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 is money RAW novel - Chapter 75
그딴 건 위험도 아니야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될 위대한 모험에 비하면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마지막 캠프가 차려진 경주 훈련장에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선수들이 도착할 때마다 취재 경쟁으로 난리가 났는데 민망하게도 최고의 인기 선수는 바로 나였다.
“김건우 선수! 잠시만요!”
“김건우 선수! 한 말씀만 해주세요!”
기자들끼리 육탄전을 벌이며 내 앞을 막았다.
나의 선수단 합류가 워낙 극적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나의 타이틀이 분데스리가 2부 리그 선수가 아니라 이젠 포칼 챔피언이자 MVP 선수였으니까 최고의 기삿거리였다.
“김건우! 멋있다! 김건우! 멋있다!”
“저 사람들 진짜…”
[김건우 국가대표 추진 위원회] 사람들이 여기까지 찾아와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고마우면서도 살짝 당혹스러웠다.
나는 쓸데없는 논란을 만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뻔한 멘트로 인터뷰를 하고 훈련 캠프로 들어갔다.
“어이~! 엠브이피!”
“분데스리가 엠브이피 님 오셨어요~~”
안정민과 유상천 선배가 장난스럽게 나를 맞이했다.
설기훈 선배라던가 개인적으로 만남이 있었던 사람들은 나를 반겼지만 안면이 없던 선수들은 나를 경계했다.
어쨌든 나는 그들에게 위협적인 경쟁자였으니까.
“김건! 감독실로 들어와.”
코치의 부름을 받고 감독실로 들어갔다.
하이팅크 감독이 돋보기안경을 걸치고 서류를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저런 모습까지 설정해서 연기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국가대표팀에 온 걸 환영한다. 김건. 몸은 좀 어때?”
“문제없습니다. 90분 내내 뛸 수 있습니다.”
“흥. 훈련하는 거 보면 알겠지.”
“지켜봐 주세요.”
우리 둘 사이에는 아직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돌아서서 나오는데 하이팅크가 한마디 했다.
“김건. 나는 약속 지켰다.”
“알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셨는지도요.”
“그딴 건 위험도 아니야. 앞으로 우리가 하게 될 위대한 모험에 비하면.”
하이팅크의 말이 진짜 너무 멋있어서 지금 대사를 어디 적어놨다가 나중에 써먹고 싶었다.
***
경주 훈련캠프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매일 먹고 훈련하고 자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나는 하이팅크 감독의 배려로 과격한 단체 훈련에서는 제외되었다.
왼쪽 발목과 무릎이 대략 회복되었지만 어쨌든 경기 전에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나만 계속 특별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다른 선수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었다.
나는 팀에서 거의 막내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그보다 좀 웃기는 상황이 발생했다.
똑- 똑-
“건우야. 잠깐 시간 좀 되냐?”
“그럼요. 선배.”
우리는 하이팅크 감독의 배려로 훈련캠프에서 1인 1실을 썼다.
한국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전까지는 선배와 후배가 한방을 쓰며 후배는 선배의 빤스까지 손빨래로 빨아야 했다.
세탁기가 있는데도.
어쨌든 선배들이 틈만 나면 내 방으로 찾아왔는데 그게 빨래 때문은 아니었다.
이들이 나를 찾는 이유는 바로.
“CK 스포츠 에이전시가 그렇게 일을 잘한다며?”
월드컵 이후 타 리그로 이적을 하고 싶어서다.
당시 한국 스포츠계에서 에이전트는 계약 대리인으로 법적 인정을 받지도 못했다.
선수 개인이 막강한 구단을 상대로 혼자 연봉 협상을 해야 했다.
이렇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입장인 데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고 FA가 되어도 원구단의 동의가 없으면 선수가 마음대로 이적할 수도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후진적 시스템 때문에 내가 K리그가 아닌 J리그에 입단한 거다.
나중에 유럽 진출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한국 축구 선수들은 연봉 10억을 받던 1천만 원을 받던 똑같은 노예였다.
그들은 K구단의 마수에서 자유롭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당시 한국 축구계에는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는 자칭 에이전트 사기꾼들이 파리 떼처럼 들끓고 있었다.
안정민도 그들에게 사기를 당해 35억의 빚을 지고 국제 미아가 될 뻔했는데 나와 CK 에이전시의 도움으로 EPL 진출에 성공했다.
그걸 알고 있는 다른 한국 선수들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연락처 주세요. 제가 월드컵 개막 전에 한국에서 미팅을 주선할게요.”
“그래도 돼? 회사가 영국에 있잖아.”
“선배님이 부르는데 당연히 날아와야죠.”
사실 우리 CK 에이전시에게도 2002년 월드컵은 대목이었다.
월드컵이 끝나면 몸값이 급등할 한국 선수들을 미리 줍줍 할 수 있으니까.
케빈 킴과 최재성에게는 한국의 유능한 선수들을 한꺼번에 독점할 절호의 찬스다.
똑똑-
“건우야~~ 뭐하니?”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를 찾는 선배 중에는 이적 말고 다른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바로 재테크.
“건우야. 너 주식으로 돈 엄청 벌었다며~~?”
“쫌 벌었죠. 뭐.”
“어떤 거 샀어? 나 좀 알려줘라.”
“지금은 다 팔았어요. 저는 요즘에는 미국 주식 해요. IT쪽이 전망이 좋거든요.”
“미국 주식을 한국 사람도 할 수 있어!?”
“당연하죠. 제가 괜찮은 자산 관리인을 소개해 드릴게요.”
나는 미래자산운용 주영광 대표를 연결해주었다.
이렇게 축구선수들 돈을 잔뜩 끌어오자 주영광은 이제 나를 직장 상사처럼 모셨다.
“건우야~~ 너 청담동에 주차장 있다며? 그거 진짜 짭짤하냐?”
“신사동 빌딩은 월세 얼마나 나와? 세금 쎄지 않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훈련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에도 내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꼬였다.
내 재태크 노하우를 하나라도 배우고 싶어 했다.
나는 팀의 막내 격이었지만 선배들의 재태크 스승으로 대우받았다.
훈련캠프에서 축구 얘기보다는 돈 얘기가 더 많이 오갔다.
이걸 보면 일반인들은 좀 불쾌할 수도 있다.
연봉도 많이 받는 놈들이 하라는 축구는 안 하고 만나서 돈 이야기만 한다구.
그런데 생각해보라 프로 선수들은 보통 일반인들이 회사에서 경력을 쌓아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 시기에 은퇴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30~40년 이상을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으로 살아야 한다.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이미 생활의 규모를 키워놨기 때문에 그걸 줄이기도 어렵다.
나는 선배들에게 나의 재태크 노하우를 아낌없이 알려주고 주영광 같은 전문가들을 소개해주었다.
같은 축구선수로서 짠했고 곧 2002년의 영웅이 될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가명훈의 근황을 궁금해 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2002년 5월 31일.
마침내 한일 월드컵이 개막했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개막전부터 이변이 발생했다.
[프랑스 0 대 1 세네갈]전 대회 챔피언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패배했다.
물론 나는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나의 한국 대표팀 합류가 다른 나라팀 역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 내가 대략 기억하고 있는 데로 결과가 나왔다.
내가 토쟁이었다면 월드컵 경기 결과에 수억을 걸어 수백억을 땄겠지만 그런 잡스러운 짓을 안 해도 이미 내 자산은 1200억을 돌파했다.
빌딩들에서 매달 나오는 임대료와 청담동 주차장 이용요금, 그리고 주식 배당금 수입만 해도 한 달에 3억이 넘었다.
“역시 건우는 큰 경기를 우승해봐서 그런지 담담하네.”
“그러니까. 어린 녀석이 대단해.”
선배들은 우리의 첫 경기 날짜가 다가올수록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훈련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 했다.
그들의 병명은 이랬다.
[뿌리 깊은 패배의식]한국은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축구에서 한국을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해서 우리의 붉은 유니폼만 보면 시작하기도 전에 다리가 굳는 증상과 같았다.
역사적으로 축적된 관성이 선수들을 억눌렀다.
“헤이~! 선호! 명호! 왜 그렇게 표정이 굳었어? 볼 줘봐!!”
하이팅크는 그런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읽었다.
그는 전보다 고참들과 스킨십을 자주하고 같이 족구도 차고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선배님들. 어차피 우리가 폴란드를 2대 빵으로 이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고.
한국 선수들은 감옥에서 탈출하는 죄수들처럼 비장하게 첫 경기를 기다렸다.
역사의 관성을 깨는 건 그만큼 어려운 거다.
“깝깝한데 바다나 보러 가자.”
우리는 폴란드 경기 전날 부산 메리어트 호텔에 묵었다.
호텔 방에서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친한 선배들과 삼삼오오 모여 밖으로 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감독님.”
하이팅크 감독은 코치들과 로비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선수들의 입 출입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감시한다기보다는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으니까 적당히 해라.’는 메시지였다.
숙소에서 선수들의 입 출입은 자유였고 밤 10시 전에만 들어오면 됐다.
펑- ! 펑- ! 퍼벙- !
해수욕장으로 걸어 나오자 사람들이 밤하늘에 요란하게 폭죽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
우리는 말 없이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우리… 내일 잘할 수 있겠지?”
“선호형. 왜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경험도 많은 양반이.”
주전 공격수 경쟁을 벌이고 있는 황선호와 안정민이 티격태격했다.
“인마! 맨날 월드컵 가서 쥐어 터지기만 했는데 그딴 게 경험이라고 할 수 있냐?”
“어쨌든 분위기는 알잖아요. 건우 같은 새까만 후배도 저렇게 담담하게 있는데 고참으로 체통 좀 지키세요.”
“건우는 분데스리가 스타잖아. 우리랑 비교가 되냐.”
황선호는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 때 독일 2부 리그 팀에 입단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독일에서 당한 무릎 부상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형. 우리에서 나는 빼야지. 나는 프리미어리거인데.”
“그래 봐야 주전자잖아.”
“주전자도 아스날 주전자는 다르지.”
“자랑이다. 인마!”
머리 식히러 왔다가 더 열만 받고 말았다.
둘이 초딩 말싸움을 한참 벌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젊은 여자들이 우리를 알아보았다.
정확하게는 안정민을.
“정민 오빠~ 맞죠!? 어마! 억수로 반갑네~~”
“꺄아아! 너무 잘생겼다~~”
“오빠~ 머리 스타일 바꿨네~~ 겁나 멋있어요~~”
짧은 돌핀 팬츠에 어깨가 훤히 드러난 비치가운을 입은 젊은 여자 넷이 억센 경상도 억양으로 쉴 사이 없이 떠들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안정민이 부산에서 뛸 당시 여고생 팬들이었다.
그때도 잘 생긴 걸로 부산 일대에서 유명했다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 빨리 자리를 피해야겠는데요.”
“어마! 오빠는!?”
한 여자가 나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