중에 자주 있는 현상은 대륙의 북쪽 끝에 있는 기적 속으로 빠졌더니 대륙의 남쪽으로 나왔다거나 하는 공간 이동이었다. 아마도 같은 현상이리라.
‘일단 그러면 마을을 찾아 황궁으로 연락을 해야할까.’
라트반이 지금쯤 제정신이 아니겠다 생각하며 리나가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어…?”
그녀가 아주 잘 아는 것이 보였다.
“마법사들의 탑…?”
예전에 아슬란이 그녀를 데리고 왔던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떨어질 때 망망대해의 섬으로 떨어졌었다. 그렇다면 여기가 마법사들의 섬인 것 같은데….
“…왜 탑이 절반밖에 없어?”
리나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마법사들의 탑을 바라보았다. 벌써 한 시간째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처음에는 탑이 부서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아슬란이 대신전을 파괴하기 위해 떠났을 때, 그는 마법사들의 탑을 부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그 후 혼란을 틈타 마법사들이 저곳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한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마법사들의 탑을 바라본 리나는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마법사들의 탑은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아직 짓고 있는 중이야.”
파괴된 것이라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건만 지금 제 눈앞에 보이는 마법사들의 탑은 척 보아도 이제 한창 짓는 중이었다. 리나는 대신전에 있었을 때 아슬란에 대해 알아보다 마법사들의 섬과 탑에 대해서 보았던 기록이 생각났다.
“분명 천오백 년 전에 이미 다 완성되었을 텐데….”
순간 제가 이곳으로 떨어질 때의 일이 생각났다. 미친 듯이 빛이 깜빡였었다. 그때는 그게 차원을 넘어오면서 생기는 현상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설마….”
만약 그것이 낮과 밤의 하늘이었다면? 그 깜빡임 한 번이 하루였다면?
“세상에….”
리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기적이 나타난 자리에서 공간 이동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주 가끔 보고되는 것이 시간의 이상 현상이었다. 길을 걷다 갑자기 생겨난 기적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몇십 년이 흘렀다거나 하는 그런 일들 말이다. 제가 집어 던졌던 가방도 아마 그런 현상과 비슷한 일이었을 것이다.
‘난 거슬러 올라온 건가.’
그때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거대한 형체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
리나는 소리치려던 제 입을 막았다. 하늘에는 아슬란이 있었다. 다른 세계의 모습보다는 훨씬 큰, 하지만 대신전 파괴 당시에 보았던 것보다는 작은.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마법사들의 탑 위에 오가던 사람들이 황급히 뭐라 소리 지르며 몸을 숨기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아슬란은 그런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더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곧 하늘의 한쪽에 거대한 빛무리가 생겨났다. 그러자 아슬란은 갑자기 속력을 높여 그 빛무리에 제 몸을 부딪쳤다.
콰과광!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리나는 귀를 막고 땅에 엎드렸다. 어찌나 큰 소리인지 땅이 흔들려 나뭇잎이 떨어질 정도였다. 소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콰광! 콰과광! 연달아 공격하는 굉음에 리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아슬란….”
붉은 마수는 제가 부딪힌 차원의 상처를 발로 찢어발기고 있었다. 필사적인 몸짓이었다. 하늘이 찢어진 것 같은 형태로 빛나고 있던 것은 아슬란의 행동에 하늘에 나타난 빛의 상처는 조금 그 크기가 커진 것 같았다. 그러자 아슬란은 그 너머로 제 몸을 집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빛이 사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결국 아슬란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허망하게 빛은 사라지고 푸른 하늘만 보일 뿐이었다. 세계가 다시 안정을 찾은 것이다.
크아아아아아!
그러자 아슬란이 울부짖었다. 조금 전의 굉음보다 더 큰 소리가 몸을 찢는 것 같았다. 하늘에 떠 있는 아슬란의 몸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조금 전 하늘을 찢으려다 다친 것이 분명했다.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듯 몇 번이고 하늘을 바라보다 몸을 움직였다.
“떨어지… 나?”
처음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슬란의 몸이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마법사들의 탑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는 것 같더니 거대한 불덩어리가 아슬란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리나는 이곳이 어딘지를 깨달았다.
기록에 따르면 마법사들의 섬은 무법천지였다. 이곳은 힘의 강함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땅이고 더 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짓이든 서슴지 않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마법사들의 탑을 짓고 있는 자들 역시 마법사들이다. 그들에게 강대한 마력의 덩어리인 마수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땅으로 떨어지는 아슬란의 몸에 불덩이가 다가와 부딪히자 그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뒤틀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쿵! 멀리서 아슬란이 땅과 부딪히며 거대한 먼지바람이 일어났다. 리나는 팔을 들어 눈을 가리면서 그가 떨어진 곳으로 뛰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아슬란에게 가야 했다.
***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한참을 뛴 다음에야 리나는 아슬란의 근처로 다가갈 수 있었다. 땅에 쓰러진 마수는 그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숨을 헐떡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예전에 아슬란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왜 새끼가 필요한 건데요?”
“나 혼자서는 내가 넘어갈 만큼 차원을 찢는 게 힘들어. 그러니 내 힘을 이어받아 나만큼의 힘이 있는 마수가 더 필요하지.”
그는 언제나 그가 있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그러려니 했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필사적이었어.’
가슴이 아렸다. 이 세계에서 긴 시간을 기다렸다가 드디어 제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게 도와줄 새끼를 가졌었는데 그는 스스로 제 희망을 죽였던 것이다. 이토록 원하던 일이었는데.
리나는 조심스럽게 아슬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기척을 알아차렸는지 감겨 있던 아슬란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핏빛의 큰 눈동자가 리나를 바라보았다.
“…….”
식은땀이 흘렀다. 아슬란의 눈에는 살기가 번뜩였다. 그가 당장에 입을 벌리지 않는 것은 제가 잡아 죽이기 너무 쉬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지나가는 개미에 신경을 쓰지 않듯이 말이다. 한동안 마주치는 시선 속에서 리나는 알아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