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133
그동안 집에서 어떤 치료를 받은 거야?
“상대는 유베와 맨유야.”
바르사는 유벤투스를 이겨야 했고 레알 마드리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겨야 했다.
바르사는 1차전에서 유벤투스에 패배했고 레알은 1차전에서 맨유를 꺾었다.
하지만 바르사는 홈에서 2차전을 치르고 레알은 어웨이라서 어떤 팀이 올라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다들 신날 수밖에.
바르셀로나 시민 전부가 축구 전문가가 되어 8강 2차전을 예측했다.
“하여튼 참 떠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니까.”
나는 바르셀로나 구단 전용 VIP병동에서 치료를 받으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유벤투스와의 2차전이 이틀 남았다.
“하지만 축구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
시끄러운 티비를 끄고 창밖을 물끄러미 보았다.
지중해의 물결이 태양에 비쳐 눈부시게 반짝였다.
침대 옆 응접실에서는 케이코가 책을 읽고 있었다.
시집이나 소설책 같은 게 아니라 [프로 운동선수의 신체 관리법]이라는 두꺼운 전문서적이다.
“케이.”
“오빠. 마사지해 드려요?”
“아니. 괜찮아.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는데 그렇게 해골바가지만 잔뜩 그려진 어려운 책을 읽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
“해골바가지? 후훗. 재밌는 단어에요.”
케이코가 웃었다.
전문서적 많기로 유명한 일본 책답게 표지부터 끝까지 뼈, 근육, 신경, 핏줄 등 인체 해부도가 부위별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런 건 의사한테 맡기고 케이는 본인 하고 싶은 걸 해. 재활 전문가 면허증 딸 건 아니잖아.”
“이게 제가 하고 싶은 거에요. 운동선수의 여자니까. 당연히 알아야죠. 세상에는 이상한 의사도 많으니까요. 제가 지식이 있어야 의사들을 상대할 수 있어요.”
“허허. 대단하네.”
“아니요. 대단한 건 오빠에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마드리드 팬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은 바르사의 선수가 되었잖아요. 정말… 그런 무릎으로…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케이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의 부상과 기립 박수가 뒤섞여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커다란 눈에 이슬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 정도로 감동한 거야?”
“제가 직접 봤어야 했는데! 너무 아까워요!”
나는 케이코가 혹시라도 마드리드에서 위험한 일을 당할까 봐 바르셀로나에 있으라고 했다.
“억울해요! 케이가 가서 응원했어야 했는데!”
“하하하. 아파! 나 환자야.”
케이코가 침대로 다가와 나를 가볍게 때렸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몸싸움을 하다가 순간 야릇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오빠…”
“케이…”
“이러시면 안 돼요. 오빠 아프잖아요. 그리고 여긴 병원이라구요.”
“그게 뭐 어때서. 더 스릴 있잖아.”
“꺄아아~”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녀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싫지 않은지 슬쩍 침대 위로 올라왔다.
둘이 입술을 포개며 본격적으로 진도를 나가려는데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
“김건 선수. 지금은 안 돼요.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간호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케이코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밖으로 나갔고 나도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였다.
여간호사가 나에게 야릇한 웃음을 날리더니 내 맥박과 상태를 체크 했다.
불타는 금발을 질끈 묶은 전형적인 스페인 미녀다.
그녀는 업무적으로 할 일을 척척 끝내고 나서 슬쩍 표정을 바꾸며 나에게 속삭였다.
“건. 부탁이 있어요.”
“뭔데요?”
“여기에 사인해줘요.”
“여기에!? 진짜 괜찮아요?”
“물론이죠.”
“알겠어요…”
“사랑하는 카르멘에게라고 적어 주세요.”
그녀가 미리 준비한 매직을 건넸다.
나는 그녀의 새하얀 간호복에 사인을 해줬다.
매직을 누를 때마다 그녀의 몸이 느껴져서 기분이 묘했다.
쓱- 쓱- 쓱- 쓱-
조용한 병실에 사인펜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하얀 간호복에 적힌 내 사인을 보고 만족한 듯 웃더니 내 볼에 키스했다.
“마드리드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영웅에게 뭔가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럼~”
“…”
그녀가 병실을 나갔다.
나는 멍해져서 한참 볼을 붙잡고 있었다.
잠시 후 케이코가 돌아왔을 때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었다.
***
그날 저녁.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마빈 형. 어떻게 됐어요?”
“건우야! 이제 막 바르셀로나 항에 물건을 내렸어.”
“오늘 설치할 수 있어요?”
“무조건 설치해야지. 경기가 며칠 남지 않았잖아.”
“지금 출발할게요.”
“그래. 설치는 나한테 맡기고 조심해서 와.”
나는 마빈 형과 통화를 끝내고 바로 담당 간호사를 불렀다.
카르멘은 퇴근했는지 다른 여자가 들어왔다.
“지금 퇴원할 거니까. 구단에 통보해주세요.”
“건. 선수의 입 퇴원은 구단과 병원이 결정할 일이에요. 갑자기 이러시면 안 돼요.”
“구단 의료팀장에게 미리 말해 놨어요. 확인해 보세요.”
일본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구단 의료팀과 의사소통을 확실하게 해놓아야 문제가 안 생긴다.
계약 기간 동안 프로 선수의 몸은 구단 꺼니까.
다행히 큰 문제없이 나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역시 집이 최고야~~”
아무리 VIP 병실에 있었어도 자기 집만은 못했다.
왼쪽 무릎에 보조기를 달고 내 집으로 들어서니 마음이 편안했다.
마빈 형은 훈련실 구석에서 낑낑대며 뭔가 설치하고 있었다.
“왔어?”
“이게 바로 그 물건이군요… 신기하게 생겼네.”
“첨단 스포츠 과학의 결정체라구. 후후.”
마빈 형이 자랑스럽게 물건을 두드렸다.
[크라이오 테라피 체임버]자랑스럽게 상표가 박혀 있었다.
한국어로 하면 [극저온 냉찜질 탕]이다.
원통형 기계 안에 들어가면 질소 증기가 뿜어져 영하 150도 이하의 환경을 만들어준다.
3분간 극저온 상태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인체는 체온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왕성한 혈액순환을 시작하며 폭발적인 신진대사 작용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항염증 물질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촉진되는데 이는 근육통 완화, 관절염 완화, 피로물질 제거, 운동 능력 회복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피부와 근육이 새롭게 거듭나고 영양분과 효소가 풍부해진 깨끗한 혈액을 온몸에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아드레날린이 상승하며 온몸에 높은 에너지 레벨을 공급한다.
나는 바르사에 입단할 때부터 이 기계를 들어오려고 찾아다녔다.
앞으로 20년 후에는 대중화가 되지만 지금은 걸음마 단계였고 미국 프로 스포츠계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었다.
마빈은 자신의 미국 인맥을 총동원해서 결국 초기형 모델을 찾아냈고 3억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해서 복잡한 통관 절차를 거쳐 뉴욕항에서 배에 실었다.
이게 바로 나의 히든카드다.
“아직 멀었어요?”
“잠시만 기다려 봐. 의료용 기계라 설명서가 복잡하다구.”
마빈은 영문 설명서를 보며 신중하게 하나하나 테스트를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건우야. 준비해라. 드~ 가자.”
“다행히 자정은 안 넘겼네요. 잘 뻔했어요.”
“나도 최선을 다했다구.”
나는 무릎 보조기를 벗고 속옷 차림으로 체임버 안에 들어갔다.
만화 드래곤볼에 나온 신체 회복 기계 같았다.
“이제 가스가 나올 거야. 너무 겁먹지 마.”
“누가 겁먹었다고 그래요!”
마빈이 작동시키자 사방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치이이이-
가스실에 들어온 듯 살짝 겁났다.
그것도 잠시.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극저온 냉동 효과가 일어났다.
온몸의 말초신경이 마비되는 느낌.
몸이 얼어붙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들뜨며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그 상태로 3분을 버티고 밖으로 나왔다.
“어때!?”
“몰라요. 아직. 수건이나 줘요.”
나는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신체의 변화를 확인했다.
“이거 장난 아니네.”
왼쪽 무릎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관절이 전보다 부드러워졌고 찌릿했던 통증이 사라졌다.
제자리에서 뛰어보니 몸이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전쟁 전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좋아. 이걸로 됐어.”
***
이틀 후.
유벤투스 2차전 당일 아침.
바르셀로나 1군 훈련장으로 갔다.
동료들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고 구단 직원과 코칭스테프들도 나를 반겼다.
‘오~ 효과가 이 정도인가?’
내심 기대는 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내가 마드리드에서 받은 기립 박수는 엄청난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볼 좀 차는 동양인 용병]에서 [존경받는 바르사 선수]로 위상이 올라갔다.
재밌는 건 그렇게 위상이 바뀐 원인이 카탈루냐 사람들의 숙적 마드리드 사람들에 의해서라는 거다.
여튼 마드리드 기립 박수 사건은 크라이오 테라피 머신처럼 놀라운 효과를 일으켰다.
“건! 컨디션이 정말 좋아 보이는데?”
“몸이 엄청 가벼워. 그동안 집에서 어떤 치료를 받은 거야?”
오전에 가볍게 팀 전술 훈련을 하는데 바로 효과가 나왔다.
나는 연속 출전으로 지친 선수 중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비법을 알려줘? 말아?’
일단은 비밀로 했다.
다음 시즌에 나한테 주장이라도 맡긴다면 공개할 생각이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축구를 하기로 했다.”
얀티치 감독은 내 몸 상태를 보고 안도했다.
그리고 승부를 걸었다.
이번에도 바르셀로나 구단에서 암묵적으로 밀고 있는 4-3-3이 아닌 자신의 포메이션을 택했다.
“유벤투스의 단단한 방패를 뚫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이 벌어지는 바르셀로나 캄 노우 경기장입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10만 명의 팬들이 카탈루냐 찬가를 부르며 분위기를 달구고 있습니다. 비록 1차전에 아깝게 패배했지만 표정은 밝습니다. 오늘 반드시 승부를 뒤집을 수 있다는 희망이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그 희망의 중심에는 바로 마드리드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남자가 있습니다. 김건은 후반전에 비록 부상으로 빠졌지만 마법 같은 골을 넣으며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오늘 출전 여부를 두고 부정적인 예측이 많았는데 그들을 비웃듯이 선발 출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제 피치로 양 팀 선수들이 등장합니다! 빡빡한 경기 스케줄에 지쳤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합니다.]“장난 아니네~”
오늘 밤은 특히 더 전쟁 같았다.
바르사도 유벤투스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그 절박함은 경기장 밖에서부터 문제를 일으켰다.
이탈리아에서 원정 온 유벤투스 울트라들이 난동을 부려 경찰들과 대치 중이다.
그놈들은 축구를 보러온 건지 싸움을 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
미친놈들.
“김건! 김건! 김건!”
나의 달라진 위상이 실감 났다.
중계 카메라에 내 얼굴이 잡히자 다들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다면 맛을 보여줘야지.”
나는 왼쪽 무릎을 만져보았다.
이 녀석이 얼마나 버텨 줄지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았다.
몸에 쌓여 있던 피로물질이 싹 다 날아가서 90분 내내 얼마든지 뛸 수 있을 기분이다.
삐이이익- !!
[경기 시작했습니다! 바르사는 오늘 밤 유벤투스를 상대로 반드시 2골 차 이상으로 이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